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일체론의 허상...YS시절로 돌아가려고?

[박정인의 정치 평론] 대통령을 명예대표로 앉히려 YS의 당정일체, IMF위기 못막아 “대통령이 잘하면 당이 따라올 것”

3·8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대표 후보간 치열한 경쟁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기현, 천하람, 안철수, 황교안 후보. 사진=연합뉴스
3·8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대표 후보간 치열한 경쟁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기현, 천하람, 안철수, 황교안 후보. 사진=연합뉴스

YS총재 아래 JP대표

김영삼 대통령(YS) 시절, 여당인 민주자유당 출입기자들 가운데 말진의 담당은 당 대표였다. 사무총장은 그 위의 선배가 맡았다. 담당 기자 순서가 당직 서열과 거꾸로였다는 사실이 당시 당 대표가 어떤 존재였는지를 시사한다.

대표의 역할은 당 총재인 대통령을 대리하는 것이었다. 여당의 경우 대통령이 당에 상주하며 매일 당무를 챙길 수 없으니 대리인을 둔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 역할은 제한적이었다.

YS가 3당 합당을 디딤돌 삼아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여당인 민자당 대표는 JP(김종필)였다. 거물이고 대선에 기여한 바도 컸다. 하지만 그는 시한부 대표였다. YS는 집권하자마자 당의 색깔을 민주계로 빠르게 바꿔갔다. 하루가 다르게 민정계와 공화계 자리에 민주계 인사들의 명패가 올랐다. 색깔 바꾸기는 당 대표실을 에워싸고 화선지에 물감 번지듯 진행됐다.

5.16 쿠데타를 주도하고 박정희 정권 내내 독재자의 2인자 자리를 지켜왔던 JP의 내공으로도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1994년이 저물어 갈 즈음 JP의 청구동 자택에는 기자들이 조석으로 몰려가 집 주인의 입만 바라보는 일과가 시작됐다. 아무도 직접 물을 엄두를 내지는 못했지만 질문은 분명했다. “언제 물러나실 건가요?”

기자들은 집 마당 구석 가건물에 밤 늦게까지 모여 앉아 JP가 대답 대신 주는 밸런타인 17년을 홀짝이면서 기다렸다. 그러다 1995년 1월20일 아침이 밝았다. JP가 밖에서 서성이던 기자들을 갑자기 거실로 불러들여 기다렸던 한 마디를 꺼냈다. “저는 오늘 부로 당 대표실 문을 닫으려고 합니다.”

어차피 대표는 애초부터 허수아비였기 때문에 큰 충격은 없었다. 진작부터 당무는 총재인 대통령과 민주계 사무총장으로 이어지는 라인이 결정하고 집행해 왔었다. 최형우, 황명수, 문정수, 김덕룡, 김윤환(민정계지만 대통령의 신임을 받았다), 강삼재로 이어지는 절대 충성의 사무총장 라인업이 당무의 핵심이었다.

실세 사무총장 강삼재

특히 젊은 나이의 강삼재 사무총장이 돋보였다. 사무총장실 앞에는 아침부터 기자들이 몰려갔다. 문 앞을 지키던 젊은 수행비서를 보고 몇몇 기자들은 수행비서를 당내 권력서열 3위라고 농담하곤 했다. 총재인 대통령 다음이 사무총장이고, 그 다음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니 사무총장실 문고리 잡은 수행비서가 권력 3위인 게 그리 이상하지도 않았다.

문이 열리고 기자들이 방으로 우우 몰려가면 강삼재 사무총장은 이 말 같기도 하고, 저 말 같기도 한 멘트 몇 마디를 던지고는 “여기까지 합시다”하고 기자들을 물렸다. 애매한 멘트들은 당료들과 선배 기자들의 해석을 거쳐 오전 뉴스로 온 나라에 전달됐다. 그게 그날 하루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이었다.

1995년 8월 김영삼 대통령이 강삼재 민자당 사무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기념촬영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1995년 8월 김영삼 대통령이 강삼재 민자당 사무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기념촬영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대통령 YS의 뜻이 강삼재 사무총장에게 전달되면 총장은 그 뜻에 정치적, 정책적 살을 붙여 전파하는, 단순 명쾌하게 수직계열화 된 당무집행이었다. 대통령과 총장 사이에 누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당의 ‘태양’은 대통령 한 사람 뿐이었다.

강삼재 사무총장은 차를 타고 다니다가도 청와대 비서실에서 전화가 걸려오면 운전기사에게 차를 세우라고 하고 가까운 공중전화에 가서 다시 전화를 걸어 대통령과 통화했다. 철벽 보안이었다. 대통령과 사무총장 둘 만이 아는 국정의 비밀들이 많았다.

사무총장은 특히 정치자금의 금고지기 역할도 맡았다. 대통령 선거자금이 안기부 계좌로 들어가기도 하고, 안기부 자금이 정치자금으로 쓰이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흐름을 모두 아는 사람은 대통령과 사무총장뿐이었다. 강삼재 총장은 돌돌 말린 물수건 대여섯 개씩을 늘 소파 옆에 두고 자주 손을 닦았다. 지금도 필자는 검은 돈을 주무른 컴플렉스가 그런 습관을 만든 것 아닌가 막연히 추측하곤 한다.

DJ 말년, 여야 총재직 폐지

대통령이 당 총재를 겸임하는 체제는 김대중 대통령 시절인 2002년 막을 내렸다. 재보궐 선거에서 여당이던 새천년민주당이 패배한 것을 계기로 DJ가 총재직을 사퇴한 뒤 자리가 폐지됐다. 제1야당 한나라당 역시 같은 해 총재직을 폐지하고 이회창 대표를 중심으로 하는 집단지도체제를 도입했다.

총재직 폐지의 명분은 대통령이나 야당의 실권자가 당을 좌지우지하는 폐해를 없애고 공천권을 당원에게 돌려준다는 것이었다. 총재직이 폐지되고 나서도 보스 중심의 정치문화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총재에서 당 사무총장으로 이어지는 직할 구도가 사라진 건 진전이었다. 대통령과 당의 일체성은 과거에 비해 희석됐다.

당무 하나 집행하는 데 온갖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야 하게 됐고, 대통령이 바지 사장 앉히듯 임명하던 당 대표는 경선을 통해 뽑게 됐다. 경선에서 대통령 마음에 안 드는 후보를 배제하려면 여간 품이 드는 게 아닌 상황이 됐다. 총선 공천을 놓고 청와대와 당이 대립하는 경우도 벌어졌다.

이렇게 우리나라도 정당 민주화가 소 걸음 속도 정도로는 진행되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국민의힘 친윤 세력 내에서 일종의 ‘당정 일체론’이 불거졌다.

난데 없는 ‘명예대표’

친윤 이철규 의원은 당정 일체론의 의도를 이렇게 포장했다. “당과 대통령이 같은 방향을 봐야 하는데… 집권 여당이 대통령과 다른 목소리를 내면 집권 여당이라 할 수 있겠나.“ 이 말은 최근 불거진 윤석열 대통령 ‘명예 대표론’을 지지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어느 조직이든 직함에 명예라는 단어가 붙는 이유는 둘 중 하나다. ‘그 동안 고생하셨거나 존경을 받는 분이시니 일은 직접 안 해도 존재감으로 도와주세요’가 보통이다. 다른 경우는 ‘내가 진짜 주인인데 맨 앞에 나서기는 민망하니 막후에서 쥐락펴락 하겠다’가 있다.

대통령이 자원봉사단체의 명예 대표를 하면 전자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대통령이 집권당의 명예 대표를 한다면 당연히 후자를 하겠다는 걸로 읽힌다. YS-강삼재 같은 당정의 수직 계열화를 할 건데 노골적으로 하면 민주주의의 후퇴라고 할 테니 우회적으로 가겠다는 의도일 게 뻔하다.

당정 일체는 온당치 않다

당정이 일체가 되는 건 민주주의의 후퇴다. 정당은 군대나 기업과 다르기 때문이다. 군대나 기업은 일사불란이 최우선이다. 적의 공격으로부터 국민을 지키는데 second opinion이 있을 수 없다. 기업이 치열한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아 수익을 올리려면 이 직원 저 직원의 사정을 감안할 겨를이 없다.

하지만 정당은 다르다. 가능한 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야 하고, 더 많은 유권자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목표의 49%를 양보하더라도 파국은 피하고 타협을 선택하는 게 정당이다. 지지자들이 당을 구성하고 대표자를 뽑아 의회로 보내는 상향식 민주절차가 작동하지 않으면 권력이 대통령에게 과도하게 집중된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명언까지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다원화 된 사회에서 권력의 집중은 좋을 게 없다.

그런 면에서 여당의 역할은 대통령의 국정을 뒷받침하는 데만 있지 않다. 성과를 내기 위해 한 방향으로 매진하는 대통령에게 다른 의견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줘야 한다. 대통령이 때로는 속도를 줄이고 때로는 방향을 틀도록 유도해야 한다. YS-강삼재 라인의 빈틈없는 일체성이 당에게 그 여지를 주지 않아서, 나라가 외환위기로 치닫는 걸 미리 막을 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보다 일반 당원들의 목소리가 커졌다는 것도 변수다. 민주당의 이른바 개딸들이 대표적이다(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국민의힘에도 이준석 전 대표 시절 입당한 당원들의 생각이 심상치 않다. 당장 컷오프를 통과한 최고위원 후보들의 면면이 입증한다.

그러다 보니 친윤 측은 초조해진 것 같다. 안철수 후보가 대표가 되면 대통령과 친윤 세력이 당을 나가 신당을 창당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부터 초조함을 보여준다. 당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으면 뭣 하러 피곤하게 신당을 만들겠는가. 명예 대표론도 마찬가지다. 굳이 대통령이 명예 대표라도 해야 당을 장악할 수 있다고 보는 것 자체가 여유가 없다는 증거다.

바른 길을 가야한다

하지만 친윤의 당정 일체론은 ‘일은 마음대로 안 되고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는 겨울 밤에 흘러간 팝송 틀어놓고 좋았던 시절을 회상하는 것’에 불과하다. 시대의 변화를 거스를수록 일은 더 꼬인다. 인사는 10여년 전 MB 시대로 돌아가고, 당정관계는 30년 전 YS시절로 돌아간다면 누가 박수를 쳐주겠는가. 아마도 ‘당정 일체’는 백일몽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비윤 후보가 대표가 되면 큰 일 날 것 같고, 친윤 후보가 돼도 당 장악하기가 쉽지 않아 보이면 방법은 따로 있다. 대통령이 쿨하게 ‘용산은 용산 일을, 여의도는 여의도의 일을 하자’고 선언하는 것이다. 당이 어떻게 돌아가든 신경 쓰지 않고 국정 운영을 통해 지지율을 높이면 당은 자동으로 대통령에게 손을 내밀 것이다.

선거철이 다가오면 더욱 그렇다. 개별 후보에겐 인기 있는 대통령과 찍은 사진 한 장이 최고의 득표수단이다. 당은 어떻게든 성공한 대통령의 성과에 숟가락 하나 얹어 보려고 조바심을 낼 수밖에 없다. 당 대표가 대통령을 찾아가 명예 대표 맡아달라고 간청을 하면 “대표가 잘 하고 있는데 내가 굳이…”라고 거절할 여유도 생길지 모른다. 이 방법이 무리한 당정일체보다 훨씬 낫다.

글쓴이

박정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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