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를 어떻게 불러야 할까

[박기찬의 말랑고소한 북한 이야기] 우리나라 이름, 한국과 조선 그리고 고려 북한의 국호는 왜 ‘조선’이라 할까 국제사회는 ‘고려’를 더 부르기도 홍범도 장군 묘비엔 어떻게 새겨있을까

판문점 공동식수 기념비에 쓰여진 두 국가 이름. 사진=연합뉴스
판문점 공동식수 기념비에 쓰여진 두 국가 이름. 사진=연합뉴스

또 다른 국호 ‘KOREA’ ‘고려’

최근 북한의 김여정 부부장과 김정은 위원장이 잇달아 남한을 ‘대한민국’으로 불렀다. 북한이 남한의 공식 이름을 부른 것은 처음이었다. 우리가 북한의 공식 이름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불러준 적이 없듯, 북한도 이제껏 우리를 ‘대한민국’으로 부르지 않았다.

서로가 이름을 모르고

남한 사람들은 남북을 각각 ‘남한’, ‘북한’이라 부르는 반면, 북한 사람들은 ‘남조선’, ‘북조선’이라 말한다. 자신들만이 한반도, 조선반도에서 정통성을 가진 유일한 국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북한 사람들은 남한의 국호 ‘한국’을 모른다. 남한에 정착한 북한이탈주민들은 대부분 남한의 국호 ‘한국’이나 ‘대한민국’을 몰랐다고 말한다. 남한에서도 북한의 국호가 ‘조선’이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것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남북한 모두 공식 교육과정에서 상대의 국호를 가르치지 않고 있다.

남과 북은 서로를 너무 모르고 살아 왔다. 상대에게 자신의 옳고 우월함을 주장하기 전에 서로를 있는 그대로 알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먼저 필요하지 않을까. 상대의 정식 이름도 모르고 그 배경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상대와 진심으로 소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북한의 국호는 왜 ‘조선’일까

남한과 북한의 공식 국호를 생각하다, 얼마 전 “북한은 왜 스스로를 ‘조선’이라고 하느냐”던 한 후배의 질문이 떠올랐다. 한국, 남한, 북한은 자연스러운데 조선, 북조선, 남조선은 듣기에 이상하다는 것이다.

이 질문에 두 가지로 답했던 기억이 난다. 남과 북이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관련해 서로 다른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현실, 그리고 북한이 쓰고 있는 ‘조선’이라는 용어도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이름 중의 하나라는 것을 말해 주었다.

지난 2020년 평양에서 9.9절때 세워진 경축 간판. 사진=연합뉴스
지난 2020년 평양에서 9.9절때 세워진 경축 간판. 사진=연합뉴스

국호 및 민족정체성 관련 용어가 서로 다르다

남한 사람들은 자신의 나라이름을 ‘한국’ 또는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 줄여서 ROK)이라고 부른다. 북한 사람들은 ‘조선’ 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줄여서 DPRK)이라고 부르며, 일상생활에서는 줄여서 ‘공화국’이라고도 한다.

나라이름 뿐 아니라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관련해서도 서로 다른 용어를 사용한다. 우리민족을 남에서는 ‘한민족’, 북에서는 ‘조선민족’이라 한다. 남한이 ‘한반도’라고 부르는 이 땅을 북한에서는 ‘조선반도’라고 한다. 세종대왕이 만든 훈민정음을 남한에서는 ‘한글’ ‘한국어’, 북한에서는 ‘조선글’ ‘조선어’라고 한다.

한국역사는 ‘조선역사’, 한복은 ‘조선옷’, 한옥은 ‘조선집’, 한국무용은 ‘조선춤’이라고 한다. ‘한~’ 또는 ‘한국~’을 ‘조선-’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 담긴 용어를 남북이 다르게 부른다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오늘날 남한에서도 널리 쓰는 ‘조선’

곰곰 따져보면 조선이라는 이름은 남한에서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언론사 이름으로 ‘조선일보’, ‘TV조선’(북한의 ‘조선중앙TV’와 헷갈리면 곤란하다), ‘여성조선’ 등이 있고, 호텔체인 중에는 ‘웨스틴 조선 서울’, ‘그랜드 조선 제주’ 등을 거느린 ‘조선호텔앤리조트’가 있다. 식당에는 ‘조선식당’이라는 상호가 있고 전남 광주에 사립대학인 ‘조선대학교’가 있다.

일본간장 왜간장에 대비하여 우리의 전통 국간장을 ‘조선간장’이라고 부른다. 최고일인자를 부를 때 ‘조선의-’를 붙이기도 한다. 프로야구 이대호 선수를 ‘조선의 4번타자’로 부르기도 하고 최고의 검객을 ‘조선제일검’이라고도 한다.

1920~30년대에 기독교인이 많고 교회 종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하여 평양은 ‘조선의 예루살렘’이라는 별명을 가졌다. 해방 전후에 항일투쟁, 노동운동, 사회주의 활동이 가장 많았다고 하여 대구는 ‘조선의 모스크바’로 불리기도 했다.

과거에는 조선이라는 상호가 훨씬 많았다. 하이트맥주는 과거 ‘조선맥주’였고 우리은행의 전신인 한국상업은행은 해방 전에 ‘조선상업은행’이었고, 신한은행의 전신 ‘조흥(朝興)은행’은 조선의 산업을 일으킨다는 ‘조선흥업(朝鮮興業)’의 의미로 쓰였다.

중국과 일본은 어떻게 부르나

한자 문화권인 중국, 일본, 대만 등 주변 국가는 남북한의 국호를 어떻게 부를까. 중국은 남과 북이 각자가 원하는 대로 ‘한국’과 ‘조선’이라고 부른다. 일본은 북한을 ‘북조선’이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고, 남한은 ‘한국’이라고 부른다. 대만은 북한을 ‘북한’, 남한을 ‘한국’ 또는 ‘남한’이라고 한다.

남과 북이 원하는 대로 두 가지로 나누어서 부를 수 없는 경우가 있다. ‘한반도’ 또는 ‘조선반도’처럼 한 호칭을 선택해야 하는 경우는 어떨까. 오랜 역사적 관행 때문인지 중국과 일본은 모두 ‘한반도’를 ‘조선반도’라고 부르며, ‘한민족’을 ‘조선민족’, ‘한국사’를 ‘조선역사’, ‘한국전쟁’을 ‘조선전쟁’으로 호칭하는 경향을 보인다.

중국과 일본의 학계에서 쓰는 용어의 경우에는 더욱 ‘조선반도’, ‘조선민족’이 일반적으로 쓰인다. 다만, 최근 남한의 K-컬쳐 영향력이 커지면서 한국어/한글(조선어/조선글)의 경우에는 아시아 전역에서 ‘한국어’나 ‘한글’로 부르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국호 ‘조선’과 ‘한’의 역사

조선이라는 이름은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국호다. 기원전 3000년 내지 4000년에 한반도 북부와 만주 일대에 고대국가 ‘단군 조선’ 즉 고조선이 있었다. 그리고 1392년 이성계가 건국하여 518년간 한반도에 존속했던 나라 ‘조선’이 있었다.

‘조선’은 긴 역사 속에서 실존한 나라 이름으로 여러 번 사용되었다. 우리 민족이 스스로를 규정하는 자기정체성이 강한 이름 중 하나다.

고대에 ‘한국’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단일국가는 없었다. 삼한(三韓)은 삼국시대 이전에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 즉 한반도 중남부 지역을 일컫는 말로 쓰였으며, 삼국시대 후기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를 통칭하는 표현으로도 쓰였다.

일부 학자들은 한(韓)을 ‘하나’, ‘크다’, ‘하늘’, 또는 황제를 뜻하는 ‘칸(汗)’의 의미로 해석한다. 조선 말기인 1897년 고종이 ‘한’, ‘한국’, ‘대한’, ‘대한제국’이라는 나라 이름을 처음 선포했고, 1919년 상해 임시정부가 이를 이어받아 ‘대한민국’ 이란 이름을 사용했다.

또 다른 국호 ‘KOREA’ ‘고려’

한국과 조선 외에도 우리나라를 일컫는 국호가 하나 더 있다. 외국에서 남북한을 함께 부르는 이름으로 ‘코리아’ 즉 ‘고려’가 그것이다. 남한과 북한은 모두 영어로 스스로를 ‘Korea’라고 표기한다.

남한은 Republic of ‘Han’이 아닌 Republic of ‘Korea’, 북한은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Chosun’이 아닌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를 공식 호칭으로 사용한다. 언어별 알파벳이나 발성법에 따라 표기방식이 약간 다르지만 전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우리를 ‘Korea’나 Korea의 변형으로 부른다.

고려 또한 긴 역사를 가졌을 뿐 아니라 실존했던 나라의 국호로 여러 번 사용됐다. 고구려는 장수왕 때부터 스스로를 고구려가 아닌 ‘고려’로 불렀고, 발해도 스스로를 ‘고려’로 부른 기록이 있다.

궁예의 고려와 918년부터 474년간 이어진 왕건의 고려까지 합치면 총 4번의 ‘고려’가 국가 이름으로 사용된 셈이다. 그리고 ‘고려’는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부르는 이름과 외부에서 우리를 불러 주는 이름이 일치한다는 점에서도 장점을 가졌다.

중국 단동에 ‘조한거리’가 개명되다

압록강 너머 중국 단둥에는 ‘코리아타운’이라고 부를만한 거리가 있다. 한때 이 거리의 입구에는 ‘조한풍정가(朝韓風情街)-조선한국민속거리’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 이는 남과 북을 각자가 원하는 대로 부르는 중국식 이름이었다. 지금도 단동에는 ‘조한(朝韓)상점’식의 간판이 많다.

조한(朝韓)은 참 어색한 이름이었다. 단동한인회 이희행 회장이 2014년에 제안하여 채택된 이름이 현재의 ‘고려가(高麗街)-고려거리’이다. ‘조선한국’이라는 이름이 ‘고려’로 바뀐 것인데 단동에 거주하는 남측과 북측 사람들이 모두 ‘고려’를 수용한 결과였다.

중국 단동의 고려거리 입구. '고려가'라고 씌여있다. 사진=연합뉴스
중국 단동의 고려거리 입구. ‘고려가’라고 씌여있다. 사진=연합뉴스

‘동북공정’이 성공 못하는 이유

고구려와 발해 역사를 탐방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살던 고향’(2016년)에서 도올 김용옥 선생은 ‘고려’란 이름이 우리의 국호로서 종합점수가 가장 높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고려’라는 이 이름 때문에도 중국의 동북공정은 성공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김용옥 선생은 Republic of ‘Korea’와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로, 남과 북은 모두 ‘코리아’ 즉 ‘고려’라는 국호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남과 북의 사람들 모두가 스스로를 ‘코리안’, 즉 ‘고려인’, ‘고려구인’이라고 부르고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고 역설한다. 그는 고려 즉 고구려와 발해의 옛 역사현장인 동북3성을 방문하면서 지금도 가슴 뛰는 민족이 우리 말고 누가 있냐고 반문했다.

홍범도 장군의 묘비엔 뭐라 쓰여있을까

해외동포들도 스스로를 각자의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중국에 살고 있는 우리민족 동포들은 1950년대 중반까지 자신을 ‘조선인’ 또는 ‘조선민족’으로 부르다가 지금은 ‘조선족’으로 그 명칭을 공식화했다.

일본에 사는 동포들은 스스로를 ‘재일한국인’ 또는 ‘재일조선인’으로 부르면서 ‘재일(자이니치)’라고 줄여서 말한다.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지역에 사는 동포들은 스스로를 ‘고려인’이라고 한다.

안중근 의사는 자신을 ‘대한국인’이라고 부르며 ‘한국’이라는 국호를 일관되게 사용했다. 1909년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후 만세를 부를 때에는 러시아어 또는 에스페란토어로 ‘코레아 후라’를 세 번 외쳤다.

요즘 논란의 중심에 선 홍범도 장군은 1922년 소련에 입국하면서 입국 조사서에 직업을 ‘의병’으로, 입국 목적과 희망을 ‘고려 독립’이라고 직접 쓰면서 ‘고려’라는 국호를 사용했다.

지난 2021년 8월 15일 대한민국으로 유해가 돌아온 홍범도 장군의 오래된 묘비가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 남아 있다. 1951년에 이 묘비를 세운 고려인들은 우리나라 이름을 어떻게 인식했을까? 장군의 묘비에는 아래와 같이 새겨져 있다.

홍범도 장군 묘비. 사진=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홍범도 장군 묘비. 사진=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앞면

저명한 조선 빨찌산 대장
홍범도 묘
1868년 3월 1일 출생
1943년 10월 25일 사망

뒷면

조선의 자유독립을 위하여 제국주의 일본을 반대한 투쟁에 헌신한 조선 빨찌산 대장 홍범도의 일홈은 천추만대에 길이길이 전하여지리라.
1951년 10월 25일
레닌기치 신문사 동인, 고인의 전우 및 시내 유지한 조선인 일동 건립

글쓴이

박기찬 북한학 박사

필자인 박기찬은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후 미국 워싱턴대 MBA를 마친 금융인으로, 글로벌하고 미래지향적 시각에서 한반도 이슈에 접근하는 북한연구자이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개발협력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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