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루틴은 무엇입니까?

[장PD의 클래식 한담] 600여 가곡 남긴 슈베르트 이야기 서른한해 짦은 삶에도 많은 작품 남긴 비결

'가곡의 왕' 프란츠 슈베르트의 젊은 시절 모습.
'가곡의 왕' 프란츠 슈베르트의 젊은 시절 모습.

[장옥님 칼럼니스트] 요즘 SNS 상에서는 ‘나만의 루틴 만들기’라는 포스팅이 자주 눈에 띈다. ‘매일 30분 걷기’, ‘하루 정해진 양의 채소 섭취하기’, ‘매일 독서하기’ 등의 건설적인 내용으로 보아 ‘루틴 만들기’는 곧 좋은 습관 길들이기. ‘루틴routine’은 알다시피 매우 일상적인, 판에 박힌 일이란 뜻이고, 형용사로 쓰일 때는 ‘지루하다, 새로울 것이 없다’는 다소 부정적 의미였는데, 어느새 ‘좋은 습관’이라는 긍정의 표현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좋은 습관’은 분명 건강을 위해서나 이루고자 하는 꿈과 목표를 향한 기초나 토대가 된다. ‘루틴 만들기’라는 이 신박한 표현을 대하며 위대한 음악가들에게도 그들만의 ‘루틴’이 있었음이 떠올랐다.

슈베르트 시대, 독일계 대문호들의 탄생과 피아노의 전성기

슈베르트(Franz Schubert,1797~1828)의 이름 앞에는 ‘가곡의 왕’이라는 별칭이 붙어 있다. 가곡뿐 아니라, 피아노소나타, 교향곡, 실내악 등 다양한 장르의 명곡들을 다수 남겼음에도 특별히 ‘가곡의 왕, 리트(Lied)의 왕’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그가 600곡이 넘는 가곡을 남겼고, 리트를 그 이전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예술적인 지위를 얻는 음악장르로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독일가곡, 예술가곡으로 번역되는 ‘리트’는 일반적인 노래와 달리 한 편의 시와 음악이 이상적으로 결합된 악곡을 뜻하며, 가사에 쓰인 시의 운율과 음악의 합(合)이 강조된다. 슈베르트 이전, 모차르트와 베토벤도 서정시에 곡을 붙인 리트를 몇 곡씩 남긴 바 있지만, 문학적인 영감과 음악적 표현의 긴밀하고도 완벽한 융합은 바로 슈베르트에 의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그가 이 분야에 큰 족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시대적으로 두 가지의 요건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먼저 그가 태어난 때를 전후로 독일 문학은 서정시가 활짝 꽃피던 시절이었다. 괴테, 실러, 하이네와 같은 대문호를 비롯해 아이헨도르프, 뮐러와 같은 민족 시인들이 대거 출현하여 감성 충만한 서정시를 쏟아내며 작곡가들의 영감을 자극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바로 피아노라는 악기인데, 초기의 피아노가 근 백 년 동안 개량을 거듭하며 나무랄 데 없는 성능의 악기로 완성되었던 게 이 무렵이었다.

슈베르트는 대문호들의 서정시를 가곡으로 만들면서 음악과 시의 이상적인 융합에 골몰했다. 가사를 전달하는 성악파트의 선율뿐 아니라 피아노반주에 있어서도 획기적인 시도를 했다. 피아노 파트는 이전 시대의 단순한 화음반주를 뛰어넘어 시의 의미와 뉘앙스를 살려냄은 물론이고, 전체 악상의 흐름을 주도하였다. ‘비바람을 헤치고 달리는 긴박한 말달리기’(마왕), ‘미풍에 살랑거리는 나뭇잎’(보리수), ‘비둘기의 날개 짓’(비둘기우편) 등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섬세하면서도 다양한 표현력이 피아노 위에서 펼쳐지며 성악 파트의 시적 뉘앙스와 결합되었다. 독일어 가사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여도 리트를 감상하며 감동을 받는 이유다.

10대 소년시절, 오선지 없어 종이에 줄 그어가며 작곡

서른한 해라는 짧은 생을 살았던 작곡가가 이렇게 많은 양의 예술가곡과 피아노와 실내악, 교향곡 분야에서 다수의 작품을 남길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그만의 루틴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1일 1곡’ 같은 엄격한 루틴을 행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는 이미 10대 소년시절부터 작곡을 시작하였는데, 그 소년시절엔 오선지를 구하기 어려워 종이에 줄을 그어가며 곡을 썼다.

스물다섯 살 쯤, 안타깝게도 슈베르트는 당시로서는 완치가 어려운 병(매독)에 걸리고 만다. 이 병은 좀 나아지는듯하다 다시 도지는, 그러면서 점차 몸 깊숙이 퍼져 전신의 근육과 장기가 파괴되어 결국 사망에 이르는 병이다. 이 고약한 질병과 싸우면서 다가올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길은 오직 창작뿐이라는 듯 그는 자신의 일상을 규칙적으로 이어가면서 매일 오전에는 작곡에만 전념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당시에 슈베르트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그가 마치 하얀 불꽃에 휩싸인 것 같았다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고, 낮에 그를 찾아가면 “어서 와, 잘 지냈어? 다행이네!” 하고는 다시 곡 쓰는 일을 계속하는 바람에 그냥 나와야 했다는 친구도 있었다. 슈베르트는 이렇게 시간을 정해놓고 창작에 몰두한 다음, 오후가 되어서야 집을 나서서 산책을 하거나 사람들을 만났다.

슈페르트의 겨울나그네 악보.
슈페르트의 겨울나그네 악보.

그렇게 하여 죽기 한 해 전에 일생의 역작 <겨울 나그네>를 완성했고, 이어서 피아노삼중주곡과 즉흥곡, 환상곡 등을 완성했다. 생애 마지막 해인 1828년에도 그는 교향곡 9번 ‘The Great’, 현악 5중주곡 C장조 등의 대작과 함께 가곡 작곡도 멈추지 않았다. 친구들은 이 시기에 쓴 열네 곡을 모아 그의 사후에 <백조의 노래>라는 이름으로 묶어냈다. 백조는 평생 울지 않다가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한번 소리 내어 운다는데, 슈베르트의 마지막 가곡집의 의미로 붙인 것이다.

“창작의 영감 기다리지말고, 끝없이 작품을 써라!”

20세기의 러시아 작곡가 쇼스타코비치 역시 다작(多作)의 음악가였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작곡이 언제나 잘 풀리는 게 아니라는 것은 인정하겠다. 그러나 장애를 겪는다 해서 여기저기 어슬렁거리고 하늘이나 쳐다보면서 영감이 섬광처럼 와주기를 기대하는 것에는 결단코 반대한다. 차이콥스키와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서로 상대방을 싫어했고, 의견이 일치할 때가 거의 없었지만 한 가지 문제에서는 생각이 같았다. 끝없이 작품을 써라. 큰 작품의 작곡이 안 될 때는 소품을 써라. 전혀 작곡을 할 수 없다면 무언가를 오케스트레이션 하라.”

귀에 꽂히는 명언이다. 작가라면 남의 글을 필사라도 해보라는 것이고, 화가라면 유명 작가의 그림을 모방하며 드로잉 연습이라도 하라는 것 아닌가.

대학 시절 은사 한 분은 수업시간에 이런 질문을 하셨다. ‘크고 작은 곡을 여러 곡 쓰는 것과 일생일대의 명작 한 두 작품에 열성을 쏟는 것중 어느 것이 더 낫겠냐?’ 속으론 여러 곡 쓰느라 힘 빼느니 한 곡이라도 ‘인생 한방’ 같은 곡을 써야하는 거 아닌가했다. 교수님은 (자기가 쓴 곡이 하찮게 여겨지더라도) 꾸준히 곡을 써라, 여러 개의 곡을 쓰다보면 그 중 한 두 개 정도는 쓸 만한 게 나오지 않겠느냐, 그러니 습작을 게을리 하지 말라는 말씀이었다.

그 역시 요즘 말로 하면 ‘루틴하라!’였다.

추천곡 : <마왕>, <비둘기 우편>

슈페르트의 마왕
슈베르트의 비둘기 우편
글쓴이

장옥님 칼럼니스트

장옥님 칼럼니스트는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해 대학에서 음악(작곡)을, 대학원에서는 음악학을 공부했다. 1981년 KBS에 프로듀서로 입사한 이후, 30여 년 동안 다수의 클래식음악 프로그램과 콘서트 등을 기획 연출했고, 대중음악 채널에서는 <음악앨범> 등의 팝과 가요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최근엔 저서 <위기의 음악들>을 출간했으며, 음악 관련한 집필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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