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출장중인 독일 외무장관...한국에 주는 시사
독일, 아프간 사태 맞아 국제적 역할 분주 EU군 창설 움직임에도 힘 보태기 한국도 평화유지 역할 모색해야
[최수정 칼럼니스트] 급작스런 아프간 정부의 몰락, 모든 정보기관의 예측 빗나가
지난 8월31일, 아프가니스탄은 탈레반 손에 떨어졌다. 미국의 마지막 철수 비행기가 카불 공항에서 이륙하자 탈레반은 승리의 축포를 쏘아올렸다. 미국이나 서방국가의 정보기관 뿐 아니라 탈레반 측조차 이렇게 빨리 아프간 정부군이 무너질지 몰랐다고 한다. 아프간 대통령은 이미 보름전에 외국으로 탈출해버렸다. 그 곳에서 임시정부를 꾸린 것도 아니니 그가 망명정부를 구성하는 수반도 아닌 것이다.
아프카니스탄에 체류했던 각국 외교인력과 그들의 조력자들을 구출하기 위한 숨막히는 작전이 펼쳐졌다. 한국은 390명의 한국정부 협력자들을 구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독일도 아프간내 체류 중이었던 500여명의 독일인과 4천여 명의 아프간인들을 구했다. 그러나 아직도 아프카니스탄에는 도움을 요청하는 외국인과 아프간인들이 수없이 많다.
여전히 아비규환의 상황이고 정세는 혼란하고 정권을 탈취한 탈레반은 무슨 짓을 할지 아무도 모른다. 누구는 이러한 상황이 미국의 계산 속에 있다느니 하는 소리도 하고, 누구는 중국이 승자가 될 것이라는 소리도 한다. 그러나 훈수를 두는 사람들조차 장기판의 말인 탈레반이 어떤 행동패턴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을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모양새다. 분명히 지금의 이 상황은 계산된 시나리오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돌발상황이고 사태파악과 대비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독일 외무장관, 긴급 서아시아 5개국 방문
그런 가운데 독일매체(Deutsch Welle)에 따르면 독일의 외무장관인 하이코 마스가 아프간 주변국인 터키,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파키스탄, 카타르 등 5개국을 발빠르게 순회하고 있다고 한다. 목적은 해당국가로 넘어오는 독일인들과 독일정부 협력자들에 대한 안전보장을 협의하기 위한 것이다. 주변국들은 아프카니스탄에서 넘어오는 수많은 난민들로 인해 추가적인 수용이 불가능하다고 피력하고 있다. 독일은 이들 국가들이 조금 더 많은 난민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경제적 지원을 할 계획이라는 점도 피력했다.
독일 카불대사관 재개 고민 중
이 가운데 마지막으로 들른 카타르에서 마스 외교장관은 독일의 카불대사관 재개 가능성을 언급했다. 물론 이 대사관 업무재개는 탈레반에 대한 국제법적 정부승인의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지적했다. 현재 카불에 있는 외국공관은 러시아, 중국, 파키스탄 뿐이다.
8월 20일자 쥐트도이치짜이퉁에 따르면 독일 차기 총리 후보인 기독민주당(CDU)의 라쉐트 총리후보는 탈레반이 급진 이슬람 세력이라 할지라도 현지에 남겨진 사람들을 돕기 위해 탈레반과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그리고 이 신문 19일자에 독일은 주변국으로 넘어오는 난민들을 돕기 위해 해당 지역들에 1억 유로(약 1300억원)를 지원한 계획도 발표했다. 독일은 추가적인 아프칸 난민 발생을 막기 위한 최대의 노력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플랜B의 부재가 불러온 대참사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독일이 미국의 국제정치 개입과 실패의 난맥상에 지속적으로 동조하면서 독자적 정책목표를 세우지 않은 것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 또한 만만찮다.
독일은 최근까지도 미국 다음으로 많은 1800여명의 병력을 아프간에 배치해 정부 치안인력교육을 담당했다. 직접적으로 아프간 평화정착에 개입하고 있었던 독일 입장에서는 아프간 정부군이 이렇게 빨리 무너지리라 예상하지 못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8월 19일자 독일의 소리(DW)에 따르면 독일 연방정보국(BNP)의 보고를 근거로 지난 6월 마스 외무장관은 의회 답변에서 아프간 정부가 그리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고 보고한 바 있다. 이 정보는 미국측 정보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결국 미국의 말만 믿고 플랜B가 없는 아프카니스탄 철군 계획이 이런 대참사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유럽의 ‘전략적 독립성’ 재조명
독일을 포함한 EU가 이번 아프칸 철군사태를 겪으면서 미국과의 군사협력에 있어 ‘전략적 독립성(Strategic Autonomy)’을 가져야 한다며 EU군을 창설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EU 외교담당대표인 조셉 보렐(Joseph Borell)은 지난 9월 1일 슬로베니아 방문 중 이러한 의견을 피력했다.
또 EU군사위원회 위원장인 클라우디오 그라지오노(Claudio Graziono) 또한 생각을 행동에 옮길 때가 됐다고 언급했다. 미국의 국제적 역할에 대해 전폭적 지지 입장을 밝히던 독일 국방장관인 크람프 카렌바우어조차 EU군대창설에 대해 모든 회원국의 합의를 전제로 진행한다면 가능할 것이라는 입장을 표했다. EU군의 기본 아이디어를 제공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군사, 경제, 기술적 측면에서 미국과 독립적 관계를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프간 사태, 유엔은 어디있는가?
미국의 역할을 대신해 주변국의 난민유입을 고민하고 현실적인 지원책을 강구하고 있는 독일의 역할에 한국은 주목해야 한다. 결국 미국이라는 세계 최강대국이 우리의 안전을 책임져 줄 수 없을 때, 세계 평화유지를 위해 동분서주해야 할 책임은 세계 주요 선진국들에게 있다. 미국의 안보정책에 보폭을 맞추는 것에만 급급해 할 것이 아니라 인권과 지역안정에 대해 독자적인 평가와 대안모색을 하는 국가가 미국과 함께 세계평화를 유지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번 미국의 아프간 철수에서 보여준 모습에서 우방국들은 각자 복잡한 이해관계를 계산하고 있다. 미국이 아프카니스탄에 주둔한 기간 전후로 집권했던 아프간의 중심세력이 탈레반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국제사회는 평화와 주권과 민족자결에 대해 새로운 고민을 해야 할 상황이다. 미국이 철수한 그 자리의 평화는 누가 지켜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가장 먼저 유엔을 바라보게 한다.
유엔이 과연 강대국들의 그림자가 드리운 각축장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한 적이 있는가라는 물음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미얀마 쿠데타 사건의 배후에 중국이 존재하면서 유엔 안보리의 평화유지군 파병이 요원하게 된 것과 같은 궤를 가지는 상황이 아프카니스탄에서 발생했다. 미국과 중국의 대결국면에 놓인 아프간에서 유엔은 무슨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까? 여성, 아동, 노약자를 위해 국가주권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유엔이 존재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미국의 아프간 주둔 전후에 존재했던 아프카니스탄의 정권은 탈레반이었다. 이번 탈레반의 카불 탈환을 바라보는 시각은 수도탈환이자 외세축출이라는 탈레반의 관점에서 본다면 과연 언어도단일까? 세계에는 180개가 넘는 국가가 존재하며 그중 인권과 언론의 자유가 최악인 정권이 지배하는 국가도 많다. 그들을 모두 유엔의 이름으로, 미국의 민주주의 가치로 끌어내리고 타도해야 할지도 고민스럽다.
더 나은 삶과 더 나은 사회는 인간의 본질적인 가치추구의 방향이겠으나 그것이 허락되지 않았다고 축출되어야 할 정권이라면 세계 곳곳은 모두 전쟁 중이어야 할 것이다. 유엔 헌장에 정치체제로서 민주주의국가만 허락된 게 아닌 것처럼 탈레반은 아프카니스탄 주요부족인 파스툰의 대표세력이다. 가치판단 이전에 그곳에 존재하는 다수지배세력이 원하는 민족자결주의가 무엇인지도 고민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곳 원주민이 선택한 삶이 그것이라면 그 또한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
다만 지금도 소수부족에 대한 학살, 외국정부 협력자에 대한 보복, 여성과 아동 등 사회약자에 대한 폭력 등에 대해 유엔은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미국이 빠진 그 공백은 유엔의 자리일 것이다. 유엔이 미얀마에서나 탈레반에서나 그 역할이 미비하다면 세계 많은 국가들에게 또다시 좌절감을 안겨다 줄 것이다. 결국 유엔의 안전보장기능은 개혁되어야 한다.

독일, 세계평화에 기여하려는 역할 주목
독일이 지금 하고 있는 역할은 사실상 유엔 상임이사국에 기대되는 역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향후 유엔 안보리의 상임이사국 확대개편 논의가 있을 때 독일은 가장 먼저 거론될 실질적인 유럽의 안보담당국이다. 동북아에서 한국이 그런 평가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한국도 더 많이 국제사회에 기여해야 하지 않을까.
이번에 한국이 미라클작전을 통해 세계 평화에 기여할 수 있게 된 것은 참으로 자랑스럽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아프카니스탄 정세불안으로 인해 세계의 평화를 지키려는 자, 방관하는 자 그리고 외면하는 자의 모습이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다. 지금 세계의 평화를 지키고자 노력하는 국가는 과연 누구인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