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합창, 음악으로 들을까 소음으로 들을까

[장 PD의 클래식 한담(閑談)] 한 여름날 곤충과 새들의 합창 카를 오르프 ‘카르미나 부라나’ 떠올라 백미는 ‘서주부’...압도적인 거창함

제주 서귀포시 사려니 숲
제주 서귀포시 사려니 숲

폭염과 함께 시작된 소란한 잔치

갑작스런 습격이다. 연일 내리던 폭우가 그치자 찜통더위와 함께 반갑지만은 않은 여름 손님들이 찾아왔다. 이들의 출현은 더이상 한가로운 여름날의 서정이 아니다. 오래된 숲에서 귀가 따갑게 들려오는 소리는 짜증 유발 데시벨을 넘어선지 오래. 전쟁 때 새까맣게 밀려내려 오던 중공군의 인해전술이란 것이 바로 이런 것이었을까? 하지만 생명의 절정에서 개체 번식의 임무를 다하기 위한 그 맹렬한 몸부림을 누가 말릴 수 있겠는가. 이 ‘써든 어택’에 포위된 채 남은 여름을 나야 한다면, 자연현상을 바꿀 수 없다면, 내 마음을 다스릴 일. 이것도 음악이려니, 숲에서 들려오는 곤충들의 합창이려니...하며 말이다.

사실 세상의 모든 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이면 음악이 아닌 것이 없다. 새소리, 물소리, 천둥소리, 일상에서 듣는 생활소음까지. 어떤 음악가들은 이런 모든 소리를 음악화하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한여름 숲속 곤충들이 일제히 질러대는 소리 - 그 안에 정교한 선율은 없지만, 일정한 리듬패턴이 있고, 저마다의 음색과 음역대를 달리하면서 묘한 하모니를 이룬다. 매미 한마리가 선창을 하면 동료들이 뒤따라 반응을 보이며 크레셴도로 고조된다. 여치류의 곤충들은 중고음역에서 지속음을 내고, 가끔 방울벌레가 끼어들어 청아한 소리로 오블리가토를 넣어준다. 갑자기 “툭, 딱, 데구르르르...” 하는 도토리의 낙하음은 타악기 소리다. 숲속의 합창대회나 다름없다.

‘숲속의 합창’을 듣는 김에 합창(合唱) 얘기를 해보자. 여러 사람이 함께 노래를 부르는 것을 합창, 또는 제창(齊唱)이라고 하는데, 합창은 화성의 구성음을 여러 파트로 나누어 부르는 데 비해 제창은 모두가 똑같은 선율을 부르는 것을 말한다. 노래하는 행위는 악기 연주에 비하면 특별한 기술을 연마하지 않아도 쉽게 할 수 있고, 여럿이 어울려 노래하는 행위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공동체의 제례나 의식에서 소속감과 협동심을 북돋는 역할을 해왔다. 합창은 초기 기독교 시대부터 교회의 예배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였고, 교회음악에서 유래한 칸타타와 오라토리오, 수난곡 같은 대작에서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오페라에도 등장하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시대에 따라 아마추어 합창단이 생기면서 그 수요에 의해 작곡가들은 독립적인 합창곡을 쓰기도 했다.

합창에서 ‘아카펠라’라는 용어는 교회에서 부른 무반주 합창(중창 포함)에서 시작되었다. ‘카펠라(capella)’는 이탈리아어로 ‘작은 교회’, 또는 ‘교회 안의 작은 기도실’을 뜻하며, a를 붙여 ‘교회풍으로’, ‘교회의 방식으로’라는 의미가 된다. 나중에는 통상 목소리로만 화음을 맞추어 부르는 무반주의 합창, 또는 그렇게 부르는 방법을 모두 ‘아카펠라’라고 칭하게 되었다.

소리의 향연 <카르미나 부라나>

여름 숲을 뒤덮은 소란한 풀벌레의 합창을 들으며 다양한 형태의 노래가 어우러진 카를 오르프(Karl Orff, 1895~1982, 독일)의 <카르미나 부라나>가 떠올랐다. ‘카르미나(Carmina)’는 라틴어로 ‘노래’를 뜻하는 carmen의 복수형이고, ‘부라나(Burana)’는 ‘보이에른(Beuern)’의 라틴어 이름이다. 따라서 ‘카르미나 부라나’는 ‘보이에른의 시가집(詩歌集, Song of Beuern)’이란 뜻이다. 이 시가집의 명칭은 1803년 독일 남부 바이에른 지방의 베네딕트보이에른 수도원에서 발견되어 붙여진 것이다.

보이에른 시가집은 중세에 떠돌이 수도자, 학생, 음유시인 등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남긴 세속의 노래들을 모은 것으로, 13~14세기 유랑 학생들에 의해 라틴어로 쓰였다. 원전에는 약 250여 곡이 있는데, 도덕적 풍자시와 연애시, 술잔치의 노래, 유희의 노래, 종교적인 내용 등 다양한 내용의 가사로 되어 있고, 그 음악은 보표가 만들어지기 이전의 표기로 되어 있어 해독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카르미나 브라나 음반 표지. 쉴라 암스트롱 등이 노래하고 앙드레 프레빈 등이 지휘했다.
카르미나 브라나 음반 표지. 쉴라 암스트롱 등이 노래하고 앙드레 프레빈 등이 지휘했다.

독일 작곡가 오르프는 이 시가집에서 스물네 개의 시를 골라서 거대한 규모의 음악극인 칸타타 <카르미나 부라나>를 만들었다. 칸타타는 종교적 혹은 세속적인 내용을 하나의 얘기로 엮어 독창과 합창 중창 등 여러 형태의 노래로 구성한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 성악 양식 중 하나이다. 이 작품에는 독창과 중창도 몇 곡 있지만, 곡 전체를 이끄는 것은 합창이다. 작풍에 있어서 기존의 복잡한 화성이라든가, 대위법 같은 기법을 배제한 대신 단순한 음형의 반복과 단선율을 주로 사용하였고, 타악기를 적극 활용하였다. 그 결과 음악은 주술적이고 직관적이며, 강렬한 리듬감과 함께 충만한 음향감을 갖게 되었다. 소프라노, 테너, 바리톤 등 독창자와 혼성합창, 어린이합창에 대편성 관현악이 함께 하는 웅장하고 생동감 넘치는 20세기의 세속 칸타타가 탄생된 것이다.

이 작품의 구성은 서주부인 “운명의 여신이여, 세계의 여왕이여(Fortuna Imperatrix Mundi)”에 속하는 두 곡을 시작으로 1부 봄(Primo vere), 2부 선술집에서(In Taberna), 3부 사랑의 뜰(Cour d’amours) - 이렇게 네 부분에 25곡을 담았다. 각각의 곡들은 운명에 휘둘리는 인생에 대한 한탄과 연민, 익살, 청춘에 대한 예찬, 사랑의 노래 등 다양한 내용으로 인생의 희로애락을 노래한다.

이 작품의 백미는 곡의 시작인 서주부에 있다. 타악기와 혼성합창이 혼연일체가 되어 크고 거창하게 일성을 터트리며 시작하는 ‘오 운명의 여신이여’는 낯설지 않은 곡이다. 영화와 광고에도 쓰였고, 그 압도하는 거창함으로 이러저러한 영상물의 배경음악에 쓰이기도 한다. 이 첫 곡은 칸타타의 마지막 곡으로도 나와 전곡을 장대하게 마무리해준다.

제1곡 ‘운명의 여신이여(O Fortuna)’는 이런 가사로 되어있다.

“오 운명의 여신이여 너는 달과도 같이 변하는구나.

언제나 차거나 기울지

가증스럽고 힘든 인생

괴롭히다가 위로도 하지

가난과 권력은 얼음처럼 녹아버리네

운명은 괴물, 곧 공허해지고

너는 바퀴를 돌리고, 엉뚱한 곳으로 구르면

우리의 건강을 해치고

언제나 헛되이 사라진다
... (후략)”

서주부의 두 곡 - ‘운명의 여신’과 이어지는 ‘운명의 타격’은 매우 박진감 넘치는 합창이지만, 그 가사는 운명의 수레바퀴에 치이고 마는 인생사의 덧없음을 노래한다. 이 곡 외에도 발랄함이 묻어나는 여성합창(8곡: 가게 사람이여 볼연지를 주오), 익살스런 단선율의 독창(12곡: 호숫가에 살 적에는), 서정적 멜로디가 돋보이는 소프라노 독창(21곡: 흔들리는 내 저울엔)등 이 유쾌한 떠들썩함은 시공간을 거슬러 올라가 중세 유럽의 어느 광장에서 벌어지는 한바탕의 향연을 보여주는 듯하다.

독일의 음악가 카를 오르프.
독일의 음악가 카를 오르프.

카를 오르프는 작곡가이자 음악 교육가로도 유명했다. 다섯 살 때부터 악기를 배웠는데, 작곡에 더 흥미를 느껴, 열 살 때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포함된 인형극을 가족들을 위해 작곡했다고 한다. 청소년이 되었을 때 본격적으로 작곡에 뛰어들었는데 체계적인 화성법, 작곡법을 공부하지 않고 교사의 도움 없이 오직 어머니의 도움으로 작곡을 공부했다고 한다.

그는 음악 교육가로서 ‘오르프 악기’라는 리듬악기를 중심으로 실로폰, 탬버린, 캐스터네츠, 트라이앵글 등 리듬악기를 사용하는 오르프 음악 교육을 창시하였다. 이에 맞춰 음악 교육용 작품을 다수 남겼다. 그의 음악교육의 특징은 음악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리듬’을 중심으로, 놀이에 바탕을 둔 교육을 실행한 데 있다. 이를 위하여 특별히 어린이용으로 제작된 오르프 악기를 사용하여 교육적인 효과를 높였다.

유튜브= 카를 오르프, 카르미나 부라나 전곡
글쓴이

장옥님 칼럼니스트

장옥님 칼럼니스트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음악(작곡)과 음악학을 전공하였음. KBS FM라디오에서 다수의 클래식음악 프로그램 및 콘서트, 대중음악프로그램을 제작하였음. 저서로는 <위기의 음악가들, 2021년>, <KBS월드뮤직, 2006년(共著)> 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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