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한류 붐’, 마침내 1위에 오르다

[최지윤의 스페인 스토리] 삼성과 LG가 깔아놓은 ‘한류 붐’ 화장품, K팝, 영화등으로 이어져 오징어게임, 스페인서 1위 등극

스페인 대형 서점 프낙(FNAC)에 판매되고 있는 BTS와 블랙핑크 굿즈. 케이팝 코너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사진=최지윤 통신원
스페인 대형 서점 프낙(FNAC)에 판매되고 있는 BTS와 블랙핑크 굿즈. 케이팝 코너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사진=최지윤 통신원

[최지윤 스페인 통신원] 스페인에서 이렇게 한류를 몸소 체감했던 적은 없었다. 버스와 택시를 타면 라디오에서 BTS와 블랙핑크 노래가 흘러나오고, 길에는 한국산 자동차가 달리고, 백화점에 가면 한국 제품이 판매되고, 식당에는 김치를 활용한 메뉴를, 화장품 가게에서는 한국 화장품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어쩌다 들른 꽃집의 주인 아주머니는 필자가 한국 사람이라는 말에 “제 딸이 요즘 한국 드라마에 푹 빠져서 밤을 새울 정도예요. 얼마 전에는 한국어 공부도 시작했는걸요”라며 친근하게 대화를 건넨다.

케이팝(K-pop)의 인기는 말할 것도 없다. BTS 이전부터 여러 케이팝 그룹이 인기를 얻고 있었는데, 최근 BTS의 빌보드 10주 연속 1위 이후에 케이팝의 인기는 정점을 찍었다. 이제 스페인에서 케이팝은 더 이상 밀레니얼 세대나 마니아층만을 위한 어휘가 아니다.

지난 9월 17일, 넷플릭스(Netflix)에 새롭게 공개된 시리즈 ‘오징어 게임’은 결국 스페인에서도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인터넷으로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방송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 있는 OTT 서비스를 구독하는 인구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 중 전 세계 2억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넷플릭스에서 인기를 얻는 콘텐츠는 세계적으로 인기가 있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중파 방송에서 방영되는 드라마와 예능이 많이 없는 스페인에서는 OTT 서비스에 의존하는 경향이 높아 그 의미가 더 크다. 넷플릭스에서 ‘킹덤’을 비롯한 한국 시리즈와 영화가 호평을 받았지만, 현지 매스컴에서까지 앞다투어 소식을 전할 정도로 큰 인기를 얻은 것은 오징어 게임이 처음이다.

여러 유명한 시리즈를 누르고 스페인 넷플릭스에서 1위를 차지한 오징어 게임. 사진=넷플릭스
여러 유명한 시리즈를 누르고 스페인 넷플릭스에서 1위를 차지한 오징어 게임. 사진=넷플릭스

평소 아시아 문화에 관심이 많던 A 씨는 “자본주의와 척박한 삶, 슬픈 인생사를 잘 묘사한 작품이고, 잔인한 면은 있지만 스토리를 멋지게 풀어낸 제작자들의 아이디어가 굉장히 돋보인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스페인 현지 언론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스페인 유명 라디오 방송사 로스 콰렌타(Los 40)와 보그(Vogue) 잡지에서는 ‘모두가 이야기하는 한국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라는 제목의 글로 “이 시리즈에서는 한국의 전통 게임이라는 매개체를 사용해 참신한 전개를 펼쳤다”고 전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게임 초대장에 적힌 도형(○△□)의 뜻이 무엇인지에 대한 기사도 나올 정도다.

스페인은 이전부터 한국 영화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페드로 알모도바르와 같은 세계적인 영화감독이 있는 스페인은 산세바스티안 영화제, 시체스 판타스틱 영화제 등 여러 국제영화제의 개최국일 정도로 영화에 조예가 깊은 나라다. 이런 곳에서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2004년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를 시작으로 한국 영화에 대한 인지도가 본격적으로 생기기 시작했다.

2019년에는 ‘설국열차’로도 잘 알려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산세바스티안 영화제에 초청받았고, 2020년 2월에는 현지에서 개봉해 스페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스페인 세포라(Sephora)의 한국 화장품 페이지. 스킨푸드, 닥터자르트 등 다양한 한국 브랜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한국 화장품은 유해 성분이 적고, 가격이 합리적이라는 점에서 현지에서 급부상 중이다. 사진= 스페인 세포라
스페인 세포라(Sephora)의 한국 화장품 페이지. 스킨푸드, 닥터자르트 등 다양한 한국 브랜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한국 화장품은 유해 성분이 적고, 가격이 합리적이라는 점에서 현지에서 급부상 중이다. 사진= 스페인 세포라

프랑스에 본사를 둔 다국적 화장품 편집숍인 세포라(Sephora)에서는 한국 화장품을 판매하고 있다. 스페인 세포라에서는 ‘한국의 아름다움(Belleza Coreana)’이라는 섹션을 따로 마련해 한국 화장품을 선보이는 중이다. 프리모르(Primor), 드루니(Druni)와 같은 스페인 정통 드러그스토어에서도 한국 뷰티 제품을 판매한다.

2020 지구촌 한류현황 자료에 따르면 스페인 화장품 수입시장에서 한국 제품은 비EU국가 중 3위, 전체 11위를 차지하고 있다. 스페인에서는 케이팝 가수와 드라마 속 배우들의 화장법과 피부 관리 방법을 알고 싶어하며, 나이에 비해 동안으로 보이는 한국인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K-뷰티는 점점 저변을 확대하고 있다. 색조 화장보다 특히 피부를 탄탄하고 매끈하게 가꾸어주는 마스크팩과 기초 화장품이 현지에서 인기가 많다.

우리가 말하는 ‘한류’는 음악, 영화 등의 미디어 콘텐츠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지만, 산업까지 포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스페인 한류의 원조는 삼성과 LG다. 스페인에서 삼성과 LG의 인기는 한마디로 대단하다.

스페인에서 가장 권위 있는 기업 평판 조사 회사인 메르코(Merco)에 따르면 올해 삼성은 가전·IT 부문에서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고, LG는 같은 조사에서 6위를 기록했다. 삼성전자는 산업 전체 부문에서 22위를 차지했는데, 이는 아시아 기업 중 가장 높은 순위였다.

조사 결과가 말해주듯, 한국 회사의 제품은 가성비 좋고, 품질이 뛰어난 것으로 입소문이 자자하다. 스페인의 유명 컨설팅 회사인 알리마켓의 통계에 따르면, 2020년 상반기에는 스페인 내 TV 판매량 1위를 장악하고 있던 삼성(시장 점유율 27.7%)을 제치고 LG가 29.7%로 1위를 차지했다. 한국 기업들이 선의의 경쟁을 하며 독주하고 있는 셈이다.

2021년 2분기 스페인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차트. 사진=canalys
2021년 2분기 스페인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차트. 사진=canalys

모바일 분야에서는 삼성이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유럽에서 삼성은 2021년 2분기 시장 점유율 35%를 차지하여 샤오미(21%)를 앞질렀고, 애플은 19%로 3위에 그쳤다. 그러나 2019년 4분기까지 삼성은 스페인 내 1위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저가 제품을 내세운 샤오미의 반격으로 1위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2021년 2분기 기준 샤오미의 시장 점유율은 41%, 삼성의 점유율은 20%다. 삼성은 선두탈환을 위해 노력 중이다.

스페인에서는 유독 갤럭시 A시리즈의 인기가 높다. 실제로 스페인의 대기업인 페로비알(Ferrovial)은 직원들에게 업무용으로 갤럭시 A시리즈 핸드폰을 제공한다. CEO부터 갓 입사한 직원까지 같은 삼성 핸드폰을 사용한다는 것. 회사 직원인 S 씨는 “회사 보안 프로그램이 내장되어 있는데도 작동이 잘 되고, 외부도 견고해서 오랜 기간 사용하기에 좋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삼성 노트북도 사용해 보고 싶은데 스페인에서는 거의 판매되지 않아서 아쉽다”고 덧붙였다.

스페인에서 한국 기업이 인기를 끄는 비결은 무엇일까? 물건의 품질과 판매 실적도 중요하지만, 공통적으로 사회 공헌 활동을 꾸준히 해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삼성전자는 스페인 현지에서 문화 및 교육 활동에 힘쓰고 있다. 삼성전자는 2013년부터 세계 3대 미술관인 마드리드 프라도 박물관의 기술 파트너로, 다양한 이니셔티브와 멀티미디어 프로젝트를 개발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지난 8월부터는 아웃도어 TV인 ‘더 테라스’를 이용하여 프라도 미술관 야외에 미술 콘텐츠를 제공한다.

야외의 모든 날씨를 염두에 두고 설계된 ‘더 테라스’는 물과 먼지 방지에 뛰어난 내구성을 자랑하며, 2000니트의 스펙으로 햇빛이 강렬한 낮에도 생생한 화질로 콘텐츠를 즐기는 게 가능한 삼성의 기술력을 여실히 잘 보여준다. 더불어 삼성은 65세 이상 노인, 인지 장애를 가진 사람, 교육이 필요한 특수 학생, 이민자를 위한 예술 문화 교육 프로그램을 정기적으로 운영해 현지의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외부에 배치된 더 테라스 TV. 관람객들이 휴식을 취하며 즐길 수 있도록 마련한 특별 코너이다. 사진=digitalavmagazine.com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외부에 배치된 더 테라스 TV. 관람객들이 휴식을 취하며 즐길 수 있도록 마련한 특별 코너이다. 사진=digitalavmagazine.com

LG전자는 ‘스마트 그린(Smart Green)’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스페인에서 ‘나무 심기 활동’을 계속해 오고 있다. 지난 6월 스페인 현지에서 LG전자 측은 올해 400만 그루의 나무를 심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LG전자는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2018년부터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스페인 공공기관과 까르푸(Carrefour) 등 여러 기업이 함께 참여해 스페인의 환경 문제 해결에 앞장서고 더 나은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5월 30일 개최된 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P4G)에서 스페인 페드로 산체스 총리가 이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예전의 한류가 아시아나 한국 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 치중됐다면, 현재는 보편적인 유행이 되었다. 한국 기업과 예술산업 종사자들도 각 국가의 특성을 파악해 한번 뿌리 내린 한류를 지속해 나가기 위해 애쓰고 있는 듯하다. 최근 한류 콘텐츠가 인기를 얻는 이유가 국가와 인종을 초월한 다양성과 보편성 덕분인데, 이는 그동안 노력의 결과로 보인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글로벌 시대가 되면서 여러 문화가 혼합되고, 국가 간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한국적인 것’의 정의와 기준을 내리기 쉽지 않아졌다. 그러나 항상 우리 문화와 정체성을 지키며, 인류 보편적 가치를 염두에 두고 세계인이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창의적인 콘텐츠를 꾸준히 만들어 낸다면 한류의 열기가 오래 지속될 것이라 믿는다.

글쓴이

최지윤 칼럼니스트

최지윤 통신원은 현재 스페인 살라망카대학 한국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을 전공했고, 국외 한국어 교육 사업을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인 ‘세종학당(멕시코)’에서 근무했다. 스페인어권 국가의 한국어 교육 전문가가 되기 위해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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