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콩쿠르, 건반 위를 질주한 젊은 연주자들

[장PD의 클래식 한담(閑談)] 쇼팽 콩쿠르서 캐나다출신 브루스 루이 우승 우승 노리던 일본도, 한국도 무위 우승발표 2시간 지연...심사위원간 엇갈린 듯

21일 끝난 제18회 쇼팽 국제콩쿠르에서 1위 우승을 차지한 브루스 리우.
21일 끝난 제18회 쇼팽 국제콩쿠르에서 1위 우승을 차지한 브루스 리우.

[장옥님 칼럼니스트] 가을이 깊어가는 거리에서 하릴없이 뒹구는 낙엽을 보고 있자니 문득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 ”라는 김광균 시인의 ‘추일서정(秋日抒情)’ 첫 구절이 떠올랐다. 그 시를 배우던 고교시절엔 ‘망명정부’의 의미가 크게 와 닿지 않았고, 폴란드라는 나라도 그저 유럽 어디엔가 붙은 나라쯤으로 알고 있을 정도였다.

김광균의 추일서정, 그리고 폴란드

동서냉전이 서서히 풀려가기 시작한 80년대 후반부터 우리 기업들이 동구권 국가에 진출하기 시작해 서서히 관심권에 들어왔고, 문학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작가 중 폴란드 출신이 꽤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라기도 했다. 그리고 한 참 후, 어느 해인가 국립박물관에서 <폴란드 전(展)>을 관람하게 되었다. 전시회는 ‘쇼팽과 코페르니쿠스의 고향’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었다.

‘폴란드Poland’라는 국가명은 ‘광활한 땅’이라는 의미로, 중세와 근세까지 현재의 리투아니아를 포함하는 넓은 영토의 제국을 이루었다니 ‘폴란드’라는 명칭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러나 광활하고 기름진 평야는 바로 이웃한 나라들이 군침을 삼킬만한 것이다. 동서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러시아, 독일이 상대적으로 군사대국이 되는 근대에 들어서면서 그들은 이웃의 침략에 시달리게 된다. 최악의 외세침탈은 2차 세계대전. 폴란드는 그 전쟁의 최초이자 최대 피해국 중 한 곳이었으며, 대전 초기에 이미 독일과 러시아에 의해 분할통치 당하는 수모를 겪게 된다.

런던과 파리에 망명정부를 세웠으나 이미 떨어진 낙엽 같은 신세였다. 그 무렵 발표된 김광균의 <추일서정>(1940년)은 시인이 식민지 백성으로서 느낀 동병상련을 담은 것이다. <폴란드 전>에서는 찬란했던 과거 유산과 함께 자국의 역사적 인물들을 소개하는 전시실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음악가 쇼팽을 폴란드의 대표적인 예술가로 꽤 비중 있게 다루었던 점이 다소 놀라웠다. 스무 살 이후 주로 파리에서 활동했기에 쇼팽이 폴란드인이었던가 하던 차에 확실하게 그의 출신국을 각인시켜준 것이다.

지난 세기에 시작한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는 그런 폴란드인들의 지극한 쇼팽 사랑이 응축된 행사라고 할 수 있다. 수상자 시상식에서 현직 대통령이 직접 시상하면서 국가적 이벤트로 키워온 것도, 시상 내용 중 특별상으로 ‘폴로네즈 상’을 두어 민족혼이 깃든 악곡을 가장 잘 친 연주자에게 상을 주고 있는 점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제18회 쇼팽 국제콩쿠르대회 개최를 알리는 포스터.
제18회 쇼팽 국제콩쿠르대회 개최를 알리는 포스터.

이 콩쿠르는 예선을 거친 참가자들이 본선 1차부터 본격적인 경연을 펼치게 되는데, 심사위원과 입장권을 사서 들어온 청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대에 올라 준비해온 곡목들을 연주한다. 쇼팽의 피아노독주곡으로 1, 2, 3차를 치르는 동안 주요 곡목들을 거의 섭렵해야 하는 셈이다. 이번 콩쿠르에는 모두 87명이 본선에 올랐다. 그리고 1차부터 3차를 거치는 동안 최종적으로 남은 12명이 결선무대에 진출해 엊그제부터 사흘 동안 피아노협주곡으로 승부를 가린 것이다.

제18회 쇼팽콩쿠르의 우승자 브루스 리우(Bruce Xiaoyu Liu)

몇 년 전부터 일본은 자국 출신의 우승자를 배출하기 위해 음으로 양으로 정성을 기울여왔다. 야마하피아노 사를 비롯하여 렉서스 등 기업들이 후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특히 2015년 조성진이 우승한 것을 보고는 “이번에는 반드시 우리 차례야”하는 심정으로 많은 연주자들이 본선에 진출하였고, 그들 중엔 우승자로 점쳐질 만한 발군의 연주자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 이탈리아의 알렉산더 가드예프와 공동 2위에 머물고 만 쿄헤이 소리타(현재 쇼팽 음악대학 재학 중). 3위는 마르틴 가르시아(스페인)가 차지했다. 한국인으로는 이혁이 결선에 올랐지만, 수상권인 6위안에 들지 못했다.

1위 우승은 브루스 리우(Bruce Xiaoyu Liu, 1997년 파리 태생)가 거머쥐었다. 그는 이번 콩쿠르의 심사위원장인 당 타이손(베트남, 1980년도 우승으로 첫 아시아계 우승자)의 제자로 알려진 아시아계 캐나다인이다. “피아노라는 악기에서 어떻게 소리를 만들어야 하는지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연주가”, “쇼팽음악의 다양한 감정 표현에 능한 연주” 등의 평을 들었다.

이제 1위 우승자 뿐 아니라 3위 수상자까지는 ‘쇼팽콩쿠르의 수상경력’으로 프로필을 화려하게 장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에게는 향후 유명 해외 매니지먼트사가 눈독을 들여 음반녹음과 콘서트 예약이 밀려들 것이다. 기왕에도 피아니스트로 활동해온 그들이지만, 이번 수상 기회를 통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역대 수상자들은 18세부터 26세(평균 나이 22세)에 이르는 젊은 음악가들인데, 그들의 화려한 면면을 보자면 60년대 이후 우승자만 해도 마우리치오 폴리니, 마르타 아르헤리치, 개릭 올슨, 크리스티안 짐머만, 당 타이손, 스타니슬라프 부닌이 눈에 띈다. 그러니 수상자들의 앞에는 탄탄대로가 펼쳐져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쇼팽 콩쿠르에 얽힌 일화들

콩쿠르에는 왕왕 심사의 공정성이 문제가 된다. 이번에도 심사발표가 예정 시간보다 2시간이나 늦어진 걸 보니 심사위원들 간에 논쟁이 컸을 것이라는 짐작이다. 역대 대회에서는 심사와 관련한 뒷얘기들이 많이 전해지고 있는데, 제1회 때에는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가 참가했었다. 청년시절 피아니스트로도 전도유망했던 그는 1927년 첫 번째 쇼팽콩쿠르에 러시아 대표로 참가하면서 내심 1위를 자신했었다. 그러나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고, 그 이유를 편파적인 폴란드 심사위원들 탓이라 여겼다. 그 일을 계기로 쇼스타코비치는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고, 창작 쪽으로 길을 정해 결국에는 20세기 러시아 최고의 작곡가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쇼팽은 생전에 피아노 협주곡을 두 곡 남겼다. f단조와 e단조의 두 곡은 모두 바르샤바음악원을 졸업한 직후에 연달아 작곡했으니 초기 작품들인데, 음악원을 졸업하고 좀 더 넓은 무대인 빈으로 진출하기 위해 작곡한 것이다. 원래는 f단조를 먼저 작곡하였으나, e단조 협주곡이 먼저 출판되는 바람에 이 곡이 1번이 되었다. 콩쿠르의 파이널 무대에선 이 두 개의 협주곡 중 한곡을 협연해야 한다. (조성진은 파이널 무대에서 제1번 e단조를 택했었다. 대부분의 우승자들은 이 1번을 연주했다.)

e단조 협주곡은 쇼팽이 연정을 느꼈던 또래의 음악원 여학생을 생각하며 고백하지 못한 수줍은 첫사랑의 설렘을 로맨틱하게 담아낸 것인데, “새로 작곡한 협주곡의 로망스 악장은 조용히 연주해야 하는 곡이다. 낭만, 고요함, 우수를 살려야 하는데, 맑게 갠 봄 밤 달빛을 받으며 명상하는 분위기의 곡이다. 그래서 관현악 반주는 일부러 소리를 약하게 내도록 한 것이다”라는 곡에 관한 짧은 글을 남겼다.

쇼팽은 바르샤바를 떠나는 고별연주회에서 이 곡을 초연하여 큰 갈채를 받았다. 이 연주회를 끝으로 조국을 떠나는 마차에 오르는 그에게 친구들은 조국을 잊지 말라는 당부의 의미로 은잔에 고향의 흙을 가득 담아주었다. 그러나 운명은 다시는 그를 폴란드 땅에 데려다 주지 않았다.

제18회 쇼팽콩쿠르 1위 우승자인 브루스 루이의 결선 연주 실황.
글쓴이

장옥님 칼럼니스트

장옥님 칼럼니스트는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해 대학에서 음악(작곡)을, 대학원에서는 음악학을 공부했다. 1981년 KBS에 프로듀서로 입사한 이후, 30여 년 동안 다수의 클래식음악 프로그램과 콘서트 등을 기획 연출했고, 대중음악 채널에서는 <음악앨범> 등의 팝과 가요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최근엔 저서 <위기의 음악들>을 출간했으며, 음악 관련한 집필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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