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사태에 이용된 ‘북한 위협’ Build-Up

내란 사태와 ‘서울의 봄’-‘헌트’ 차이 여전히 통하는 반북주의와 전쟁위험 평화 없이는 민주주의도 위협받아

해병대가 K-9 자주포로 북한에 대응사격을 하는 모습. 사진= 연합뉴스
해병대가 K-9 자주포로 북한에 대응사격을 하는 모습.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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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사태, 정우성 주연 두 영화로 빗대어 보면

갑작스런 내란 사태에 모두 정신이 없었다. 이제 잠깐 한숨을 돌리고 영화 보다 훨씬 더 드라마틱했던 이번 사건을 차분히 돌아본다. 한때 뉴스의 중심이 됐던 정우성이 주연한 두 편의 영화, ‘서울의 봄’과 ‘헌트’에 빗대어 이번 사태의 흐름을 살펴보자.

많은 사람들은 먼저 ‘서울의 봄’(2023년)을 떠올렸을 것이다. 필자는 여기에 정우성이 똑같이 주연한 첩보 영화 ‘헌트’(2022년)를 추가하고 싶다. 그래야 이번 내란 사건의 구조와 전개방식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서스펜스 영화는 사건의 정체와 범인을 처음부터 관객에게 알려주는 반면, 미스테리 영화는 사건의 전모와 비밀을 영화 끝에야 알려준다. 영화 ‘서울의 봄’은 이 사건의 전모와 악인의 정체까지도 관객들에게 미리 다 보여준다. 영화 ‘헌트’는 거물급 간첩이 국가정보기관에 침투했을 가능성을 모티브로 스토리를 긴박하게 끌어가지만 사건의 실체와 상상하지 못할 거대한 음모를 마지막까지 관객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영화 '서울의 봄' 포스터.
영화 ‘서울의 봄’ 포스터.

현실의 내란 사태, 서스펜스에서 미스테리로 전개중

영화 ‘서울의 봄’은 서스펜스에 가깝고 ‘헌트’는 미스터리 영화라고 할 수 있다. 12월14일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기 이전까지, 현실은 서스펜스 중심의 영화 ‘서울의 봄’에 가까웠다. 그 이후에도 현실은 끝나지 않았다. 이제 내란 사태는 훨씬 더 궁금증을 자아내는 미스터리 성격의 영화 ‘헌트’로 나아가고 있다.

원래 두 영화는 서스펜스와 미스터리 라는 전개 방식 외에 한 가지 더 큰 차이가 있다. 그것은 북한의 존재가 있느냐 없느냐이다. ‘서울의 봄’에는 북한이 사실상 없으며, 북한이 없어도 관객의 긴박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지장이 없다. ‘헌트’에는 북한의 존재가 길게 숨어 있으며, 반드시 필요한 구조다. 이를 통해 상황을 더 복잡하게 하고 예측 불가하게 만들어 관객의 긴장감을 극대화시킨다.

강원도 고성 군사분계선(MDL) 부근에서 북측이 실시한 방사포 포격연습 장면. 사진= 연합뉴스
강원도 고성 군사분계선(MDL) 부근에서 북측이 실시한 방사포 포격연습 장면. 사진= 연합뉴스

현실의 내란 사태, 북한은 어떻게 이용됐나

12월3일 벌어진 내란 사태는 조금씩 수습되고 있다. 친위쿠데타의 동기, 주모자, 명분 확보를 위한 조작 음모, 실행 계획 등 다양한 폭로와 범죄자 진술이 이어지고 있다. 위헌적 비상계엄에 의한 내란, 즉 친위쿠데타라는 실체를 숨기고 국민을 속이기 위해 차곡차곡 진행되었던 빌드업 단계까지를 거슬러 살펴보면 일관되게 관통하는 하나의 흐름이 있다. 그것은 북한과의 전쟁위험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이 정부 들어와서 모두가 참 기이하다고 여긴 것이 있었다. 대통령의 주요 국경일 연설마다 북한이 등장한 것이다. 3.1절과 8.15광복절 연설 때마다 무능하고 무도한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과 국민을 종북 반국가세력, 즉 북한을 추종하고 국가질서를 무너뜨리려는 악의 무리로 선동하곤 했다.

집권 초기부터 북녘 땅으로 보내는 대북전단 살포를 선제적으로 허용하였고, 대북 확성기 방송도 먼저 시작했다. 결국엔 북한의 오물풍선이 날아들게 만든 것이다. 국민의 고통은 점차 가중되었고 북한에 대한 혐오감 또한 커지게 만들었다. 2024년 6월 서해에서는 연평도 포격사건을 연상케 하는 사상 최대 규모의 포사격 훈련을 전개했다고 한다.

올해 10월에는 남측을 향해 방어장벽을 쌓는 북한군에 남한군이 총격을 가하는 기이한 사건도 있었다. 급기야 평양 상공에 무인기를 침투시킴으로써 국지전을 일으키는 일촉즉발의 상황을 유도했다. 북한의 오물풍선을 원점타격해야 한다는 논의까지 있었다고 한다.

여전히 통하는 반북주의와 전쟁위험

이러한 군사행동은 실제 국지전을 유도하는 행동일 뿐 아니라 북한에 대한 혐오와 전쟁 공포를 끌어올리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 시점에서 보자면 불법적인 비상계엄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전쟁을 촉발시킬 불장난의 빌드업을 지속적으로 쌓아갔던 것으로 보인다.

12월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그 목적을 “북한 공산 세력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종북 반국가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내란사태 후인 12월 12일 담화에도 북한은 다섯 번이나 등장한다. 북한이 선거관리위원회를 해킹했다고 주장하고 이러한 북한을 추종하고 있다며 야당을 자유민주주의와 헌정 질서를 무너뜨리는 패악 세력이라고 규정했다.

철저한 수사를 통하여 낱낱이 밝혀지겠지만, 북한 군복으로 위장한 특수부대가 남한 내에서 군사적 비상사태를 일으켜 비상계엄령을 불가피하게 만들 음모가 진행되었다는 의혹도 폭로되었다.

심지어 북한군으로 위장한 대한민국 특수작전 부대가 여당 대표를 사살하고 야당 정치인과 방송인을 납치하려는 자작극을 계획했다는 제보도 있었다. 이 제보에는 주한 미군 병사를 사살하고 북한 무인기에 북한 무기를 탑재하여 군사 공격을 일으킴으로써 미군의 북한 폭격을 유도하려 했다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내용도 포함됐다.

평화 없이는 민주주의도 위협받다

수십 년이 지나도 반복되는 한반도의 비극적인 계엄사태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번 사건으로 한가지 분명해지는 것이 있다. 남한의 독재자들이 총칼로 민주주의를 파괴할 때 항상 북한의 위협과 불안정한 한반도 상황을 이용해 왔다는 점이다.

한반도의 평화 없이는, 나아가 분단의 극복 없이는, 우리의 민주주의가 반복적으로 그리고 근본적으로 위협받을 수 있다. ‘민주주의 없이 평화도 없다’는 말이 있다. 2024년에 다시 재현된 비상계엄 사태는 ‘평화가 없는 불안정한 상황에서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또한 언제든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해준다.

만약에 남한의 군사적 도발에 북한이 무력으로 대응하여 어떤 행태로든 전쟁이 벌어졌다고 상상해 보면 정말 끔찍하다. 한반도의 젊은이와 시민들이 또다시 전쟁에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계엄은 성공하여 상당 기간 지속되었을 것이고 이에 저항하는 시민들이 죽어나가는 유혈사태까지 일어나지 않았을까. 우리의 민주주의뿐 아니라 국가신인도는 물론 경제 전반이 돌이키기 어려운 추락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긴 고통과 치욕은 우리 국민들의 몫이었을 것이다.

북한은 이 사태를 어떻게 보았을까

역지사지로 북한의 입장에서 이번 사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북한이 느끼는 안보 불안의 관점에서 논평한 러시아의 자하로바 외무부 대변인의 발언은 매우 인상적이다.

바로 다음 날인 12월 4일, 자하로바 대변인은 “상황을 철저히 분석해 보면 북한이 왜 그렇게 열심히 자국의 안보를 강화하고 있는지 분명해진다. 이웃인 한국은 예측할 수 없는 나라다. 서울에서 일어난 이번 사건은 한반도에 긴장과 불안정을 초래하는 주체가 한국이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북한의 시각에서 본다면, 남한의 정권은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기 일쑤고 바뀔 때 마다 자신을 향한 정책이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모습일 것이다. 남한의 계속되는 군사적 도발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오판하지 않고 군사적으로 차분하게 대응한 것은 너무나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번에 보여준 북한의 분별력있는 대응 태도는 북한이 비합리적이고 호전적인 국가라는 국제사회의 인식을 개선하는 데에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새 희망 MZ세대, 탄핵시위를 이끌다

두 영화 ‘서울의 봄’과 ‘헌트’의 내용이 2024년의 내란 현실과 다른 점이 또 하나 있다. 2024년 현실에는 두 영화 어디에도 없는 강력한 주인공이 등장한다. 12월 3일 밤, 국회로 몰려들어 맨몸으로 계엄군을 막았던 시민들이 그 주인공이다. 그리고 12월 7일과 14일 저녁 매서운 날씨 속에서도 여의도를 가득 메운 국민들, 특히 응원봉을 흔들고 K-팝을 부르며 탄핵을 외친 MZ세대가 또 다른 주인공이다.

영화 같은 현실에서 우리 모두 새로운 희망을 보았다. 탄핵을 외치는 분노에 K-팝의 흥겨움을 더할 수 있는 젊은이들의 열의에 전세계가 또한번 놀랐다고 한다. K-컬쳐와 응원봉으로 무장한 MZ세대가 불법 계엄사태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MZ세대들이 응원봉을 손에 쥔 채 윤석열 퇴진과 체포를 외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MZ세대들이 응원봉을 손에 쥔 채 윤석열 퇴진과 체포를 외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1980년대 전후의 처절하고 암울했던 상황을 생생하게 재현한 두 영화를 다시 생각한다. 2022년 개봉한 ‘헌트’와 2023년에 1300만 관객을 모은 ‘서울의 봄’은 2024년 비상계엄사태를 맞은 우리에게 그리고 MZ세대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두 영화와 같은 시기인 1980년 참혹했던 광주를 담아낸 소설 ‘소년이 온다’로 한강 작가는 노벨상을 받았다. 1백만 부 이상이 읽혔다는 이 책은 비상계엄 사태를 맞은 현재의 우리, 그리고 MZ세대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 한강 작가는 12월 7일 스웨덴 아카데미에서 열린 수상식에서 말했다.

” 과거는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실제로 과거가 현재를 돕고 있다고, 죽은 자들이 산 자를 구하고 있다고 느낀 순간들이 있었다.”

글쓴이

박기찬 북한학 박사

필자인 박기찬은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후 미국 워싱턴대 MBA를 마친 금융인으로, 글로벌하고 미래지향적 시각에서 한반도 이슈에 접근하는 북한연구자이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개발협력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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