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TV토론 시청설명서...모여서 ‘치맥’ 먹으며

[박정인의 언론비평] 20대 대선 텔레비전 활용 매뉴얼

이재명 경기지사의 승리로 막을 내린 더불어민주당 TV토론회.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경기지사의 승리로 막을 내린 더불어민주당 TV토론회. 사진=연합뉴스

[박정인(필명) 칼럼니스트] 바야흐로 대선의 계절이 돌아왔다. 5년에 한번씩 서는 국내 최대의 정치 시장이다. 시장에는 대권 대박을 노리는 거상들이 있고, 거상들에게 용역을 팔아 새 정권에서 한자리를 꿈꾸는 도매상들이 있고, 또 그들이 구성한 캠프에 정보와 컨텐츠 같은 것들을 팔아 수익을 올리는 자재상들이 있다. 이들이 유권자라고 불리는 손님들을 맞는 장이 바로 언론매체다.

인쇄 매체가 전통시장이라면 방송 매체는 백화점에 비유될 터이고, 인터넷 매체는 온라인 오픈 마켓으로 불릴만 하다. 대선 시장에서 인쇄매체의 영향력이 여전한 걸 인정하고, 인터넷 매체의 진격이 괄목상대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대선의 최대 시장은 역시 텔레비전이다. 후보 TV 토론과 후보 초청 예능 프로그램, 그리고 투표 당일의 개표방송까지, 대선의 명실상부한 메인그라운드다.

그래서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맞아 유권자들이 메인그라운드인 텔레비전을 어떻게 활용할지 일종의 사용설명서를 제공해보려고 한다.

<기본설정> TV토론은 여럿이서 치맥 먹으며 봐라

TV 토론은 A매치 축구 한일전 중계처럼 친구나 가족이 모여서 치맥을 시켜 먹으며 보는 게 좋다.

여럿이 모여서 각자 지지하는 후보를 꼽은 뒤 자기 후보가 잘했을 때는 환호하고 다른 후보가 못했을 때는 손가락질 하면서 웃고 떠드는 재미가 쏠쏠하다. 부동산 정책 얘기가 나오면 서로 자기 집에 부과된 세금을 비교해 보라. 후보들의 고령화 대책을 놓고 부모 자식 세대가 논쟁할 수도 있고, 저출산 문제가 나오면 엄마는 결혼 안하는 딸을 째려볼 수도 있다.

좀 더 심오한 이유도 있다. 이런 소란스러운 대화의 방식이 ‘민주주의의 본질’이란 점이다. 고대 아테네의 광장이 그랬고, 영국 의회가 그렇다. 우리 국회 본회의장과 상임위 회의장에서 늘상 벌어지는 소란도 따지고 보면 민주주의의 특권이다. 북한 최고인민회의나 중국 전국인민대표자대회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걸 상상할 수 있을까?

민주적 의사 결정의 정수인 대통령 선거를 치르기 위해 유권자들은 후보들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얻어야 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혼자 보면 지루하고 토론이 안될테니 여럿이 같이 보면서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만들어 보자. 후보들이 경제 분야 토론을 할 때 방금 치맥을 주문한 가게의 주인과, 배달한 쿠팡맨의 경제적인 처지에 대해서도 실감나게 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20대 대선 경선후보 선출을 위한 국민의 힘 TV토론회 시작전 모습. 사진=연합뉴스
20대 대선 경선후보 선출을 위한 국민의 힘 TV토론회 시작전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품사용전 안내> 잘한 후보의 득보다 못한 후보의 실이 크다

대선후보 TV 토론의 영향력에 대해 정계와 학계에 여러 분석이 있지만 역사적 사실은 ‘당선에 미치는 영향이 그리 크지 않다’는 쪽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우리나라 대선 후보 TV 토론은 1997년 김대중 후보와 이회창 후보가 맞붙었던 15대 대선때 본격적으로 도입됐다. 유권자들은 직접 얼굴을 마주 보기 어려운 후보들이 서로 입씨름하는 모습을 생중계로 감상할 수 있으니 즐거웠다. 하지만 후보들 입장에서는 계륵이었다. 고생해서 준비하고 바짝 긴장하면서 생방송에 참여하지만 TV 토론 덕분에 추격하던 2위가 1위를 따라잡았다거나, 1위가 2위와의 격차를 엄청 벌렸다는 경우를 찾기는 쉽지 않다.

반면 실없는 소리를 했다가 손해를 본 후보는 있다. 지난 19대 대선 TV 토론 당시 안철수 후보의 “내가 MB 아바타입니까?”가 그렇다. 안 후보는 2017년 4월23일 열린 토론에서 문재인 후보를 향해 이 말을 던졌다가 아주 낭패를 봤다. 공격 상대인 문 후보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많은 유권자들은 벌개진 얼굴로 조르듯 같은 말을 반복하는 안 후보의 모습에 실망했다. 현장에서 지켜보던 필자도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하마터면 안 후보에게 ‘그만하세요’라고 소리칠 뻔 했다.

자꾸 이명박 프레임을 씌우는 민주당 지지자들을 겨냥한 발언이었지만 방법과 퍼포먼스 모두 실패였고, 이후 지지율 하락이 이어져 최종 득표율 3위로 선거를 마쳐야 했다.

<제품사용법 ➀> 마타도어도 후보 선택의 근거가 된다

후보들 사이에 험한 말이 오가는 문제나, 정책 토론보다는 인신공격에 더 몰두하는 문제 같은 것들을 토론 문화가 낙후했다는 사례로 든다면 미국도 우리 못지 않다. 특히 지난 대선 트럼프와 바이든 사이에 벌어진 TV 토론은 막장의 극치였다. 상대 후보를 향해 ‘거짓말쟁이, 광대, 꼴찌’ 같은 표현이 잇따랐고 진행자가 두 후보를 진정시키기 위해 사정을 해야할 정도였다. 미국의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이 토론을 “대통령제의 새로운 바닥을 찍었고, 최악의 국가적 수치를 남겼다”고 평가했다.

굳이 우리 TV 토론 만의 문제를 지적하자면 ‘근거없는 의혹제기’가 핵심 아닌가 싶다. 의혹의 키워드를 던지면 보는 이들의 뇌리에 콕 박히고, 정작 근거는 댈 시간도 없이 다음 순서로 넘어가버리는 매체적 특성을 악용한 공세가 벌어진다. 공격하는 쪽이 근거를 대지 않으니 방어하려는 쪽 입장에서는 뭘 해명해야 할지 난감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기자들이 자주 쓰는 표현대로 ‘정책은 실종되고 마타도어만 난무’하니 TV 토론을 보지 말아야 할까? 그렇지 않다. 인신공격도 판단의 대상이다. 선거 때마다 자기 정책이나 신상에 대한 얘기는 별로 없이 남의 후보 건강이 안좋고, 가정사가 꼬였고, 점집에 자주 드나든다고 비난하거나, 오래 전 했던 한마디를 용케 찾아내서 지금 시점의 잣대로 말꼬리 잡는 후보가 있다. TV 토론에서 그런 후보가 보이면 채점표에 X를 치면 된다. 뽑으면 안될 뿐 아니라 대부분 낙선한다.

문제는 토론에 나오는 모든 후보가 그런 짓을 한다는 데 있다. 그래서 선거는 최선을 고르는 게 아니라 ‘차악’을 고르는거라고들 하는 건지도 모른다.

<제품사용법 ⓶> ‘TV 토론 무용론’에 귀 기울이지 말라

선거 때만 되면 후보 TV 토론을 폄훼하는 주장들이 ‘우리나라 토론 문화에 대한 걱정’이라는 포장지에 잘 싸여서 등장한다. TV 토론 시청률이 5%에도 못미쳐서 의미가 없다는 인쇄매체의 보도가 전형적이었다. 그런데 이건 요즘 많이 나아졌다. 시청률이 올라서가 아니라 그런 기사를 쓰던 몇몇 매체들이 종편 채널을 받아서 자기들도 TV 토론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종편을 못받아서인지 아직도 시청률 기사를 쓰는 매체들에게는 이렇게 말해주면 된다. “아니, 시청률이 높든 낮든 원하는 유권자가 보면 되는거지, 왜 여러분들이 방송사 시청률을 걱정해주나요?” 그래도 고집을 부리면 한마디를 더 추가하자.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 때문에 후보들 얼굴 보기 힘든데 TV 토론이 별로면 그 신문에서 매일 후보들 동정과 정책 비전을 동영상과 함께 실어서 공짜로 배포해주실래요?”

두번째 무용론은 정책은 보이지 않고 인신공격만 난무한다는 것이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이건 어느 정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역시 유권자들이 걱정할 문제가 아니다. 인신공격이 매서우면 TV 토론에서든 다른 방법으로든 해명하고 방어하면 될 일이다. 오히려 인신공격성 발언이 토론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면 민감한 정책 얘기 안해도 된다고 좋아하는 캠프도 여럿 봤다. 그런 캠프가 정책 얘기 안하고 인신공격에만 몰두하다 선거에서 떨어지면 다음 선거 때는 정책 얘기가 좀 늘어나지 않겠는가.

<제품사용법 ⓷> 미사여구 다음에 나오는 말에 귀 기울여라

대통령 선거는 대통령을 뽑는 이벤트이지 광고회사의 카피라이터 채용면접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보들은 촌철살인을 꿈꾸며 전문가를 영입해서 말 잘하는 법을 연습하고, 매력적인 키워드나 문장을 찾는데 몰두한다. 공들인 키워드를 토론 후에 언론이 받아서 제목으로 써주면 대성공이다.

하지만 치맥을 시켜 먹으면서 가족 친지들과 TV 토론을 지켜보는 유권자들은 부디 훈련된 미사여구에 현혹되지 말고 미사여구 다음에 나오는 말들을 주목하기 바란다. 이어지는 말들이 합리적이고 미래지향적이면 지지할만한 후보인 것이고, 이어지는 말이 없거나 황당할 경우에는 지지철회를 진지하게 검토해봐야 할 것이다. 계산된 미사여구에만 혹하면 제일기획이나 이노션 같은 톱 클라스 광고 에이전시에서 활약해야 하는 카피 전문가를 청와대로 보내는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품사용법 ⓸> 표현의 일관성에 주목하라

후보들은 모든 이슈에 대해 철저하게 훈련받는다. 그래도 훈련이 평소 습관을 완전히 바꿔주지는 못한다. 다양성과 평등, 배려 같은 가치에 대한 믿음을 훈련으로 체득하기는 더욱 어렵다. 입에 붙어버린 습관 때문에 가정주부를 ‘아줌마’라고 하거나 상대후보의 공약을 ‘절름발이’ 정책으로 부르는 자폭이 간혹 발생한다. 가치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이 수십개의 조명이 내리 꽂는 스튜디오에서 수십만명이 생방송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경쟁상대와 말씨름을 하다 보면 몇차례 훈련만 갖고 표현의 일관성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일례로 장애인에 대한 후보의 가치관을 점검해 보자. “장애는 문제가 아니라 ‘다름’일 뿐입니다.” 이런 표현을 쓰면서 장애인 정책을 내놓는 후보가 있다고 치자. 마음에 든다. 그런데 말이 끝나갈 즈음 한마디가 레이다에 딱 걸린다. “아무래도 장애인들이 정상인들보다는 계단을 오르기가 힘드니까요.”

졸지에 장애인을 ‘비정상인’으로 만들어 버리는 표현 하나가 후보의 장애인 문제에 대한 가치관은 선거용으로 훈련된 것이지 마음 속에 내재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특히 여성, 성소수자, 저소득층, 외국인 근로자 같은 이슈에 대해 말할 때 표현의 일관성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부가기능> 예능을 ‘다큐’로 받지 마라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6년에 MBC <이경규가 간다>에 출연한 것을 시작으로 대선 주자들의 예능 출연은 통과 의례가 됐다. 처음에는 방송사가 후보들을 모시느라 고생이었지만 요즘은 여론조사 1, 2위쯤이 아니라면 오히려 후보측이 방송사에 간청하는 시대가 됐다.

민주당 손학규 전 대표는 18대 대선이 치러진 2012년 정초에 SBS <힐링캠프>가 박근혜, 문재인 후보만 초청하고 자기를 뺀 걸 5년 뒤 박근혜 정부가 마무리될 때까지도 섭섭해 했다. MBC의 <무릎팍도사>는 IT 회사 대표 안철수를 정치권의 한복판으로 불러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번 대선에는 SBS <집사부일체>가 화제다. 이재명 후보 편은 계곡정비사업과 관련해 남양주시가 프로그램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 눈길을 끌었다. 후보들 말말말 중에는 윤석열 후보의 “그냥 형이라고 해”가 가장 히트를 친 모양이다. 재미있다. 잘 만든다. 후보들도 열심이고.

하지만 출연자가 연예인이든 대선 후보든, 예능은 예능이다. 예능의 목적은 사실 전달이 아니라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는 것이다. 대선 후보편도 여느 예능과 마찬가지로 사실의 조각들을 모아 대본을 ‘창작’하고, 대본에 따라 제작한다. 후보들은 가장 보기 좋은 모습을 ‘연기’하려고 애쓴다. 이런 과정에 진솔함이나 꾸밈없는 일상 같은 것은 없다. 리얼리티 예능, 관찰 예능, 뭐라고 불러도 다큐멘터리가 되지는 않는다. 예능답게 즐기면 되지 감동하거나 짝사랑에 빠질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기타 주의사항> 과용은 금물이지만 불용은 손해다

‘승부예측, 공격력, 응수, 인파이터, 공세, 맞불작전, 아웃복싱, 직진전술…’ 최근 국민의힘 후보 토론회에 대해 쓴 기사의 단 한 편에 포함된 단어들이다. 이런 표현들이 많은 기사는 가급적 패스하라고 권하곤 하지만 우리 대선의 속성상 어쩔 수 없는 면도 인정한다. 그만큼 사생결단의 싸움이다.

후보들이 사생결단으로 싸운다고 유권자들까지 사생결단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정치 시장에서도 소비자가 왕이다. 소비자로서의 유권자는 공급자들이 싸우든 뭘하든 잘 지켜보다가 선택만 하면 될 일이다. 올바른 선택을 위해서 약간의 시간과 노력은 감수해야 하겠다. 이 가게 저 가게를 돌아다니며 싱싱한 생선을 골라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는 수고 없이 진수성찬을 기대하는 건 곤란하다.

밤늦게 지루하게 진행되는 대선 후보 TV 토론을 친구들 끌어 모으고 치맥을 시켜서라도 꼭 봐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글쓴이

박정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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