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음악으로 계절을 느끼고 싶다면

[장PD의 클래식 한담] 표제음악에 대하여 가을의 쓸쓸함에 어울리는 음악들 샤미나드의 가을, 피아졸라의 ‘탱고음악’

반도네온을 연주하는 아스토르 피아줄라.
반도네온을 연주하는 아스토르 피아줄라.

[장옥님 칼럼니스트] 기악음악의 대부분은 제목 자체가 악곡의 정보를 담고 있다고 했다. 원래 기악곡은 특정 내용이나 서사를 담고 있지 않고, 악곡의 형식 - 두도막형식이라든가, 변주곡형식, 소나타형식 등 일정한 구성원리와 악곡의 전개 논리를 바탕으로 형식미(形式美)를 추구하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이런 특징으로 해서 ‘절대음악’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와 대립되는 개념으로 ‘표제음악’이란 게 있다. 여기서의 ‘표제’는 어떤 특정한 이야기나 서사, 사상 등을 비롯해 자연에서 받은 영감이나 전쟁 등의 역사적인 사건, 영웅적인 행위에서 받은 감명, 또 사랑, 기쁨과 슬픔 등의 추상적 감정을 음악으로 표현한 것을 말한다.

이에 비해 단순히 자연현상과 사물의 특징을 모방하여 만든 음악은 ‘묘사음악’이라고 하는데, 예를 들면 뻐꾸기 울음소리와 시계의 규칙적인 째깍 소리 등을 묘사한 곡들이다. 넓게는 이런 묘사음악까지 표제음악에 포함시키기도 하지만, 엄밀하게는 이 둘(표제음악과 묘사음악)을 구별한다.

비발디의 ‘사계’와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

표제음악은 형식미 보다는 인간 감정의 표출에 큰 의미를 둔 낭만파 음악가들에 의해 많이 만들어졌지만, 이 방면의 선구적인 작품은 바로크음악의 대가 비발디에 의해 쓰여졌다.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는 작곡가가 직접 쓴 것으로 추정되는 각 계절에 대한 시적 정취의 소네트를 표제로 했다. 가령 ‘봄’의 1악장은 봄이 오는 기쁨을 나타내는 짧은 시를 음악으로 표현했다. “따뜻한 봄이 왔다. 새들은 즐겁게 아침을 노래하고 시냇물은 부드럽게 속삭이며 흐른다. 갑자기 하늘에 검은 구름이 몰려와 번개가 소란을 피운다. 어느 덧 구름은 걷히고 다시 아늑한 봄의 분위기 속에 노래가 시작된다.” <사계>의 악보에는 작곡가가 위의 시구를 그와 대응하는 오선 악보 아래에 써넣은 것을 볼 수 있다.

음악FM의 피디 시절, 특정 주제와 연결시킨 음악들을 선곡해 프로그램을 짜는 일이 있었다. 예를 들어 꽃이 피기 시작하는 봄철에는 하루 쯤 봄이나 꽃과 관련된 음악만을 모아서 프로그램을 짠다든가, 장마철이나 비가 오는 날엔 비와 관련된 음악들을 모아서 선곡하는 식이었다. 8.15 광복절 같은 역사적 기념일엔 애국정신이 깃든 음악이나 환희를 나타내는 표제의 곡목을 모아서 그날의 의미를 상기시키기도 했다.

이런 식의 표제음악 모음 선곡이 좀 유치한 발상일 수도 있지만, 음악프로그램을 짜는 입장에서는 특정한 날에 그 맥락에 맞는 표제의 음악을 선곡함으로써 청취자들에게 “아, 이런 음악을 들으니, 정말 봄이 온 것 같구나” 등등 소소한 음악의 즐거움을 선사하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대체로 표제음악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음악을 들으며 무언가를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다는 점은 클래식의 초보 감상자에겐 막연하게 들려오던 음향 덩어리에 어떤 내용이나 이야기를 떠올리며 쉽게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라하를 여행할 때 도심을 순회하는 관광버스에 올랐던 적이 있다. 이어폰으로 안내 멘트를 들으며 도심 이곳저곳을 구경하는데, 체코의 국민음악가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 중에서 그 유명한 ‘몰다우 강’이 배경음악으로 나오는 게 아닌가!

<나의 조국> - 이 작품은 작곡가가 조국의 산하(山河)를 비롯하여 역사적인 명소를 주제로 작곡한 교향시(交響詩)로 절절한 애국정신을 담은 표제음악이다. 프라하 시는 몰다우 강을 가운데 끼고 건너편 언덕위로 멀리 프라하 성과 대성당을, 강 반대편에는 이 나라의 민족영웅들의 동상이 세워진 중앙 광장과 그 주변에 유서 깊은 건축물들이 즐비해 있는 곳이다.

만약 스메타나의 이 음악을 알고 있었다면, ‘몰다우강’이 도시의 배경 음악으로 쓰인 의미를 십분 이해했을 것이고, 오래된 이 도시의 과거와 현재, 역사적 부침을 겪은 민족의 자긍심도 느껴가며, 인상 깊은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 한다.

현대 프랑스 낭만파계열 작곡가 세실 샤미나드.
현대 프랑스 낭만파계열 작곡가 세실 샤미나드.

세실 샤미나드의 ‘가을’과 피아졸라의 탱고음악들

이제 계절은 가을로 접어들고 있다.

이 계절에 들어봄직한 음악은 어떤 곡일까? 비발디의 ‘가을’도 좋지만, 그의 가을은 현대인의 계절 감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들판에 나가 ‘사냥’을 하고, ‘풍성한 추수를 끝낸 농부들의 축제’ - 이런 가을은 이제 옛 시대의 풍경화에서나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도시인들의 감성에 어울릴만한 다른 곡을 추천해보자면, 먼저 프랑스 살롱음악의 감성이 충만한 <가을 Automne>을 권한다. 세실 샤미나드(Cecil Chaminade,1857-1944)는 파리에서 태어난 여성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로, 쇼팽과 포레의 영향을 받은 후기 낭만파계열의 음악가이다.

그가 쓴 400여곡은 생전에 출판되어 당시로서는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기도 한 작곡가였는데, <가을>은 원래 피아노곡이지만, 혹시 찾아들을 수 있다면 경음악단인 만토바니 오케스트라(Mantovani & his orchestra) 연주면 더 좋겠다. 이 악단이 현악앙상블로 들려주는 <가을>의 주제 선율은 찬바람이 휘익~ 지나간 자리에 낙엽이 하나 둘 날리는 스산한 가을 오후를 연상시킨다.

20세기의 작곡가 아스토르 피아졸라(Astor Piazzolla,1921-1992)의 작품 중에도 사계절의 음악이 있다. 피아졸라는 아르헨티나의 탱고음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악기 반도네온 연주가였다.

그는 춤곡인 탱고에 클래식과 재즈를 접목시켜 탱고음악을 독립적인 악곡으로, 또 한 차원 높은 클래식의 반열에 올려놓은 음악가다. 그리고 춤의 부수음악인 탱고와 구별하기 위해 ‘새로운 탱고(누에보 탱고)’라는 이름으로 다수의 명곡을 탄생시켰는데, 그 대표작이 바로 1974년에 발표한 <리베르탱고 Libertango>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계>라고 불리는 작품은 당초 작곡가가 의도적으로 사계 음악으로 만든 것은 아니었다. 1992년에 다른 음악가들이 그의 작품에서 계절의 이름이 붙은 몇 곡을 추려 협주곡풍으로 편곡하여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계>라는 제목으로 완성한 것이다. 강렬하고 열정적인 탱고음악에 가을날의 쓸쓸함이 어떻게 녹아들었을지 궁금하지 않은가?

글쓴이

장옥님 칼럼니스트

장옥님 칼럼니스트는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해 대학에서 음악(작곡)을, 대학원에서는 음악학을 공부했다. 1981년 KBS에 프로듀서로 입사한 이후, 30여 년 동안 다수의 클래식음악 프로그램과 콘서트 등을 기획 연출했고, 대중음악 채널에서는 <음악앨범> 등의 팝과 가요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최근엔 저서 <위기의 음악들>을 출간했으며, 음악 관련한 집필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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