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성공?...’신당’에 거는 도박
[박정인의 정치평론] 금태섭·김종인이 띄운 제3지대 신당 차기 대선 영향없고, 이념전선 약해져 신당에 호조건...관건은 합류할 ‘인물’ 이준석, 안철수, 박용진, 조응천 등 주목
신당의 성공 확률은
1994년 제1회 4대 지방선거 당시 주니어 정치부 기자였던 필자는 JP(김종필)가 새로 만든 자유민주연합(자민련)에 대한 현장의 느낌과 선배들의 호언장담 사이에서 혼란에 빠졌다. 선배들은 “제 아무리 JP라도 여당에서 쫓겨난 처지에 정치적 지분을 되찾기는 어려울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선배들의 관측이 정치부 회의를 지배하던 그 순간에도, 필자 뿐 아니라 대부분의 현장기자들은 자민련 유세장에 몰려드는 자발적 유권자들의 열기에 놀라고 있었다.
결과는 열기 그대로였다. 자민련은 충남북 지사와 대전시장 자리를 모두 차지해 충청권을 석권하고 강원지사까지 품에 안는 전과를 올렸다. 자민련은 이듬해 15대 총선까지 돌풍을 이어가 국회의원 50석의 캐스팅보트 정당으로 발돋움했다. JP는 기세를 몰아 대선에 출마했고 DJP 연대를 이끌어내 사실상 연합정권을 탄생시켰다.
2016년 20대 총선 때 변호사를 하던 친구가 필자에게 조언을 구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 쪽에서 출마를 권유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냐는 것이었다. 현장을 떠나 간부가 된(즉, 선배가 된) 필자는 “안철수가 아무리 잘 나가도 결국 투표할 때가 되면 유권자들이 여야 거대 정당 쪽으로 몰린단 말이야”라며 출마에 부정적인 답을 줬다.
그 선거에서 국민의당은 호남 지역구를 석권하며 38석을 확보해, 공천파동 끝에 122석으로 쪼그라든 새누리당과 123석으로 원내 1당은 됐지만 과반수에는 턱없이 못미친 민주당 사이에서 짭짤한 정치적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안철수 대표는 주저 없이 2년 뒤 대선에 뛰어들었다.
여의도에서 잔뼈가 굵은 정치 분석가나 베테랑 정치부 기자가 아무리 찰진 전망을 내놓는다 해도 결과를 맞추기 어려운 게 선거다. 필자의 추측으로는 사주팔자를 보는 역술인들도 결혼운세, 사업운세, 건강운세 보다 당선운세를 맞추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특히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제3지대 신당’은 평소 성공 확률이 너무 떨어지기 때문에 전문가들도 일단은 부정적으로 전망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동안 명멸해 온 제3지대 신당들의 이름만 나열해도 성공률이 얼마나 떨어지는 지를 알 수 있다. 이인제의 국민신당, 문국현의 창조한국당, 이재오의 늘푸른한국당, 김한길의 중도개혁통합신당, 유승민의 바른정당 등…. 나름 정치적 명성을 가진 이들이 만든 당 외에도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신당들이 대한민국 선거의 역사에 긴 리스트를 남기고 있다.(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은 신당을 하도 여러 번 만들어 봐서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신당을 차릴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 때 창당 작업 총책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금태섭이 띄운 ‘제3지대 신당’
총선이 1년 앞으로 다가오니까 또 신당 얘기가 나왔다. 공수처법에 반대하다 민주당에서 쫓겨났던 금태섭 전 의원이 보따리를 열었다. 지난 대선 때 윤석열 후보를 돕길래 국민의힘으로 가려나 했는데 윤 후보가 아니라, 윤 후보를 돕던 김종인씨를 도왔던 모양이었다. 같이 윤 캠프를 떠났다. 이번 신당 얘기도 김종인씨가 옆에서 거들었다.
금 전 의원의 말은 이렇다. “내년 총선에 수도권을 중심으로 30석 정도 의석을 차지할 수 있는 세력이 등장하면 많은 기대를 받을 수 있고, 또 많은 사람의 좋은 의견을 모아서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얼핏 듣기에는 그럴 듯한데 곱씹어 보면 의아하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30석을 차지한다? 그렇지 않아도 성공 사례가 드문 제3지대 신당의 역사에서 더욱 찾기 힘든 경우다. 자민련은 신한국당으로부터 JP의 고향인 충청권을 빼앗아 온 것이 성공요인이었다. 국민의당은 호남의 화끈한 변심이 물주가 됐다. ‘대선에서 두 번이나 지고도 정신 못차리는 민주당’에 대한 호남 유권자들의 심판이었다. 바람은 시도 경계를 넘지 못했고 수도권은 여전히 잠잠했다.
그래서 금태섭의 신당은 막연해 보인다. 그가’ 당내 야당’으로 사안마다 지도부를 아프게 꼬집는 발언을 내놓을 때와는 느낌이 다르다. 광폭 행보로 여야를 넘나들며 지난 10여 년 여러 정권 창출의 족적을 남겼던 김종인씨가 ‘또 돕겠다’고 하는 것도 탐탁치 않다. 본인은 새로운 정치를 추구한다고 했지만 정작 그분이 창출한 정권들은 참신하지도, 혁신적이지도 못했다.
흔히 거론되는 유권자의 ‘사표 방지심리’도 분명히 존재한다. 마음으로는 새 정치를 해보겠다고 발버둥 치는 언더독을 응원하지만 정작 기표소에 들어가면 그래도 기존 정당의 후보가 당선될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언론의 관행 역시 신당에게 불리하다. 출범할 때는 엄청난 변화가 생길 것처럼 띄워주다가 본격적인 선거전에 들어가면 거대 정당의 맞대결에 취재보도 역량을 집중한다. 극과 극의 대결구도를 보도해야 기사가 팔리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 중도나 제3지대는 표현은 그럴 듯 하지만 고래싸움 보도하기에 바쁜 편집자 입장에서는 새우들의 초라한 간판에 불과하다.
그래서 일단 누군가가 1만 원을 걸고 내기를 하자고 한다면 필자는 ‘신당이 잘 안 될 것’이라는 쪽에 돈을 걸겠다.
하지만 정치만큼 상상이 현실로 탈바꿈하기 쉬운 곳도 없다. YS가 3당합당을 한 것이나, 미워서 쫓아냈던 이회창을 총선 선대위원장으로 부른 것이 그랬다. 다 끝난 줄 알았던 JP가 충청당으로 부활한 것도 모자라 다른 이도 아닌 DJ와 손잡고 공동 정권을 탄생시킨 것도 상상보다 더 놀라운 현실이었다. 사례를 들자면 끝이 없다. 1970년대 비명에 간 독재자는 자신의 딸이 절차적 민주주의가 무르익은 2010년대에 청와대 주인으로 돌아올 거라고 상상했을까?
이번에는 성공할까
그런 맥락에서 금태섭의 신당이 어쩌면 잘 될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해본다. 우선은 이른바 무당층, 또는 부동층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점이 상상의 근거가 될 수 있다.
한국 갤럽이 지난 3월 한 달간 전국 성인 5천7백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치성향 조사(3월31일 발표)>결과 자신이 중도적이거나 성향을 유보한다는 답이 43%에 달했다. 보수 성향 31%, 진보 성향 26%를 크게 뛰어 넘는 수치다. 현재 제 1당은 사실상 무당/부동층 당인 셈이다.(자세한 내용은 중앙 선거여론조사 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성향 유보층을 뺀 순수 무당층만도 여러 여론조사에서도 30% 안팎을 보인다. 여야 정당의 지지율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불과 1년 전 10%대 중후반을 오르내리다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유는 궁금하지도 않을 만큼 뻔하다. 여야가 경쟁하듯이 ‘마이너스의 정치’를 하는데 호감이 늘어날 리 없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골수 지지층 눈치보느라 외연 확장은커녕 아예 울타리를 열어 놓고 “나가실 분은 안녕히 가세요”라고 방치하는 모양새다. 잘 하면 신당이 화천 산천어 축제처럼 지지세력을 ‘줍줍’할 수 있는 기회다.
유례 없는 무당층의 증가는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과도 연결된다. 여당에서는 오세훈 서울시장 정도가 가시권에 들어 있고 한동훈 법무장관의 가능성이 상상력 차원에서 거론된다. 야당은 김동연 경기지사 외에는 아직 이재명 대표 독주나 다름 없는데, 막상 독주하는 주자가 심각한 사법리스크의 족쇄에 결박돼 있다. 강력한 주자가 내년 총선을 이끌기 보다는 총선을 통해 새로운 주자가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이건 유력한 대선 주자가 없는 신당에게 감사한 일이다. 과거 JP나 안철수의 제3지대 신당이 성공한 또 다른 요인이 유력한 대선 주자의 리더십이었다. 기존 정권에 질리고, 야당의 무력감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희망을 품을 상징이 필요하다. 신당을 추진하는 입장에서 내년 총선은 시기적으로도 대선과 거리가 있기 때문에 정상급이 없으면 성장 중인 꿈나무로도 판을 벌일 수 있을지 모른다.
이준석, 박용진 정도가 한참 성장하는 꿈나무들이다. 금태섭 본인도 만약 신당이 성공하면 지금과는 다른 대접을 받을 것이다. SNS의 시대에 정치인 한 명이 뜨고 지는 건 하루 아침의 문제다.
신당이 어려웠던 또 다른 이유는 유권자의 투표 성향이 이슈보다는 이념 중심이었다는 점이다. 특정 이슈에 따라 정당 지지를 바꾸기 보다는 자신의 이념 성향에 따라 투표를 해 온 것이다. 혈기 넘치는 20, 30대는 아무래도 진보를 선호했고, 안정에 더 관심이 많은 중장년 층은 보수쪽으로 기울었다. 신당은 이슈에 대한 정책 대안으로 승부해야 하는데 유권자가 관심이 없으니 표를 얻기가 어려웠다.
이런 분위기가 이제는 바뀌기 시작했다. 특히 20, 30대의 변화가 뚜렷하다.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2012년 대선까지만 해도 20, 30대는 남녀 할 것 없이 7대3의 비율로 민주당 후보를 더 지지했다. 박근혜 후보는 “50대는 병원에 입원한 사람까지도 투표소에 나가 표를 던졌다”는 우스개가 돌 정도로 고령층 지지가 몰린 덕에 당선됐다. 하지만 지난 대선은 딴판이었다. 20대 남성의 60% 가까이가 윤석열 후보를 지지한 반면 비슷한 비율의 20대 여성은 이재명 후보를 지지했다.
지난 대선 당시 공약들을 돌아보면 그럴만도 하다. 사병 월급을 200만원으로 인상하겠다는 윤석열 후보의 공약이 상징한다. 반면 이재명 캠프는 n번방의 디지털 성범죄를 파헤친 ‘추적단 불꽃’ 출신 박지현을 선대위 부위원장으로 임명해 맞불을 놨다.
이념보다 이슈를 따라가는 성향은 고령층에서도 드러난다. 초고령화 사회의 영향이다. 종부세 인상이 민주당의 전매특허였기 망정이지 국민의힘이 비슷한 얘기를 했다면 골수 TK 유권자도 고개를 돌렸을 것이다. 국민연금 개혁은 제대로 하자면 여야를 떠나 먼저 하는 쪽이 지는 이상한 게임이다. 자꾸 작아지는 그릇에서 각자 몫을 쪼개 챙겨야 하니 허울 좋은 이념 생각할 때가 아니다. 신당이 여야 거대 정당으로부터 듣지 못한 정책 대안을 제시할 수만 있다면 표를 던져 줄 유권자가 적지 않다.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중대선거구제가 도입되거나 비례대표 의석이 늘어나면 신당에게는 천군만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준석·안철수가 움직일까
그렇다면 이런 호조건의 파도를 잘 타기 위해 신당이 준비해야 하는 비장의 서핑보드는 어떤 것일까? 우선은 ‘사람’이다. 그런데 이 ‘사람’이 딜레마다. 정치는 머리 수 싸움이니 누구든 오겠다는 사람 말릴 수는 없지만, 그 중에 신당의 참신함을 가진 사람은 드물었던 게 과거 경험이다. 금태섭 본인까지야 괜찮다 치지만 바로 다음 순번조차 적임자가 떠오르지 않는다.
여당에서는 유승민과 안철수의 신당 참여 가능성이 거론된다. 당이 자꾸 우경화하면서 친윤-비윤 사이에 피아 구분이 분명해지는 추세를 보면 합리적인 추론이다. 그런데 이들이 참신한지는 잘 모르겠다. 야당에는 과거 친문 또는 비명계 인사들이 있다. 이들 역시 문재인 정부때 잘 먹고 잘 살다가 이재명 대표 밑에서 치이니까 당을 옮긴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여당에서 이준석, 야당에서 박용진이 움직인다면 괜찮은 반응을 얻을 수도 있겠다. 이준석은 젊은 여성들, 박용진은 경제계에서 부정적인 반응이 나올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낡은 얼굴보다는 낫다. 쓴소리 잘해서 한때 금태섭과 콤비를 이뤘던 민주당 조응천 의원의 거취도 관심거리이다.
다음은 정강정책이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수사법만으로는 안된다. 새정치, 중도, 제3지대, 희망 같은 단어들로 신당이 기억되게 하는 건 하수(下手)이다. 이런 데에 흥미를 느껴 신당에 호감을 가진 유권자는, 본선이 시작되고 곳곳에서 아귀다툼이 벌어지면 한 순간에 관심의 대상을 바꾸기 마련이다. 선거의 구호는 이상적이지만 선거의 현장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투표소에 가는 순간까지 유권자들이 잊지 않을 분명한 기대 이익을 약속해야 한다.
당장 집권 가능성을 보여주는 건 어렵지만 신당이 캐스팅보트를 쥘 경우 국회가 어떻게 달라질지 각인시켜야 한다. 예컨대 지금까지 민주당의 독주 사례들을 제시하면서 신당이 있었으면 어떻게 달라졌을지 설명하는 식이다. 국민의힘이 과반수를 차지하면 벌어질 문제들에 대해서도 유권자에게 알려야 한다.
노무현 정부에서 홍보수석을 지낸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는 “적대적 공생정치와 좌우 진영 논리를 극복하기 위한 신당이 필요하다”면서 ‘이념을 뛰어넘는 국민통합 정당’과 ‘20-30대가 머리가 되고, 40대 이상이 손발이 돼 문제를 해결하는 창의적 정당’을 제안했다. 20, 30대가 장식품이 아닌 실질적 지도부 역할을 하는 정당을 뜻하는 걸로 보인다.
앞서 지적한 대로 젊은 세대는 이념의 굴레에 얽매이지 않고 이슈에 따른 이해관계를 분명히 드러내니 당의 정강정책을 현실성 있게 짜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50, 60대가 이끌면서 젊은 세대에게 토막기회를 주는 정당이 아니라 젊은 세대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갖고 이끄는 정당이 불가능하란 법은 없다. 군대도 작전은 젊은 장교가 짜고, 전투는 노련한 하사관이 주도한다. 일상에서 전투와 가장 비슷한 게 선거다.
물론 젊은 세대가 이끄는 당은 아무래도 어설플 가능성이 높다. 아이디어는 튀고 리더십은 불안할 수 있다. 이슈에 구체적으로 대응한다고 나서다 사고를 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신당이라고 만들었는데 그 나물에 그 밥이라거나, 여야의 틈새에서 양비론만 외친다는 비난은 피할 수 있을지 모른다. 돈, 조직, 대선주자, 지역구도까지 아무 것도 갖지 못한 신당이 비난까지 받으면 살 길이 없다. 어설퍼도 참신하고 구체적인 게 낫다.
정치 새바람 불었으면
우리 정치에도 진정한 새 바람이 불 때가 됐다. 국민은 낡은 3김 체제를 종식시키려고,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낙선만 전문으로 하던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실용적인 국정을 기대하며 기업가 출신 이명박을 선택했고, 이제는 여성도 대통령 할 때가 됐다는 생각에 박근혜에게 표를 던졌다. 용암이 대지를 집어 삼키며 흐르듯 촛불 민심이 청와대까지 실어다 준 문재인도 있었고, 정의를 부르짖은 검찰총장 출신 윤석열 정부도 나왔다. 하지만 정치는 변한 게 없고 갈등은 심화됐다는 게 국민의 한탄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로 어쩌면 부실 정치에 책임이 없는 젊은 세대가 이끄는 신당은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지도 모르겠다. 각자 사정이 있었겠지만 박지현을 토사구팽하고, 이준석을 뒷문으로 쫓아내는 것과는 다른 모습을 다수 유권자가 기대할 수도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필자는 신당이 잘 안될 거라는 데 여전히 1만원을 걸면서도, 그 1만원이 결국 내기에 이긴 신당 긍정론자의 주머니에 들어가기를 고대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