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에 ‘닫힘’ 버튼이 없는 나라

[최지윤의 스페인 이야기] 서두름이 없는 스페인 사람들 열림은 있어도 닫힘 버튼은 없다 손님은 기다리고 직원들은 수다를 서서히 ‘느림’ 문화에 적응하는 한국女

스페인 어느 건물의 엘리베이터. 아래 내부 사진을 보면 닫힘 버튼이 없다. 사진=최지윤
스페인 어느 건물의 엘리베이터. 아래 내부 사진을 보면 닫힘 버튼이 없다. 사진=최지윤

▶ 유튜브로 칼럼 듣기

엘리베이터에서 뻘쭘히

한국에서는 엘리베이터를 타면 보통 출입문 가까이 있는 사람이 열림, 혹은 닫힘 버튼을 누른다. 더 타려는 사람이 없으면 닫힘 버튼을 바로 누르는 게 당연한 예의이자, 암묵적인 약속으로 여겨진다. 엘리베이터가 층마다 멈추는데 닫힘 버튼을 안 누르면 그만큼 시간이 지체되기는 한다. 1분 1초가 바쁜 요즘 세상에 불필요하게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자는 게 많은 한국사람들의 생각일 듯하다.

한국에 살 때는 나도 그 몇 초를 기다리지 못해 닫힘 버튼을 누르는 사람 중 하나였다. 무의미하게 허비되는 시간이 싫었다. 그런데 스페인에 와 보니 많은 엘리베이터에 열림 버튼은 있으나 닫힘 버튼이 아예 없었다. 어쩌다 닫힘 버튼이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도 사람들은 먼 산만 쳐다보고 아무도 그것을 누르지 않는다.

한국에서의 습관을 아직 버리지 못한 나는 사람이 다 탄 것을 확인하고 닫힘 버튼을 재빨리 누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를 슬쩍 쳐다보는 스페인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닫힘 버튼이 없는 건 고사하고, 엘리베이터가 몇 층에 있는지 알려주는 표시판이 없을 때도 있다. “기다리면 오겠지. 뭘 그렇게 신경 써”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하던 스페인 친구가 생각난다.

백화점에 가면 엘리베이터가 상행인지 하행인지 보지도 않고 “올라가요? 내려가요?” 물어보고 타는 사람도 정말 많다. 가끔은 타고 나서 “아, 5층에 가야 하는데 엘리베이터가 지하로 내려가네요. 뭐, 상관없죠”라며 혼잣말을 하는 사람도 종종 보인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스페인 사람들의 모습은 참 재미있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는 “Hola(안녕하세요)”, 내릴 때는 “Hasta luego(나중에 봅시다)”라고 인사한다. 다시 보지 않을 사람에게도 나중에 보자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보면 여유와 친근함이 느껴진다.

관광지로 유명한 스페인의 남부도시 말라가.
관광지로 유명한 스페인의 남부도시 말라가.

거리를 질주하던 한국 여성

한번은 중요한 약속에 늦을 것 같아 거리 한복판을 질주한 적이 있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빨리 뛰어가는 아시아 여자를 신기하고 또 이상하게 쳐다봤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스페인에는 분주히 움직이거나 뛰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스페인에 살면서 거의 모든 것에 빠르게 적응했지만, 스페인 사회에 가득한 느림과 여유로움에는 완전히 젖어 들지 못한 기분이 든다. 그들의 문화를 머리로는 이해하나 신속함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한국에서 오랜 기간 살아왔기에 이런 성향을 바꾸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일상생활 속에서는 무언가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을 자주 맞닥뜨리게 된다. 관공서, 가게, 병원 할 것 없이 모든 곳에서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한다. 어느 날, 병원 리셉션에 도착했을 때 직원이 통화 중이었다. 접수를 위해 기다리던 환자가 서너 명은 더 있었는데 직원은 줄 서 있는 사람들을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전화통만 붙들고 있었다. 통화가 제법 길어졌는데도 사람들은 모두 아무 불만 없이 기다릴 뿐이었다. 옷 가게에 가서도 기다리는 손님이 많은데 계산대에서 직원끼리 담소를 나누며 손님을 응대하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계산대가 다섯 개 있어도 실제로 일하고 있는 사람은 두 명 남짓인 경우도 많다. 스페인에서는 나만 빨리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없다. 숱한 기다림의 상황을 맞이하기에 인내심을 갖는 건 필수다.

마트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뒤에 많은 사람이 기다리고 있어도 직원과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는 손님, 동전을 찾거나 쿠폰을 적용해야 해서 시간이 오래 걸려도 전혀 미안한 기색이 없는 손님이 있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눈치 주는 사람이 없다. 인상 한 번 쓰지 않고 다들 묵묵히 기다리고 있다. 바쁠 때는 숨이 넘어갈 정도로 답답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한국 같았으면 분명히 누군가 “빨리 좀 갑시다”라고 한마디 할 법도 한데, 양손 가득 물건을 들고도 스페인 사람들은 익숙하다는 듯 기다린다.

노 빠사 나다(No pasa nada)!

스페인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자주 쓰는 말이 있다. “Tranquilo, no pasa nada(진정해요. 괜찮아요.)”, ‘No pasa nada(노 빠사 나다)’를 직역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누군가 허둥지둥하며 급하게 움직일 때, 혹은 크고 작은 문제에 직면해 있는 상대방에게 말해줄 수 있는 마법의 언어이기도 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다 괜찮으니 진정하라는 스페인 사람들의 여유와 긍정적인 태도를 듬뿍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굳이 스트레스를 받으며 초조해하지 않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벼랑 끝으로 내몰지 않는다.

마드리드 지하철역의 공사 표지판. 사진=최지윤
마드리드 지하철역의 공사 표지판. 사진=최지윤

여유롭고 느린 스페인 사회는 어찌 보면 효율적이지 못하다. 하다못해 건물이나 도로 공사도 훨씬 오래 걸리는 편이다. 얼마 전, 마드리드 어느 지하철역의 엘리베이터 설치 및 역사 현대화 작업에 대한 안내문을 봤다. 공사 기간은 36개월. 한국은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데 평균 21개월이 소요된다고 하던데, 이와 비교하면 훨씬 긴 기간이다.

긴 공사 기간에 시민들이 오랜 기간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지만, 항의하거나 불만을 표출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이렇게 느린 사회의 장점이 있긴 할까? 기다리느라 속이 터지는 일만 많지 않을까? 신기하게도 관점을 바꾸어 보니 오히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OECD 회원국 자살률 통계. 파란선이 한국, 빨란선이 스페인이다. 자료= https://data.oecd.org/healthstat/suicide-rates.htm
OECD 회원국 자살률 통계. 파란선이 한국, 빨란선이 스페인이다. 자료= https://data.oecd.org/healthstat/suicide-rates.htm

한국에서는 경쟁 업체에 질세라 너도나도 빠른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지는 않은가. 이제는 보편화된 새벽 배송, 당일 배송 등 고객 편의를 고려한 배송 서비스도 있어서 한국은 그 어느 나라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살기 편리한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그 이면을 살펴보면 이야기가 다르다.

빠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누군가는 밤잠 이루지 못한 채 치열하게 일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 보니 근로자의 건강이나 권리를 챙기는 건 뒷전이 되어 버린다. 가끔 언론에 보도되는 근로자 과로사 소식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우리 사회의 슬픈 단면이다. 근로자에게 주어지는 업무량을 완화하고, 휴게시간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으나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여유라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OECD가 발표한 2019~2021년 국가별 자살률 통계를 보면, 한국은 압도적인 수치(인구 10만명 당 24.1명)로 불명예스러운 1위를 차지했다. 반면, 그리스, 터키와 같은 지중해 연안국과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국가들의 자살률이 가장 낮게 조사되었다. 이는 삶에 여유가 넘치고 늘 낙관적인 그들의 생활 방식과도 분명히 연관이 있다고 본다.

스페인에서 겨우내 덮었던 솜이불 빨래를 맡기고자 세탁소에 갔는데 무려 3주 뒤에 찾으러 오라던 아주머니의 말에 ‘벙쪘던’ 날이 기억난다. 밀린 세탁물이 너무 많고, 휴가철이라 직원이 없어 작업 속도가 느린 거라고 태연하게 말씀하셨다. 느려서 불편하지만, 스페인에서는 누구도 과도한 업무를 억지로 떠맡지 않는구나 싶어서 한편으로 다행이다 싶었다.

이렇게 무엇 하나 빨리 하지 못하는 스페인 사회에서 하루하루 느림의 미학을 배워 나간다. 긴 계산줄을 기다릴 때도, 식당에서 음식이 빨리 나오지 않아도 마음을 비우고 기다리려 한다. 무엇을 하든 이제는 발 동동 구르며 혼자 애태우지 않는다. 내가 여유를 갖고 남들을 이해하는 것처럼, 스페인 사람들도 나를 기다려 줄 거라는 믿음이 생겨서다. 여전히 영락없는 한국인일 때가 있지만, 숨을 가다듬고 바쁜 삶 속에서 잠시나마 여유를 찾으려고 한다. 오늘도 나 혼자서 외쳐본다. “No pasa nada(노 빠사 나다)!”

글쓴이

최지윤 칼럼니스트

최지윤 칼럼니스트는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을 전공했고, 국외 한국어 교육 사업을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인 ‘세종학당(멕시코)’과 스페인 살라망카대학교 한국학과에서 교원으로 일했다. 현재는 스페인어권 국가의 한국어 교육 전문가가 되기 위해 연구하고 있다.

댓글

    함께 읽을 글

    칼럼 전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