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여행지 스페인, 왜 이곳을 안 가봐?
[최지윤의 스페인 이야기] 안달루시아의 숨은 관광지 ‘코르도바’ 로마·기독교·이슬람 문화 공존하는 곳 꽃으로 꾸민 집 정원 경합하는 축제도 다양한 건축물과 한국인 입맛 잡는 요리들
요즘 관광 대세는 스페인?
한국 예능프로그램에 유난히 자주 등장하는 나라는 어딜까? <꽃보다 할배>를 시작으로 <윤식당>, <스페인 하숙>, <더짠내투어> 등 다양한 장르의 프로그램에 소개된 곳은 바로 스페인이다. 여러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스페인을 방문하는 한국인 수가 급격히 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페인 관광청에 따르면, 2023년 1~5월 사이에 스페인을 방문한 한국인 관광객은 16만 7천여 명이었다. 5월 한 달 동안의 방문객만 6만 7천여 명으로, 이는 월간 최대 기록이기도 했다. 관계자는 지난 10년간 방문객이 여섯 배 이상 증가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고도 전했다.
이렇다 보니, 1년내내 인천-마드리드 구간 비행기는 빈 좌석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인기 노선이 되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관광객 수가 잠시 주춤했으나 엔데믹 후 억눌렸던 여행 수요가 폭발하며 패키지, 자유여행 할 것 없이 스페인에는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모이고 있다.
스페인을 배경으로 한 예능은 꾸준히 방영 중이다. 작년에 방영된 잔잔한 스페인 캠핑 여행의 매력을 보여준 <텐트 밖은 유럽>과 스페인 배낭여행 <뭉뜬리턴즈>가 시청자에게 호응을 얻었다. 최근에는 스페인 미식의 도시 산세바스티안을 찾아가 한식의 맛을 알리는 <장사천재 백사장>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시청자들의 여행 욕구를 자극하는 이런 프로그램 덕분에 당분간 스페인행 비행기표 좌석은 불티날 것 같다.
안달루시아의 ‘숨은 진주’ 코르도바
지구 반대편에 있는 먼 곳에 우리 한국인이 많이 간다는 것은 스페인이 거부할 수 없는 깊은 맛과 멋이 있는 나라임을 뜻하는 것일 게다. 특히 그 중에서도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스페인 특유의 열정과 따뜻한 날씨로 유명한 ‘안달루시아’다. 이곳은 스페인을 가 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한 번쯤 들어 본 그라나다, 세비야가 있는 스페인 남부 지역이다. 최근 예능에 나왔던 론다, 프리힐리아나, 네르하 등의 소도시마저 한국인 여행객이 자주 찾는 단골 여행지로 거듭났다.
안달루시아 여행객들의 대부분이 그라나다, 말라가, 세비야 관광에 비중을 많이 둔다. 이들 도시에 숙박하며 근교 도시를 당일치기로 여행하는 게 제일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미 알려진 유명 도시 못지않게, 오히려 더 매력적인 안달루시아의 숨은 진주 같은 곳이 있다. 세비야에서 동쪽으로 140㎞ 떨어져 있는 ‘코르도바’다. “사는 것도 용기다”, “최악의 결정은 결정하지 않는 것” 등 현대인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수많은 명언을 남긴 로마 정치가 겸 철학자 세네카의 고향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볼 게 없는 소도시라며 당일치기로 잠시 들렀다 가는 곳으로 알고 있는데 천만의 말씀. 볼 게 없고 지루했다는 여행 후기를 볼 때마다 한편으로는 안타깝기 이를 데 없다.

로마 제국, 기독교, 이슬람, 유대교 문화 한 도시에
우선, 코르도바는 다른 안달루시아 도시보다 훨씬 크다. 서울 면적은 605㎢인데 코르도바는 576㎢로, 한국의 대도시 크기와 맞먹는다. ‘코르도바’라는 명칭은 페니키아어인 ‘카르투바(풍요롭고 귀한 도시)’에서 유래되었다.
고대 로마 시대부터 도시가 형성되었고, 로마 속주 중 하나인 히스파니아 바이티카로 불리며,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 중요한 도시로 거듭났다. 로마 제국 멸망 후에는 서고트족의 통치를 받았고, 711년부터는 이슬람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756년에는 후 우마이야 왕조가 들어섰고, 코르도바를 토후국의 수도로 삼았다. 이후 929년, 코르도바의 8대 에미르였던 알 라흐만 3세는 바그다드의 아바스 왕조와의 관계를 끊고 자신을 코르도바의 칼리프라고 선언하며 코르도바 칼리파국 시대를 알렸다.
당시 인구가 수십만 명에 달했고, 포장도로, 하수 처리, 야간 조명 등 공공 인프라가 마련되어 있을 정도로 번영의 시기를 누리며 이슬람 문화를 꽃피웠다. 또한, 40만 권 이상의 책이 마련된 도서관을 지어 과학, 철학, 천문학 등 학문이 발전했다. 뿐만 아니라, 베르베르인, 기독교인, 유대인 간의 관계를 완화하는 관용의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칼리파국은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고 결국 작은 국가들로 나누어졌다. 이후 기독교 세력의 레콘키스타 운동이 계속되었고, 결국 1236년 페르난도 3세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한 채 이슬람 역사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2천 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코르도바에는 로마 제국, 기독교, 이슬람, 유대교의 문화와 유적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 코르도바를 가로지르는 과달키비르강은 세비야까지 연결되어 대서양으로 흘러 들어간다. 현재 배가 운항하지 않지만, 과거에는 수심이 깊어 코르도바까지 항해가 가능했기에 대서양을 중심으로 활발한 교역이 이루어지며 도시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아우구스투스는 과달키비르강에 로마교를 세웠는데 2천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이는 코르도바의 랜드마크로 자리하고 있다.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자동차 통행이 가능할 정도로 견고한 다리며, 현재는 관광객과 주민을 위해 차량을 통제하고 있다. 로마교 앞의 개선문으로 들어가면 코르도바 역사지구로 연결되고, 입구에는 코르도바의 성인(聖人)인 라파엘 석상이 우뚝 솟아 있다. 그래서 코르도바에는 ‘라파엘’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다른 지역보다 많다고 한다.

특별한 건축물: 메스키타와 알카사르
코르도바 역사지구에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특별한 건축물인 ‘메스키타’가 있다. 로마 제국 시절 신전으로 사용되던 건물을 서고트족은 이를 교회로 변형했다. 그 후 무어인이 통치하면서 2만 5천명이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거대한 모스크를 건축하기 시작했다. 대대적인 증축을 통해 약 200년 뒤에 완공되었고, 이슬람 건축의 진수를 보여주는 대(大)모스크가 되었다.
그러나 13세기에 접어들며 코르도바는 기독교 세력이 통치하게 되었고, 기독교의 승리를 상징하기 위해 모스크를 대성당으로 바꾸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카를로스 1세는 모스크의 아름다움에 반해 모두 철거하지 않고 일부를 남겨두기로 한다. 따라서 가톨릭의 대성당과 이슬람의 모스크가 동시에 공존하는 세계 유일무이한 건축물이 탄생하게 되었다. 모스크 밖에 있던 미너렛(이슬람의 기도 시간을 알려 주는 건축물)은 종탑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기도 전 몸을 씻을 수 있는 세정 시설이 있던 곳에는 오렌지 나무를 심어 멋스러운 안뜰로 탈바꿈했다.

메스키타 바로 옆에는 알카사르가 있다. 로마 시대에는 세관 본부, 정치 관료의 거주지로 사용되었으며 이슬람 시대에는 건물이 확장되었고, 정원 및 부대 시설이 마련되었다. 레콘키스타가 한창이던 1482년에는 가톨릭 군주가 알카사르를 그라나다 재정복을 위한 군사 본부로 삼았다. 이곳은 신대륙 발견을 한 콜럼버스가 가톨릭 군주를 알현한 곳이기도 해서 알카사르 정원에는 이를 상징하는 석조물이 설치되어 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알카사르는 꼭 방문해 볼 가치가 있는 곳이다.
코르도바는 역사지구 내에 유적지가 많기 때문에 교통편을 이용하지 않고 도보로 여행이 가능하다. 알카사르와 메스키타 근처에는 마차 정류장이 있어서 말을 타고 여유롭게 구시가지를 감상할 수도 있다. 메스키타 근처를 걷다 보면 좁고 구불구불한 길이 보이는데, 오랜 기간 유대인이 살았던 이곳은 여전히 유대인 지구(후데리아스)라고 불린다. 코르도바는 철학자이자 랍비인 마이모니데스의 고향으로, 유대인 지구에 가면 그의 동상을 볼 수 있다. 유대인 지구를 중심으로 다양한 상점과 식당이 즐비해 있어서 언제나 관광객으로 붐빈다.
‘꽃의 도시’에서 열리는 파티오 축제
코르도바는 토후국의 수도로서 역사상 가장 찬란한 시기를 맞았고, 1천 개가 넘는 모스크와 아랍식 목욕탕, 정원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천국의 정원’이라는 아이디어를 통해 각 가정집의 테라스와 분수는 꽃으로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도 코르도바는 ‘꽃의 도시’라고 불리며 역사지구에서는 건물 벽면과 테라스에 걸려 있는 수많은 화분을 볼 수 있다. 특히 꽃이 만발하는 5월은 코르도바를 방문하기 가장 좋은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코르도바 파티오 축제가 열리기 때문이다. 파티오는 안달루시아 지역 집 내부의 마당, 안뜰, 정원을 의미한다. 파티오 축제는 꽃으로 본인 집의 안뜰을 누가 예쁘게 꾸몄는지를 겨루는 일종의 대회다. 축제의 참여자는 일반적으로 자신의 안뜰을 방문객에게 개방하며, 수상자에게는 상금도 부여된다.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파티오 축제는 코르도바의 자랑이다.

귀족 가문의 가정집으로 사용되던 비아나 궁전 역시 코르도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관광지이다. 6500㎡에 달하는 거대한 궁전에 열두 개의 안뜰이 있어서 울창한 나무와 코르도바 스타일의 정원을 보며 당시 귀족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1980년 코르도바 지방은행은 자녀가 없던 비아나 3대 후작으로부터 비아나 궁전을 사들였고, 이후 이를 대중에게 공개했다.
코르도바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이라 발 닿는 곳마다 유적지를 발견할 수 있다. 심지어 코르도바 시청사 바로 앞에는 로마 제국의 신전 터가 있는데 여전히 그때 사용되었던 거대한 기둥이 남아 있다.
코르도바 도시 외곽에도 인상적인 관광지가 두 군데 있지만, 아직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첫 번째로는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은 시리즈 ‘왕좌의 게임’ 촬영지인 알모도바르 성이 있다. 두 번째로는 중세 이슬람 궁전을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였던 ‘메디나 아자하라’이다. 이슬람 세력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공을 들여 건설되었으나 외부의 침략으로 도시가 파괴되었다. 20세기에 발견되기 전까지 땅속에 묻혀 있었던 잊힌 도시였으나 보존 상태가 훌륭해 당시 알 안달루스 문명의 문화와 삶의 방식을 추측할 수 있는 귀한 유적지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인들이 좋아할 이유가 많은 코르도바
스페인 여행을 할 때는 각 지역 음식을 먹어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파에야, 츄러스, 하몬 등 워낙 잘 알려진 스페인 음식도 좋지만, 코르도바에는 코르도바에서만 먹을 수 있는 독특한 지역 음식이 많다. 하몬을 얇은 돼지고기로 감싸 빵가루를 입혀 튀긴 ‘플라멘킨’은 돈가스와 흡사한 맛으로, 코르도바의 많은 식당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와인을 넣고 자작하게 끓여낸 소꼬리찜인 ‘라보 데 토로’는 갈비와 흡사한 맛이 나서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인기다. 이밖에 토마토와 빵, 마늘, 올리브오일을 넣어 곱게 갈아 낸 냉수프 ‘살모레호’와 아몬드 냉수프인 ‘마사모라’, ‘베렝헤나 프리타(꿀을 얹은 가지튀김)’도 별미다.

이슬람 문화의 영향으로 아랍 디저트와 흡사한 코르도바의 전통 케이크도 있다. 진한 커피와 잘 어울리는 ‘파스텔 코르도베스’는 잘게 자른 호박을 설탕에 절여 페이스트리 안에 넣은 디저트다. 코르도바에서 여러 식당에 가 봤는데 가장 추천하고 싶은 식당은 바로 이곳이다. 코르도바 역사지구 입구에 있는 ‘알무다이나(Restaurante Almudaina)’와 코르도바 출신 투우사의 생가를 개조하여 만든 ‘까사 마놀레테(Casa Manolete)’. 두 식당 모두 화려한 코르도바의 분위기가 잘 느껴지며, 제대로 된 정통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코르도바에서는 방문하고 체험할 게 많아 2박을 해도 짧게 느껴진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아랍식 전통 목욕탕인 ‘함맘’에 들러볼 수도 있고, 봄철에는 투우 경기 관람도 가능하다. 텐디야스 광장 근처에는 백화점과 쇼핑 거리가 있어서 여행 중 필요한 물건을 사기에 제격이다. 다른 도시와 비교했을 때 물가가 저렴한 편이라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배낭 여행객도 부담 없이 들르기 좋다. 무엇보다 사람들 특유의 정과 여유를 느끼며 나도 모르게 힐링할 수 있는 그런 여행지다. 여느 안달루시아 동네처럼 비가 내리는 날이 적고 쾌적해서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보며 여행할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마드리드에서 기차를 타면 2시간 이내로 도착할 수 있어 접근성도 매우 좋다.
안달루시아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남들 다 가는 곳 말고, 특별한 여행지 코르도바에서 여유 있는 하루를 보내는 건 어떨까? 이국적인 풍경 속에서 인생샷 여러 장을 남기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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