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정책, 왜 일본은 실패했을까
[김정민의 친절한 IT 이야기] 한국, 거래소 신고 완료이후 시장 미래 고민해야 적극 개입했던 일본, 시장을 죽였다 평가 받아
[김정민 변호사] 올해 3월 개정 특정금융정보법(이하 ‘특금법’)이 시행됨에 따라 기존 가상자산 거래소는 지난 9월 24일까지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신고를 해야만 영업을 계속할 수가 있었다. 그 결과 42개 업체가 신고서를 접수했고, 이중 원화로 입출금이 가능한 거래소(원화마켓)가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등 4곳, 코인 간 거래만 가능한 거래소(코인마켓)가 25곳이고, 13곳은 거래소 외에 지갑 및 수탁업을 포함한 기타사업자가 됐다.
신고 요건 중 ▲실명확인 가능한 입출금계정(실명계정) 개설 ▲정보보호 관리체계 인증(ISMS)이 중요 심사항목인데, 실명계정을 이미 확보하고 있던 4대 거래소만이 원화마켓으로 신고했다. 실명계정이 없었던 거래소들은 올해 초부터 6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실명계정 확보를 위해 시중은행과 접촉을 하였지만, 단 한 곳도 성공하지 못했고 울며 겨자 먹기로 코인마켓으로 신고하기에 이르렀다.
코인마켓에서 거래하기 위해서는 원화마켓에서 원화를 코인으로 바꾸고, 그 코인을 코인마켓으로 이전한 후에 거래를 할 수 있다. 코인 거래를 통한 수익을 원화로 바꾸는데도 이 과정을 반대로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수료 부담과 불편함이 매우 크기 때문에 벌써부터 원화마켓 4곳만 살아남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ISMS인증도 받지 못한 거래소(37곳)는 즉시 영업을 종료해야 하는데, 미신고 거래소의 예치금 먹튀(대표자 횡령, 기획파산)로 인한 투자자 피해를 예방하고자 금융위원회는 영업종료 후 30일간 원화 예치금을 반환하라고 권고했고, 모니터링을 강화하며 미신고 거래소에 대한 일제 점검을 지시했다.
신고 마감 이후 지금까지 현장에서 큰 마찰음은 나지 않고 있고, 관계자들은 향후 코인 시장변화 방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원화마켓 4대 거래소의 일평균 거래대금이 지난 4월(22조원) 대비 9월(8조원)에는 3분의1로 줄어든데 대해, 코인 시장의 과열이 어느 정도 진정됐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우리 코인 사장의 미래를 전망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조심스러운 일이다. 다만 우리보다 앞서간 국가들의 정책과 현재 상황을 비교 분석해보고 우리 정부의 정책 기조가 어떤 국가와 유사한 지를 파악해보면 그 방향성 정도는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일본, 처음엔 ‘시장자율규제’로
미국은 가상화폐 발행은 연방정부 차원에서 규율하면서, 유통(거래소)은 주법에서 규율하도록 했는데, 2015년에 뉴욕주가 세계 최초로 가상통화업자면허(BitLicense)를 도입했다. 면허를 받기 위해서는 이용자 보호, 공시의무, 자금세탁방지의무를 다하도록 하고, 자본금 기준과 내부통제 기준 등을 갖추도록 했다.
미국은 코인을 증권성이 있는지 여부에 따라 분류하면서, 비증권성 코인(비트코인, 이더리움)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규제하고, 증권성 코인(다른 코인들)은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규제한다. 이에 따라 CFTC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공식 투자자산으로 인정하고, 헤지(위험회피)나 차익거래 기회 제공을 위해 선물상품도 허용하고 있다. 이제까지 코인을 시장의 자율 규제에 맡겨놓았던 미국이지만, 최근 들어 규제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 코인 시장은 미국과 비슷한 시기에 자율규제로 방향을 잡는 듯 했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일본은 2017년부터 거래소 등록제를 시행해 현재는 30여 곳이 운영 중인데, 금융청(FSA)의 규제와 일본가상화폐거래소협회(JVCEA)의 자율규제를 받고 있다. 우리의 정책기조가 일본과 유사한 측면이 많기 때문에 일본의 제도화 과정을 면밀하게 살펴보자.
잇딴 해킹사고, ‘적극 개입’으로 선회한 일본
일본은 2014년 당시 마운틴 곡스(Mt. Gox) 거래소에서만 전세계 비트코인 70%가 거래되는 등 코인거래의 세계 중심이었다. 그러나 이 거래소가 비트코인 85만개(약 5300억원)를 도난당해 결국 투자금을 반환하지 못하고 파산신청을 한 사건을 계기로, 일본 정부는 가상화폐시장 폐쇄냐, 제도화냐를 두고 기로에 섰었다. 이때 일본은 정부의 개입을 줄이고 투명성을 강화해서 투자자를 보호하고 코인시장도 진흥하자는 선택을 했다.
일본은 2016년 ‘자금결제법’을 개정해 가상화폐를 ‘가상통화’로 지칭하며 화폐로서의 기능, 재산적 가치를 인정하면서 거래소에 △금융당국에 등록의무 △이용자에 대한 설명의무 △이용자 재산의 분리보관의무를 부과하고 자본금 1000만엔(약 1억원) 기준과 화이트리스트 제도(금융청에서 인정하는 가상화폐만 거래 가능)를 도입해 투자자 보호를 위해 노력했다.
그럼에도 2018년에 일본 최대 거래소(코인체크)에서 580억엔(약 6000억원) 상당의 해킹사고가 발생하게 된다. 이에 일본 정부는 보안상태 일제점검, 업무개선명령 등 조치를 했으나 업무개선명령에 따라 점검을 완료한 자이프(Zaif) 거래소가 67억엔(약 700억원) 상당의 해킹을 당하자 일본 정부는 가상화폐시장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을 선언했다.
일본 정부는 자금결제법의 ‘가상통화’를 ‘암호자산’으로 명칭을 변경하며 화폐기능을 부정하기 시작했고, 금융상품거래법에서 가상화폐를 금융상품으로 규정해 금융상품규제를 적용했다. 일본 투자자가 가장 선호했던 마진거래 시장에서 레버리지 한도를 4배에서 2배로 줄였다.
그 결과 일본 가상화폐 시장은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았고, 가상화폐에 투자하는 일본인을 보기 힘들어졌다. 여기에는 최고 55%의 과세도 한몫을 했다. 일본 사례의 교훈은 ‘투자자보호’와 ‘시장의 진흥’이 동시에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섣부른 규제, 시장을 죽인 ‘일본 실패’ 피해야
현재 우리 국회에는 특금법 개정안,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 자본시장법 개정안, 가상자산 업권법 제정안 등 10여 개가 넘는 가상자산 관련 법률 제·개정안이 발의되어 있다. 정부는 투자자 보호를 위한다며 규제 강화에 힘을 쓰고 있고, 업계는 이제는 시장을 진흥시켜야 할 때라며 아우성이다.
규제에 앞장 선 일본의 정책은 시장 자체가 죽어버려 실패했다는 평가다. 다른 주요국들은 규제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얘기하면서도 명확한 규제나 가이드라인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먼저 규제를 적극 도입해서 시장 자체를 망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일본도 처음에는 시장의 자율규제나 자정능력을 바랐다. 우리는 규제 도입의 시간을 최대한 늦출 필요가 있고, 꼭 필요한 규제도 시장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의 규제를 점진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이번 신고 과정에서 기존 4대 거래소만 남은 것을 두고 독과점의 폐해를 우려하는 시각도 없지 않다.
규제를 통해 거래소를 정리하기 이전에 가상자산의 분류, 발행 심사, 거래소 상장 기준 등 국회와 정부, 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정리해야할 문제가 산적해있다.
이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 나가고, 이에 대한 규제나 가이드라인이 정해지면, 가상자산산업을 어떻게 분류하고 규율할 지, 블록체인 산업 전체를 어떻게 진흥할 지에 대한 고민으로 점차 넘어가야 한다. 해킹사고, 소비자 피해 등 산업의 단면만 보고 섣부르게 규제를 도입하면 일본과 같이 가상자산 산업 전체를 망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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