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사랑하는 산티아고 순례길
[최지윤의 스페인 이야기] 한국인 2010년부터 본격적 방문 루트중 ‘프랑스 길’은 800㎞ 대장정 ‘해산물의 수도’ 가리비등 맛난 음식들
‘제주 올레길’ 영감 준 순례길
피로와 스트레스가 가득한 현대 사회. 사람들은 걷기를 통해 ‘나’를 지키고,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많이 걷고 나면 몸이 노곤해지지만, 마음에 있던 짐은 잠시 내려놓을 수 있어 홀가분하기까지 하다. 19세기 독일 철학자 니체는 “위대한 모든 생각은 걷기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각종 질병으로 고생하던 그는 걸음으로써 끝없이 사유하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언제부턴가 한국에서도 ‘걷기 열풍’이 불었다. 시작은 언론인 서명숙 씨가 만든 ‘제주 올레길’이라고들 한다. 이를 필두로 한국에는 유명한 길이 전국 방방곡곡 생겨났다. 제주 올레길은 2007년에 제1코스를 시작으로 현재 21코스까지 생겨났다고 한다. 한국인은 물론, 제주의 자연경관을 감상하고자 하는 수많은 외국인이 방문한다. 서명숙 씨는 기자 생활을 청산하고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던 중 영감을 받아 제주 올레길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큰 화제가 되었다.

해외여행은 물론, 새로운 도전에 목말라 있던 많은 한국인은 서명숙 씨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도보 여행가 김남희 씨의 저서를 통해 2010년을 전후로 산티아고 순례길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됐다. 스페인 일간지 COPE에 따르면, 2004년에 18명의 한국인이 순례를 완주했는데 6년 후인 2010년에는 1455명이 되었다. 그 수는 점점 증가해 2019년에는 8천 명이 넘는 한국인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찾았고, 국가 순으로 봤을 때 세계 7위를 기록했다고 전한다. 코로나 팬데믹 바로 이전이었던 2020년 1월에는 한 달 동안 364명의 한국인이 순례길을 방문했다는데, 이는 독일, 이탈리아, 포르투갈인을 합한 수보다 많았다고 전한다.
스페인 사람들은 이렇게 몇백 ㎞나 되는 순례길을 걷기 위해 1만 ㎞나 떨어진 스페인까지 오는 한국인들을 신기하게 생각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스페인 언론에서는 한국인의 순례길 사랑을 이례적으로 보도하기도 했는데, 산티아고 순례길을 배경으로 한 예능인 <스페인 하숙>, <같이 걸을까>에 대해서도 언급한 바 있다. 2021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스페인 국빈 방문 때는 한국-스페인의 관광 교류·협력을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이 논의되었다. 이에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는 제주의 상징인 돌하르방과 올레길의 상징인 간세(조랑말) 조형물이 세워졌다.

성 야곱 시신과 레콘키스타 시작점
산티아고 순례길이 뭐길래 한국인들이 이렇게 열광하는 것일까? 산티아고 순례길은 스페인어로 ‘까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라고 부른다. 예수의 12사도 중 한 명이었던 야곱은 이베리아반도와 사마리아 지역에서 복음을 전파하다 예루살렘에서 참수당해 순교했고, 제자들이 시신을 수습했다. 오랜 시간 이후 사람들은 ‘별빛의 인도’로 행방이 묘연했던 사도 야곱의 시신을 찾게 되었다는데, 그 지역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별들이 빛나는 들판이라는 뜻)’라고 부르게 되었다. 시신 발견 당시 왕이었던 스페인의 알폰소 2세는 야곱의 묘지 위에 대성당을 건축했고, 야곱의 유골함을 안치시켜놓았다.
이 지역은 스페인 역사에서도 또 다른 큰 의미가 있다. 스페인은 오랜 시간 동안 무어인에 영토를 빼앗긴 적이 있는데 국토 회복 운동이었던 ‘레콘키스타’가 이 지역에서 시작되었다. 전쟁 중에는 성 야곱이 기사의 모습으로 나타나 이슬람군을 무찔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 후, 이를 기리고자 하는 순례자들의 방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도착하는 산티아고 순례길에는 여러 루트가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길은 프랑스의 생장 피에 드 포르에서 시작되는 ‘프랑스 길’이다. 이는 약 800㎞의 대장정으로, 걸어서 약 한 달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길이다. 이 밖에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시작하는 포르투갈 길, 세비야에서 시작하는 은의 길 등 다양한 루트가 있다.
순례객들은 자신의 일정과 체력 등을 고려해 가장 적합한 코스를 선택해야 한다. 배낭을 멘 채 하루에 여섯 시간 이상, 20~30㎞를 꾸준히 걸어야 하는 강행군이기 때문에 결코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되는 일이다. 불편한 신발, 얇은 양말을 신으면 발에 물집이 생기는 것은 물론이고, 더운 여름에 걷는다면 급격한 체력 저하로 건강을 위협할 수도 있다.
가리비, 가리비, 가리비
산티아고 순례길의 상징은 ‘가리비’다. 성 야곱의 시신이 가리비로 둘러싸여 있었다는 설이 있었고, 예전에 순례자들이 가리비 껍데기에 음식을 놓고 먹었다는 데에서 비롯되었다. 모든 순례자는 길에 설치된 가리비 모양을 보며 길을 잃지 않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한다. 순례자들은 ‘알베르게(Albergue)’라고 하는 숙소에서 저렴한 가격에 머물 수 있는데, 알베르게는 비영리 단체나 자원봉사자가 제공하는 숙소다. 시설이나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한국인 순례객이 많다 보니, 한국 식재료를 판매하는 곳도 요즘은 어렵지 않게 보인다. 인터넷에서 한국인들이 단체로 모여 삼겹살과 소주를 즐기거나 한국 음식 냄새를 풍기며 알베르게의 공동 주방을 독차지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한없이 부끄러워지지만, 다수의 한국인 순례객이 이럴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랬으면 스페인 내에서 한국인의 이미지가 이미 굉장히 안 좋아졌을 테니 말이다!
고된 일정을 반복하다 보면 당연히 담백하고 얼큰한 한국 음식이 생각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순례길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음식이 있으니 한국 음식은 잠시 접어두는 것도 좋지 않을까?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위치한 갈리시아 지방은 ‘해산물의 수도’라고 불리는 곳이다. 1500㎞에 달하는 해안선이 있어 해산물이 풍부하다. 물론, 스페인 어느 지역에 가도 좋은 해산물을 찾을 수 있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다. 그러나 갈리시아에서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최고의 해산물을 맛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1. 페르세베스(percebes)

한국에서는 보편적으로 먹을 수 없는 페르세베스(거북손)를 먼저 소개한다. 바위 표면에 서식하는 갑각류의 해산물로, 채취가 매우 어려운 만큼 마드리드에서는 킬로당 가격이 십만 원을 훌쩍 넘을 정도이다. 거북손은 물에 살짝 데친 후, 껍질을 벗겨 먹는다. 대서양의 맛이 느껴진다고 표현할 만큼, 바다의 깊은 내음이 확 느껴지는 진미니 꼭 먹기를 추천한다.
2. 뿔뽀 아 라 가에가(pulpo a la gallega)

갈리시아식 문어 요리라는 뜻으로, 야들야들한 문어를 작게 자르고 그 위에 올리브 오일과 피멘톤(훈제 파프리카 가루), 감자를 얹어 먹는 요리다. 가격도 저렴하고 누구나 좋아할 맛이라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은 음식이다.
3. 깔도 가예고(Caldo de gallego)

깔도 가예고는 고기 덩어리, 콩, 야채가 들어간 뜨끈한 탕 종류라고 보면 좋겠다. 탄수화물과 단백질, 섬유질이 모두 포함되어 영양소가 풍부한 음식이다. 예로부터 농장에서 일하거나 순례자들처럼 몸을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보충할 수 있는 음식으로 여겨졌다. 국을 먹어야 든든한 우리 한국인들에게 잘 맞는 갈리시아 음식 중 하나다.

지친 영혼, 치유의 시간 갖기를
산티아고 순례길에는 남녀노소, 국적을 불문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사용하는 언어는 달라도 “Buen Camino!(좋은 순례길 되세요!)”라고 서로를 격려하는 인사를 나눈다.
순례길에 오르는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사연을 가지고 있다. 일반인 뿐만 아니라,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도 순례길에 오르기 때문에 산티아고 산티아고 순례길은 더욱 특별하고 아름답다. 1천년 넘는 세월 동안 전 세계의 순례자들이 찾은 까미노 데 산티아고의 매력은 끝이 없다. 코로나로 잠시 주춤했지만, 다시 많은 한국인이 이곳을 찾을 것이다. 순례길을 찾는 모든 이들이 지친 삶에서 잠시 벗어나 치유의 시간을 갖고, 진정한 자기 자신과 인생의 의미를 찾는 고귀한 경험을 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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