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의 새해맞이 된 ‘빈 신년음악회’
[장 PD의 클래식 한담(閑談)] 19세기 유럽의 대표적 풍속 ‘왈츠’ 왈츠 작곡 명가를 이룬 ‘슈트라우스’ 초청 지휘자와 빈 필하모니의 갈등도 ‘빈’ 왈츠는 기존 왈츠와 다르다는데...
빈 신년음악회의 탄생
음악애호가들의 버킷리스트엔 ‘해외 유명 음악제 직참’이 있기 마련인데, 그중 하나가 오스트리아 빈에서 새해 첫날 열리는 신년음악회를 직접 보는 것이다. 이 음악회의 정경은 익히 알려져 있다. 무대를 가득 채운 단원들과 화려한 꽃장식, 홀 중앙부의 거대한 샹들리에, 잘 차려입은 청중들- 이런 정경만으로도 새해를 맞는 설렘과 그 안에서 펼쳐질 음악의 향연을 기대하게 한다.
빈이 ‘음악의 도시’로 명성을 얻은 것은 18세기 후반부터다. 하이든과 모차르트 그리고 베토벤까지 이들 ‘비엔나 트리오’의 주요 활동지가 이 도시였고, 그에 못지않게 당시 빈의 왕실과 귀족사회도 이 도시를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만들고자 예술가들을 불러들여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사정이 허락된다면야 빈으로 날아가 신년음악회를 직관하는 게 가장 좋겠지만, 요즘의 미디어 환경에선 위성을 통해 실시간 안방 시청도 가능하다. 이 음악회의 실황 중계는 위성을 통해 40여 개 나라에 동시 송출되고 있고, 때맞춰 위성중계로 볼 수 있는 극장 상영관도 등장했다. 지나간 공연의 실황은 이미 CD와 DVD는 물론, 블루레이(Blu-ray) 디스크로도 출시되어 있으니,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세계인의 신년맞이 문화콘텐츠가 되었다.
빈 신년음악회(Neujahrskonzert in Wien)는 빈 필하모니 관현악단이 매년 1월 1일 오전 11시 15분(현지시각)에 빈 음악협회(Wiener Musikverein)의 황금홀에서 개최하는, 정식 명칭은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신년음악회(Neujahrskonzert der Wiener Philharmoniker)’다. 빈 시내 중심부에 자리한 무지크페라인은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상주하는 곳이고, ‘황금홀’은 건물 내의 6개 홀 중 가장 크고 화려한 연주회장이다.
왈츠와 폴카 등의 춤곡을 빈 필이 연주하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부터다. 이후 공연 프로그램 전체를 슈트라우스 일가의 작품으로 채워 넣은 연주회도 종종 열렸고, 이런 연주회가 점차 송년 및 신년 행사로 자리잡게 되었다. 지휘자 클레멘스 크라우스는 1940년 12월 31일에 요한 2세와 요제프 슈트라우스 형제의 작품들로 짠 공연을 열었는데, 이 공연을 바로 다음 날인 1941년 1월 1일에 그대로 열었다. 이것이 첫 번째 빈 신년음악회로 기록됐다.
이 콘서트는 빈 필의 연례행사가 되었지만, 지휘를 반드시 빈 필의 지휘자가 하는 것은 아니다. 빈 출신이거나 혹은 빈에서 오랫동안 음악을 배운 사람이라는 암묵적인 관행이 있긴 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유명 지휘자들을 초빙하여 지휘봉을 맡기기 시작했다. 1987년부터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을 비롯해 클라우디오 아바도, 카를로스 클라이버, 주빈 메타, 리카르도 무티,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등 유명 지휘자들이 무대에 섰다.
올해 2024년엔 독일 출신의 크리스티안 틸레만이 지휘를 맡았고, 2025년은 리카르도 무티에게 맡길 예정이라고 한다. 이렇게 매년 지휘자를 바꿔 진행하는 것은 춤곡 중심의 신년음악회가 이제는 빈을 넘어 세계인의 신년맞이 이벤트가 되었고, 지휘자의 개성에 따라 얼마든지 차별화된 분위기로 새로움을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곡은 어떻게?
빈 신년음악회 하면 떠오르는 음악은 단연 왈츠와 폴카 등 즐거운 분위기의 곡들이다. 특히 앙코르에선 ‘라데츠키 행진곡’을 반드시 연주하는데, 이때 청중들은 박자에 맞추어 박수를 치고, 지휘자들도 관현악단이 아닌 청중들을 바라보며 지휘하면서 흥을 돋운다. 콘서트의 연주곡들은 주로 빈과 오스트리아의 지역색을 살린 작품들과 빈에서 주로 활동한 작곡가들의 작품 위주로 하고 있다. 슈트라우스 일가-요한 슈트라우스 1세와 그의 아들들, 그리고 그들의 동료이자 경쟁자였던 요제프 라너, 칼 미하엘 치러, 프란츠 폰 주페, 요제프 헬메스베르거(2세)의 작품이 중심이 된다.
선곡에도 변화를 주어 유명 작곡가의 생몰년도일 경우나 지휘자의 재량에 따라 비전통적인 선곡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1991년에는 모차르트의 사망 200주년을 기념해서 그의 춤곡 작품들이 연주됐다. 2006년에도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 기념으로 <피가로의 결혼>서곡이 연주됐고, 2009년에는 하이든 서거 200주년 기념으로 ‘고별’ 교향곡의 4악장이 공식 프로그램의 마지막 곡으로 연주되기도 했다.
이렇게 지휘자의 재량에 따라 춤곡 전통에서 벗어난 선곡이 이루어지면 간혹 보수적인 빈 필과는 갈등을 겪기도 한단다. 이럴 땐 지휘자 초빙 리스트에서 삭제당하는 소심한 복수(?)를 당한다고. 행진곡이나 서곡, 왈츠 등으로 시작하며, 원칙적으로 관현악 연주곡이 선곡되지만, 특별히 성악가들이나 빈 소년 합창단이 무대에 함께 오르는 경우도 있다.
슈트라우스 일가와 왈츠
물론 가장 많이 선곡되는 것은 슈트라우스 일가의 곡들이다. 슈트라우스 일가는 아버지인 요한 슈트라우스 1세와 그 아들 요한 2세, 요제프, 에두아르트로, 이들은 주로 왈츠와 폴카 등의 춤곡을 작곡하였다. 이 네 사람 중 가장 유명한 이는 아들 요한 슈트라우스(Johann Strauss) 2세(1825 ~1899)이다. 보통 아버지 요한을 ‘왈츠의 아버지’, 아들을 ‘왈츠의 왕’이라 부르는데, 아버지는 빈 왈츠의 기초를 닦았고,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배운 빈 왈츠를 최고조로 발전시킨 인물이다.

아버지는 원래 아들 요한이 대를 이어 음악가가 되는 걸 반대했다. 평범한 직업을 택하기를 바랐지만, 아들의 음악 사랑을 막지는 못했다. 아버지 몰래 어머니의 도움으로 음악공부를 이어간 요한 2세는 19살 때 자신이 이끄는 악단을 만들 정도로 탁월한 실력을 갖추게 됐다. 아버지 사망 이후에는 아버지가 이끌던 악단을 인수하여 유럽 각지에서 순회공연을 했고, 오스트리아 궁정 무도회의 지휘자를 맡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게 된다.
중년의 나이가 되자 그는 악단의 운영을 동생들에게 맡기고 작곡에 전념하였는데, 자신이 태어난 도시를 사랑한 작곡가로서 ‘빈’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곡을 다수 작곡했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 ‘도나우’를 주제로 작곡한 밝고 힘찬 남성합창곡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1867, 원래 합창곡으로 만들었지만 나중에 관현악곡으로도 만들었다). 이 곡은 보·오 전쟁에서 패한 후 상심한 오스트리아 시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작곡했고, 빈 교외 숲의 정경을 아름답게 묘사한 <빈 숲속의 이야기>(1868), 이 외에도 빈 사람들의 기질을 음악으로 표현한 <빈 기질 Wienerblut>, 프랑스 파리 방문 때의 받은 인상을 빈 풍의 음악에 담은 <빈 봉봉 Wiener BonBon> 등이 있다.

특히 그의 왈츠 곡은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과 섬세하고 다양한 화성을 구사하여 왈츠의 차원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음악적 표현에 있어서 소리나 상황을 묘사하는 등의 유머를 재치있게 반영하여 대중적인 인기도 크게 얻는 등 ‘왈츠 황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는 평생 500여 곡의 왈츠와 폴카 등의 무곡과 함께 당시 유행하던 오페레타도 16편을 남겼다. 1874년 초연한 <박쥐>는 오페레타의 틀 안에 음악적으로는 왈츠가 중심이 되는 작품이며, 오늘날까지 공연되는 그의 대표적인 오페레타이다.
그의 왈츠 인생은 1930년대 미국에서 ‘그레이트 왈츠’라는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진 이후, 제목을 달리한 여러 편의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왈츠 & ‘빈’ 왈츠
왈츠는 ‘쿵짝짝 쿵짝짝’의 3박자로 된 경쾌한 춤이다. “19세기 내내 유럽 사회는 현실을 외면하고 왈츠의 원무 속에 정신없이 빠져버렸다”고 할 정도로 왈츠는 19세기 유럽의 대표적 풍속이었다. 바로 1814년부터 이듬해까지 열렸던 ‘빈 회의’를 계기로 급속도로 그 유행이 퍼진 것인데, 빈 국제회의는 당시 프랑스혁명의 여파로 유럽 사회에 만연한 혁명의 기운을 어떻게든 가라앉혀 보려 모인 자리였지만, 회의 주재국 오스트리아의 메테르니히 재상이 회의 기간 내내 호화 파티와 무도회를 열었고, 거기엔 늘 왈츠가 함께 했다.
혁명에 비판적인 정치인들은 춤추고 즐기기에 바빴고, 정부는 정치적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수단으로 사회 전체에 왈츠를 장려했다. 게다가 왈츠는 남녀 파트너가 안고 추는 춤이어서 이러한 흥청거리는 분위기에도 딱 맞아떨어지는 춤이었다. 윗물은 아래로 흘러 점차 중산층과 서민층까지 이 춤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면서 왈츠는 유럽인들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빈에서 유행을 주도한 ‘빈 왈츠’는 기존의 것과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당시의 작곡가 베버, 라너, 슈트라우스 1세에 의해 확립된 전통인데, 왈츠 곡은 도입부와 독립된 몇 개의 짧은 왈츠들 모음, 그리고 종결구인 코다로 구성되고, 연주속도도 기존보다 빠른 편이다. 중요한 것은 3/4박자 중의 두 번째 음을 조금 미리 당겨서 연주함으로써 특유의 리듬감을 갖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빈 왈츠의 특징을 가장 잘 살려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는 아무래도 빈 필일까? 오케스트라의 세계엔 ‘비엔나 사운드’라는 게 있다. 소리의 질감이 좀 다르다는 것인데, 이 ‘비엔나 사운드’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빈 필의 단원이 되기도 무척 어렵다고 한다. 오스트리아의 다소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가 오케스트라의 음향에서도 감지되는 셈이다. 빈 필의 팀파니는 플라스틱이 아닌 쇠가죽을 사용하고, 관악기의 시스템도 일반적인 오케스트라와 다르다. 독일의 오케스트라처럼 무겁지 않으면서도, 이탈리아나 프랑스 오케스트라처럼 밝지도 않다. 차분하고 우아하며 고상한 소리를 낸다. 특히 현악파트의 음향은 비단이 감기듯 유려함을 자랑한다. 그래서 빈 필의 단원들은 소그룹(실내악단)을 만들어 연초에 해외로 나가기도 한다. 빈 필의 신년음악회를 ‘직참’하지 못하는 해외의 애호가들을 위해 ‘유사’ 빈 필 신년음악회를 여는 것이다.
음악작품으로서의 왈츠는 독립적인 기악곡으로, 또 교향곡에 쓰이기도 했다.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 제2악장의 표제는 ‘무도회’인데, 우아하면서도 역동적인 왈츠 그대로를 교향곡의 한 악장에 쓴 것이다. 차이콥스키도 교향곡 5번에 ‘왈츠’ 악장을 등장시킨 바 있다. 쇼팽은 젊은 시절 빈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당시 들었던 왈츠의 리듬이 귓가에 맴돌았는지 그는 피아노 건반 위에서 그 춤곡을 구현하여 <화려한 대 원무곡 op.18>을 비롯한 ‘왈츠’를 여러 곡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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