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스트라에서 배우는 ‘화이부동’의 정신

[장 PD의 클래식 한담(閑談)] 세상에서 가장 큰 악기 오케스트라 모든 악기들, 음색 다르지만 조화 이뤄

부천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연주장면.
부천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연주장면.

고대 그리스의 연극에서는 배우들이 서는 무대 외에도 합창과 무용을 담당한 코러스를 위한 장소로 오케스트라(orchestra)라는 반원형 또는 원형의 공간이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유래한 오케스트라는 나중에 음악용어가 되어 ‘관현악단’을 의미한다. 그 규모에 따라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챔버 오케스트라로 나뉘는데, 심포니 오케스트라(교향악단)는 관악기, 현악기, 타악기를 포함한 100명 정도의 연주자로 구성되어 있다. ‘symphony’는 ‘함께 어울린다’’는 그리스어 ‘신포니아’에서 유래했다.

관현악단의 명칭에 ‘필하모니(philharmony 또는 philharmonic)’를 붙인 경우도 있는데, ‘음악 애호가’라는 그 의미를 살린 명칭으로 특정 음악애호가 그룹이나 공동체가 악단의 설립주체가 되었던 경우다. 챔버 오케스트라(Chamber orchstra)는 15~60명의 단원으로 구성된, ‘방(房)’을 의미하는 chamber라는 말 그대로 비교적 작은 공간에서 연주할 수 있는 규모다. 챔버 대신 ‘카메라타(camerata)’, ‘신포니에타(sinfonietta)’라는 명칭을 쓰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현악기가 중심을 이루고 지휘자는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다.

오케스트라의 구성

관현악단에서 연주되는 악기는 크게 4종류로 나뉘는데, 큰 규모의 악단은 보통 100여명의 연주자로 구성되어 있다. 제 1군은 현악기군으로 제 1바이올린, 제 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바스 등이다. 제 2군은 목관악기군으로 피콜로, 플루트, 오보에, 잉글리시 호른, 클라리넷, 베이스 클라리넷, 바순 등으로 구성된다. 제 3군은 금관 악기군으로 호른, 트럼펫, 트롬본, 튜바 등이 속하고, 제 4군인 타악기군은 팀파니, 큰북, 작은북, 탬버린, 캐스터네츠, 실로폰 등이 속한다.

악기의 배치도 오케스트라의 규모, 지휘자나 연주회의 특징, 연주회장의 규모나 음향 효과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지휘자를 중심으로 현악기군을 앞에 두고, 목관악기, 금관악기군, 타악기군의 순서로 배치한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인 디오니소스 극장. 사진=연합뉴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인 디오니소스 극장. 사진=연합뉴스

작곡가는 관현악곡을 만들 때, 다채로운 음색의 악기들의 소리를 잘 배합해 조화로운 음향을 만들어내기 위해 각 악기의 특성을 잘 파악해야 한다. 악기론이나 관현악 기법 같은 공부가 필수다. 그리고 이러한 관현악곡의 악보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한 것을 스코어(score, 총보)라고 하는데 악기별 오선 악보를 묶어 놓은 것으로, 맨 위에 목관악기군이 있다. 섬세한 음색을 지닌 목관 악기가 독주를 하는 경우가 많아서 지휘자가 쉽게 알아볼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그 다음이 금관, 타악기, 하프, 현악기 순서인데 현악기를 맨 밑에 둔 것은 현악기군이 오케스트라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르나 조화를 이루며 상생하는 오케스트라

이러한 오케스트라의 각 악기들이 어떤 특징을 갖고 활약하는지에 대해, 또한 각 악기가 때로는 개성을 뽐내며 존재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종국에는 서로 힘을 합쳐 조화로운 음향의 세계를 들려준다는 오케스트라의 정신에 대해 알려주는 작품이 있다. 바로 영국 작곡가 벤자민 브리튼의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The Young Person’s Guide to the Orchestra), Op.34>이다. 1945년 영국 교육부로부터 청소년을 위한 교육용 음악영화 ‘오케스트라의 악기(Instruments of the Orchestra)’에 사용할 음악을 의뢰받은 작곡가는 그 해가 영국작곡가 헨리 퍼셀(Henry Purcell) 서거 250주기였던 것에서 힌트를 얻어 퍼셀의 선율을 주제로 해 13개의 변주와 푸가를 넣어 곡을 구성했다. 그리고 <퍼셀의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푸가(Variations and Fugue on a Theme of Purcell)>라는 부제를 붙였다.

이 작품엔 중간 중간에 내레이션을 넣어 관현악에 쓰이는 각 악기들의 종류와 특징, 역할을 쉽게 구별하고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처음에 오케스트라가 ‘투티(tutti: 전부라는 뜻, 모든 악기가 함께 연주하는 것)’로 들려주는 것은 퍼셀의 장중한 주제이다. 이어서 각각의 목관 악기에 대한 설명과 해당 악기의 독주가 있고 목관의 투티에 의해 주제를 들려준 뒤에 금관 악기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진다. 같은 형식으로 현악기, 하프에 의한 변주가 이어지고 타악기에 대한 설명과 팀파니 등 타악기에 의한 변주가 이어진다. 마지막 푸가 부분에서는 피콜로가 퍼셀의 주제를 시작한 뒤에 금관 악기까지 주제 선율을 이어받는데, 그 밖의 악기들이 푸가를 전개하며 당당한 푸가의 음향으로 클라이맥스를 장식한다. 교육용으로 만들어졌지만 감상용으로도 손색이 없는 훌륭한 음악작품이다.

벤자민 브리튼, 현대 영국의 대표적 작곡가

벤자민 브리튼(1913~1976) 사진=위키피디아
벤자민 브리튼(1913~1976) 사진=위키피디아

브리튼은 현대 영국의 대표적인 작곡가로 음악 애호가인 어머니로부터 소질을 물려받아 아홉 살때 현악 4중주곡을 쓸 정도로 천재성을 보였다. 재능을 인정받아 15살 나이에 런던 왕립음악원에 입학했는데, 그때 이미 교향곡과 현악 4중주곡을 포함해서 상당수의 작곡을 시도한 바 있고, 재학 중에도 교수들을 감탄케 할 정도의 재능을 보였다. 음악원 재학 중에 아버지를 잃은 탓에 졸업 후에는 생계를 위해 영화 음악 작곡에 종사했다. 이 일을 통해 시인 오든과 알게 되어 깊은 감화를 받고 두 사람의 협력으로 몇 가지 새로운 경향의 작품을 탄생시키게 된다.

1937년 잘츠부르크 음악제에서 초연된 <브리지의 주제에 의한 변주곡>의 성공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된 그는 2년 뒤에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에서 각 방면의 많은 작곡 의뢰를 받아 풍성한 성과물을 만들어 내며 작곡가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된다. 제 2차 세계대전 중에 영국으로 돌아가 미국에서 의뢰받은 오페라에 힘을 쏟아 <피터 그라임즈(Peter Grimes)>를 1945년에 완성하는데, 런던에서 초연되어 압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퍼셀 이래 ‘영국 오페라의 부활’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브리튼이 활동한 20세기 음악계는 다양한 실험과 시도가 이어진 이른바 현대음악의 시대였다. 그는 어느 한 가지 경향에 치우치지 않고 자신의 취향에 맞는 음악 기법을 종합하여 새로운 작풍인, 다소 보수적인 기반 위에 색채적인 관현악법과 감각적인 날카로움의 표현력을 갖춘 작풍을 시도하였다. 그의 음악이 품은 정신은 따뜻한 인간애와 정의감으로 일관되어 있어 대중에게 널리 사랑받을 수 있었다. 그는 동료 음악가들과 함께 ‘영국 오페라 그룹’을 결성하여 크고 작은 규모의 오페라를 계속 쓰면서 현대의 대표적인 오페라 작곡가로서 활약했다.

<논어>에 나오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은 주위 사람들과 친화하며 지내기는 하나 부화뇌동하거나 무리를 만드는 등 편향된 행동은 하지 않는 군자의 자세를 말한다. 바로 각기 다른 음색과 피치를 갖고, 재료와 모양도 제각각인 악기들이 함께 모여 조화로운 음향을 만들어내는 오케스트라의 음악과도 일맥상통한다. 독주 악기가 노래를 할 때나 하프처럼 음량이 약한 악기가 나올 때엔 낮고 잔잔한 소리로 화음을 받쳐주고, 때론 금관악기가 우렁찬 소리로 주변을 압도하기도 한다. 그리고 모든 악기가 투티로 절정을 향해 치달을 때에 어쩌다 한 번씩 울리는 트라이앵글 같은 작은 타악기 소리도 귀에 들어온다. 이런 게 오케스트라 음악의 매력이다.

오늘 이 땅의 정치인들에게 협치와 소통, 타협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높다. 물론 성장기 청소년들도 오케스트라를 통해 화이부동의 정신을 배우면 좋겠지만, 그보다 더 시급하게 오케스트라의 정신을 가슴에 새겨둘 이들은 정치적 집단이익에 매몰된 정치인들과 그 무리들 아닌가!

유튜브=벤자민 브리튼 작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
글쓴이

장옥님 칼럼니스트

장옥님 칼럼니스트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음악(작곡)과 음악학을 전공하였음. KBS FM라디오에서 다수의 클래식음악 프로그램 및 콘서트, 대중음악프로그램을 제작하였음. 저서로는 <위기의 음악가들, 2021년>, <KBS월드뮤직, 2006년(共著)> 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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