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사람들은 왜 밤 9시에 저녁먹을까?

[최지윤의 스페인 이야기] 스페인 시간의 숨겨진 비밀들 일몰이 밤 9시, 게다가 서머타임까지 기준時도 중유럽 시간기준으로 긴 저녁시간에 따라 다양한 식사문화

후에르네스(한국식 불금)부터 주말까지는 밤 10시가 넘었는데 술이 아닌 저녁 식사를 하러 식당에 오는 사람도 식당은 북적댄다. 사진=Guia Repsol
후에르네스(한국식 불금)부터 주말까지는 밤 10시가 넘었는데 술이 아닌 저녁 식사를 하러 식당에 오는 사람도 식당은 북적댄다. 사진=Guia Repsol

한국처럼 ‘불금’이 있는 나라

지중해 국가에서의 저녁 식사는 대체로 늦는 편인데 그 중에서도 스페인이 아마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식사를 가장 늦게 하는 나라가 아닐까 생각한다. 보통 스페인 사람들은 저녁 9시~10시 정도에 저녁 식사를 한다. 이곳으로 여행 온 많은 외국인이 가장 놀라워하는 부분 중에 하나다.

식당은 브레이크 타임이 아예 오후 5시부터 8시까지이고, 예약해도 빨라야 저녁 8시~ 8시반부터 식사가 가능하다. 물론 오후 6시~7시에도 식사할 수 있는 식당이 있지만, 관광객을 타깃으로 한 식당들이라 맛집이 아닐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즉, 현지인 중에서는 저녁 8시 이전에 저녁을 먹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한국의 ‘불금’처럼 스페인에는 ‘후에르네스(juernes)’라는 말이 있다. 목요일(jueves)과 금요일(viernes)을 합친 말로, 목요일 저녁부터 본격적으로 주말을 즐기고자 하는 스페인 사람들의 휴식에 대한 열망이 잘 느껴지는 단어다.

그 유명한 ‘시에스타’

식사 시간이 늦은 건 스페인의 근무 시간과 그 유명한 ‘시에스타(siesta)’와도 관련이 있다. 보통 스페인 사람들은 출근하자마자 잠시 외출을 한다. 간단한 토스트와 커피, 오렌지 주스를 즐기기 위해서다. 돌아와 오전 업무를 마치고 오후 2시경부터 점심을 먹기 시작한다. 한국에서는 점심시간이 딱 한 시간이라 부리나케 식사를 해결해야 하지만, 스페인에서는 시간이 넉넉한 편이다. 그래서 점심과 함께 가볍게 맥주나 와인을 곁들이며 여유를 부리는 사람들도 많다. 업무량이나 본인의 근무 시간에 따라 점심시간 역시 유동적인 것이다. 물품을 파는 일반 상점은 여기에 맞춰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문을 닫고, 시에스타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시에스타’라는 말은 로마 제국에서 처음 사용됐다. ‘여섯 번째 시’를 일컫는 ‘hora sexta’에서 유래된 말로, 이 시간에 로마인들은 휴식을 취했다고 전해진다. 스페인이 시에스타의 나라로 아주 유명하지만, 그리스, 이탈리아, 라틴아메리카 국가에서도 시에스타 문화가 있다.

스페인은 ‘태양의 나라’라는 말처럼 햇빛이 매우 강해서, 그대로 계속 햇빛을 받고 있으면 머리가 띵할 정도다. 그래서 예로부터 농촌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더운 한낮에 점심을 먹고 잠시 쉬고자 하는 취지로 시에스타를 시작했다는 설이 있다. 맛있는 점심을 먹고 편안히 누워서 즐기는 시에스타는 정말 꿀맛이다! 습관이 참 무서운 게, 이제는 필자도 시간이 있으면 단 10분이라도 시에스타를 청하게 됐다. 피곤한 눈도 잠시 쉴 수 있고, 오후에 해야 할 일에 더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날씨가 따뜻해지면 테라스 테이블은 예약하기가 어려울 정도가 된다. 스페인에서는 식당내부가 아닌 테라스에서 식사하면 음료나 음식의 가격이 좀 더 비싸다. 사진=rtve.es
본격적으로 날씨가 따뜻해지면 테라스 테이블은 예약하기가 어려울 정도가 된다. 스페인에서는 식당내부가 아닌 테라스에서 식사하면 음료나 음식의 가격이 좀 더 비싸다. 사진=rtve.es

그러나 아쉽게도 오늘날 시에스타를 맘껏 즐길 수 있는 직장인은 많이 없다. 집이 가까운 회사원들은 집에서 식사를 마친 후 잠시 눈을 붙였다가 회사로 복귀하는 경우도 있다. 실질적으로 시에스타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스페인 근로 시간은 시에스타의 영향을 받고 있다.

일반 회사원은 오후 7시 정도에 퇴근하며, 일반상점은 오후 5시부터 다시 영업하고 8시나 9시경에 문을 닫는다. 스페인의 유일한 백화점 브랜드인 ‘엘 꼬르떼 잉글레스’는 월요일~토요일에는 오후 10시까지 영업한다. 오후 8시면 문을 닫는 한국의 백화점과는 다르다.

스페인 식문화중 특이한 점은 한국에서는 오후 6시~7시쯤 저녁 식사를 하는 데에 반해, 여기서는 이 시간에 간식을 먹는다는 사실이다. 현지에서는 이를 ‘메리엔다(merienda)’라고 부른다. 점심 먹고 출출해진 배를 잠시 채우기 위해 스페인의 국민 간식 추로스나 빵, 커피, 타파스 등을 먹는다. 주말에는 메리엔다 시간이 되면 카페에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몰린다. 해가 서서히 지는 것을 보면서 담소를 나누던 사람들은 그렇게 간식을 소화한 후, 오후 9시가 훌쩍 넘은 시간에 저녁 식사를 하게 되는 것이다.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한 마드리드의 추로스 전문점인 산 히네스(San Gines). 바삭하고 약간은 짭짤한 추로스와 꾸덕꾸덕하고 진한 맛인 일품인 핫초코. 추로스는 스페인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국민 간식으로, 웬만한 카페에서 추로스를 쉽게 주문할 수 있다. 사진=최지윤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한 마드리드의 추로스 전문점인 산 히네스(San Gines). 바삭하고 약간은 짭짤한 추로스와 꾸덕꾸덕하고 진한 맛인 일품인 핫초코. 추로스는 스페인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국민 간식으로, 웬만한 카페에서 추로스를 쉽게 주문할 수 있다. 사진=최지윤

스페인 시간의 숨겨진 비밀

필자는 스페인의 저녁 식사 시간이 늦은 이유가 일출, 일몰 시각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본다. 한국에서 살 때는 동트는 게 느껴지면 자연스럽게 눈을 떠 하루를 일찍 시작하곤 했는데 스페인에서는 그러기가 힘들다. 오늘 4월 12일 기준으로, 서울의 일출 시각은 오전 6시 2분인데, 마드리드의 일출 시각은 7시 42분이다. 한국에서 밤이 가장 긴 동짓날의 일출 시각이 7시 43분인 것을 감안하면, 스페인에서는 해가 매우 늦게 뜨는 것이다. 심지어 겨울에 아침 8시에 출근하면서 하늘에 달이 떠 있는 걸 본다. 반면, 4월이라 하지가 되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마드리드의 일몰 시각은 오후 8시 50분이다. 밤 9시까지 해가 훤하게 떠 있어서 시계를 보지 않고는 몇 시인지 감이 안 잡힐 때가 많다.

스페인 시간대에는 한 가지 비밀이 숨겨져 있다. 우선 스페인에는 두 시간대가 사용되고 있다. 이베리아반도 북서부의 카나리아제도에서는 포르투갈, 영국, 아일랜드와 같은 그리니치 평균시(GMT)를 사용하고, 나머지 지역에서는 중앙유럽 표준시(CET)를 사용한다. 지리적으로 봤을 때, 포르투갈과 더불어 유럽의 가장 서쪽에 위치한 스페인은 영국, 아일랜드, 포르투갈과 같은 그리니치 평균시(GMT)를 사용해야 하는 게 경도상 맞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스페인 본토에서 2500㎞ 떨어져 있는 폴란드, 헝가리와 같은 시간대를 채택하고 있다. 겨울에는 한 시간을, 서머타임을 하는 여름과 가을철에는 최대 두 시간을 늦게 살아가는 거나 마찬가지다. 스페인은 지리적으로 맞지 않는 이 중앙유럽 표준시(CET)를 왜 고집하고 있는 걸까?

원래 스페인은 영국, 포르투갈과 같은 그리니치 평균시를 사용했다. 스페인 국민은 지금보다 1시간 느리게 살고 있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계속되던 1942년 프랑코 정권은 이탈리아, 독일과 시간을 맞추고자 시간대를 변경했고, 이것이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영국도 2차 세계대전 동안 시간대를 변경했지만, 1945년 종전 후에는 다시 원래의 시간대로 돌아갔다.

스페인도 진작 시간대를 바꿨어야 했는데 이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2016년에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는 스페인 시간대를 그리니치 표준시로 되돌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미 몇십 년간 유지하던 스페인의 생활 습관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을까.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의사들은 걱정하지만 국민들은 “괜찮아”

스페인의 중앙유럽 표준시 사용에 대해 국민의 건강을 우려하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있다. ‘정오’라고 불리는 태양 고도가 가장 높은 시간은 보통 낮 12시 경이다. 그러나 스페인 정오 시간은 오후 2시쯤이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가 가장 뜨겁다. 전문가들은 정오 시간에 맞춰 점심을 먹고, 그만큼 저녁 식사 시간이 느려지면 인간의 생체 리듬과 건강, 수면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경고하고 있다. 저녁 식사 시간이 늦어지면 그만큼 음식물을 소화하는 시간이 늦어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잠자리에 드는 시간도 늦어진다. 그럼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러나 스페인 국민 중에 이를 큰 문제로 여기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늦은 시간까지 해가 떠 있어서 하루를 더 오래 즐길 수 있다고도 하고, 늦은 식사 시간도 이미 적응이 된 이유 때문인지 오히려 지금 시간대를 선호하는 사람이 더 많아 보인다. 게다가 스페인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국이라 섣불리 시간대를 바꾸기가 어렵기도 하다. 해가 늦게까지 떠 있고, 식사 시간이 늦다면 관광객들이 안전하게 더 오랜 시간 스페인을 관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는 관광객들의 소비를 유도해 더 많은 관광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큰 장점도 있다.

지난 3월 26일 새벽 2시가 3시로 바뀌며 스페인에도 본격적인 서머타임이 시작되었다. 6월에는 밤 10시까지 해가 떠 있어서 그만큼 더 활동해야 하는 시간이 많아 약간의 피로감이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스페인 특유의 활기를 온전히 느낄 수 있어 더 즐겁다. 오히려 이런 요상한 시간대와 식사 시간 덕분에 스페인이 더 매력적인 나라로 느껴지는 건 아닐까?

글쓴이

최지윤 칼럼니스트

최지윤 칼럼니스트는 현재 스페인 살라망카대학 한국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을 전공했고, 국외 한국어 교육 사업을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인 ‘세종학당(멕시코)’에서 근무했다. 스페인어권 국가의 한국어 교육 전문가가 되기 위해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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