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 무지개가 뜨더라도, 결코 속지 말지니
[박정인의 언론비평] 인과성 없는 ‘억지보도’ 삼가야 세상 바꿀 ‘대선후보’가 용한지를 따져야
[박정인 칼럼니스트] 고교 시절 어느 날. 넋놓고 놀기만 하다가 결국 기말고사 날이 다가와 등교하는 길이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요행을 바라며 정문을 들어서는데 서쪽 하늘에 무지개가 보였다. “그래. 하나님이 이번 한번만은 봐주시는 모양이구나!” 신이 나서 1교시부터 열심히 객관식 답안을 ‘찍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무지개는 무지개였을 뿐이었다. 전교생이 등교 길에 무지개를 봤으니 나만 ‘은혜’를 입을 도리도 없었을 것이다.
이론물리학자의 일갈...”무지개는 무지개일뿐”
물리학 백과를 보면 ‘무지개는 대기 중 수증기에 의해 태양광선이 굴절, 반사, 분산되면서 나타나는 기상학적 현상’이라고 나와 있다. ‘대기 중에 물방울이 있고 태양광선이 낮은 위도로 있을 때 (아침엔 서쪽, 초저녁엔 동쪽) 무지개가 생길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윤석열 대선 후보가 광주 5.18 민주묘역을 찾아 이른바 ‘전두환이 일은 잘했다’는 발언과 ‘개 사과 SNS’ 논란에 대해 사과한 날 광주 전남지역에 무지개가 떴다. 마침 비가 그쳤으니 수증기가 많았을 것이고, 오후 4시 반이 넘어 동쪽 하늘에 떴다니까 시간도 부합하는 듯하다. 이상할 것 없는 자연 현상이다.
보수 정당 대선후보가, 진보 지역기반인 광주를 찾아갔는데, 무지개가 떴다는 조합의 매력은 어떤 언론사의 기자나 데스크도 무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더구나 TV토론에서 손바닥에 쓰인 임금 王자를 들킨 후보였으니… 필자도 처음에는 그저 재미있는 기사라는 생각 외에 특별한 판단을 하지 못했다. 어쩌면 사소한 기사였다. 그러다 SNS에서 한 이론물리학자의 글을 접했다.
“아직도 이런 유사과학적 마인드에서 헤어 나오지 않는 사람들아. 이날 비가 왔고, 그리고 비가 멈췄고, 구름 사이로 햇살이 비췄고, 반대쪽에 있던 물방울들이 빛을 굴절시켜 무지개를 만들었을 뿐이야. 무지개에 무슨 의미 같은 것, 이제 그만 붙이고 삽시다. 신문은 안보지만, 이제 이런 기사는 좀 그만 씁시다. 이 땅에서는 과학이 언제쯤이면 제자리를 찾아갈꼬.”
평범한 자연 현상을 놓고 왜 호들갑이냐. 기사는 객관적이어야 하는데 비과학적인 얘기로 독자를 호도하고 있지 않냐는 취지였다.
전제를 달자면 우선 필자는 이분의 주장에 100% 동의하지는 않는다. 기자가 무지개 기사를 ‘유사과학적 마인드’로 쓴 것 같지도 않고, ‘대단히 ‘의미’를 부여한 것 같지도 않다. 이 기사가 우리 과학이 제자리를 찾아가는데 방해가 되지도 않았을 거라고 본다. 뉴스는 논문이나 공문서가 아니라 대중에게 정보와 감동을 전하는 것인 만큼 흥미거리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자연현상에 소설적 인과관계 ‘억지 연결’
하지만 물리학자의 SNS 글을 계기로 기사를 다시 뜯어보니 처음에는 간과했던 문제들이 눈에 띄었다. 그것들은 우리 언론이 매일 반복하고 있는 고질적인 잘못이었다. 명망있는 물리학자가 왜 별 것 아닌 기사 갖고 분노와 짜증을 드러내야했는지 이해가 갔다.
첫 번째 문제는 제목이었다.
“윤석열 참배 마치자 5.18 묘지에 뜬 무지개”
“찬반 목소리 뒤엉킨 5.18 묘지...윤석열 발길 돌리자 뜬 무지개”
연합뉴스의 관련 기사 제목이다. 아마 처음에 올린 제목을 본 일부독자들이 항의하니까 두 번째 제목으로 바꾼 것 같다. 누가 봐도 첫 번째 제목은 윤 후보에 반대하는 유권자들의 반발을 살만 하다. ‘위대하신 영도자 김일성 장군께서 백두산 천지에 오르시자 하늘이…’와 느낌이 비슷하다. 물론 취재기자나 편집기자가 그런 의도로 정한 제목일거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수정된 제목은 처음보다는 객관성을 부여하려고 애쓴 흔적이 보인다. 윤 후보의 참배시도에 대해 찬반이 엇갈렸다는 팩트를 집어넣었으니까. 기사의 본질은 참배와 찬반 논란이라는 메시지다. 하지만 끝까지 무지개를 포기하지는 못했다. 솔직히 필자가 편집자라도 포기 못하겠다. 윤석열 후보 등뒤에 무지개가 뜨고, 지지세력과 반대세력이 구호를 외치고, 옆으로는 광주 5.18 민주화 묘역이라는 표식이 보이는 장면을 그려보면 알 수 있다.
화가 많이 나신 물리학자님의 생각대로 언론은 제목에서 무지개를 뺐어야 했다. 기사 맨 마지막 부분에 한두 마디 언급했으면 될 일이었다. 아무리 객관적인 장치를 덧붙여도 무지개는 모든 객관을 훅 날려버릴 만큼 감성 충만한 소재였다. 윤 후보 지지, 반대와 무관하게 말이다. 예를 들어 “윤석열 5.18 묘지 참배 내내 겨울비 내리다 현장 떠나자 무지개 떠올라” 이건 어떤가. 정반대의 감성을 자극하지 않는가.
두 번째 문제는 인과관계의 모호함이다.
“윤 후보는 ‘사죄’의 뜻을 표하고 발길을 돌렸다. 이때 내리던 비가 그치며 5.18 묘지 동쪽 하늘에는 무지개가 떠올랐다.”
흔히 저지를 수 있는 오류다. 윤석열의 발길은 어디서부터 돌렸다고 봐야 하나? 타고 온 차량 쪽으로 몸이 움직였으면 발길을 돌린 건가? 그러면 비는 윤 후보가 차량 쪽으로 움직였을 때 막 그쳤을까? 1분전, 또는2분 뒤는 아닐까? 따지자면 끝없는 체크리스트가 생기는데 기사의 문장은 발길을 돌린 순간과 비가 그친 순간을 임의로 일치시켜 마치 윤 후보의 행동이 비에 영향을 준 것처럼 느낄 여지를 줬다. 소설적 인과관계를 부여한 것이다.
기사를 쓴 기자는 지금 뭐하자는 거냐며 짜증을 낼 수도 있겠다. 과한 꼬집기 맞다. 하지만 본인의 의도가 아무리 선해도 선거기사처럼 찬반양론의 충돌을 불러올 수밖에 없는 기사는 표현을 아무리 조심해도 지나치지 않다.
윤 후보가 참배를 마치고 떠났고 그 즈음에 비가 그쳤을 것이다. 비와 무지개는 윤 후보의 발걸음이나 일정과 무관하다. 그런데 그 두 사실이 한 문장에 묶이는 순간 알라딘의 램프를 슬슬 문지른 것과 같은 묘한 상호작용이 벌어진다. 윤석열과 무지개가 관계를 맺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그래서 무지개 기사는 적어도 윤석열 후보 동정 기사와 단락이라도 구분됐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
세 번째 문제, 과도한 대표성이다.
“항의 인파와 지지자들은 무지개를 바라보며 ‘오죽하면 하늘도’, ‘성스러운 징조’ 등 각자의 입장에서 유리한 해석을 쏟아내기도 했다.”
당일 현장에 항의인파와 지지자들이 얼마나 있었는지 알지 못하고, 기자가 몇 명이나 붙잡고 무지개의 의미에 대해 물었는지 역시 알 수 없다. ‘오죽하면 하늘도’나 ‘성스러운 징조’라는 말을 누구로부턴가 들었을 거라는 점을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쏟아냈다’는 표현을 쓰려면 이보다는 객관적인 근거들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지지자 모임이 몇 명의 의견을 모아 무지개 환영성명을 냈다거나, 반대하는 사람들이 SNS에 무지개와 관련해 올린 글이 몇 개를 넘었다는 정도 말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그런 단락들을 추가한다면 이 기사의 주제는 무엇이 될 것인가. 윤석열의 사과나 참배는 오간데 없고 광주에 뜬 무지개가 기사의 주인공 자리를 꿰차게 되지 않을까? 그 역시 얼마나 우스운 일이겠는가. 결국 무지개는 주인공이 되서는 안 될 슬픈 운명이었던 셈이다.
정치권에 난무하는 비과학 현상들
정치는 비과학적인 행위이다. 신념이나 비전 같은 형이상학적인 단어들이 행위를 포장한다. 그만큼 무속 같은 비과학적인 것들과 엮이는 경우가 흔하다. 되돌아보면 모든 대선의 거의 모든 후보는 무속 또는 사주, 관상, 풍수와 관련한 에피소드를 만들어 냈다.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후보 시절 관훈동에서 여의도로 당사를 옮기면서 관훈동 자리에 좋은 기가 있다는 말 때문에 건물을 팔지 못했다. 알다시피 김 전 대통령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97년 대선 때 부모님 묘소를 풍수지리 전문가들이 명당이라고 부르던 경기도 용인으로 옮겼다. 김 전 대통령은 가톨릭 신자였다.
이런 시도가 늘 성공한 것은 아니다. 이회창 후보는 대선에 세 번 나오면서 조상 묘도 세 번이나 옮겼지만 이장 비용만 들이고 대권을 잡는 데는 실패했다. 그 역시 가톨릭 신자다.
달라졌는지 모르지만 과거 정당들은 선거 때만 되면 ‘경신회’니 하는 이름으로 무속인들을 불러 모아서 자기 후보 홍보를 부탁하기도 했다. 전국의 무속인들이 자진해서 모임에 가입하고 경쟁적으로 입소문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 <미스 트롯>이나 <K 팝스타> 못지않았다. 정당 행사가 있을 때마다 달려온 무속인들이 출입기자들에게 접근하기도 했다. 정치부 기자 시절 필자가 마주친 무속인 가운데는 십수년동안 계절이 바뀔 때마다 손 글씨로 적은 운세를 보내준 이도 있었다. 그 사람 예측대로라면필자는 지금 언론사 사장을 거쳐 재선 국회의원에 장관을 지냈어야 한다. 그가 추종하던 후보는 낙선했다.
필자는 과학자가 아니라서 그런지 무속을 믿는 것을 탓할 생각은 없다. 더구나 사주나 관상, 풍수지리 같은 분야는 우리나라 대학에서 엄연한 학문으로 가르치기도 한다. 주요 언론 지면에 <오늘의 운세>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연재되는 것은 하등 이상할 게 없다. 대중에게 대중이 궁금해 하는 것을 알려주는 것. 언론의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워싱턴 포스트를 비롯한 미국 주요 언론이 Daily Horoscope를 연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것들이 사실인가? 사실 맞다. 사주 책이나 점성술 교과서에 나온 것을 가져다 쓴 거니까. 진실인가? 그건 잘 모르겠다. 다만 <오늘의 운세>를 놓고 사실과 진실의 차이와 언론의 책임을 논하는 건 과하다.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와 관련한 무속적인 얘기가 주요 이슈가 되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선거판의 무속 얘기는 식은 밥에 신 김치로 밥을 먹는데 갑자기 식탁에 따뜻한 계란말이가 올라오는 것과 같다. 기사가 나기 무섭게 단톡방에 불이 붙는다. 불은 이리저리 옮겨 붙으면서 불꽃의 모양과 크기를 바꾸기도 하고, 다 꺼져가다가 어디선가 다시 활활 타오르기도 한다. 어떤 형식이든 그 불은 눈앞에 어른거리면서 본질을 찾는 시선을 방해한다. 본질은 선거고, 후보의 자질이고, 정책비전인데 말이다.
제일 용한 점쟁이는 ‘대통령 후보’...그들의 공약을 따지자
윤석열 후보만 언급해서 미안하지만 이슈가 이쪽에서 계속 불거지다보니 한번만 양해를 부탁하고 얘기해보자. 윤 후보 손바닥의 임금 왕자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바라보면 아무 일도 아니다. 설사 본인이 직접 그렸다고 해도 필자는 “권력의지 살아있네”하고 웃어넘길 것이다. 중학교 때부터 책상머리에 “미래의 대통령”이라고 써 붙였었다는 전직 대통령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문제는 그게 언론에서 다뤄지는 방식이다. 불을 확 붙일 때는 사상처음으로 무속을 믿는 대통령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듯 호들갑을 떨더니 방화의 수준에 걸 맞는 진실 규명은 오간데 없다. 당일 토론장에 들어가는데 지지자가 써줘서 미처 지울 겨를이 없었다는 대변인의 변명이 얼마 못가 거짓말로 판명됐는데도 공당의 경선후보 캠프가 거짓말을 하는 것에 대한 비판은 눈 씻고 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뉴스를 만드는 기준이 ‘재미’에만 머물러 있다는 얘기다. 임금 王자는 재미있고 대변인의 말이 맞는지 틀린지는 재미가 없다. 정책은 지루하고 후보가 누구에게 점을 보는지는 궁금하다. 후보가 광주를 찾은 것은 그저 그런데 마침 무지개가 뜬 것은 ‘대박’이다.
사람들은 왜 무속에 기대려고 할까? 심지어 기성 종교를 믿는 사람들까지도 말이다. 목사님, 신부님, 스님은 당장 올해 내가 돈을 벌지, 당선이 될지, 액운은 없는지 절대 말씀해 주실 일이 없지만, 신 내림 받은 장군동자는 딱 짚어서 알려주기 때문이다. 심지어 안 좋은 일이 예상되면 피할 방법까지 제시해주지 않는가.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 더 나아가 미래를 바꾸는 능력이 너도 나도 복채를 들고 무속으로 몰려가게 만든다.
그런데 선녀보살이나 장군동자보다 더 속 시원하게 미래를 알려주고 대비하게해주는 점쟁이가 있다. ‘당신은 2년 뒤면 가게 매출이 늘어 돈을 버니 결혼하게 될거요’, ‘내년에 양도소득세가 내릴테니 그 때 집을 팔고 돈을 보태 더 큰 집으로 옮기세요’, ‘해마다 일자리가 10만개씩 늘어날 것이니 곧 취직할 수 있을거요.’ 이 신통한 점쟁이는 바로 대통령 후보다. 원대하고 구체적인 비전을 갖고 우리나라를 이끌어 갈 사람이니까 가능한 일이다.
언론의 역할은 결국 어느 후보가 더 용한 점쟁이인지 유권자에게 알려주는 일로 귀착된다. 후보가 어떤 분야별 공약을 갖추고 우리나라의 미래를 어떻게 바꾸려고 꿈꾸는지, 그 꿈이 단단한지, 솜사탕 같은지, 꿈을 함께 실현할 주변 인물들이 진실 된지, 이런 것들을 주마간산 식으로 알아보려고만 해도 선거기간은 너무나 짧다. 한가하게 무지개 논란이나 쫓아다닐 때가 아니다.
앞날이 혼미할 때 점집 문턱이 닳는다고 한다. 대선은 예측불허의 승부인 만큼 후보 집 문턱이 닳고 있을 것이다. 이왕이면 유권자들이 직접 후보를 찾아가 얼마나 용한지 챙겨보는 대신 신문과 방송만 봐도 다가오는 5년의 미래를 예측하고 만들어 갈 대한민국 제일의 점쟁이가 누군지 알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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