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 보지마!”

[장 PD의 클래식 한담(閑談)] 불안과 의심에 사로잡혀 행복의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한 신화 이야기 초과학 시대에도 횡행하는 가스라이팅 더 많이 알아보고 의심하고 질문하길

신화로 등장하는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신화로 등장하는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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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는 무수한 영상콘텐츠를 접하다 보면, 그 스토리의 원형이 오래된 신화나 전설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There is nothing new under the sun)”는 말처럼, 이야기들은 이곳저곳을 떠돌면서 지역문화와 시대상황에 맞게 첨삭 당하고 비틀어져 등장하곤 한다. 못된 계모의 이야기는 한국에 오면 ‘콩쥐 팥쥐’가 되고, 유럽에선 ‘신데렐라’가 된다.

유럽의 해양문화권엔 옛날부터 바다에 빠져 죽은 뱃사람들의 원혼이 바다를 떠도는 유령선을 타고 근처를 지나는 선박의 선원들을 괴롭힌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 사람>이나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의 원형이 되는 전설이다. 하나의 이야기에 작가의 필력이 더해져 문학작품이, 작곡가의 손을 거쳐 오페라가 영상기술에 의해서 영화와 드라마, 인터넷 게임물로 재창조된다. 이러한 옛날이야기들 가운데서 불안과 의심 때문에 행복의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한, 매우 고전적인 소재의 오페라 두 편을 만나보자.

오페라의 대본에 쓰인 소재는 18세기 무렵까지만 해도 신화와 성서의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신화 중의 으뜸인 그리스 신화 중에서 죽은 아내를 그리워해 지옥까지 찾아가 아내를 데려오는 오르페오의 이야기는 여러 편의 오페라와 영화(흑인 오르페)로도 만들어졌다. 아마 오르페오가 수금을 잘 타는 음악가였고, 또 아내를 찾아 지옥에까지 내려간 러브스토리가 음악극의 소재로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탈리아의 초기 바로크의 대표적인 작곡가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1607),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오페라인 페리의 <에우리디체>를 비롯하여 이후 18세기의 작곡가 글루크, 19세기의 오펜바흐도 이 이야기를 대본으로 음악극을 남겼다. 모두 오페라사(史)에 의미 있는 기록을 남긴 작품들인데, 그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은 글루크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이다.

오페라의 혁신을 이끈 글루크

독일 작곡가 글루크(Christoph Willibald Gluck, 1714~1787)는 오페라에서 음악과 연극의 융합이라는 장르 본연의 의미가 퇴색해져 엉성한 극적 구성에 가수들의 노래자랑 같은 음악 과잉의 무대로 변질된 것에 제동을 걸고, 스스로 본보기가 되는 오페라를 만들기로 작정한다. 때마침 알게 된 이탈리아 시인 칼차비지와 함께 오페라 개혁에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극과 음악의 자연스러운 융합을 꾀하는 데 중점을 두고 ‘아름다운 단순함’을 목표로 작품 착수에 들어갔다.

대사의 의미를 직접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대본과 음악에서 불필요한 장식을 제거하는 한편, 서곡이 오페라와 유기적인 관계를 갖게 하고 이전 오페라들에서 볼 수 없었던 발레곡과 합창곡을 넣어 풍부한 관현악 사운드로 극적 표현력을 높였다. 1762년 빈에서 초연될 당시에는 2막의 구성이었지만, 나중에 다시 손을 보아 3막 구성의 오페라로 완성하였다. 글루크(작곡)와 칼차비지(대본)의 오페라 혁신 의지가 제대로 담긴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는 이후의 작곡가들에게 귀감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오르페오의 얘기는 익히 알고 있겠지만, 원전의 얘기를 각색한 대본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뱀에 물려 죽은 에우리디체. 그 무덤가에서 슬퍼하던 오르페오는 사랑하는 아내를 다시 자기 손으로 되찾아 오겠다고 결심할 때, 사랑의 신 아모르가 나타나 음악가인 오르페오에게 노래의 마력에 의해 에우리디체를 구해 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오르페오는 아내를 현세로 다시 데려오기 위해서라면 어떤 명령에도 복종하겠다고 약속한다. 에우리디체를 데리고 나올 때까지는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얼굴을 보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바위산으로 둘러싸인 으스스한 분위기의 하계로 가는 문 앞에 다다르자 복수의 여신들과 원령(怨靈)이 기묘하게 춤을 추고 있다. 오르페오가 그들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한탄을 비통하게 노래한다. 그 애달픈 사정에 여신들은 동정을 느끼고 하계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준다. 하계의 들판에서는 정령들이 우아하게 춤을 추고 있고, 에우리디체가 나타나 함께 극락의 평화를 찬양하고 퇴장한다. 뒤이어 오르페오가 등장하자, 정령들 역시 아내를 찾는 오르페오의 노래에 감동하고, 에우리디체가 다시 나타날 것을 알려준다.

드디어 에우리디체의 모습이 보이고, 다시 만난 두 사람. 오르페오는 에우리디체의 한 손을 꼭 잡고 지상을 향해 급히 달려간다. 사랑의 신과의 약속을 지켜 아내의 얼굴을 보려고 하지 않는 오르페오. 에우리디체는 자신의 얼굴을 보려고 하지 않는 남편의 태도에 의문을 품고 자기 얼굴이 추해져서 사랑도 식은 것 아니냐고 서운해한다. 오르페오는 지금까지의 경위를 이야기해 주지만 에우리디체는 믿으려 하지 않고, 점점 오해가 심해져 이대로 하계로 다시 돌아가겠다고 하는 에우리디체의 말에 결국 오르페오는 아내의 얼굴을 보고 만다. 그러자 아모르의 예고대로 에우리디체는 쓰러지고 숨이 끊어져 버린다.

절망한 오르페오는 다시 아내를 잃은 애절함을 노래 부르고 자살을 결심하고는 막 자기 가슴을 찌르려고 한다. 이때 아모르가 나타나 오르페오의 손에서 칼을 빼앗고 대신 사랑의 나무가지를 에우리디체의 몸에 대어 에우리디체를 살려낸다. 지상에 올라온 두 사람은 아모르 신전에서 양치기들과 함께 모여 사랑의 신을 찬양하며 기쁨과 감사의 노래를 바친다.”

원래 신화에서는 에우리디체를 다시 잃게 된 오르페오가 홀로 슬퍼하며 세상을 떠돌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는 내용이지만, 글루크의 이 오페라는 사랑의 신 아모르를 등장시켜 에우리디체를 다시 살려내어 기쁨과 감사의 분위기로 막을 내린다. 아마도 황제의 명명축일(Nameday) 기념으로 의뢰받은 작품이었던 만큼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리게 했을 것이다. 극 중 하계의 들판에서 펼쳐지는 관현악곡 “정령들의 춤”과 오르페오의 아리아 “나는 에우리디체를 잃고”가 유명한데, ‘아름다운 단순함’이라는 고전미가 돋보이는 곡이다.

동영상=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중에서 ‘정령들의 춤’
동영상= 오르페오의 아리아 ‘나의 에우리디체를 잃고’

독일의 민족신화에 경도되었던 바그너

오르페오의 얘기에서처럼 원하는 일을 이룰 때까지 절대로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는 식의 조건을 내걸고 불행에 빠진 사람에게 손을 내밀지만, 이 금기를 깨트리면 다시 불행을 맞게 된다는 얘기.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의 <로엔그린>도 비슷한 설정으로 되어있다.

음악성 못지않게 뛰어난 문학적 재능의 소유자인 바그너가 직접 대본을 쓴 작품이다. 극장의 감독으로 일하던 계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무대는 그의 놀이터였던 만큼, 무대예술에 대한 본능적 감각을 키울 수 있었고, 여기에 신화의 영웅들 이야기에 심취했던 성향은 나중에 그 영웅들을 오페라의 주인공으로 불러들였다. 중세 기사문학 작품인 뷔르츠부르크의 <백조의 기사>, 작자 미상의 서사시 <로엔그린>, 그리고 그림 형제의 <독일 설화집> 등에서 자신이 원하는 부분만을 뽑아 새로운 대본으로 만든 <로엔그린>의 얘기는 다음과 같다.

“10세기 초, 브라반트 공국의 공주 엘자는 텔라문트 백작과 그의 사악한 아내 오르트루트에 의해 ‘엘자가 스스로 상속인이 되기 위해 동생 고트리프를 죽였다’는 모함을 당한다. 사실은 엘자 다음으로 상속의 권한을 가진 사람은 바로 텔라문트 백작이고, 엘자의 남동생은 마법을 쓰는 오르트루트가 백조로 만들어 버렸다. 엘자는 결백을 주장하지만, 하인리히 국왕은 결투로 시시비비를 가리라는 판결을 내린다. 그러나 아무도 엘자 편을 들어 텔라문트 백작과 싸우려고 나서지 않는 상황.

엘자는 꿈에 본 기사에게 자신의 대리인으로서 결투를 해달라고 간청한다. 엘자의 부름을 듣고 백조가 이끄는 배를 타고 나타난 기사는 엘자의 무죄를 입증한 뒤 그녀와 결혼을 하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 가지 조건을 내거는데, 엘자에게 자신의 정체에 대해, 어디서 온 누구인지에 대해 절대 묻지 말라는 것.

백조의 기사가 결투에서 승리하며 두 사람은 결혼하게 된다. 그러나 오르트루트는 엘자에게 어디서 온 누구인지도 모르는 이와 결혼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며 신랑의 정체에 대해 의문을 갖게 만든다. 혼례식을 마치고 둘만의 신방에 들자 엘자는 참아왔던 그 질문을 하고 만다. 약속을 어긴 것이다. 자신을 신뢰하지 못한 엘자에게 실망한 기사는 자신은 성배의 기사 ‘로엔그린’이라고 밝힌 뒤, 신성한 비밀이 밝혀졌기에 자기는 이제 떠나야 한다며, 마지막으로 백조를 고트리프로 변하게 한 후 배에 오른다. 엘자는 뒤늦은 후회에 절규하지만, 결국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바그너는 자신의 조국이 강력한 민족국가로 통일되기를 열망하며 젊은 시절부터 정치투쟁에도 적극 나섰던 인물이다. 독일민족에 대한 강한 자긍심 한편엔 반유대주의 성향도 있었다. 그는 두 민족을 선과 악의 구도로 그려내었는데, 기사 로엔그린은 민족통일의 사명을 수행하는 영웅의 면모로, 그 영웅을 무조건 지지하고 신뢰해야 하는 여성은 엘자, 영웅에 대한 믿음과 지지를 방해한 텔라문트 백작 일가는 유대민족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이 오페라에는 너무나 친숙한 곡이 하나 있다. 결혼식에서 신부 입장 때 울려 퍼지는 결혼행진곡인데, 3막의 ‘혼례의 합창’이다. 두 남녀의 결합이 신성하다는 점과 행복을 기원하는 가사로 되어있지만, 오페라의 결말은 비극으로 막을 내린다. 그럼에도 결혼식에 쓰이게 된 것은 영국 왕실의 박토리아 공주가 자신의 결혼식에 이 곡을 꼭 연주해달라고 요청해서 시작된 일이라고 한다. 이 곡과 함께 박진감 넘치는 3막의 전주곡도 유명하다.

‘로엔그린’ 중 3막의 전주곡, 혼례의 합창

의심하고 질문하고 돌아보라!

앞의 오페라에서처럼 신이나 영웅에 대한 강한 믿음이 인간을 행복으로 이끈다는 얘기는 정보와 권력을 독점한 소수가 지배했던, 그야말로 마법이 통용되던 구시대의 얘기일 뿐이다. 그럼에도 첨단과학의 이 시대에도 “따지지 말고, 내 말 믿고 따라와 봐”하며 권세가, 지도자, 재벌상속자를 사칭한 꾼들이 활개를 치며 집단이나 개인을 상대로 가스라이팅을 하고 있다. 그들에게 인권과 재산, 생명까지 유린당한 사건들의 뉴스가 심심치 않게 나오는 것을 보면 그 수법은 새로울지언정 대개는 일정한 패턴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신화의 이야기들과는 달리 사람들 각자는 매사에 더 많이 알아보고 의심하고 질문해야 한다. 개인이나 집단이 저지른 과거의 실수를 복기해보고, 떠도는 소문의 출처와 진위도 확인해봐야 한다. 사건의 맥락들을 살펴보면서 사실과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열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

글쓴이

장옥님 칼럼니스트

장옥님 칼럼니스트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음악(작곡)과 음악학을 전공하였음. KBS FM라디오에서 다수의 클래식음악 프로그램 및 콘서트, 대중음악프로그램을 제작하였음. 저서로는 <위기의 음악가들, 2021년>, <KBS월드뮤직, 2006년(共著)> 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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