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의 음악축제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

[장PD의 클래식 한담(閑談)] 세계 3대 콩쿠르중 하나..쇼팽 기려 조성진, 6년전 한국인 최초 우승 무대

천재 피아니스트 쇼팽은 수많은 피아노곡을 남기고 서른 아홉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천재 피아니스트 쇼팽은 수많은 피아노곡을 남기고 서른 아홉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장옥님 칼럼니스트] 작년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19의 확산은 우리의 일상 뿐 아니라 유수의 각종 국제대회도 제때에 치러지지 못하는 불상사를 야기했다. 코로나의 유탄을 가장 치명적으로 맞은 국제행사는 도쿄하계올림픽이 아닐까. 주최국은 이 행사를 포기하느냐, 연기하느냐로 무척 고심이 컸고, 결국 한 해 뒤로 연기되어 올 여름 치러졌지만, 그나마도 무관중 경기로 진행되는 올림픽역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국가차원의 수년간 준비와 쏟아 부은 막대한 예산에 비해 그 흥행 성적이 기대 이하였음은 물론이다.

2020년의 공연예술계에도 이런 비슷한 사례가 많았다. 특히 베토벤의 탄생 250주년을 맞아 그를 기념하는 굵직한 행사들이 많이 잡혀있었는데, 한 해 연기하거나 취소하느라 관계자들은 곤혹스러웠을 것이고, 지하의 베토벤도 “이런, 이런, 하필 나를 위한 기념 해에 이런 일이 ... ”하며 혀를 찼을 것 같다. 매년 여름 열리는 세계적인 뮤직페스티벌들도 여느냐마느냐, 아니면 비대면 온라인 콘서트로 대체하느냐 등등, 혼란과 손해가 막심했다.

무엇보다 5년 만에 한 번씩 열려 2020년을 기다리던 예비 음악인들과 음악팬들 또한 허탈해 하며 1년 뒤를 기약할 수밖에 없었던 국제적 명성의 콩쿠르도 있었다. 매 5년 마다 10월 초에 바르샤바에서 개최되는, 젊은 피아니스트들의 등용문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가 바로 코로나에 발목을 잡힌 것이다. 2015년 조성진이 최종 우승자가 되어 국내 음악팬들에게 큰 기쁨과 문화적 자부심을 안겨주었던 바로 그 콩쿠르다.

6년전 이맘때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제17회 국제 쇼팽 피아노 콩쿠르 결선에서 1위를 차지했다. 사진=EPA/연합뉴스
6년전 이맘때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제17회 국제 쇼팽 피아노 콩쿠르 결선에서 1위를 차지했다. 사진=EPA/연합뉴스

2020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 코로나19로 연기되어 올해 10월 개최

6년 전 가을, 우리는 TV에서 몇 번이고 되풀이되던 바르샤바 콘서트홀의 시상식 장면과 국내 공영방송에서 긴급 입수한 우승자 조성진의 피아노협연 영상을 보며 그 음악적인 아름다움에 더해 우리가 ‘이제 클래식 무대에서도 금메달을 땄구나’ 하는 감격이 더해진 감동을 맛보았다. 자연스레 음악팬들은 다음 경연이 펼쳐질 2020년을 기다리게 되었으나, 코로나19 확산의 위력에 주최 측은 대회를 1년 연기로 결정하였고, 드디어 그 1년 뒤인 올해 10월이 되었다.

지난 날 스포츠 경기 같은 국제대회에서의 우승은 전 국민적인 쾌거였다. ‘드높이 푸른 가을하늘’을 자랑거리로 내세우던 가난한 나라의 올림픽금메달은 전 세계에 극동의 작은 나라 ‘코리아’를 알릴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기에 더욱 그랬었다. 해서 공항에서 시청 앞까지 선수들의 카퍼레이드를 하는 등 온 국민이 진심으로 그들을 영웅 대접해주었던 적도 있었다.

탁월한 기량으로 국제대회에서 이뤄낸 ‘국위선양’의 신화는 스포츠 계에게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음악 분야의 국제콩쿠르, 1974년의 차이콥스키국제콩쿠르의 피아노 부문 2위로 입상한 정명훈의 소식도 당시로서는 메달 급이었다. 동서냉전의 엄중한 시절이었던 만큼 한국 국적으로는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이 경연에 참가할 수도 없었다. 정명훈은 미국 국적으로 참가하였고, 모스크바에서의 수상 발표도 당연히 미국인이 수상한 것으로 나왔다. 그럼에도 국내에서는 ‘자랑스러운 한국의 아들’이 이룬 빛나는 업적으로 열광했었다.

굳이 음악가의 국적을 따지다 보니 쇼팽의 이런 얘기가 떠오른다. “당신의 이름이 쇼핀스키(Chopin의 폴란드식 이름)가 아니라는 점, 그리고 당신이 폴란드 사람이라는 어떤 표시도 없다는 점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아쉽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당신을 동포로 둔 영광을 프랑스 사람과 다투지 않아도 될 텐데요.” 젊은 시절 한 때 쇼팽의 연인이었던 마리아 보진스카가 편지에 쓴 구절이다.

19세기 초 폴란드는 러시아의 강압적 통치 아래 놓이게 되었고, 위기에 처한 조국을 위해 저항운동을 하던 수많은 폴란드인들이 있었다. 바르샤바음악원을 졸업한 이듬해 스무 살이 된 쇼팽은 음악가로서의 더 큰 꿈을 펼치고자 고향을 떠나 파리에 정착하게 된다.

유럽 각 도시에서 폴란드의 독립 운동을 하던 동포들은 유명음악가인 쇼팽도 ‘폴란드는 나의 조국이며, 우리는 고유의 문화를 가진 역사와 전통이 있는 자랑스러운 민족입니다. 러시아가 강압적으로 짓밟을 땅이 아닙니다’라며 조국을 위해 나서주길 바랐지만, 그는 그런 식의 구국 활동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대신 음악으로, 피아노 위에 폴란드의 민족성이 깃든 폴로네즈를 풀어놓으며 울분을 삭혔고, 동포들을 위로했다.

쇼팽은 아버지가 일찍이 폴란드로 이민한 프랑스 계 폴란드인으로 태어났다(1810년). 고향에서의 행복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오래 간직하며 늘 그때를 그리워했던 그는 특히 시골 여행에서 듣던 폴로네즈와 마주르카 같은 민속음악에 관심을 기울였다.

‘폴로네즈polonaise’는 폴란드 귀족 남성의 당당함과 품위를 드러내는 격식 있는 춤이자 춤을 뒷받침하던 민속음악이고, 이에 비해 ‘마주르카mazurka’는 부드럽고 목가적인 분위기와 때에 따라서는 활달한 면도 있는 여성스러운 춤곡인데, 쇼팽은 이 민속무곡의 음악적 특징들을 끄집어내어 자신의 피아노 어법과 융합시켰고, 예술적인 악곡 폴로네즈와 마주르카로 양식화했다.

파리에 정착한 이후 그는 죽을 때까지 폴란드 땅을 다시 밟아보지 못하였는데, 서른아홉이라는 한창 나이에 생을 마친 탓이 컸을 것이다. 건강의 악화로 죽음을 예견한 쇼팽은 “자기 심장을 떼어서 바르샤바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연인 보진스카가 아쉬워 한 대목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폴란드의 아들임을 잊지 않고 있음을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폴란드인들 역시 그가 폴란드인이라는 아무런 표시도 없었지만 이 걸출한 음악가의 고향이 폴란드 땅이라는 데에 큰 위안과 자부심을 느꼈는지, 역사적 인물 중의 한 사람으로 그를 기리고 있다. 그 일환으로 바르샤바에서는 1927년부터 쇼팽의 이름을 딴 세계적 권위의 피아노콩쿠르를 개최하여 젊은 피아니스트들의 화려한 데뷔 무대로 키운 것이다.

쇼팽콩쿠르는 차이콥스키국제음악콩쿠르(러시아), 퀸엘리자베스국제음악콩쿠르(벨기에)와 함께 세계 3대 음악콩쿠르로 꼽히고 있는데, 피아노·바이올린·첼로·성악·작곡 부문에서 실력을 겨루는 다른 두 대회와 달리 오직 피아노 부문에서, 쇼팽의 작품으로만 경연을 치른다.

참가자들은 예선과 본선1, 2, 3차를 거치는 동안 쇼팽의 에튀드·녹턴·왈츠·스케르초·발라드·판타지·마주르카·폴로네즈·소나타 등 약 40여 곡을 연주해야 하고, 최종 우승자를 뽑는 결선연주회는 콘서트로 진행되는데 그의 피아노협주곡 1, 2번 중 선택해 협연한다.

지금 바르샤바에서는 축제 같은 경연대회가 개막되어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2주 후면 콩쿠르의 최종 우승자가 탄생된다. 바르샤바음악원 주변엔 가을 하늘보다 더 높고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을 것이다. 이번 대회에는 한국 국적을 가지고 일곱 명이 참가했다.

젊은 피아니스트들이 이제 국적 따위는 잊어버리고 당당하게, 마음껏 기량을 펼쳐 보이며, 스스로도 즐기는 무대가 되었으면 좋겠다.

부디 그들에게 행운도 함께 하길 빌어본다.

PS : 10월 18일 다음 칼럼에서는 올해 쇼팽 콩쿠르의 최종 우승자를 비롯한 콩쿠르의 이모저모와 함께 쇼팽의 피아노협주곡에 대한 작품소개 등을 이어갑니다.

6년전 쇼팽콩쿠르에서 최종결선무대에서 조성진이 피아노 연주하는 모습.
글쓴이

장옥님 칼럼니스트

장옥님 칼럼니스트는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해 대학에서 음악(작곡)을, 대학원에서는 음악학을 공부했다. 1981년 KBS에 프로듀서로 입사한 이후, 30여 년 동안 다수의 클래식음악 프로그램과 콘서트 등을 기획 연출했고, 대중음악 채널에서는 <음악앨범> 등의 팝과 가요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최근엔 저서 <위기의 음악들>을 출간했으며, 음악 관련한 집필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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