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엔 죽은 이를 위한 음악 ‘레퀴엠’

[장 PD의 클래식 한담(閑談)] 위령성월(威靈聖月)의 음악 삶과 죽음을 넘어 피안(彼岸)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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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의 구원을 기원하는 레퀴엠

11월은 로마가톨릭교회에서 ‘위령성월’(죽은 이의 영혼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달)로 지정한 달이다. 서양의 음악 역사에는 교회음악사가 곧 음악사였던 시기가 꽤 오랫동안 있었다. 중세부터 시작하여 바로크 음악의 시기가 그 절정이었다. 그 이후에도 교회의 영향 아래서, 각 절기와 관련된 예배와 의식에 쓰인 작품들이 꾸준히 탄생되어왔다. 이들 가운데는 예술성이 높아 교회의식을 넘어 감상용으로 꾸준히 연주되는 곡들도 꽤 있다. 칸타타, 미사곡, 수난곡 등 다양한 장르가 있는데, 마침 위령성월을 지내는 11월이니 레퀴엠 음악을 들어보는 것도 의미있지 않을까 한다.

‘레퀴엠’은 진혼미사곡의 첫 구절 ‘주님,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Requiem aeternam dona eis omine)’의 라틴어 첫 단어 ‘Requiem(안식을...)’에서 가져온 것이다. 17세기 이후, 가톨릭교회에서 통일된 장례의식이 확정됨에 따라 레퀴엠이 본격적으로 작곡되기 시작했다. 레퀴엠의 곡 구성은 통상 미사의 전례에서 진혼의 성격에 맞게 뺄 부분(영광송)과 더할 부분(자비의 예수, 진노의 날 등)을 두어 만들어진다. 독창·합창·관현악으로 이루어진 대규모의 작품들이 고전음악 시대부터 만들어졌고, 모차르트와 베를리오즈, 베르디, 포레 등의 작품이 유명하다. 연주회용으로 작곡된 레퀴엠으로는 브람스의 <독일레퀴엠>, 브리튼의 <전쟁레퀴엠> 등이 있다.

‘죽은 이를 위한 자장가’ 포레의 <레퀴엠>

프랑스 작곡가 가브리엘 포레(Gabriel Fauré, 1845~1924)의 레퀴엠은 이 방면의 손꼽히는 명작이다. 포레는 한마디로 프랑스의 에스프리를 세련되게 구사한 작곡가. 그의 <레퀴엠>에서도 종교적 엄숙함이나 죽음의 어두운 그림자보다는 인간적 감성의 숭고함과 천상의 빛을 연상케 하는 우아함으로 슬픔을 승화하고 있다. 포레는 마흔 살이던 1885년에 아버지를 여의고, 그 2년 후에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겪는다. 당시 파리의 마들렌 성당의 성가대 지휘자로 있을 때였는데, 그 슬픔과 추모의 감정을 <레퀴엠(Messe de Requiem) op.48>에 담아 발표하였다. 처음엔 다섯 곡으로 구성했지만, 몇 년 후에 작품의 규모를 모두 일곱 곡으로 확대하였고, 관현악 편성의 대작으로 완성했다.

레퀴엠의 제1곡 입당송(주님,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Requiem aeternam dona eis omine)과 키리에(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는 다소 장엄하게 시작된다. 제2곡은 희생을 바치며 영혼의 구원을 소원하는 봉헌송(Offertoire). 제3곡은 거룩하시다(Sanctus). 제4곡 자비의 주 예수(Pie Jesu)는 소프라노 독창의 단아한 선율이 간절한 기도이자 심금을 울리는 아름다운 곡이다. 이어지는 제5곡 신의 어린 양(Agnus Dei et Lux Aeterna)에서는 가볍게 상행하는 현악의 선율이 하늘로 인도되는 영혼을 따뜻하게 감싸올리듯 신비롭다. 제6곡은 우리를 구원하여 주소서(Libera Me), 마지막 제7곡은 천사들의 노래인 양 여성합창이 주도하는 천국에서(In Paradisum)이다.

포레는 자신의 레퀴엠에 일반적으로 포함되는 ‘진노의 날(Dies Irae)’를 넣지 않았다. ‘진노의 날’은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고 살아있는 자에게는 장차 신 앞에 서게 될 날인 ‘최후의 심판’을 경고하는 두렵고 어두운 분위기의 곡이다. 이 부분을 뺀 포레의 의도는 자신의 레퀴엠에 대해 남긴 말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죽음이란 고뇌와 두려움으로 고통스럽고 서글프게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바라보며 영원한 행복에 도달하는 기쁜 마음으로 다음 세상을 맞는 것이다.”

여담으로 배우 윤정희의 프랑스의 한 교회 장례식에서는 포레의 레퀴엠 중 일곱 번째 곡인 ‘천국에서’가 연주되었다고 한다. 고인이 기쁘게 천국으로 향하기를 기원하는 가족들의 마음이 전해지는 대목이다.

유튜브 동영상= 가브리엘 포레 ‘레퀴엠’

삶은 죽음 저너머 미지의 세계에 대한 전주곡

삶과 죽음에 대한 고찰은 철학과 종교의 화두로서 역사가 깊다. “삶이란 무엇인가?”로 시작하여 ‘죽음’과 그 이후의 세계, 그것이 천국이든 열반이든 간에 사후 세계에 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살다 보면 한 번쯤은 이런 생각도 하게 된다. ‘내 삶은 결국 죽음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고 있는 게 아닌가.’ 특히 직장에서 은퇴하고,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든 이라면 그런 상념에 자주 들게 된다. 그런데 만약에 우리의 현생(現生)이 죽음 이후의 세계에 앞서서 연주되는 전주곡 같은 것이라면 어떨까.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하여 나온 말이지만, 이 명제를 음악으로 멋지게 풀어낸 유명한 작품이 있다. 리스트의 교향시 <전주곡 Les Préludes>이다.

리스트(Franz Liszt,1811~1886/헝가리)는 젊은 시절 ‘피아노의 파가니니’로 명성을 날리며 화려한 테크닉과 현란한 쇼맨십을 과시하며 청중의 열광을 한 몸에 받은 최고의 스타이자 비르투오소였다. 그런데 30대 후반에 접어들자 돌연 피아니스트 은퇴를 전격 선언하고는 보다 진중한 행보로 자신의 새로운 음악 인생을 열어가기로 한다. 지휘자와 작곡가, 교육자로 활동하며 창작의 황금기 또한 맞게 되는데, 그의 이러한 변신은 한 여인과의 운명적인 만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847년 2월, 리스트는 러시아 키예프에서 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을 처음 만났다. 당시 남편과 별거 중이었던 공작부인은 리스트를 추앙하는 다른 무수한 여인들과는 뭔가 달랐다. 리스트와 마찬가지로 깊은 종교적 감성, 문학에 대한 열정을 지니고 있었기에 두 사람은 이내 사랑에 빠졌고, 공작부인은 리스트에게 작곡에 전념하라며 그를 러시아 남부에 있는 자신의 성으로 데려갔다. 연인의 충고를 받아들인 리스트는 순회 연주가로서의 요란한 인기와 부를 뒤로하고 이듬해 독일의 소도시 바이마르에 정착하여 제2의 인생을 살게 된 것이다.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왼쪽)와 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왼쪽)와 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

바이마르 시절, 공작부인의 내조와 안정된 환경에서 리스트는 매우 활발한 음악활동을 펼치어, 지휘자로서 44편의 오페라를 궁정극장 무대에 올렸다. 또 후학들을 위한 강습회를 여는 한편, 작곡가로서도 놀라운 창작력을 발휘했다. 그의 유명한 피아노 작품들인 <피아노 소나타 b단조>, <초절기교 연습곡집>, 피아노 협주곡 두 곡과 <죽음의 무도> 등 성숙기의 주요 피아노곡들이 이 시기에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관현악 창작에도 공을 들여 <파우스트 교향곡>, <단테 교향곡>과 열두 편의 ‘교향시’를 작곡했다. 모두 그의 작품목록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곡들이다.

교향시(Symphonic Poem)란 관현악에 의한 표제음악의 일종으로, 말 그대로 시적인 내용을 교향곡의 형식에 담아낸, 낭만주의 시대의 새로운 장르인데, 이 장르를 창시한 이가 바로 바이마르 시절의 리스트였다. 그중 가장 유명하고 완성도 높은 작품인 세 번째 곡 <전주곡>은 원래 합창곡 <네 개의 원소 Les quatre éléments>의 서곡으로 쓰기 위해 작곡했던 것을 1854년에 독립적인 악곡인 교향시로 개작한 것이다. 전편에 흐르는 표제는 개작에 영감을 준 프랑스의 낭만주의 시인 알퐁스 드 라마르틴의 <명상 시집>에서 ‘인생은 죽음에 의해서 시작되는 미지의 세계의 전주곡이다’에서 따왔다.

공작부인이 이 시를 리스트에게 추천했고, 리스트는 이 시에서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표제를 취하여 사랑, 시련, 휴식, 투쟁이라는 네 가지의 큰 굽이를 거치는 삶의 여정을 음악화하였다. 출판된 악보에는 라마르틴의 송시에 기초하여 공작부인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다소 장황한 서문이 붙어 있는데,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옮겨본다.

“우리의 인생이란 죽음에 의해 그 엄숙한 첫 음이 연주되는 미지의 찬가에 대한 전주곡이 아니겠는가? - 사랑은 모든 존재의 눈부신 여명이다. 그러나 매서운 바람이 아름다운 환영을 흩어 버리고 격렬한 전광이 제단을 파괴해버리는 폭풍우에 의해서 그 최초의 행복의 환희가 중단되지 않을 운명이 어디 있겠는가? 처참하게 상처 입은 영혼은 그 격랑이 지나간 뒤 전원생활의 고요한 평온 속에서 아픈 기억을 달래려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인간은 자연의 품이 베푸는 자비 깊은 평안의 향락 속에 오래도록 안주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 나팔소리가 경보를 울리면, 그는 다시금 위험한 전장으로 돌진한다, 전투를 통해서 완전한 자각과 활력을 되찾기 위하여.”

이 곡은 인생의 다양한 국면을 대표하는 네 가지 - 사랑, 시련, 목가적 휴식, 투쟁을 단일 악장 형태의 악곡에 순서대로 표현하여 마치 한 사람의 일대기를 보는 듯하다. 도입부의 주선율이 인생의 네 굽이를 거치는 동안 다양한 표정으로 변형된다. 먼저 느린 템포로 따스한 사랑의 기운이 느껴지는 주선율은 다음 부분에서 다소 빠른 템포로 폭풍우 같은 삶의 격랑을 긴박하고 격렬하게 들려준다. 세 번째 부분은 목관악기들이 전원의 평화로운 풍경을 그려낸다. 마지막 부분에선 주선율이 금관악기의 우렁찬 울림으로 변하여 위풍당당한 행진곡풍으로 전투와 승리를 표현한다.

유튜브 동영상=프란츠 리스트의 교향시 ‘전주곡’
글쓴이

장옥님 칼럼니스트

장옥님 칼럼니스트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음악(작곡)과 음악학을 전공하였음. KBS FM라디오에서 다수의 클래식음악 프로그램 및 콘서트, 대중음악프로그램을 제작하였음. 저서로는 <위기의 음악가들, 2021년>, <KBS월드뮤직, 2006년(共著)> 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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