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어가 음악용어를 장악한 사연

[장 피디의 클래식 한담(閑談)]

이탈리아 베로나의 원형극장으로, 오페라 공연이 열리고 있다.
이탈리아 베로나의 원형극장으로, 오페라 공연이 열리고 있다.

[장옥님 칼럼니스트] 최근 옥스퍼드영어사전에 새롭게 등재된 한국어 단어

최근 세계적으로 가장 핫한 K-콘텐트는 드라마 ‘오징어게임’일 것 같다. 드라마 속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열 개 음절 문장을 세계인들이 우리말 그대로 따라하는 놀이가 유행하고 있다니 머지않아 해외여행 중 한국인임을 알아보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까?”라며 인사를 건넬 수도 있겠다는 즐거운 상상까지 해본다.

비슷한 시기에 영어권에서 가장 권위 있는 사전인 옥스퍼드영어사전(OED)에서도 기분 좋은 소식을 전해주었다. 영어사전의 최신판에서 한꺼번에 한국어 단어를 26개나 표제어로 추가했다는 발표였는데, 이번 최신판에 신규 등재를 포함해 35개 이상의 새로운, 혹은 수정된 한국어 단어가 올라간다고 덧붙였다.

‘오빠oppa’, ‘언니unni’ 등의 호칭과 함께 banchan(반찬), samkyeopsal(삼겹살), galbi(갈비), kimbap(김밥) 등을 굳이 외국어로 어색하게 번역하는 일은 없게 되었다. 21세기 들어 우리 문화가 세계 시장에 급속도로 확산된 결과이며, 그 저력은 바로 민간 분야의 콘텐츠 생산 역량의 축적에서 나온 것이리라.

클래식 얘기에 K-컬쳐의 확산 얘기를 꺼낸 것은 한 지역의 언어가 ‘문화자본’으로서 막대한 힘을 갖는 예가 많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음악용어엔 이탈리아어가, 음식조리 용어엔 프랑스어가, 법학과 철학 용어엔 독일어가 주로 쓰인다는 점이다. 프랑스어는 음식용어 뿐 아니라 발레(Ballet)용어를 독점하다시피 했고, 미술용어에도 많이 쓰인다. 어떤 분야의 예술(또는 학문, 기술)이든 초기 발전을 주도한 지역(국가)의 언어로 관련 용어가 만들어지기 마련이므로 선점 효과를 톡톡히 누리는 것이다.

사람들이 클래식음악이 어렵다고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탈리아어로 된 낯선 음악용어 때문이기도 한데, 대개의 경우 학교에서 배운 음악용어 외에는 딱히 이탈리아어를 접할 기회가 별로 없었을 것 같다. 음악시간에 ‘라르고-안단테-모데라토-알레그로-비바체’와 같은 템포용어를 순서대로 나열하는 시험문제를 예외 없이 풀어봤던 기억이 있을 것 같다. 덕분에 이탈리아 여행에서 그 때 배운 몇 개 단어만 갖고도 급한 대로 의사소통이 가능했다는 사람도 있었으니, 택시기사에게 빨리 가자고 할 때엔 “알레그로, 프레스토!”를 외치고, 천천히 가자고 할 때는 “안단테, 안단테~”라고 했단다.

서양 고전음악의 ‘공통 관습 시대’ 선점한 이탈리아어

그렇다면 음악용어들은 어떻게 해서 이탈리아어가 독점하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도 떠올릴만하다.

서양고전음악(European classical music), 혹은 클래식 음악(classical music)이라는 개념은 19세기 유럽에서 확립됐다. 이 시기에 옛 음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이 음악들을 연주하는 공공연주회가 성행했다. 공공연주회에서 연주되는 작품들은 점차 탁월한 가치를 지니고, 다른 작곡가들에게 모범적 기준을 제시하는 음악으로 인정받게 되면서 이런 작품들을 통용하는 ‘규범적’ 의미의 ‘고전(Classic)’음악 작품이 확립됐다.

그 시기적 범위도 대략 1550년부터 20세기 초반 사이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이 시기를 서양음악의 ‘공통관습시대(Common practice period)’로 부르게 됐다. 공통관습시대의 초기에 오늘날까지 사용하는 음악 체계를 대부분 갖추게 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오선기보법과 조성체계, 각종 악기의 개발과 연주법, 대위법 양식, 템포 지시어 같은 것들이다. 그리고 여기에 사용된 언어는 대개가 라틴어와 약간의 고대 그리스어였다. 이탈리아어는 라틴어를 모태로 하는 언어이므로 자연히 이때부터 유럽 전역에서는 라틴어나 이탈리아어로 된 음악용어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유럽 문명이 고대의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게다가 유럽사회의 정신적 지주인 기독교의 중심지가 바로 로마에 자리 잡고 있었고, 중세부터 이 종교와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발전해온 음악은 자연히 라틴어 표기가 일상화 되었다.

교회의 전례 음악들은 라틴어 가사로 되어 있었고, 음악이론 역시 라틴어로 써졌다. 또한 이탈리아 지역의 도시국가들은 문예부흥의 시대를 주도하기도 했다. 피렌체는 오페라의 발상지였고, 그로 인해 오페라의 대본을 이탈리아어로 쓰는 전통은 오랫동안 이어져왔다. 피렌체 외에도 로마, 베네치아, 나폴리 등지에서는 오페라 뿐 아니라 기악음악에서도 선도적 위치를 차지하던 시절이 바로크시대까지 이어졌다.

‘스트라디바리’ 같은 명품 현악기의 제작업체가 이탈리아의 크레모나에 있는 것도 우연은 아닌 것이다. 따라서 이 시절에 이곳 출신 음악가들은 유럽의 교회와 궁정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는 인기 음악인들이었다. 그들이 이탈리아의 언어와 문화를 유럽 전역에 퍼뜨리는 문화 전위대의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도 이런 이탈리아 음악가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나온다. 모차르트가 빈 궁정에서 황제를 알현할 때, 다소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함께 서있던 사람 중에 안토니오 살리에리(1750~1825)가 있었다. 당시 그는 베네치아 출신의 꽤나 잘나가는 음악가. 무려 36년 동안이나 빈 궁정음악가의 지위에 있었으니, 천재 중의 천재 모차르트도 그 권위 앞에서 서러워할만했다.

이런 몇 가지 요인들이 맞물리면서 이탈리아어는 오페라의 대본이나 음악용어를 선점, 독점하게 된 것이다. 19세기에 민족주의 음악 운동이 일면서 뜻있는 작곡가들이 템포 지시어 등의 음악용어에 자국어 - 독일어, 프랑스어 등을 사용하였지만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왼쪽)과 살리에리.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왼쪽)과 살리에리.

일본식 번역어의 문제

우리나라에 서양의 음악문화가 유입된 것은 개화기 때 서양의 선교사들과 일본을 통해서였다. 그 무렵 유입된 서구의 문물과 지식 관련 용어는 거의 중국이나 일본에서 번역한 한자어에 의한 것이었다. 예전의 식자층에서야 기본적으로 한자를 사용했기에 큰 문제가 아닐 수 있었겠지만, 한자에 약한 한글세대에겐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어색한 번역어들이 많다.

‘협주곡’이나 ‘환상곡’처럼 쉽게 다가오는 번역어도 있지만, ‘광시곡(狂詩曲, 랩소디), ‘기상곡(氣相曲, 카프리치오)’, ‘교성곡(交聲曲, 칸타타), ‘조곡(組曲, 스위트)’, 둔주곡(遁走曲, 푸가) 등은 한자를 알아야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오해의 소지도 있는 게 ‘기상곡’은 아침의 기상나팔 음악인가, ‘조곡’은 죽음에 조의를 표하는 음악인가 하는 식이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의미전달이 쉬운 말로 번역하려는 노력도 있어왔지만, 어색한 번역어보다는 이탈리아어나 독일어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다. 다행히 한글은 외국어 표기를 원어발음에 가장 가깝게 표기할 수 있는 문자이지 않은가.

글쓴이

장옥님 칼럼니스트

장옥님 칼럼니스트는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해 대학에서 음악(작곡)을, 대학원에서는 음악학을 공부했다. 1981년 KBS에 프로듀서로 입사한 이후, 30여 년 동안 다수의 클래식음악 프로그램과 콘서트 등을 기획 연출했고, 대중음악 채널에서는 <음악앨범> 등의 팝과 가요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최근엔 저서 <위기의 음악들>을 출간했으며, 음악 관련한 집필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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