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음악 생활: 가장 아름다운 자극
[장 PD의 클래식 한담(閑談)] 음악으로 노화를 예방할 수 있을까? 뇌과학과 음악에 대해
설을 지냈으니,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새해 결심을 본격적으로 실천할 때다. 연배가 있는 사람이라면 무엇보다 심신의 건강을 소망할 터, 특히 고령층에 접어들며 가장 두려운 게 ‘치매’라고 한다. 80~90대에도 뇌가 늙지 않는 사람, 이른바 ‘슈퍼 에이저(Super Ager)’로 살아가기 위한 전문가들의 처방엔 인지활동, 사교활동, 신체운동, 영양섭취 등이 일관되게 들어가 있다.
그중에서도 건강하고 튼튼한 두뇌를 유지하기 위해 꾸준히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두뇌활동과 반복적으로 몸에 익힌 활동보다는 새로운 활동과 자극을 접하는 게 도움이 된다는데, 이런 노력은 뇌세포가 아직은 쓸만한 중년 나이 때부터 실천하면 더 효과적일 것 같다. 소소하게는 매일 걷는 산책도 코스를 바꿔가며 걸어보라 권한다. 평소 안 다니던 길에서 마주치는 새로운 풍경들– 동네 식당이나 카페 앞을 지날 때 맡는 냄새, 최근 신축한 멋진 건물, 갑작스레 길냥이를 마주치는 일 등 이런 오감을 통해 들어오는 새로운 자극은 뇌로 전달되어 세포의 연결망(시냅스)을 활성화시킨다는 것이다.
이렇게 두뇌에 자극을 주어 뇌를 활성화시키는 활동으로 악기연주만 한 것이 없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뇌과학을 연구하는 아니타 콜린스(Anita Collins)는 뇌 신경세포의 활성화와 음악과의 연관성을 연구했는데, 악기를 연주하는 동안 신경세포 연결망에서 벌어지는 놀라운 일들을 밝혀낸 테드 강의로 유명하다. 이 연구에선 흥미롭게도 다른 예술 활동, 예를 들어 그림을 그리는 미술 활동보다 음악연주 활동을 할 때, 시냅스에서 더 큰 변화가 일어난다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그 원리를 간단하게 설명한 아래의 동영상을 보고 나면 이제라도 집안에서 골동품이 되어버린 악기들을 꺼내 들고 싶을 것 같다.
음악의 힘, 클래식 효과
사실 예로부터 음악은 심신의 치료에 사용되어왔다. 음악치료(music therapy)의 가장 오랜 기록은 구약성서에 나온다. 구약의 사울 왕 편에는 왕의 우울증과 불면증을 다윗이 악기연주를 들려주어 치료한 내용이 있다. 음악치료는 정신질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악기를 연주하는 일은 신체의 여러 기관, 특히 기본적으로 양손과 양팔을 사용하는 행위이므로 간단한 타악기 연주를 통해 신체 활동을 유도하며 치료하는 방법도 있다. 적극적인 신체 활동을 유발하는 관악기와 건반악기, 현악기 등도 음악치료에 쓰이지만, 고도의 연주기술이 필요한 악기들은 개인의 역량에 따라 사용한다고 한다.

음악치료라고 해서 꼭 환자들에게만 적용할 필요는 없다. 악기를 다룸으로써 얻는 심신의 이익을 살펴보자. 관악기 연주는 호흡기관을 많이 사용해야 하므로 심폐기능을 강화시킨다. 양손을 동등하게 사용하는 피아노 연주는 두뇌의 좌·우측을 균형 있게 발달시킨다. 현악기를 연주할 때엔 손가락 끝으로 지판 위의 현을 누르게 되는데, 이때 손가락에 전해지는 감각이 꽤 찌릿하다. 이 찌릿함이 신경으로 전달되어 뇌세포를 활성시킨다. 양팔의 근육운동은 덤으로 따라온다. 눈으로는 악보를 보고, 손으로 악기를 다루며, 귀로 그 소리를 들으니 시각과 청각, 촉각, 운동감각 등을 동원하여 연주가 이루어지는데, 이때 우리의 뇌는 매 순간 음률의 정확성을 판단하고, 예술적 감성도 발휘해야 한다. 어떤 악기를 연주하든, 집중력은 물론이고 인지력과 판단력, 표현력이 좋아지는 효과와 더불어 음악연주의 성취가 뇌세포에 불꽃을 일으킨다는 얘기다.
‘음악의 힘’이나 ‘클래식 효과’를 거론할 때, 이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거리의 소외계층 청소년들에게 클래식 악기를 쥐어주어 그들을 폭력이나 마약 범죄로부터 보호하고, 심신의 발달을 꾀하고자 시작한 음악교육 운동, 바로 ‘엘 시스테마’의 얘기다. 1990년대 말부터 시작된 베네수엘라의 음악교육 시스템 ‘엘 시스테마’의 얘기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어진 바 있다. 이 교육의 혜택을 받은 청소년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오케스트라’는 해외 무대에 초청되어 격찬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십여 년 전부터 베네수엘라의 경제 위기로 이 시스템도 거의 붕괴되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다)
국내에서도 이를 벤치마킹하여 청소년 교육에 활용하고 있다. 관련하여 최근 발표한 연구논문에 의하면 (악기교육을 받은 청소년들은) “악기를 배우면서 자존감이 높아졌다. 성취감을 느꼈다.” “소극적이었던 성격에서 벗어나 조금씩 앞에 나서게 되었다.” “온전치 못한 가족 사회망에서 음악이 탈출구가 되었다”는 등의 긍정적인 응답이 나왔다.

악기연주가 어렵다면 노래 부르기도 꽤 괜찮은 방법이다. 노래 부르기는 가장 기본적인 음악활동이면서, 효과 또한 제법 크다. 학교시절 합창연습을 할 때, 입 모양을 크게 하라고 외치던 선생님의 가르침이 새삼 떠오르는데, 입을 크게 움직이면 얼굴의 근육들도 따라 움직이게 된다. 또 성대를 사용해야 하고, 호흡을 길게 가져가야 한다. 노래를 부를 때 저절로 얼굴 근육, 성대 근육, 심폐 근육을 사용하게 된다. 그뿐이랴, 선율과 박자, 노래 가사를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한 집중력과 가사와 곡조를 표현하는 감성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노래를 부르는 동안에 느끼는 충만감이 크다. 1석 3조 이상의 효과다. 지자체마다 주민센터에서 운영하는 노래교실은 정말 가성비 높은 유용한 서비스다.
또 하나의 음악 활동은 ‘감상’이다. ‘감상’은 얼핏 소극적인 활동으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제대로 음악감상을 하려면 집중력과 함께 기억을 관장하는 전두엽도 활발히 움직여줘야 한다. 음악의 행위가 성립하려면 작곡·연주·감상의 세 단계가 이뤄져야 한다. 감상은 음악 활동의 빼놓을 수 없는 주요 단계다. ‘음악이 이루어지기까지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데, 감상하는 게 중요한 단계라고?’ 생각하겠지만, 어떤 예술이든 ‘감상’은 예술 행위를 완성하는 마지막 단계로서 필수 요건이다. 단, 늘 듣던 편안한 음악 대신 새로운 음악을 접해보는 것이 뇌 활동에는 유익하다. 만약 대중가요를 즐겨듣는 사람이라면 장르를 바꾸어 전통음악이나 클래식을 들어본다든가, 클래식 애호가라도 그동안 성악과 오페라에 치우친 감상자였다면, 기악곡과 교향곡 등으로 폭을 넓혀 들어볼 것을 권한다. 한 발 나아가 그동안 어렵게 느껴졌던 20세기의 음악까지 레퍼토리를 넓혀보는 것도 좋겠다.
사실 클래식 애호가들도 20세기의 현대음악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다른 예술 분야, 예를 들어 현대미술의 경우는 당대 작가들의 작품이 일반 대중이나 컬렉터들에게 꾸준히 인기가 있는데 비해, 현대음악 작품의 경우는 ‘난해하다’는 이유로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어쩌면 20세기 현대음악의 자리는 그보다 훨씬 매력적이고 쉽게 다가오는 다양한 대중음악에 뺏겨버린 게 아닌가 한다.
고령화 시대에 슈퍼 에이저로 살아가기 위해, 또는 말랑말랑한 젊은 두뇌를 유지하기 위한 제안의 하나로 새로운 장르의 음악듣기를 권하다 보니 현대음악이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까지 언급하게 되었다. 현대음악은 20세기음악, 모던음악, 컨템퍼러리음악 등의 명칭으로 유럽을 필두로 지역마다 시대마다 다양한 양식들로 선을 보여 그 특징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도 쉽지 않다. 난해한 음악이 된 가장 큰 이유는 현대의 작곡가들이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서양음악의 관습을 버리고 새로운 음향과 소재에 천착하게 되면서 보수적 귀를 가진 청중과의 괴리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글을 마치며 현대 작곡가의 음악을 한 곡 소개하자면, 1960년대에 나타난 미니멀리즘 계열의 음악으로 필립 글래스의 ‘I’m going to make a cake’- 이 곡은 버지니아 울프를 모티브로 한 영화 <The hours>(2003년)의 배경음악으로 쓰였다. 현대음악 작곡가들은 대중과의 거리를 영화음악 작곡으로 만회하기도 한 것 같다. 영화만큼 음악이 유명한 제인 캠피언 감독의 <피아노>의 배경음악 역시 미니멀리즘 계열의 작곡가 마이클 니먼의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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