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문턱에서 듣는 ‘비창 교향곡’
[장 PD의 클래식 한담(閑談)] 차이콥스키가 울며 쓴 음악적 유서
[장옥님 칼럼니스트] 낮게 내려앉은 잿빛 하늘과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 노루꼬리 만큼 짧아진 오후 해. 모든 것이 소멸을 향해가는 겨울의 문턱 앞에서 종종 사람들은 계절병을 앓곤 한다. 이제 한 가닥 남은 젊음의 끝자락도 놓아줘야하는가! 라는 서글픈 감상에 젖는가 하면 저물어가는 인생의 시계바늘을 애꿎은 계절의 변화에 빗대어 탄식한다. 이런 센티멘털한 감정을 달래기 위해서는 더 슬프고 애잔한 음악에 빠져봄으로써 카타르시스를 느껴보는 것도 좋으리라.
우울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음악. 이 방면의 대명사 같은 작곡가는 바로 러시아의 작곡가 차이콥스키(1840~1893)다. 그의 작품목록에는 <비창 교향곡>을 비롯하여 <우울한 세레나데 Serenade melancholique>에서처럼 노골적으로 슬픔과 우울함을 드러낸 표제를 쓴 작품들이 많다. 감성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이런 음악으로 눈물샘이 촉촉해질 수도 있다. 실제로 차이콥스키 자신이 오랜 세월 우울증에 시달린 바 있고, 잘 우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울보 작곡가’라는 별명까지 붙여 놓고 ‘여학생들이나 좋아하는 감상적인 음악’의 작곡가로 폄하하는 비평가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평가는 그의 일면만을 본 것이고, 자세히 살펴보면 그의 음악은 꽤나 다양한 표정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백조의 호수> 같은 발레음악에서 보여준 유려한 선율미와 재기 넘치는 발랄함, 가곡과 오페라에서의 우아한 서정성, 그리고 슬라브적 비장함과 박력 넘치는 관현악 음악까지 다방면에 걸친 작품들로 인해 러시아의 음악유산은 한결 풍성하고 다채로워졌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차이콥스키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자 마지막 작품인 교향곡 제6번은 ‘비창’이라는 표제어가 암시하듯 작품 전체에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그리고 작곡가가 이 교향곡을 초연하고 나서 며칠 후에 사망했다는 점도 이 작품에 비극적인 면모를 드리우고 있다. 그래서인지 모든 것이 소멸을 향한 듯 느껴지는 쓸쓸하고 서글픈 감상의 이 계절에 한번쯤 들어봄직한 음악이다.
여리고 감성이 풍부했던 소년
<비창 교향곡> 때문에 차이콥스키가 비극적인 인생을 살다 간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의 인생을 돌아보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인생의 시작인 유년기는 행복했다. 부모는 교양 있는 자산가였고, 집안 분위기도 화목했다. 집에서 음악을 들을 수는 ‘오케스트리온’이라는 기계를 통해 다양한 음악들을 접할 수 있는 유년시절이었다. 그러나 타고난 성격이 너무 예민해서인지 그를 돌봐준 유모는 감정기복이 심하고 잘 우는 아이로 그를 기억하며, 깨지기 쉬운 도자기를 다루듯 해야 했다니 소위 ‘유리멘탈’의 소유자였음에 틀림없다.
그렇게 여리고 예민한 아이를 장차 정부 관료로 키우고자 했던 부모는 아들이 열 살이 되자 엄격한 훈육으로 악명 높은 법률학교에 보냈다. 애착관계가 깊었던 가족들과의 이별, 그리고 몇 년 후 어머니가 전염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까지 듣게 된다. 성인이 되어서도 어머니의 죽음 당시를 떠올리며 비통해 했으니, 당시 소년이 느낀 슬픔과 상실감을 짐작할 만하다. 그 헛헛함을 음악으로 달래보았지만, 또 다른 위안거리들이 그를 유혹했다. 공식적으론 금지된 것들이었다. 술 담배를 가까이하고, 동성애에 빠지게 된다. 결국 당대 사회에서 금기시했던 동성애 성향은 그를 우울증으로 몰았고, 그 사실이 세상에 알려질까 늘 두려워해야 했다.
청년시절 창작 쪽으로 진로를 바꾼 뒤에 작곡가로서의 인생은 비교적 안정적이고 성공적이었다. 데뷔 초부터 실력을 인정받아 음악원의 교수가 되었고, 운도 따랐는지 창작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거금을 지원하는 후원자도 나타났다. 그러나 동성애에서 벗어나고자 한 결혼은 오히려 그에게 큰 상처가 되고 말았다. 마지막 작품이 된 <비창 교향곡>을 쓰던 당시 쉰세 살의 차이콥스키는 인생의 절정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 일 년여 전에 발표한 발레음악<호두까기 인형>의 음악처럼 생기 있고 찬란한 시간들이 이어졌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주는 명예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런던을 방문했고, 멀리 뉴욕에서는 카네기 홀의 개관기념음악회의 지휘자로 그를 초청했다.
여러 도시를 돌아다닌 긴 연주여행 동안 가는 곳마다의 환대에 스스로 ‘마치 위인이라도 된 양 벅찬 이 기분에 숨쉬기도 힘들 지경’이라고 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에서 돌연 깊은 슬픔에 휩싸이게 된다. 도중에 가까운 친구들의 부음 소식을 듣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힘든 슬픔에 사로잡힌 것이다. 그것은 곧 강렬한 영감으로 솟구치어 집에 오자마자 펜을 들어 한 달 내내 작곡에 몰두했다. 스스로 밝히기를 “곡을 쓰는 동안 종종 펑펑 울었다”면서도 영감은 최고조에 달해 있었는지, “나는 새 작품에 사로잡혀 있다. 아마도 내 작품 중 최상의 것이 될 것 같다”며 평소 자작에 대해 자신 없어 하던 모습과는 달리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깊은 슬픔 속에서 탄생한 교향곡 6번 ‘비창’
6번 교향곡의 완성 후, 작곡가의 지휘로 초연을 했고, 초연 후에 동생의 제안으로 ‘파테티체스카야’라는 표제를 붙였는데, 작곡가도 이 표제를 맘에 들어 했다. 러시아어 ‘파테티체스카야’를 프랑스어 ‘Pathetique’로 번역하고, 이를 다시 ‘비창(悲愴)’으로 번역하고 있다. ‘悲愴’은 ‘슬프고 슬픈’, 즉 비통함 을 의미하지만, 본래 러시아어 ‘파테티체스카야’는 ‘열정적’, ‘감정적’이란 뜻에 더 가깝다고 한다.
이 교향곡의 초연이 있고 9일 후에 돌연 그의 사망소식이 전해졌다. 갑작스런 죽음과 이 교향곡에 감도는 우울하고 비통한 분위기 때문에 작곡가가 작정하고 유서처럼 음악을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과 그의 사인(死因)에 대한 추측이 난무했다. 일부러 끓이지 않은 생수를 마셔 콜레라에 걸려 사망했다느니, 동성애와 관련한 추문 때문에 명예자살을 종용받고는 비소를 먹었다는 등의 설이 제기되었지만, 그의 죽음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교향곡 6번 b단조 ‘비창’은 전체 4악장으로 되어있지만, 전통적인 악장구조(소나타형식의 빠른 템포 1악장, 느리고 서정적인 2악장, 춤곡스타일의 경쾌한 3악장, 거창한 4악장 피날레)를 따르지는 않았다. 제1악장의 서주부분은 낮고 고요한 현을 배경으로 목관악기 파곳이 음울한 첫 동기를 들려준다. 이어서 빠른 템포의 제1주제가 리드미컬하게 반복되다가 홀연 느린 템포의 제2주제로 전환된다. 아름답기로 유명한 차이콥스키표 선율이다. 이 선율은 대중음악계에서도 탐을 내어 여기에 가사를 붙여 노래(The story of a starry night) 로 만들어 부르기도 했다.
2악장 Allegro con grazia는 민속무곡풍의 리듬 위로 우아한 선율이 흐르고, 3악장은 빠른 행진곡풍의 스케르초로 되어있다. 그리고 마지막 악장 Adagio lamentoso - ‘라멘토소’는 ‘비통하게’라는 의미인데, 첫머리에 울컥 쏟아낸 짧은 탄식처럼 빠르고 강한 현의 주제가 수차례 반복된다. 그 주제는 반복되며 점차 고조된 뒤 절망하듯 여린 음으로 빠져버리고 애절한 느낌의 제2주제로 이어진다. 대개 교향곡의 피날레악장에서는 이제 음악적인 결론을 내겠다는 듯, 대미(大尾)를 향해 질주한 뒤에 힘찬 코다로 끝을 맺는데, 이 교향곡의 4악장은 시종 격렬한 고뇌와 비탄이 교차되다가 마지막에 긴 여운을 남기며 매우 여린 음으로 쓸쓸히 사라지듯 끝이 난다. 마치 인생의 절정기를 보낸 한 예술가가 그동안 쌓은 빛나는 명예와 성취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슬픔과 허무에 빠지고, 그 감정을 격렬한 음악으로 토해내며 스스로 인생의 무대 뒤로 조용히 사라지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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