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정보화 바람이 금융을 바꾼다

[박기찬의 말랑고소한 북한 이야기] 확산되는 북한의 전자카드 사용 북한 은행의 개인계좌 늘고 있어 남한에 없는 북한의 전자결제 방식도 넘어야 산도 많지만 질러갈 길도 있다

북한의 최신폰 ‘삼태성8’으로 통화하는 여성. 사진=연합뉴스
북한의 최신폰 ‘삼태성8’으로 통화하는 여성.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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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사회에서 금융이란

북한의 금융에 대해 얘기하자면 미리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전통적인 사회주의 국가에서 금융이란 ‘인정되지 않는’ 분야였다. 화폐 자체를 자본주의 착취구조가 확대 재생산되는 경제적 매개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의 경제 분야 중에서도 가장 낙후된 곳 중 하나가 금융이다.

2010년대 중반 이전에 남한으로 입국한 북한이탈주민들은, 북한에서 개인은 은행 계좌(돈자리)가 없다고 증언해 왔다. 그러다 보니 개인이 은행을 통한 금융활동도 당연히 할 수 없다는 거였다.

북한의 경제사전에 개인금융 용어는 사실상 찾아보기 힘들다. 북한의 기업은 생산과 판매 외에 대외무역 활동을 하기 때문에 외환 관련 용어 등 기업금융 용어는 경제사전에 예상외로 꽤 많다. 하지만 개인은 은행 이용이 허용되지도, 이용하지도 않기 때문에 관련 용어가 없었던 것이다.

평양의 무역은행에서 은행 거래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평양의 무역은행에서 은행 거래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다양하게 발급되는 전자카드

놀라운 변화는 2010년대에 들어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2010년대 후반부터 여러가지 전자카드가 발급되고 있다는 소식이 북한 매체를 통하여 전해졌다. 상업은행법이 2006년에 처음 제정되어 김정은 집권 후인 2015년에 다시 개정되었는데, 이 때 상업은행의 업무에 ‘카드업무’가 추가되었으며 예금의 지불과 비밀 보장이 명문화되었다.

처음엔 평양을 중심으로 충전식 카드가 발급되는 정도로만 알려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남한의 북한연구자들은 시중의 유휴자금을 흡수하기 위해 전자카드가 발급되고 있으며 지급결제에도 일부 사용될 것으로 추측하였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 때 평양을 방문한 언론사 기자들이 충전식 카드를 이용해서 북한의 상점에서 물건을 산 경험이 전해지기도 했다.

북한에서 발행되는 다양한 전자카드. 사진=조선중앙TV 캡처
북한에서 발행되는 다양한 전자카드. 사진=조선중앙TV 캡처

도대체 어디다 쓸려고 전자카드를

도대체 전자카드는 어디에 쓸려고 발급하고 있는 것일까? 북한에서 카드라고 부른다고 해서 남한에서 흔히 생각하는 지급결제 용도의 신용카드나 체크카드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그 사용 사례를 찬찬히 들어다 보면 가맹점 결제 용도에 중심을 둔 그런 카드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최근 입국한 북한이탈주민과 인터뷰해 보면, “은행에서 전자카드를 발급하여 송금할 때 이용한다”는 얘기가 공통적으로 나온다. 내화, 즉 북한돈 원화로 발급되는 ‘전성카드’는 조선중앙은행의 지점을 방문하여 신분증을 제시하고 실명으로 발급받으며, 그 용도는 주로 원거리 송금이라는 것이 확인된다.

은행에 가서 본인 실명으로 돈을 맡기면 이는 ‘은행예금’이며, 이때 카드를 발급받으면 그 카드는 일단 ‘은행통장’ 역할을 한다. 이 카드를 통해 자신만의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다른 카드번호를 가진 원거리의 개인에게 돈을 송금한다. 이때 카드번호는 개인이 은행에 실명으로 만든 ‘계좌번호’이며 이 거래는 ‘은행계좌를 통한 송금거래’인 것이다.

북한은행에 개인계좌 증가세

군대나 유학 간 자녀에게 송금할 때 널리 쓰일 정도로 ‘전성카드’를 통한 은행계좌 송금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평양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이 카드 계좌를 만들고 은행의 송금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물론 지급결제를 위한 용도로도 전자카드는 이용되고 있다. ‘전성카드’는 휴대폰(손전화기) 요금을 낼 때 편리하게 사용된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점점 많은 상점에서 이용될 수 있을 것이다. 조선무역은행에서 달러로 발급되는 ‘나래카드’는 외화 상점이나 백화점, 그리고 택시요금을 결제할 때 이용된다. 이 외화카드를 소지하고 있다는 것은 본인의 부와 신분을 과시하는 것으로 인식되기도 한다고 전해진다.

은행계좌 이용은 금융정상화의 첫걸음

은행에서 계좌 만들고 송금하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일까 여길 수 있다. 남한에서는 1980년대 말에 은행의 온라인 송금이 본격화되었으니 그렇게 볼 수도 있다.

북한에서 많은 개인들이 은행에 계좌를 만들고 송금서비스를 이용한다는 것은 ‘북한 금융의 정상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작지만 매우 의미있는 첫걸음으로 평가할 수 있다. 북한에서는 2009년 11월 화폐개혁이 실패하면서 북한의 화폐와 은행은 대중으로부터 신뢰를 완전히 상실했기 때문이다.

화폐개혁 실패 이후 큰돈은 모두 달러와 위안화 현금으로 주고 받으며 북한 내화와 은행은 철저히 외면받는 고질적인 현상에서 북한 경제는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달러라이제이션(Dollarization)이라고 불리는 화폐경제의 왜곡현상은 북한의 금융이 우선적으로 넘어서야 할 가장 머리 아픈 과제다.

통일연구원 정은이 연구위원은 북한당국이 전성카드에 전자결제 기능을 도입하고 이를 기반으로 전자상거래를 위한 모바일 앱 결제시스템을 접목하려는 최근의 금융 정책에 주목했다. 그는 이러한 정책이 “단순한 외화 흡수의 차원을 넘어 내화의 적극적 사용을 통해 공금융을 정상화의 단계에 올려놓겠다는 의지”라고 평가한다. (2022년, ‘전성카드’가 북한 소액금융 및 송금시스템에 미친 영향 분석)

북한의 모바일 전자결제체계 울림1.0의 화면. 사진=NK경제
북한의 모바일 전자결제체계 울림1.0의 화면. 사진=NK경제

북한의 금융결제 정책, ‘금융정보화’

‘전성카드’와 은행계좌의 확산이라는 성과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북한의 지속적인 ‘금융정보화’ 정책이 있었다. 2018년 김정은 위원장은 “금융정보화 수준을 높임으로써 금융거래에서 신속성과 정확성, 투명성과 편리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제시하면서, ‘금융정보화’를 금융정책의 핵심 과제로 강조하고 있다.

또한 전자결제시스템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하여 2021년 10월에 ‘전자결제법’을 제정하였다. 이 법은 은행의 전자결제시스템 외에 은행 밖 일반 기업과 기관의 전자지불봉사(서비스)체계를 함께 아우르고 있는데, 금융과 정보통신기술(ICT)이 서로 협력하고 경쟁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남한에도 없는 북한의 전자결제 방식들

최근 북한에는 남한에서 보기 힘든 새로운 결제방식이 등장하기도 했다. 휴대폰(손전화기) 요금(전화돈)을 서로 주고 받거나(송금), 소액 지급결제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전화요금 결제방식은 금융결제가 자리잡지 못한 나라에서 유용하게 쓰이는 방식이다.

북한에서는 ‘전성카드’의 은행계좌에 QR코드를 활용하는 모바일결제 방식이 선보이기도 했다. ‘울림’이라고 불리는 스마트폰 결제방식은 북한판 ‘알리페이’ 또는 ‘위챗페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방식이 북한에서 얼마나 대중들에게 확산되고 있는지 확인되지 않는다.

북한에서 QR코드(2차원 식별부호)와 바코드(1차원 식별부호) 활용을 체계적으로 정비하려는 ‘정보식별부호법’이 최근에 제정된 것으로부터 미루어 보자면, 북한에서 QR코드 모바일 결제방식이 지속적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있다.

넘어야 산도 많지만 질러갈 길도 있다

북한의 금융은 넘어야 산이 많다. 북한의 은행과 화폐가 대중의 신뢰를 얻어야 할 뿐 아니라, 기본적으로는 실물경제의 양적, 질적 성장이 뒷받침되어야 금융이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 자체만 놓고 보면 남북한의 격차는 너무나 크다. 은행의 온라인 송금은 무려 30~40년의 차이가 있다. 하지만 정보통신기술이 결합된 오늘날 전자결제시스템인 모바일 결제를 놓고 보면 그 차이는 상대적으로 적을 수 있다. 북한에서도 이동통신전화는 2000년대에 도입되었으니 남한과 차이가 크지 않다.

글로벌 핀테크 기업이 다른 나라에 진출할 때 우선적으로 보는 것이 젊은 인구수와 스마트폰 이용자 수다. 현재 600만~700만대의 회선이 이용되고 있으며 젊은이들은 스마트폰(지능형 손전화기, 터치폰)을 주로 쓰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인터넷이 아닌 인트라넷을 써야하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요즈음 북한에서는 휴대폰으로 단체 게임도 하며 앱스토어(‘나의 길동무’, ‘자료봉사 2.0’ 등)를 통해 다양한 모바일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북한의 인기 앱스토어 ‘나의 길동무’. 사진=연합뉴스
북한의 인기 앱스토어 ‘나의 길동무’. 사진=연합뉴스

오늘날과 같은 4차 산업시대에는 세계적으로 “정보통신기술(Tech)이 금융(Fin)을 견인”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작동하고 있다. 금융 후진국 중국이 낙후된 금융 환경에도 불구하고 정보통신 기술과 핀테크 기업의 활성화로 2010년대 후반에 핀테크 최강국으로 부상했다. 중국의 사례는 북한의 금융결제시스템 발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북한은 통신에서 유선전화 대중화를 건너 뛰어 무선전화 휴대폰 시대로 갔으며, 은행 거래에서는 종이통장을 건너 뛰었다. 북한에서는 금융결제 시스템에서 남한과 같은 높은 수수료가 수반되는 고비용의 카드가맹점 결제시스템을 건너뛰어서, QR 모바일결제 시스템이나 또 다른 결제시스템으로 갈 가능성이 커 보인다. 남한에서는 은행의 온라인망과 카드이용시스템이 워낙 견고하다 보니 오히려 새로운 결제 핀테크의 혁신이 어려워진 상황이다.

북한 금융결제의 혁신 가능성

북한이 정보통신기술(Tech)과 금융(Fin)이 결합하는 새로운 트렌드를 슬기롭게 활용한다면 금융결제의 새로운 지름길을 개척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가 풀리거나 완화되고 국제협력과 합작투자가 가능해 진다면 북한에서 금융결제에 있어서 높은 수준의 혁신이 진행될 가능성도 커질 것이다.

남한과 북한이 강점과 약점, 기회와 위협요인을 가진 각자의 금융결제 시스템을 놓고 협력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남북한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획기적인 금융결제 혁신을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글쓴이

박기찬 북한학 박사

필자인 박기찬은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후 미국 워싱턴대 MBA를 마친 금융인으로, 글로벌하고 미래지향적 시각에서 한반도 이슈에 접근하는 북한연구자이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개발협력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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