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없는 나라? 여왕을 배웅한 음악
[장 PD의 클래식 한담(閑談)] 여왕의 서거를 통해 본 영국의 음악
지난 9월 중순 무렵 세계적 빅뉴스는 단연 영국여왕의 서거 소식이었다. 서거 직후부터 장례식까지 온 세계 미디어가 앞 다투어 관련 소식들을 전할 만한 세기의 이벤트였고, 영국민은 물론 많은 세계인이 애도에 동참했다. 여왕 엘리자베스2세는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현 시대 왕의 모범을 보여준 인물로 기억될 것 같다. 정치적 영향력은 크지 않았으나, 재위기간이 70년이나 되다보니 2차 대전 전후의 세계사를 함께 겪은 입헌군주의 상징적 존재였다. 9월19일 치러진 여왕의 장례식 영상을 지켜보면서 영국의 음악문화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도 되었다.
‘Das Land ohne Musik 음악이 없는 나라’. ‘음악이 없는 나라’라고? 그런 나라가 있을 리도 없겠지만, 대체 다른 나라에 대해 이런 표현을 한 사람은 얼마나 오만에 쩐 사람일까 하여 찾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 독일인이다. 유럽의 1차 대전 직전, 독일의 민족주의가 하늘을 찌를 무렵, 이 나라의 한 호사가인 오스카 슈미츠(Oskar Schmitz,1873~1931)라는 이가 <음악이 없는 나라: 영국 사회의 문제>라는 책을 썼다. 영국인으로서는 영 자존심 상하는 말이 아닐 수 없을 텐데, 이후 사람들이 영국 음악에 대해 거론할 때 으레 이 표현을 빌어다 쓰곤 했으니, 그 이미지가 그렇게 굳어질 수밖에.
사실 근거 없는 말은 아니다. 경제적으론 산업혁명을 통해, 정치 분야에서는 의회민주주의 제도를 정착시키며 유럽의 근대화를 이끌어온 선진국. 그 역사에 대한 영국인들의 자부심 또한 대단했다. 그런데 그에 비해 18, 19세기 무렵 예술 분야에선 국제적 명성을 날리며 활약한 예술가들을 찾아보기 힘든 편이고, 특히 음악의 경우가 그렇다.
바로크 시대의 오페라 작곡가 헨리 퍼셀 이후 19세기까지, 마흔 살 무렵 영국으로 귀화한 독일 출신의 헨델을 제외하고는 이 나라에서 이렇다 할 명성의 음악가가 나오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오만한 독일인으로부터 ‘음악이 없는 나라’라는 오명까지 듣게 된 것이다. 독일이야말로 역사 대대로 얼마나 많은 훌륭한 음악가들을 배출했는가! 필자 같은 클래식 애호가는 독일 쪽을 향해 절이라도 하고 싶을 때가 있으니 말이다.
19세기 후반에 영국에도 늦게나마 에드워드 엘가(1857~1934), 랄프 본 윌리엄스(1872~1958) 같은 음악가들이 활동했지만 국제적 명성의 대가급은 아니다. 그 이후 벤자민 브리튼(1913~1976) 같은 천재적인 작곡가도 등장했지만, 클래식 분야에서의 주도권은 늘 다른 나라 차지였다.
그런데 반전은 20세기 중반, 클래식이 아닌 대중음악계에서 일어난다. 비틀즈를 비롯하여 롤링 스톤즈, 엘튼 존, 퀸... 열거하기 힘들만큼 많은 슈퍼스타급 뮤지션들이 속속 등장해 팝음악 시장을 이끌며 대중음악의 발전을 주도했다. 오스카 슈미츠가 한 세기 후에 태어났더라면 영국이 이런 오명을 듣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여왕의 아침을 깨우던 백파이프 연주
웨스트민스터에서의 장례식과 윈저성의 부속 교회에서 치러진 안치 의식 등 예배에서는 주로 성공회 교회의 고유한 음악 앤섬(anthem)이라는 합창곡이 불려졌지만, 그 사이사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가는 장례행렬, 또 2분간의 묵념 시간에 백파이프의 연주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인상적인 장면과 음악이 두어 번 있었다.
부모의 장례를 치러본 사람은 알 것이다. 장례 절차 중 고인과의 작별임을 깨닫는 순간이 몇 번 있는데, 결국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이 바로 하관 때인 것을. 여왕의 관이 미리 준비해 놓은 홀 아래의 납골 묘로 서서히 내려져 사람들 눈에서 사라질 무렵, 영상카메라는 돌연 교회의 한 쪽 복도에 홀로 서있는 백파이프 주자를 비춘다. 복장을 갖추어 입은 악사는 백파이프를 불기 시작하고, 뒤로 돌아 어두운 복도를 천천히 빠져나간다. 이승과 저승의 모든 영혼을 감싸줄 듯한 담백하면서도 애잔한 음률이다. 어느덧 악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음악의 긴 여운만이 교회의 높은 공간을 타고 홀연히 하늘로 사라진다.

여왕은 자신의 장례에서 쓸 음악에 대해서도 유언을 남겼는데, 백파이프 연주를 원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에 많은 시간을 보낸 외가가 있던 스코틀랜드. 스코틀랜드의 전통을 대표하는 백파이프 연주를 여왕이 무척 좋아했다는 얘기는 잘 알려져 있다. 실제 그는 통치 기간 동안 백파이프 소리를 들으며 기상했고, 수십 년 동안 백파이프 연주는 여왕의 알람시계였다. 여왕에게 마지막 백파이프를 들려준 이도 매일 아침 여왕의 기상 음악을 담당하던 연주자 중 한사람이었다.
백파이프(Bagpipes)는 이름 그대로 가죽주머니에 몇 개의 관- 선율관, 블로우파이프, 드론관 -을 꽂아 넣은 모양이다. 연주자는 블로우파이프의 마우스피스를 통하여 주머니 속으로 공기를 불어넣고, 선율관에 있는 지공을 여닫아 원하는 음을 낸다. 드론관은 지속음을 내어 이 악기 특유의 끊어지지 않고 길게 늘어지는 음향을 들려준다. 고대부터 사용된 오래된 악기인데 주로 민속적인 여흥의 악기로 쓰이지만, 군대에서 의식용으로 쓰이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스코틀랜드의 하이랜드 백파이프가 많이 쓰이고 있기에 스코틀랜드의 민속악기로 알려져 있지만, 유럽 전역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장례식에서 마지막으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 음악은 영국국가였다. ‘God save the King’. 장례에 참가한 모든 사람이 함께 국가를 부를 때, 찰스 3세의 얼굴이 화면에 클로즈업되었다. 오랜 기다림. 영국 왕이라는 새롭고 벅찬 과업을 앞두고 있음에도 어머니를 떠나보내는 한 인간의 오롯한 슬픔에 피로한 기색이 겹쳐진, 이 칠십 노인의 주름진 표정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신이시여, 이 가엾은 왕을 돌보소서!’라는 염원이 새어나왔다.
여왕을 배웅한 음악은 대가의 명곡이나 스타급 가수의 노래가 아니었다. 그의 일상을 지켜준 음악, 그리고 끝까지 헌신했던 조국의 혼이 담긴 노래였다. ‘음악이 없는 나라’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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