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하고 있네’ 소리를 안들으려면…이것 지켜라
[박정인의 언론비평] ‘슬픈 우산’의 사례로 본 정부 홍보 ‘성공한 쇼’ 위해 본질을 놓치지 말아야
[박정인(필명) 칼럼니스트] 부시의 치밀한 ‘쇼’ 연출
2001년 9월 14일. 하늘을 찌르던 맨하탄 세계무역센터가 테러로 속절없이 무너진 현장에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연단도, 마이크도, 스피커도 없었다. 시멘트 더미 위에 올라선 대통령의 등 뒤로는 포크레인이 보였고, 갖가지 피부색을 가진 노동자들은 복구작업에 분주했다. 부시는 소방관 한 명을 옆에 세워 어깨동무를 한 채 휴대용 확성기를 들었다.

“우리는 수천명의 시민을 잃고 슬퍼하고 있지만 뉴욕, 뉴저지, 코네티컷의 훌륭한 시민들과 함께 굳건히 버티고 있습니다.”
연설이 진행되는데 갑자기 군중 속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I can’t hear you!” (안 들려요!)
연설을 끊은 외마디를 부시는 아랑곳 하지 않고 받아쳤다.
“I can hear you.” (나는 들려요.)
“The rest of the world hears you.” (세상 사람들도 다 듣고 있습니다.)
대통령 말이 잘 안들린다는 푸념을 받아 ‘미국은 외롭지 않고, 우리의 목소리는 세계 어디든 들릴 것’이라는 메시지로 키운 것이다. 순간 거대한 환호가 시작됐다. 부시는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한마디 더 꺼냈다.
“And the people who knocked the buildings down will hear all of us soon.”
(테러로 빌딩을 무너뜨린 자들도 곧 우리 모두의 목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보복당할 것입니다.))
이 한마디에 주변은 USA, USA를 외치는 목소리로 뒤덮혔다. 미국 축구가 월드컵에서 우승이라도 하면 터져 나올 법한 환호였다. 군중은 이미 테러와의 전쟁을 이겨버린 것처럼 흥분했다.
법무차관 모신 ‘슬픈 우산’
전문가가 아니라도 이 장면에 숨은 프로파간다적 장치들을 알아채는 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부시가 올라선 잔해더미는 카메라 앵글을 정밀하게 고려해 선정했을 것이고, 부시가 입은 흙빛 점퍼는 재난현장과 어울리도록 골랐을 것이다. 뒤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인종도 계산됐을 거라는 의심이 든다. 소방관과 어깨동무를 한 것은 ‘함께 한다’는 이미지를 만들려는 뜻이 분명하다.
대통령 말이 안들린다는 군중 속 목소리를 즉석에서 요리해 낸 연설은 즉흥적이었는지, 각본이었는지 아직도 궁금하다. 즉흥이었다면 놀라운 연설가고, 각본이었다면 치밀한 연출이다.
우리 법무차관이 아프간인 특별 기여자들이 입국해 머무는 진천에서 빗속 브리핑을 했다가 대국민사과까지 하는 낭패를 봤다. 수행비서가 차관 뒤에서 우산을 든 채 무릎 꿇고 있는 모습을 들킨 탓이다. 한 언론사는 기사 제목을 ‘슬픈 우산’이라고 붙였다.
그런데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차관과 법무부가 억울할 법도 하다. 카메라 기자들이 수행비서 보고 자꾸 ‘더 낮춰, 더 낮춰’라고 요구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비서는 처음에는 엉거주춤 기마자세로 서 있다가 ‘에라 모르겠다’고 무릎을 꿇은 모양이다. 기마자세를 한번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기마자세와 무릎 꿇는 자세 중 후자를 택하는 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배려와 자기성찰이 없는 펜과 카메라는 흉기로 변할 수 있다. 기사와 영상이 아무리 중요해도 그것 때문에 인권이 희생될 수 있다면 미련 없이 포기해야 한다. 그래서 필자는 이번 해프닝은 언론 쪽에 더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법무부가 면죄부를 받는 것은 아니다. 더 근원적인 문제가 있다.
요즘 정부 홍보에 ‘쇼’의 성격이 짙어져 가고 있다. ‘쇼하고 있네’ 같은 부정적인 의미는 아니다. 멀티미디어 시대에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한도에서 얼마든지 쇼적인 요소를 가미할 수 있다. 문제는 품질이다. 홍보의 내용과 목적에 부합하는 쇼는 효과적이지만 어설픈 쇼는 국민기만, 예산낭비, 정책실패를 불러온다.
성공한 쇼들이 갖춘 요소는 무엇일까? time, place, message, actor, value 이렇게 다섯 가지가 있다. 부시 대통령의 사례에 적용해 보면 time과 place는 더할 나위없이 완벽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message는 혼란에 빠진 미국 국민과 세계에 급히 전해야 할 절실한 내용이었다. actor 역시 돋보인다. value는 사회가 동의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뜻한다. 이 경우 반인륜적 테러에 대한 심판을 말하는데 미국인 입장에서 가치문제를 따질 이유가 없었다. (부시의 쇼가 성공적이었다는 것은 이후 테러와의 전쟁이 옳았는지 여부와는 무관하다. 당장 그 시점에 국민을 안심시키고 단결하게 만드는데 성공했는지만을 평가한다.)

문재인-김정은의 판문점 도보다리 산책
우리나라에도 부시 못지않은 성공 사례들이 있다. 이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판문점 도보다리 산책은 단연 최고였다. 30분 동안 생중계된 두 정상의 모습을 보면서 필자는 숨이 멎을 뻔 했다. 어디까지가 연출이고 어디까지가 즉흥적인 것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비중이 어떻든 연출과 즉흥 모두 만점에 가까웠다. 한반도 정세는 당시의 감동이 무색한 상황으로 전개됐지만 그 순간만은 국민과 세계가 한반도 평화의 가능성을 실감했다.
법무차관의 빗속 브리핑은 어떤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한마디로 빵점에 가까운 쇼였다. 주제와 아무 상관없는 비가 내리는 시점에(time), 아프간인이라곤 한 명도 보이지 않는 건물 밖에서(place), 현장발표가 적절하지 않는 내용을(message), 비서가 우산들고 무릎 꿇고 있는 걸 보고도 별 느낌이 없는 사람이 연기하다가(actor), 그 모습을 들키는 바람에 본질적인 가치를 의심받은(value) 망작이었다.
특히 message 부분이 아쉬웠다. ‘아프간인 특별 기여자들이 국내 정착에 필요한 한국어와 문화, 법질서 등 사회적응 교육을 해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라는 브리핑 내용은 현장을 보여주거나 발표자가 무슨 퍼포먼스를 해야 하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과천 법무부 회견장에서 PPT 화면이라도 띄워놓고 세부적인 설명과 질의응답을 진행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실패한 쇼에 방송사고까지 난 형국이랄까. value 부분은 자승자박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기자들이 요구했다 하더라도 아프간인들의 인권을 챙겨주겠다는 브리핑을 하면서 자기 비서의 인권에는 무심한 모습을 생중계로 들켜버렸으니. 말 그대로 ‘슬픈 우산’이다.
빗속 브리핑은 홍보에 나름 성공해왔던 청와대를 정부부처들이 너무 열심히 본따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에 부채질을 한 셈이 됐다. 청와대 본따는 것도 좋고 이런저런 홍보기법을 시도하는 것도 좋다. 홍보가 안되면 국민동의를 얻기 어렵고, 국민동의가 없으면 아무리 좋은 정책도 추진하기 어려우니까. 하지만 사심이 들어간 홍보쇼는 곤란하다. 정치인 장관 띄우려고, 청와대를 향해 일한다는 생색 내려고, 남의 부처가 한 일에 숟가락 얹으려고 쇼를 하는 것들 말이다.
국민은 안다. 본질을 갖춘 쇼와 그러지 못한 쇼가 어떻게 다른지. 하도 잘 만들어서 외국에 수출까지 하는 고품질 쇼 프로그램들을 TV에서 많이 봐왔기 때문에 선구안을 갖춘 것이리라. 빗속 브리핑을 계기로 정부부처들이 어설픈 쇼하다 국민에게 ‘쇼하고 있네’ 소리 안듣도록 본질에 충실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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