‘없는 적’ 만들어내는 대통령의 피아 구분법

[박정인의 정치평론] 검사와 군인의 ‘우리-적’ 구분법, 정치에 안맞아 정치는 쓸모에 따라 나눠...’적의 적’마저 우리편 대통령, 나경원·이란등 ‘없는 적’ 계속 만들어

윤석열 대통령과 이란 외교부 대변인.
윤석열 대통령과 이란 외교부 대변인.

나경원 전의원에 대한 루머들

윤석열 정부 초기부터, 용산과 여의도에서는 나경원 전 의원의 이름이 자주 오르내렸다. 외교부 장관 자리가 희망 1순위이고, 다음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란 소문이 돌았다. 그러다가 조각이 끝나고 몇 달이 지난 뒤 저출산고령사회 부위원장(장관급)과 기후환경 대사에 잇따라 임명됐을 때 “뭘 두 자리나 겸하나”하는 말이 나왔지만 크게 무게가 실리지는 않았다.

국민의힘이 가진 몇 안 되는 ‘심볼’ 가운데 한 사람인데다 대통령의 서울법대 후배로 대선에서 나름 역할까지 했다고 하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런데 최근 나 전 의원이 당 대표 출마를 저울질하면서 용산과 마찰을 빚자 기류가 바뀌었다. “사실 대통령은 자리 줄 생각이 없었는데 나 전 의원이 저고위 부위원장 자리와 기후환경 대사 자리를 겸하겠다고 강력하게 요구했다”는 소문을 비롯해 이런 저런 설들이 돌기 시작했다.

진위는 알 수 없고 설마 그렇게까지 했겠나 싶기도 한 소문들이었다. 하지만 정치권의 소문은 진위와 무관하게 그게 퍼지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대표경선 출마와 관련해 결국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넜다는 분석이 힘을 얻을 즈음 나 전 의원은 저고위 부위원장과 기후환경 대사직에서 전격 해임됐다.

지난해 10워14일 윤석열 대통령이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10워14일 윤석열 대통령이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우리 아니면 적’ 이분법에 빠진 대통령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에서 해임된다는 건 치명적이다. 비리 의혹이 제기돼 물러나는 고위 공직자도 웬만하면 해임보다 사표 수리로 대신한다. 해임이라는 게 물러나는 사람에게 미칠 영향이 워낙 크고, 대통령에게도 부담스러운 결정이기 때문이다. 분명한 메시지가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대통령이 장관급 공직자를 해임한 건 이번 정부에서 처음일 뿐 아니라 과거에도 사례를 찾아보기 쉽지 않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나경원 해임에 대해 “기시감이 있다”고 평가했다. 당원이 뽑은 대표가 1년 2개월 만에 당 윤리위의 징계로 쫓겨난 사태를 되돌아 보면 기시감이 생길 만도 하다. 당시에도 여의도 안팎에서 윤리위의 징계결정을 순수하고 객관적인 판단으로 본 사람은 별로 없었다. ‘윤심’이 작용했다는 게 상식으로 받아들여졌다.

나경원과 이준석의 경우로 대표되는 윤 대통령의 인간관계 스타일은 이분법적이라는 느낌이다. ‘우리 아니면 적’ 방식의 이분법이다. 보통 피아(彼我) 구분이 가장 분명한 직종이 군인이다. 군인은 무조건 적을 물리쳐야 한다. 군인의 마음에서 화합과 배려가 꽃피면 곤란하다. 적은 적일 뿐이다.

군인 다음으로는 아마 검사가 비슷한 피아 구분법을 갖고 있지 않나 싶다. ‘너는 범죄자고 나는 범죄자를 처벌하는 검사’라는 인식이 분명하다. 검찰에 가서 조사를 받아 본 사람들은 검사들의 그런 태도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곤 한다. 심지어 피의자가 아닌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아도 마찬가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반면, 정치권의 피아 구분법은 이와 확연히 다르다. 정치권에도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정적이 존재하지만, 정적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항상 ‘쓸모’다. 아무리 상종하고 싶지 않는 정적이라도 내 정치적 이익에 쓸모가 있다면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 사람이 내 ‘적의 적’이어서 쓸모가 있는 경우가 많고, 그 사람이 가진 대중적 인기를 내 것으로 만드는 쓸모도 고려할 만 하다.

나경원, 이준석의 경우는 후자다. 두 사람 다 당심이나 민심의 강력한 지지를 업고 있는 정치인이다. 대통령이 이들을 끌어 안으면 지지세를 자기 것으로 가져올 수 있다. 나경원을 대표 경선에서 주저앉히기 위해 대통령이 쓸 수 있는 카드는 적지 않다. 자리 주고 달래서 내 편으로 만들어 놓으면 나쁠 게 없다. 마음에 안드는 언행은 잊거나 참으면 된다. 여당 정치인은 대통령에게, 특히 자리 주는 대통령에게 계속 “노”라고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다른 길을 선택했다. 자신이 지향하는 목표에 걸림돌이 되면 그냥 적으로 판단했다. 적은 응징해야 한다. 사의를 밝혔다고 수용하는 건 응징이 아니니 해임이라는 강수를 둔다. “너는 내 적”이라는 메시지를 세상에 분명히 알리는 방법이다. 검찰에서는 구속영장 청구가 그 역할을 한다. 나경원은 대통령의 적이 돼서 정치적 구속영장이 청구된 것과 다름 없다.

물론 나경원과 이준석을 내친 용산의 결정이 100% 일방적이었을 수는 없다. 잔펀치라도 이들의 공격이 용산을 괴롭힌 면이 있었을 것이다. 짜증이 나고, 울화가 터지고, 그냥 뒀다가는 일이 더 커질 것 같다는 걱정이 들었을 수 있다.

하지만 정치에서 적을 궁지로 몰기만 하는 것은 낮은 수다. 적은 코너에 몰릴 때 더 강해질 수 있다. 대중의 인기를 업고 있다면 특히 그렇다. 기업에서도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내보낼 때 최대한 억한 심정을 갖지 않게 챙긴다. 안쓰러워서가 아니라 혹시 나가서 회사에 해코지 할까봐 그런다.

외교에서 드러난 대통령의 ‘피아 구분법’

윤 대통령의 피아 구분법은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드러난다. 미국과 무조건 친하게 지내야 하고, 북한은 “천 배로 응징”할 대상으로 규정한다. 대통령의 피아 구분이 분명하니 고위공직자들이 과거 정부 때와는 달리 중국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외교의 미덕은 ‘subtle(미묘한, 감지하기 힘든, 절묘한)함’ 인데 윤석열 정부의 외교는 칼로 두부 자르듯 명쾌하기만 하다.

최근 윤 대통령이 UAE를 방문해 이란에 대해 언급한 것도 피아 구분법을 잘못 사용한 사례다. 윤 대통령은 UAE에 파견된 우리 병사들을 격려하는 자리에서 “UAE의 적은 이란”이라고 말해 파장을 일으켰다. 이란 정부가 심각하게 지켜보면서 “한국 정부의 답변을 기다리겠다”고 밝혔고, 이어 양국이 서로 상대 대사를 초치하면서 외교적 긴장이 높아졌다.

일부에서는 “UAE의 적은 이란”이라는 말이 그리 틀린 건 아니라고 대통령을 옹호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발언은 대통령의 피아 구분법의 명쾌함 만큼이나 명확하게 틀렸다. 외교적으로 틀렸고, 사실관계로도 마찬가지다.

우선 외교 면에서 따져보자.

서울 강남 한복판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대로의 이름이 테헤란로이다. 혈맹인 미국은 고사하고 이웃 일본이나 중국도 아닌 이란의 수도 이름을 따왔다. 젊은 세대 중에는 의아해 하는 사람도 있을 법하다. 석유 한 방울도 안 나는 나라가 1970년대 오일쇼크로부터 살아남으려고 거대 산유국에게 잘 보이느라 붙인 이름이다. 서울에는 ‘테헤란로(路)’, 테헤란에는 ‘서울로(路)’가 생기면서 우리는 석유 걱정을 덜 길을 열었다.

이란은 우리 건설업계의 보물섬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이란에 국내 최초로 진출한 옛 대림산업은 이란-이라크 전쟁 중에도 철수하지 않고 공사 현장을 지키다가 이라크군 폭격에 직원 13명을 잃었다. 그러고도 끝까지 버텨 공사를 마무리 했다. 덕분에 이란에서 대림산업 네 글자는 우정과 신뢰의 동의어가 됐다.

미국 주도의 강력한 대이란 제재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어떻게든 이란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고 싶어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심지어 이란이 북한과 은밀한 군사적 관계를 맺고 있는데도 대사급 외교관계를 유지할 만큼 우리는 이란에 공을 들여왔다. 정부가 정성껏 지은 밥에 대통령이 “UAE의 적은 이란”이라는 말 한 마디로 재를 뿌린 셈이다.

사실관계로 보면 더욱 그렇다. UAE와 이란이 아부무사섬을 비롯한 걸프만의 3개 도서 영유권을 두고 대립하고 있고, UAE의 친 서방 성향, 시아-수니파 간의 견제 같은 요인들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이란을 UAE의 적이라고 규정하는 건 곤란하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 UAE 원전을 수주하기 위해 했던 약속 가운데 하나가 우리 군의 UAE 파병이었다. 이번에 윤 대통령이 가서 격려한 바로 그 병사들이다. 파병을 약속하던 당시에는 이란과 UAE간의 갈등이 고조돼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관계가 개선됐고, 제재를 우회한 경제교류가 나름 활발하다. 무엇보다 우리처럼 대사급 외교를 복원해 서로를 ‘동반자 관계’라고 부르고 있다.

윤 대통령도 이런 내용들을 순방 전에 보고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UAE의 적은 이란’이라는 말이 나왔을까? 보고 내용 대부분을 잊어버리고 MB 시절 파병 이유가 됐던 두 나라 간의 갈등관계만 기억에 남은 건 아닐까? ‘동반자 관계니 하는 표현은 껍데기 뿐인 외교 수사이고, 속으로는 두 나라가 서로 견제하는 것 맞잖아’라고 판단했을까? 어떤 이유든 국가와 국가 간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갈등 요소 만을 뽑아내 한 마디로 ‘적’이라고 규정하는 방식은 이례적이고 독특하다.

저출산고령화 대책은 덜 중요한 문제인가

다시 나경원 전 의원 문제로 돌아가 보자. 필자는 이번 사단으로 의문의 1패를 당한 저출산고령사회 위원회가 마음에 걸린다. 피아 구분이 분명한 대통령이 장관급 부위원장을 해임해 버리고, 민간 상임위원을 새로 부위원장에 임명했다. 겉보기에는 부위원장만 바뀌었지 달라진 건 없다. 하지만 저고위 부위원장 자리라는 게 정치인에게 말 잘 들으라고 주는 선물이고, 또 ‘적’이 된 정치인에게 응징 차원에서 뺏을 수 있는 것이라는 인상을 남겼다.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는 우리가 당면한 많은 국가적 문제 가운데 가장 장기적으로 고민해야 하면서도 가장 시급하게 해결에 나서야 하는 이슈들이다. 무엇보다 사회적인 합의가 절실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사안을 다루는 위원회가 대통령의 피아 구분을 정치권에 각인시키는 도구로 사용된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세계에서 가장 아이를 적게 낳는 나라가 된지 오래다. 지난 해 합계 출산율이 0.8명. 남자와 여자가 만나 아이 한 명도 제대로 낳지 않는다는 뜻이다. 신생아 수는 1996년에 70만명대가 깨진 뒤, 2001년 60만명대, 바로 이듬 해 50만명대, 2017년 40만명 대를 깨고 내려갔고, 지금은 20만명대 중반으로 주저앉았다. 생산할 인구도, 그걸 소비할 인구도 부족한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고령화도 심각하기는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2년 뒤인 2025년에 초고령 사회로 접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고령 사회에서 초고령 사회로 올라서는 시간이 미국은 67년, 빠르다는 일본도 24년이 걸린 반면, 우리는 불과 8년 밖에 걸리지 않을 거라는 전망이다. 초고령 사회는 노인 빈곤, 청년 일자리 감소, 복지 재정 압박, 국가 경쟁력 하락을 포함해 수많은 짐을 우리에게 안겨줄 것이다.

정부가 지난 15년 동안 380조원을 저출산 예산으로 쏟아 부었지만 출산 통계는 정부의 노력을 비웃듯 하향세를 가속화 하고 있다. 초고령화가 진행중인 일본은 국가 예산의 1/3을 노인 사회보장비로 쓴다. 우리도 머지 않았다.

저출산과 고령화는 세대갈등, 젠더갈등, 계층갈등을 한꺼번에 품은 쓰나미다. 모든 것이 비용이고 부담이다. 국민에게 부담을 감수해 달라고 부탁하려면 고개를 숙여야 하고, 참을성 있게 설득해야 하고, 삿대질 해도 미소를 잃지 말아야 한다. 피아 구분과는 대척점에 서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적에게 총을 쏘고 범죄자를 구속하는 일과는 더욱 비교할 수 없다.

그래서 윤석열 대통령이 검사나 군인 같은 피아 구분 방법에 매몰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동해 서해 남해에서 일제히 쓰나미가 몰려 오는데 피아 구분이 무슨 소용일까? 지금 윤 대통령의 진짜 적은 마음에 안 드는 당 대표 경선 주자가 아니라 시간이 갈 수록 없던 적도 자꾸 만들어 내는 본인의 정치 스타일이란 지적을 한번 곱씹어 봤으면 한다.

글쓴이

박정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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