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던 동독 소녀가 ‘유럽의 여제’ 됐듯이...
[박기찬의 말랑고소한 북한 이야기] 훗날 통일 한반도의 지도자, 북한 출신도 가능할까
[박기찬 신한은행 북한연구회 대외협력회장]
[장면 #1]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날아가 보자.) 2050년과 2099년 사이 언제일지 모른다. 한반도가 통일되어 있다. 한반도의 여성 지도자는 중국과 일본의 지도자들 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황당한 얘기이기만 할까. 앙겔라 메르켈은 동독의 말없이 조용하게 공부만 하던 소녀였다. 그녀는 곧 통일 독일의 총리로 16년간 재임하고 자리에서 내려올 예정이다. 그녀는 최장기 집권을 하고도 독일 국민들로부터 75% 이상의 지지를 받고 있다. 메르켈은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사실상 여제(女帝)급 정치인이었다. 그녀가 없었다면 유렵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모두들 말한다.
메르켈은 헌옷으로 무얼 하는 거야?
몇 년 전 세계 언론이 특이한 보도를 쏟아 냈다. 이탈리아 북부 산악지대에서 메르켈 총리 부부가 9년째 같은 지역에서 휴가를 보낸다는 뉴스였다. 관심의 초점은 메르켈이 5년째 같은 옷을 입고 있는 사진이었다. 빨간색 체크무늬 셔츠와 베이지색 바지.
독일에는 이런 농담이 있다한다.
“메르켈은 지금 자신의 헌옷으로 도대체 무얼 하는 거야?”
“뭐긴, 지금 입고 있잖아!”
(책 『메르켈 리더십, 합의에 이르는 힘』, 이하 ‘메르켈 리더십’)
이처럼 그녀는 일반 정치인과 매우 다르다. 대다수 정치인은 미디어에 비치는 본인의 이미지에 극도의 신경을 쓴다. 이 뿐 아니다. 메르켈은 독일 총리 중 역사상 최초의 여성이자, 최초의 과학자 출신이며, 사회주의 국가 동독 출신이다.
그녀는 스스로 동독 출신이라는 것을 당당히 얘기한다. “우리(동독 사람들)는 너희(서독 사람들)처럼 되는 법을 배울 수 있어. 그런데 너희는 우리를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거야. 우리 주인님(마르크스, 레닌 등 몰락한 우상들)은 죽었으니까.”(‘메르켈 리더십’에서)
메르켈이라는 이름 자체가 동독에서 결혼한 첫 남편의 성이다. 지금의 두 번째 남편도 동독 출신의 과학자이다. 또한 메르켈은 동독 북부지역인 메클렌부르크 포어포메른을 지역구로 지금까지 정치활동을 해왔다.
최초의 여성, 과학자, 폴란드계, 동독 출신 총리
그녀가 정치입문 2년 만에 통일 독일의 최연소 장관이 된 것은 상당한 행운이었다. 동독 출신의 여성이라는 핸디캡이 오히려 통일 조국의 내각을 모양있게 구성하는 데에 절묘한 장점으로 작용했다. 정치에 입문해 매우 성공적으로 출발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동독 출신이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더 본질적인 요소로서 정치인 메르켈의 성향과 역량에 영향을 미친 동독의 유산은 무엇일까. 35년을 사회주의 국가 동독에서 살았던 여성이 어떻게 독일과 유럽의 가장 파워풀한 정치인이 되었을까. 궁핍하고 꽉 짜여진 사회주의국가 동독에서의 생활은 그녀의 성공에 도대체 어떤 영향을 끼친 것일까.
인내심과 자제력으로 키운 생존력
[장면 #2] 어린 시절 앙겔라는 서독 친척이 보내준 옷을 입고 묵묵히 영 파이오니어(청소년 공산주의 조직)에서 활동한 과묵한 소녀였다. 하지만 그녀는 수학, 러시아어 등 거의 모든 과목에서 A 등급을 받은 수재였다. 명문 칼마르크스 대학(라이프찌히 대학)에 진학했을 때, 그녀는 FDJ(동독의 청년공산주의동맹)의 푸른색 유니폼을 입고 구김살없이 학교 강당을 뛰어다닌 체제 순응적인 학생이었다. (『앙겔라 메르켈』(2017년, 한국경제신문), 이하 ‘앙겔라 메르켈’)
첫째, 메르켈은 어린 시절로부터 자제력을 물려 받았다. 그녀의 타고난 천성이었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동독이라는 사회주의 체제에서 루터교 목사의 딸로서 살아 온 메르켈에게 침묵과 인내심, 그리고 나서야 할 때를 구분하는 분별력은 그녀의 생존과 성장에 가장 필수적인 역량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인내심과 자제력은 동독 출신의 초보 정치인 메르켈이 서구식 정치의 문법에 적응하고 생존하는 동시에 정당의 당수로서, 또 나라의 총리로서 성장해 나가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덕목으로 작용했다. 메르켈 리더십의 저자 케이티 마튼은 “경찰국가인 동독에서 온전하게 살아남은 것은 그 자체로 대단한 업적이자 그가 보여준 개인적인 회복력과 정치적 회복력의 근원을 이해하는 열쇠”라고 평가했다.
실용주의와 과학적 분석력으로
[장면 #3] 2007년 1월 메르켈은 러시아 대통령 푸틴을 방문했다. 그녀가 개에 물리는 사고를 당하여 개를 무서워한다는 것을 알았던 푸틴은 검정색 사냥개를 회담장에 풀어 놓았다. 하지만 그녀는 위축되지 않았다. 위성국 출신의 여성 총리였지만, 과거 종주국이었던 러시아 대통령의 위압적 태도에 조금도 굴함이 없었다.
둘째, 청소년 시기부터 메르켈은 실용적이고 과학적인 분석력을 키웠다. 푸틴은 메르켈이 임기 내내 상대해야 하는 가장 껄끄럽고 강력한 정치 라이벌이었다. 위압적인 푸틴의 행동에 메르켈은 분석적이고 실용적인 태도로 대응하였다. 2007년 회담을 마치고 메르켈은 “그는 그래야만 남자답다는 걸 과시할 수 있다고 여긴 거야. 러시아는 정치도 경제도 성공하지 못했으니까”라고 말했다.(‘메르켈 리더십’에서)
메르켈은 어린 시절 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영어를 공부하였고 토론의 시간도 자주 가졌다. 학교에서는 수학과 과학 공부로 분석력을 길렀고 칼마르크스 대학과 국립 과학아카데미에서 물리학 석사와 박사를 마쳤다. 이러한 과학적 사고능력을 바탕으로 정치인 메르켈은 어려운 정치적 결정과 중요한 고비 마다 국제 사회의 여론과 독일의 민심을 설득했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휘두르는 예측불허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상대할 때에도, 메르켈은 차분함과 논리적 설득력으로 많은 효과를 거두곤 했다. 트럼프는 영국 총리 테리사 메이를 짜증스러워 했지만(트럼프의 환심을 사려고 기를 쓰기 때문에), 메르켈의 말은 하루 종일 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 (‘메르켈 리더십’에서)
포용력 있는 무티(Mutti, 엄마) 리더십
셋째, 100만명 이민자를 받아들인 포용적 리더십은 어려운 시절을 겪어 온 동독 출신 메르켈이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도 있다.
2015년 10월 유럽연합 지도자들이 난민 위기를 놓고 회의를 열었다.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대다수 국가들을 대변하던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독일이 장벽을 치는 것도 단지 시간문제”라며 메르켈을 압박했다. 긴 침묵 속에 메르켈은 느리지만 단호하게 “나는 오랜 세월 장벽 너머에서 살았습니다.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죠”라고 말했다. (‘앙겔라 메르켈’에서)
대중과 정치인들의 반대는 매우 거셌다. 하지만 메르켈은 오랜 시간 분석과 심사숙고 끝에 일반인의 예상과 달리 단호한 결정을 내렸다. 독일은 난민을 수용할 인도적 의무가 있으며, 연금 위기에 직면한 독일의 경제를 위해서도 수십만의 젊은이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타당하다는 입장이었다.
동독에서의 젊은 시절, 메르켈은 술집의 바텐더로 일하기도 했고 빈집을 고쳐 불법으로 체류하기도 했다. 이렇게 힘든 경험이 없었다면 오늘날 그녀의 포용력 있는 무티(Mutti: 엄마) 리더십은 가능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통일 한반도의 미래 지도자를 상상하자
[장면 #1-1] (다시 미래로) 통일된 한반도의 여성 지도자가 중국과 일본의 지도자들 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중이다. 남한의 시골에서 자랐는지, 평양의 엘리트 출신인지, 러시아 연해주 지역의 농업인인지, 아니면 어린 시절 흑룡강성에서 자란 과학자인지, 오사카 출신의 예술인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2050년과 2099년 사이 언제일 것이다.
서독 친척이 보낸 준 옷을 입고 자란 동독 소녀 앙겔라가 통일 독일을 넘어 유럽 전체의 최고 지도자가 됐다. 메르켈의 삶과 성공은 통일 한반도의 미래를 상상하는 오늘의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던져주고 있을까.
수십 년 뒤 통일된 한반도에서 나타날 미래의 지도자를 머리 속에 그려 보자. 더 크고 더 아름다운 미래의 세계를 이끌어 갈 지도자 말이다.
새로운 미래의 지도자는 현재 우리의 경험과 사고 속에서 존재해 온 지역과 경계, 그리고 체제와 패러다임을 초월해 나타나지 않을까. 편협한 사고와 고정관념, 패러다임의 틀을 벗어버리고 우리는 지금 무엇을 준비해 나가야 할 것인가. 세계인들로부터 존경받고 앞서가는 통일 한반도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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