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작품 제목에 숨겨져있는 ‘명곡의 정보’들

[장PD의 클래식 한담]

불굴의 작곡가 베토벤.
불굴의 작곡가 베토벤.

[장옥님 칼럼니스트] 어쩔 수 없이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해본다. 처음 클래식에 관심을 갖고 음악을 듣기 시작했을 때는 주로 FM라디오를 통해서였다. 오디오기기도 변변치 않았고, 휴대용 워크맨이니, 아이팟 ... 이런 게 나온 것도 한 참 후의 일이다보니 원하는 곡을 찾아 듣기보다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중간부터 듣는 경우가 많았다.

곡의 중간부터 듣기 시작해 끝가지 듣고 나서야 제목을 확인해볼 수 있었고, 이렇게 하나둘씩 메모해가며 클래식음악의 제목을 익혀나갔다. 고전음악에 나름 기초지식을 쌓아가며 듣다보니 언제부턴가는 제목소개를 놓친 음악을 들으며 그 곡목을 맞혀보려 했다.

방법은 이렇다. 우선 어느 시대의 작품인가를 생각해본다. 바로크? 고전? 낭만? 음악의 무드가 대략 어느 시대라는 게 짐작이 된다면, 개별 작곡가까지로 범위를 좁혀본다. ‘모차르트의 음악인가? ‘아냐, 화성의 울림이 모차르트보다는 좀 더 두텁고 복잡해. 베토벤 같은데?’ 그리고 더 나아가 구체적인 제목까지도 추측해보는데, 악기편성을 유심히 들어봐야 한다. 소규모 편성의 실내악인지, 관현악인지, 관현악인데 만약 독주악기가 도드라지게 들리면 협주곡일 것이고 ... 실내악의 경우는 피아노가 편성되었는지, 관악기로만 이뤄진 편성인지 등을 따져본다.

그러다보면 이 음악이 어느 시대에 만들어진 어떤 작품인지 대강 윤곽이 잡힌다. ‘모차르트의 피아노5중주쯤 될 거 같은데?’ 음악이 끝나기를 기다려 곡목소개 멘트에 귀를 기울일 때, 추측한 바에서 상당히 벗어날 때도 있지만, 그래도 비슷한 시대의 작곡가가 쓴 피아노5중주곡 정도로 싱크로 율이 맞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피아노협주곡 5번 E플랫장조 op.72 ‘Eperor(황제)’라면? 피아노와 관현악+ ‘장조’의 화려함+ 작곡가의 전성기 ‘의미’

제목을 모르고 듣는 음악은 듣는 내내 답답증을 준다. 상대방의 정체를 모르는 상태에서 대화를 나누는 경우라고 해야 할까. 특정한 표제나 부제를 갖고 있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 음악작품의 명칭은 이런 식이다. ‘교향곡 몇 번, 00장조, 작품번호 00’

그런데 이런 식의 음악작품 제목에는 그 악곡에 대한 중요한 정보가 담겨 있다. 마치 와인 병에 붙은 레이블을 보고 그 와인 맛을 짐작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예를 들어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 5번 E플랫장조 op.72 ‘Eperor(황제)’>의 경우, 이 곡의 악기편성은 피아노와 관현악으로 되어 있고, 협주곡이니 소나타 양식의 3악장으로 이루어졌을 것이고, 제1악장의 조성을 나타내는 E플랫장조는 아마도 화려하고 힘찬 느낌을 줄 것이며, 또 작품번호가 73번 쯤 되면 이 곡이 작곡가의 전성기 때 만들어진 것임을, 게다가 부제로 붙은 ‘황제’는 또 어떠한가. 무척 화려하고 당당한 분위기임을 짐작케 한다.

이런 사전정보를 통해 감상자는 이 작품을 가벼운 마음으로 잠깐 들을 것인지, 최소한 30분 정도는 할애하여 집중해서 들어봐야 할 작품인지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기악작품의 제목 중에 대표적인 것이 소나타sonata다. 피아노소나타, 바이올린소나타 등등으로 자주 듣는 제목이다. 그리고 교향곡, 협주곡, 현악사중주, 피아노트리오 등 기악음악의 곡목들 역시 소나타와 연관 있는 제목들이다.

우리에겐 자동차 이름으로 더 익숙한 소나타sonata는 이탈리아어 ‘sonare’(‘울리다’ ‘연주하다’는 뜻)에서 유래한 악식용어인데, 30여 년 전쯤 국내 자동차회사에서 중형의 세단승용차 ‘소나타’가 처음 나왔을 때 일반인들에겐 참으로 낯선 이름이었다. “소나타? 그게 뭐여? 소나 타는 차?”라는 식의 경쟁사에서 만들었을법한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자동차 회사에서 오랜 기간의 기술 개발 과정을 거쳐 기존보다 품질을 높인 중형고급차를 표방하며 내놓은 신차였던 만큼 그 명칭에도 큰 공을 들였을 것이다. 사실 ‘소나타’라는 이름값을 하자면 그것은 대단한 명품이자 정품(精品)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음악에서의 소나타는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벼리고 다져진 결과, 논리적 전개구조가 완성된 고품격의 악곡양식이기 때문이다. 자동차 ‘소나타’는 이후 더 좋은 고급 단계의 신차 브랜드가 나오면서 고급차의 이미지가 퇴색되어 버렸지만, 음악에서의 소나타는 명품의 아우라를 영원히 잃지 않을 것 같다.

20세기 현대음악의 시대가 되면서 대부분의 작곡가들이 더 이상 기존의 소나타양식으로 새로운 작품을 만들지 않았음에도 오늘날의 음악애호가들이 동시대의 현대음악보다는 과거 300여년(대략 1600년 ~1900년) 동안의 음악을 더 선호하니 말이다.

‘소나타’라는 용어는 초기 바로크 시대(16세기 중엽)부터 성악이 들어간 악곡과 구별하기 위해 쓰이기 시작한 용어지만, 그 시절의 소나타와 이후 고전주의음악 시대의 소나타 사이에는 형식상의 공통점이 거의 없다. 또한 같은 건반악기를 위한 소나타일지라도, 시대에 따라 그 형식에 변화가 있었기에 스카를라티의 소나타와 베토벤의 소나타는 그 형식과 내용에 큰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소나타’와 ‘소나타 형식’을 구분할 필요도 있다. ‘소나타’는 제1악장을 ‘소나타 형식’에 기반 하여 만든 多악장(3 내지 4악장)의 기악곡의 명칭이며, ‘소나타 형식’은 이 다악장 기악곡의 제1악장에 쓰이는 악곡 구성의 틀(형식)을 말한다. 소나타 형식은 제시부-전개부-재현부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 구성 논리는 초기고전파 작곡가들에 의해 준비되어 오다가 본격적인 고전주의 시대를 맞아 교향곡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하였다. 그러므로 소나타형식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다면 교향곡의 탄생도 없었을 것이다.

하이든에 의해 교향곡의 형식적인 틀이 완성된 이후(하이든을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다), 모차르트를 비롯한 많은 고전주의 시대의 작곡가들에 의해 소나타형식은 교향곡과 협주곡, 기악소나타, 현악사중주 등 다양한 형태의 악곡으로 구현되었다.

특히 베토벤은 기존 소나타형식에 서주 부분과 코다를 추가하여 이 형식을 확장시켰고, 베토벤의 음악정신을 계승한 낭만주의 음악가들은 확장된 형식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또 저마다 다른 음악적 개성을 드러내는 소나타 작품들을 작곡하게 된다.

글쓴이

장옥님 칼럼니스트

장옥님 칼럼니스트는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해 대학에서 음악(작곡)을, 대학원에서는 음악학을 공부했다. 1981년 KBS에 프로듀서로 입사한 이후, 30여 년 동안 다수의 클래식음악 프로그램과 콘서트 등을 기획 연출했고, 대중음악 채널에서는 <음악앨범> 등의 팝과 가요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최근엔 저서 <위기의 음악들>을 출간했으며, 음악 관련한 집필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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