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은 핑크색 테마파크?
[박기찬의 말랑고소한 북한이야기] 북한의 건축물이 핑크색인 이유
[박기찬 신한은행 북한연구회 대외협력회장] 패션과 색상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수년 전부터 한국에서 핑크색은 패션의 큰 흐름이 되어 온 것 같다. 젊은 여성 뿐 아니라 중년의 부인은 물론이고, 요즘은 젊은 남성들도 핑크색 옷을 입고 있다. 약간은 차분하고 점잖은 톤의 인디언 핑크라는 분홍색이 큰 유행이다.
북한의 색 변화에도 유사한 경향이 보인다. 먼저 평양의 아파트를 시대별로 살펴보면 그 색상이 점점 달라짐을 알 수 있다. 한국은 물론 세계 어느 곳에서도, 주거 건물인 아파트는 대부분 무색이나 회색이다.
그런데 평양의 아파트는 2000년대 중반부터 점점 유채색으로 변화했다. 그리고 그 색상은 파스텔풍의 핑크색과 연한 초록의 민트색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최근에 완성된 평안남도의 관광지인 양덕온천이나 새로 재개발된 백두산 아래의 삼지연 시내의 모습을 사진으로 살펴보자.
건축물과 도시 경관의 기본 색상이 핑크임을 알 수 있다. 디자인부터 색상까지 철저히 계획적이고 정책적으로 지어진 이들 건물에서도 핑크색이 가장 중심적으로 색상으로 채택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북한이나 평양을 주제로 남한에서 개최되는 전시회나 건축 및 디자인 관련 책자들은 핑크색을 기본 색상으로 시각화하는 경우가 많다. 도시의 색으로서 핑크색이 주는 강력한 인상 때문에, 서방세계의 사람들은 평양을 마치 인위적으로 만든 환상의 세계나 대규모 테마파크 같은 느낌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핑크색 테마파크 같다”
한국전쟁 때 미군의 폭격으로 거의 모든 건축물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전후에 평양은 철저한 계획도시로 재건설됐다. 평양은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게 계획적으로 구성되어 있고, 기념비적인 건축물들은 사회주의적 이념의 상징들로 잘 짜여져 있다. 그래서, 서구 사람들에게는 평양이라는 도시가 마치 하나의 거대한 세트장이나 테마파크로 보이는 지도 모른다.
이러한 계획도시 평양의 이미지에 대해 일부의 서방 사람들은 시니컬하게 비평하기도 한다. 핑크색을 바탕으로 하여 디테일한 화보 및 설계도를 통하여 평양의 건축물을 분석한 책, 『모델 시티 평양』(2020년, 시공아트)에서 영국인 여행작가 피코 아이어는 “너무 테마파크 같다. (중략) 어디서 환상이 끝나고 어디서 진짜 삶이 시작되는지 분간하기 어렵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비평은 사형(死刑) 집행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인 싱가포르를 놓고 ‘사형 제도가 있는 디즈니랜드(Disneyland with the Death Penalty)’로 비꼬는 것과도 유사하게 들리기도 한다.
‘핑크색=진달래색= 항일혁명 전통’
그렇다면, 왜 핑크색이 북한의 새 건축물에 메인 컬러로 사용되고 있을까? 그 첫째 이유로, 분홍빛 핑크색이 중요한 정치적 스토리텔링과 연결되어 있음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김일성 주석의 부인이자 김정일 위원장의 어머니 김정숙이 만주 땅에서 어려운 싸움을 이어 오던 항일유격대의 일원으로 드디어 조선 땅을 밟았을 때의 이야기다. 그때 마주하는 감격의 순간을 ‘조국의 진달래’를 안고 눈물 흘리는 모습으로 형상화되어 전해져 왔다. 북한에서 진달래 꽃은 눈서리 찬바람을 뚫고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항일혁명전통의 상징으로 강력하게 스토텔링되어 있다.
핑크색과 항일혁명 스토리와의 튼튼한 연결구조는 2018년 평창과 서울에서 공연한 삼지연관현악단의 의상에서도 확인된다. 여성단원은 연한 핑크색을, 남성은 진한 핑크색을 입었다.
백두산 천지로부터 40㎞ 떨어진 삼지연시(市)는 항일혁명의 성지인 백두산 유적지를 답사할 때 들리게 되는 거점 도시로서 혁명사적지의 일부이다. 삼지연은 이름 그 자체로 항일혁명 전통과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삼지연관현악단의 핑크는 항일혁명투쟁의 전통과 정신이 스며든 ‘조국의 진달래‘ 색깔인 것이다.

국가가 지어서 공급하는 주택이나 국가정책적 신도시의 개발 또는 대규모 관광지구의 건설에 있어서, 색상의 기본개념은 많은 정책적 고민과 토의 속에서 정해질 수 밖에 없다. 그런 선택의 과정에서 ‘조국의 진달래’ 색상은 가장 안전하고 누구도 쉽게 뒤집기 어려운 컬러가 되지 않았을까 추론할 수 있다.
인민 생활 질 높이고 관광산업도 키우려
둘째, 북한 대내적으로는 인민들의 생활 향상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현재의 통치철학이 투영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핑크색은 반론의 여지없이 누구에게나 따뜻하고 행복한 느낌을 주는 색깔이기 때문이다.
일상 속에서 만나는 핑크 빛의 따뜻한 색감은, ‘세상에 부럼 없어라’ 또는 ‘내 나라 제일로 좋아’ 등의 노래나 구호 보다 더 강력하게, 김정은 시대의 인민대중제일주의와 애민(愛民)사상을 인민들에게 전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셋째, 북한의 대외적인 관점에서 볼 때, 양덕온천, 삼지연시, 원산갈마 등 관광지의 색상 이미지를 핑크색을 중심으로 잡아간 것은 대외 관광산업을 마케팅하는 관점에서 나온 색감의 선택으로 해석될 수 있다.
물론 이들 지역에 내국인도 출입하지만, 거대한 투입자원을 고려한다면 반드시 외국인 관광객들이 대거 방문해야 하며 결국엔 그들이 편안하고 즐겁게 느껴야 할 것이다. 정답은 핑크이다. 핑크는 그 색 자체만으로 가장 글로벌하고 보편적인 감성을 세계인들과 나눌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한 핑크색에 대한 북한식 상징화
심리학자 루이스 체스킨은, 마케팅 효과에 있어서 이성에 호소하는 형태 요소 보다 감성에 호소하는 색상 요소가 사람들에게 더 강력하게 인식되고 나아가 소비자들의 행동을 유발한다고 주장했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핑크색의 매우 강력한 힘을 잘 보여 준다. 이 영화에서 핑크 색감은 애틋한 사랑, 욕망과 음모, 그리고 폭력적 정치체제 등 많은 스토리들을 한 가지의 이미지, 즉 ‘아름답고 순수함’이라는 감성으로 모아서 녹여 내는 힘을 발휘한다.

서양에서는 18세기까지 핑크색이 귀족의 힘과 권위를 상징하는 색으로서 남녀 모두에게 활용되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야 핑크는 온전히 여성만의 색이 되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보이그룹 BTS는 ‘맵 오브 더 솔: 페르소나’에서 핑크색을 ‘성 중립’ 내지 ‘젠더리스’의 상징으로 활용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핑크가 주는 느낌과 상징은 어느 누가 독점할 수도 없고, 지역과 시대에 따라 계속 변화하고 있다. 핑크의 진정한 매력은 그 강력한 힘과 함께 핑크 색감을 즐기고 느끼고 상징화하는 우리 모두에게 공평하게 열려있다는 점이 아닐까. 이것은 북한의 핑크색 활용과 상징화 과정을 편견없이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는 또 다른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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