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악음악의 여왕 ‘협주곡’

[장 PD의 클래식 한담(閑談)] 콘체르토의 ‘경쟁’과 ‘협력’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사진=연합뉴스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사진=연합뉴스
  • *카덴차 cadenza : 빠른 악장의 종결부 직전에 삽입된 화려한 카덴차는 원래 연주자의 즉흥에 맡겨졌으나, 베토벤의 <황제 협주곡>(1809) 이후에는 작곡가가 이 부분까지 만들어 넣게 되었다.

언젠가 방송에 나온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선생께서 젊은 시절의 이런 일화를 들려주었다.

데뷔하고 얼마 있다가 유럽의 유명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게 되어 리허설에 들어갔다. 차이콥스키의 D Major 협주곡을 연주하기로 되어있었다. 리허설 전에 악장이 “D메이저 협주곡!” 하고 단원들에게 싸인을 주었고, 잠시후 지휘자가 나와서 연주를 시작하는데, 그 서주가 차이콥스키가 아니고 브람스 아닌가! 그렇지않아도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데, 순간 아찔했고, 급히 정신을 가다듬고 브람스의 악보를 떠올리며 독주 바이올린이 나오는 부분부터 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췄다. 무사히 리허설을 마치자 단원들로부터 박수가 터져 나왔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협연자를 골탕 먹이려고, 또 그의 실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보려고 그랬다는 것이다. 차이콥스키를 연주하러 갔는데, 난데없이 브람스 협주곡의 서주(이 곡의 서주는 무려 2분30초 이상이다)가 나왔으니 얼마나 당황했을까! 그래도 실력 있는 연주가들은 평소 유명 협주곡 몇 곡은 외워두고 있었기에 젊은 날의 선생도 브람스를 무사히 연주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가 데뷔했던 당시, 그것도 동양 여성이 협연자로 나섰으니, 단원들이 ‘그래 어디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꾸나’하는 심사로 곡목을 바꿔 협연자를 시험에 들게 한 것이다.

협주곡에서 오케스트라는 주로 독주악기를 받쳐주며 음악적으로 대응하는 역할을 한다. 단원들 입장에서 교향곡이나 관현악곡을 연주할 때는 그들이 주인공이지만, 협연 무대에서는 주인공이 독주악기 연주자인 셈이다. 유명 오케스트라일수록 그 단원들 역시 어려서부터 악기를 익히고, 전문교육을 받고, 치열한 경쟁을 거친 수준급 음악가들이다. 무대에서 협연자를 돋보이게 하는 역할이 늘 즐거울 수만은 없지 않을까. 같은 음악가로서 질투도 날만 하다. 그래서 협연자와 단원들 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심과 긴장감이 감돌 때도 있다.

독주 ver. 오케스트라, 경쟁과 협력의 불꽃 튀는 무대

기악음악의 꽃, 또는 여왕이라 할만한 협주곡(콘체르토)은 보통 화려한 연주기교를 구사하는 독주악기와 관현악이 함께하는 음악이다. 이 둘-독주악기와 관현악-의 관계는 한자의 ‘協奏’가 의미하듯 서로 협력하여 연주한다는 것이지만, 정경화 선생의 일화에서 보듯, 또 ‘콘체르토’의 어원을 봤을 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concerto는 ‘경합하다’ ‘논쟁하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동사 ‘콘케르타레(concertare)’에서 나온 말인데, 같은 철자이면서도 전혀 대조적인 ‘일치시키다’, ‘협력하다’를 뜻하는 이탈리아어로 바뀌어 음악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기악반주를 수반한 성악곡을 콘체르토라 불렀고, 이후 성악과 기악이 함께하는 앙상블, 기악만의 앙상블로 확대됐다. 기악음악이 크게 발전했던 바로크 시대에 와서는 원래 라틴어의 ‘경쟁하다’라는 개념이 부활했다.

바로크 양식의 큰 특징 중 하나가 서로 다른 요소들을 극적으로 대비시키는 것인데, 이 시대의 기악음악에서는 콘체르토그로소(concerto grosso 합주협주곡)라는 악곡이 이러한 바로크의 미학을 대표한다. 규모를 달리하는 두 개의 악기군에 의한 음색과 음량의 대비를 중시하는 콘체르토그로소의 바탕에는 ‘경쟁, 대결’이라는 라틴어의 의미가 깔려 있다. 콘체르토라는 단어가 가지는 두 가지 의미 ‘경쟁’과 ‘협력’ 중에서 경쟁에 무게를 두었고, 그것을 음악적인 ‘극적 대비’로 나타낸 것이다.

유튜브= 콘체르토그로소와 솔로 콘체르토가 혼재하는 바흐의 브란덴부르크협주곡 중 제5번.

콘체르토그로소에 이어 이탈리아어의 ‘협력하다’에 충실한 기악 콘체르토도 이 시대의 후반(17세기 말~18세기 초중반)에 독주악기와 오케스트라에 의한 솔로 콘체르토(solo concerto)의 형태로 등장한다. 솔로 콘체르토의 형식적 토대를 마련하고 발전시킨 대표적인 작곡가는 이탈리아의 알비노니, 코렐리, 토렐리, 비발디 등이다. 이들의 바이올린협주곡을 통해 빠름-느림-빠름의 3악장 구성이 정형화되었고, 다른 악기들의 협주곡으로 확산됐다. 제1, 제3악장에 리토르넬로(ritornello: 반복의 의미를 가지며, 협주곡에서는 관현 총주總奏를 뜻함) 형식을 사용하였는데, 이 솔로 콘체르토에서는 독주악기와 관현악이 대등한 역할을 하며 독주와 관현악이 같은 선율을 함께 연주할 때(협력할 때)엔 음량을 극대화하는 효과를 주고,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대비의 묘미를 주는 등 다채로운 음악적 효과를 자아낸다.

유튜브= 비발디/ 마르첼로/ 오보 협주곡

후기 바로크음악의 대가인 바흐가 사망한 1750년을 경계로 해서, 바로크음악의 큰 특징이었던 통주저음(通奏低音)이 쇠퇴하고, 오케스트라의 확대와 함께 전기 고전파 시기가 도래하는데, 협주곡에 있어서는 바로크의 리토르넬로 협주곡이 서서히 소나타형식에 기반한 고전파의 솔로 콘체르토로 대체된다. 고전파의 협주곡은 1악장의 말미(재현부)에 독주자의 기량을 최대한 발휘시키는 화려한 카덴차(무반주 솔로)를 넣은 것이 특징이다. 느린 템포의 선율미와 서정미를 강조한 2악장에 이어 화려하고 빠른 템포의 론도 형식(3악장)으로 활기차고 박력있게 곡을 마무리한다는, 다소 공식 같은 틀이 잡혀갔다. 같은 솔로 콘체르토이기는 하나 바로크와 고전주의의 협주곡 간에는 이러한 큰 차이가 있다. 하이든의 후기 피아노협주곡을 비롯하여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다양한 기악 협주곡들이 바로 여기에 속한다. 고전주의 시대의 솔로 콘체르토에는 당시 공개 연주회의 발전과 사교적인 화려한 음악을 원했던 청중의 취향도 반영되어 그 이전 시대에 비해 독주 악기의 역량이 한층 강화되었다.

고전파의 협주곡을 계승한 낭만파 작곡가들은 그 시대를 특징짓는 비르투오소 연주가의 개인기를 십분 살리는 협주곡을 작곡했다. 그 자신이 비르투오소이자 작곡가였던 파가니니, 리스트 같은 이들은 자신들의 기교를 맘껏 발휘시키는 콘체르토를 작곡했고, 형식에 있어서도 소나타형식을 뛰어넘는 다양한 변화를 추구했다. 악장의 구분 없는 작은 규모의 소협주곡(concertino)이나 교향곡의 위용을 갖춘 교향적협주곡 등 다채로운 형태의 협주곡들을 대거 탄생시켰다.

음악용어 ‘콘체르토’가 라틴어의 ‘경쟁하다’에서 라틴어를 모체로 하는 이탈리아어에서는 ‘협력하다’라는 의미로 바뀐 것도 그렇고, 또 그것이 기악음악의 한 장르로 화려하게 꽃을 피운 과정과 변화도 흥미롭다. 우리는 학교생활부터 사회의 크고 작은 조직을 경험하면서 “상호 경쟁과 협력을 통하여 ...” 이런 상투적인 문구를 보아왔다. 상호모순 같기도 한 ‘경쟁과 협력’이란 문구가 무색하지 않으려면 그 어원이 한 단어에서 출발했음을 상기해볼 일이다.

유튜브= 차이콥스키 / 바이올린협주곡 D장조, 정경화 협연
글쓴이

장옥님 칼럼니스트

장옥님 칼럼니스트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음악(작곡)과 음악학을 전공하였음. KBS FM라디오에서 다수의 클래식음악 프로그램 및 콘서트, 대중음악프로그램을 제작하였음. 저서로는 <위기의 음악가들, 2021년>, <KBS월드뮤직, 2006년(共著)> 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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