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왜 조코비치를 홀대하고 있을까
[최지윤의 해외테니스 이야기] “가장 위대한 테니스 선수” 늦게 인정 서구언론, ‘세르비아 출신’이라 차별해 파리 올림픽 우승후 ‘감격의 눈물’ 페더러, 나달보다 많은 우승 기록
전 세계적으로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는 테니스는 20세기까지만 해도 서구 국가, 특히 영미권 중심의 스포츠였다. 발생에서부터 흥행기까지 대부분 서구에서 일어난 역사이기 때문이다. 동구, 즉 동유럽조차도 배제되었다가 한 위대한 선수에 의해 역사가 다시 쓰여지고 있다.
테니스의 발전
테니스는 중세시대 프랑스 귀족 사이에서 시작된 죄 드 폼(Jeu de Paume)에서 유래됐다. 1874년 영국이 본격적으로 테니스 경기 규칙을 정하고, 3년뒤인 1877년 첫 윔블던 오픈을 개최했다. 이후 현재 그랜드 슬램 대회로 여겨지는 US오픈(1881년), 롤랑가로스(프랑스 오픈, 1891년), 호주 오픈(1905년)이 생겨나면서 현대 테니스의 기반이 갖춰졌다.

역대 4대 메이저대회 우승자를 보면 영미권 출신이 압도적이다. 테니스가 본격적으로 세계에 알려진 것은 1960년대 이후부터라 할 수 있다. 전세계 많은 사람이 TV로 테니스 선수들의 중계를 보기 시작하면서부터. 슈테피 그라프, 마르티나 힝기스, 안드레 아가시 등 스타 플레이어가 대거 등장했고, 특히 2000년대로 들어 로저 페더러, 라파엘 나달의 경쟁 구도가 형성되면서 남자 테니스의 황금기가 열렸다.
페더러, 나달 두 선수의 시대가 계속되는 중에도 그 아성에 도전하는 선수들이 등장했다가 사라져갔다. 당시 후안 델 포트로, 소델링, 다비드 페레르 등 꾸준히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던 선수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페더러, 나달에게 밀려 그랜드 슬램 타이틀에서 번번히 밀렸다. 2008년 호주오픈에서 조 윌프리드 송가를 물리치고 첫 그랜드 우승을 차지한 노박 조코비치도 반짝 우승으로 끝날 것만 같았다.
조코비치 역시 2008년 호주오픈 우승 후, 이듬해 준결승까지는 여러 차례 안착했으나 우승컵을 잡지는 못했다. 테니스는 체력, 부상의 문제로 기복이 심한 스포츠인 만큼, 조코비치도 결국 빅3 반열에 들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품는 사람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조코비치는 모든 이들의 예상을 뒤엎고 2011년 호주오픈에서 앤디 머레이를 꺾고 두 번째 그랜드슬램 타이틀을 차지했다. 같은 해 롤랑가로스에서는 준결승에서 로저 페더러에게 패했지만, 윔블던과 US오픈에서는 라파엘 나달을 상대로 우승을 거머쥐었다.
전술적으로 눈에 띄게 성장한 그는 모든 코트에서 강한 면모를 보여주었고, 경기가 잘 풀리지 않는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는 집중력으로 위기를 헤쳐 나갔다. 체력적으로도 훨씬 강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조코비치는 2010년 말부터 글루텐 성분이 함유된 음식 섭취를 제한한 덕분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글루텐 프리’와 채식 위주의 식단으로 바꾼 후 그의 건강과 경기력은 크게 좋아졌다.
그 해 뛰어난 기량을 선보이며 세 개의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한 그는 첫 세계랭킹 1위에 오르며 자신의 위상을 널리 알렸다. 이후 조코비치는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그랜드 슬램 타이틀을 획득해 페더러, 나달, 앤디 머레이와 함께 ‘빅 4’ 자리에 올랐다.

차별받은 조코비치의 설움
스위스 출신의 페더러는 신사적이고 귀족적인 이미지 덕분에 ‘테니스의 황제’라고 불렸다. 정열의 나라 스페인 출신의 나달은 강인하고 겸손한 이미지로 테니스 팬들의 마음을 휘어잡았다. 실력으로 우위를 가리기는 불가능할 정도로 막상막하인 세 사람이었지만, 유독 조코비치를 응원하는 사람은 적었다. 오히려 페더러와 나달의 우승을 방해하는 선수 혹은 그들의 후발 주자로 여겨질 뿐이었다. 동유럽의 작은 나라 출신인 조코비치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 때문일까?
실제로 세르비아의 팟캐스트에서 조코비치의 부친 스르잔 조코비치는 아들이 사랑받지 못하는 이유를 언급한 바 있다. “영국인이 상류층을 위해 만든 스포츠인데 작고 가난한 나라인 세르비아 출신의 선수가 오랜 기간 세계 최고로 군림했기 때문”이라고. 영미권과 서유럽의 전유물이었던 테니스 대회를 동유럽 선수가 제패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그렇다는 것이었다. 조코비치를 비롯한 그의 가족 입장에서는 억울하고 섭섭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조코비치는 유고슬라비아가 해체되는 시기에 태어나 혼란 속에서 자라났다. 12살이 되던 1999년에는 코소보 전쟁으로 치안이 매우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공습을 피해 방공호에 숨어 지내야했고, 이른 아침에는 훈련에 매진해야 했다. 조국의 어려운 상황에 굴하지 않고 테니스 선수로의 꿈을 키워나간 모습에서 그는 오히려 훌륭한 선수라고 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단지 세르비아 출신이라 인기를 얻지 못하는 것이라면 정말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조코비치의 부모는 아들을 테니스 선수로 키우기 위해 빚을 내어 뒷바라지했다. 조코비치 역시 부모의 희생을 너무도 잘 알았기에 숱한 압박과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꿈을 향해 달렸다. 고등학교 시절 만난 부인 옐레나도 조코비치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옐레나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해외 투어에 참가 중인 조코비치를 보러 가고 싶었지만, 돈이 없어 못 간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장거리 연애의 어려움을 극복한 두 사람은 2014년 결혼했다. 조코비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늘 한결같이 지지해 주는 부인에게 언제나 감사를 표하는 사랑꾼이다. 결혼하고 아이를 가지며 정서적으로 안정된 조코비치는 점차 세계적인 선수로 거듭났고, 세르비아에서는 말 그대로 영웅이 되었다. 조코비치는 언론을 통해 조국에 대한 각별한 사랑과 자부심을 고스란히 내비쳤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세워 부인 옐레나와 함께 사회공헌 활동과 어린이 교육에 힘쓰고 있다.
가장 위대한 테니스 선수인데도 비난받아
무서운 기세로 그랜드 슬램에서 10번 이상 우승한 조코비치에게도 커리어 그랜드 슬램(4개의 그랜드슬램 대회를 모두 우승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큰 기복 없이 좋은 페이스로 승승장구하던 조코비치는 줄곧 경쟁자인 페더러와 나달과 비교당하곤 했다. 조코비치는 2016년까지 유일하게 롤랑가로스에서 우승하지 못했었는데 흙신(神)인 나달이 있었기 때문. 2012년과 2014년에는 결승에서 나달에게 패했고, 2015년에는 바브린카에게 패해 아쉽게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2016년 프랑스 오픈 유력 우승 후보였던 나달은 3라운드에서 왼쪽 손목 부상으로 기권했고, 조코비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결국 결승에서 만난 앤디 머레이를 상대로 역전승을 거두며 꿈에 그리던 프랑스 오픈 우승을 차지했다. 이 우승으로 조코비치는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고, ‘논 캘린더 그랜드 슬램’(같은 해는 아니지만, 연달아 네 번의 그랜드슬램을 우승하는 것) 기록을 세웠다. 이처럼 2016년은 조코비치의 커리어에 굉장히 중요한 해였으며, 역사상 가장 위대한 테니스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게 된 해이기도 했다.
그러나 감정을 지나치게 솔직히 표현하는 조코비치는 언론에서 부정적인 이미지로 자주 보도되기도 했다. 지난해인 2023년 롤랑가로스 첫 경기에서 승리한 그는 카메라에 “코소보는 세르비아의 심장”이라고 적었다. 코소보는 2008년에 세르비아에서 독립했으나 세르비아는 이를 인정하고 있지 않다. 코소보 정부와 세르비아인의 갈등이 발생하고 있던 때에 마침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가 정치적인 메시지를 남긴 것에 많은 이들이 적절치 못하다고 말했다. 프랑스 스포츠 장관마저 조코비치의 행동이 적절치 못했다고 비난할 정도였다.
그뿐만 아니라, 여자 테니스보다 남자 테니스가 훨씬 더 흥행하기 때문에 우승 상금이 같아서는 안 된다는 파격 발언을 하여 파장이 일었다. 결국 조코비치는 기자회견을 열어 여자 선수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해 상황을 수습했다.
팬데믹 시기였던 2022년에는 호주오픈 출전 문제로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백신 접종에 회의적이었던 조코비치는 백신을 맞지 않은 채, 이미 코로나19에 걸린 적이 있다는 이유로 의료적 면제를 주장하며 호주 입국을 시도했다. 그러나 호주 정부는 입국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입국을 허가할 수 없다며 그를 가두기까지 했다. 조코비치는 항소했으나 최종적으로 호주 정부는 이를 기각했고, 결국 호주에서 떠날 수밖에 없었다.
호주 오픈은 조코비치가 가장 많은 타이틀을 차지한 대회였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대회를 포기하기까지 한 조코비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더욱 많았다. 선수로서 백신 접종에 응하지 않고 자기결정권을 끝까지 지킨 게 비난받을 일인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테니스 역사에 남을 조코비치의 기록들
조코비치는 테니스 역사상 몇 안 되는 선수만이 가진 커리어 그랜드 슬램 기록을 세웠다. 금단의 벽으로 여겨졌던 그랜드슬램 20승을 이룬 남자 선수는 페더러(2018년), 나달(2020년), 조코비치(2021년) 세 명뿐이다. 페더러(43세)는 나이와 체력적 한계 때문에 이미 은퇴했고, 나달(38세)은 두 번의 우승을 더 이뤄 22승에 머물러 있다. 반면 조코비치(37세)는 현재까지 그랜드슬램 역대 최다 우승 기록(24회)을 보유하며 최고의 선수가 되었다. ‘무결점 테니스’를 보여주며 신의 경지에 오른 조코비치는 테니스 역사상 다시 나오기 힘든 위대한 선수다. 그가 이뤄낸 결과는 어마어마하지만, 그의 인기는 왠지 모르게 실력과 비례하지 않는다.
‘메이저 24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이 위대한 선수는 하나의 목표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세르비아 국기를 달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일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시작으로 무려 네 번의 올림픽에 참가했으나, 동메달 한 개를 따는 데에 그쳐서다. 그러나 얼마 전에 끝난 2024 파리 올림픽에 출전한 그는 무릎 부상으로 최상의 상태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혼신의 힘을 다해 매 경기 임했다. 불혹을 바라보는 조코비치에게는 파리 올림픽이 정말 마지막 올림픽 무대였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결승전에서 만난 스페인의 카를로스 알카라스(21세)를 2대 0으로 이기고, 염원하던 금메달을 목에 걸어 ‘골든 그랜드 슬램’을 이뤄냈다. 떨리는 손을 겨우 붙잡으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던 조코비치의 모습은 쉽게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 장면을 보며 2021년 US오픈 결승전에서 눈물을 흘리던 조코비치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캘린더 그랜드 슬램’(한 해에 4개 메이저 대회를 모두 우승하는 것)이라는 대기록을 앞둔 중요한 경기였다. 경기 도중 관중의 뜨거운 환호에 감동한 조코비치는 눈물을 쏟고 말았다. 메이저 대회를 여러 번 우승했지만, 그렇게 코트를 가득 메울 정도의 응원을 받은 일이 이제껏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준우승을 차지해서 기록을 세우지 못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조코비치는 더 귀중한 선물을 받은 듯 행복해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괜히 코끝이 찡해졌다. 이제껏 전 세계가 최고의 선수를 홀대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눈물을 흘리던 조코비치에게 이제 더 이상 뭔가를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어깨를 토닥여주고 싶었다.
‘테니스의 황제’ 페더러, ‘클레이코트의 제왕이자 흙신’인 나달. 그러나 조코비치를 지칭하는 이렇다 할 단어가 없는 것은 참으로 이상하기 짝이 없다.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결과를 낸 조코비치는 ‘테니스의 신’이다. 더 잘 어울리는 말은 없다. 앤디 로딕은 “조코비치가 최고가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기록이 아닌 감정에 근거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나달은 “좋아하는 선수와 최고의 선수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세계 테니스 역사상 최고의 선수는 조코비치”라고 선을 그었다.
조코비치의 도전은 어디까지일까? 그의 라스트 댄스가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언제 어디서나 투혼을 보여주는 조코비치에게 감사와 존경의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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