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의 나라 이탈리아, 세계의 애창곡 ‘나폴리민요’
[장 PD의 클래식 한담(閑談)] 1990년 쓰리테너 세기적 공연으로 주목 한민족의 가무(歌舞) DNA도 만만치 않아 올 추석엔 ‘노래 잘하는 한국인’으로 즐겁게
클래식 공연의 전설 “Three tenors in Rome”
얼마 전 오랜만에 찾은 콘서트는 젊은 테너 3인의 무대였다. 바로 한 세대 전의 세계적 테너들의 전설적 공연을 벤치마킹한 무대였는데, 1990년 로마에서 열린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 이 세 명이 함께 한 공연무대였다. 당시로서는 한창 주가를 올리던 세 명의 테너가 한 무대에 선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획기적인 일이었다. 이 공연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결승전의 전야제로 기획되어, 주빈 메타의 지휘로 로마의 카라칼라 야외극장에서 열려 대성공을 거두었다. 공연의 실황은 9억 명 이상이 시청했고, 이 실황을 담은 음반은 가장 많이 팔린 클래식음반으로 기네스북에도 올랐다.
이후 월드컵 개최지를 따라 LA, 파리에서 이들의 무대가 이어졌고, 2001년 한국/일본 월드컵을 기념하여 서울에서도 쓰리 테너 콘서트가 열린 바 있다. 70세가 된 파바로티의 은퇴 선언을 계기로 멕시코에서의 공연을 끝으로 이 세기의 콘서트는 막을 내렸다. “가장 저속하고 우아하지 못한 쇼”, “클래식 콘서트가 아닌 3인의 서커스”라는 비난과 혹평도 있었지만, 전 세계 음악팬들의 열광을 이끌어내는 데엔 성공한 ‘테너 송 종합세트’ 같은 빅이벤트였다.
이번 9월에 열린 한국판 쓰리 테너의 공연은 1990년 로마 공연의 추억을 소중하게 간직한 한 공연기획자가 주도한 일종의 오마주 무대였다. 그래서 로마 공연의 레퍼토리 그대로를 한국의 젊은 테너 3인 - 김민석, 존노, 정필립이 부르게 했고, 2관편성의 제법 규모 있는 오케스트라가 협연함으로써 나름 구색을 갖춘 무대로 완성도를 높이고자 했다. 각자 개성과 음악성을 달리하는 세 명의 테너는 차례로 무대에 나와 처음에는 주로 오페라의 독창 아리아를, 나중에는 셋의 중창으로 친근한 노래들의 메들리를 들려주었다. 음악회가 진행되는 동안 무대 위 가수들의 열정적 에너지에 차츰 동화되어 지난 여름 동안의 무더위에 지친 심신이 치유받는 기분이었다. ‘그래, 음악회에 와서 꼭 심오한 예술성만 찾을 필요는 없는 거지. 이렇게 함께 박수치고 환호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져보는 그 자체만으로도 좋은 걸’ 했다.
어느 악기보다 아름다운 ‘사람의 목소리’
클래식 장르 중에서도 성악은 청중에게 가장 편안하게 다가오는 장르라는 걸 새삼 느끼면서 ‘역시 사람의 목소리를 능가할 악기는 없을 거야’ 했다. 또 설령 노래의 가사 내용을 잘 모르더라도 열정과 그리움, 연민 같은 감정의 곡절이 즉각적으로 청중에게 와닿는 것도 성악콘서트의 큰 장점이다. 무대 위 가수는 청중 개개인을 향해 때로는 떨리는 목소리로 사랑을 고백하고, 청중은 그의 상대가 되어 달콤한 속삭임에 귀를 기울인다. 변심한 애인 때문에 애타는 심정을 호소할 때엔 객석에서 탄식이라도 나올 듯, 무대와 객석은 하나가 되어 교감한다.
무대 위 대형 스크린에는 번역된 가사가 올라와 한층 감정이입이 되었다. 사실 그 가사들 대부분은 여간 유치한 게 아니다. 예를 들면 “별빛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 그는 내 여인의 두 눈동자를 아직 보지 못했겠지 ...” 또 <아침의 노래(Matinata)>라는 시원하게 뽑는 곡이 있는데, 그동안 나는 이 노래가 아침의 신선함과 떠오르는 태양을 찬미하는 기운찬 노래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가사를 보니 내 여인의 아름다움이 떠오르는 아침 햇살의 부드러운 장밋빛 같다는 연인 예찬이다. 그렇지만 이 낯간지러운 낭만 과잉의 가사 모두 용서가 된다. 음악이니까, 음악예술의 본질은 바로 로맨티시즘 아니겠는가!
이 공연의 레퍼토리는 거의 다가 귀에 익은 선율들이었다. 나폴리민요를 비롯한 이탈리아 오페라의 아리아, 뮤지컬의 유명 넘버 등등, 모두 노래의 즐거움을 만끽하기에 충분한 곡들이다. 이탈리아는 옛날부터 ‘노래의 나라’로 불릴 만큼 성악 분야에서 최고라는 인정을 받아온, 성악 예술의 종주국이다. 오페라의 발상지이기도 하고, 그런만큼 내로라하는 성악가 역시 많이 배출했다. 이탈리아에서는 ‘노래’를 ‘칸초네’라고 하는데, 대중가요건 예술가곡이건 모두 ‘칸초네’로 통한다.
세계인의 애창곡 나폴리민요
이탈리아의 칸초네 중에서도 특히 나폴리민요가 전 세계적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는데, 보통 나폴리‘민요’라고 부르지만, 이 노래들은 옛날부터 전해져오는 작자 미상의 그런 민요는 아니다. 이탈리아에는 전통적으로 지역별 축제 행사에서 노래 경연대회가 많았고, 특히 나폴리의 피에디그롯타 축제에서 거행된 가요제가 칸초네 페스티벌의 대표 격이라고 한다. 여기서 나온 칸초네는 대부분이 오늘날까지 애창되고 있는 <오 솔레 미오>, <5월의 밤>, <돌아오라 소렌토로> <산타루치아>같은 곡들이다. 이탈리아반도의 남쪽 지방인 나폴리의 칸초네는 타지역의 노래에 비해 감미로움과 우아함이 더해진 서정적인 멜로디가 일품이다. 이 곡들은 무엇보다도 ‘사랑’을 노래한 게 많은데, 실연을 노래할지라도 어두운 절망감보다는 남부 이탈리아의 태양을 닮은, 어딘지 화사함이 엿보이는 애틋함이 두드러진다.
시기적으로는 마침 20세기 초, 라디오라는 대중매체와 축음기의 보급 시기와 맞물려 나폴리의 칸초네 역시 그 전성기를 맞게 된다. 칸초네 경연대회는 수많은 아름다운 칸초네를 세상에 내놓았고, 유명 가수들도 탄생시켰다. 이탈리아 출신의 성악가들은 자신의 콘서트에서 이런 나폴리 칸초네를 자주 부르게 되었고, 아예 이들 노래만을 담은 음반을 발매하여 전 세계적으로 유행시키기도 했다. 게다가 나폴리는 이탈리아 내에서뿐 아니라 유럽의 유명 관광지였기에 그곳을 찾는 관광객들에 의해서도 그 노래들이 널리 퍼져나갈 수 있었다. 우리의 음악책에도 실려 학창시절에 나폴리민요 한두 곡 배우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다.
2차대전 직후부터는 보다 대중적인 페스티벌인 ‘산레모가요제’를 개최하여 칸초네의 폭을 넓혀갔다. 그 영향으로 우리나라에서 6,70년 대에 유행한 왠지 세련된 느낌의 번안가요 중에 ‘알고 보니 너 칸초네였구나!’ 할 노래들이 제법 많다. ‘하얀 손수건’, ‘언덕 위의 하얀 집’ 등등 흘러간 세대에겐 국내 가요 이상의 친숙한 노래들이다.
‘노래의 나라 이탈리아’지만, 사실 노래 좋아하기로는 우리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민족이다. 왜 고대 중국의 역사서에 우리 조상에 대해 콕 집어 ‘음주가무를 즐긴 부족’이라 기술해놓았겠나. 어딜 가나 틈만 나면 노래자랑과 춤판을 벌여놓고 잘하건 못하건 돌아가며 노래하는 한국인이다. 최근 대단해진 K팝의 국제적 위세도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닌, 가무를 즐기는 DNA가 오랜 기간 발효 숙성을 거쳐 발현된 것일지도 모른다. 민족의 명절 한가위가 다가오는데, ‘음주가무’에서 ‘음주’보다는 ‘가무’의 유전자에 더욱 집중하여 ‘세계에서 제일 노래 잘하는 한국인’으로 각인되길 보름달에 기원해 봐야겠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