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팔마’서 두달째 용암...엎친데 덮친 고통
[최지윤의 스페인 스토리] 스페인 대표적 관광지중 하나 2600개 건물 파괴 7천여명 이재민 발생 스페인 최대연휴 크리스마스 다가오는데
[최지윤 스페인 칼럼니스트] 지난 9월 19일 오후 3시경, 평화롭던 스페인 작은 섬 라 팔마의 쿰브레 비에하에서 “펑!” 하는 굉음과 함께 화산 폭발이 시작됐다. 그후 두 달이 넘는 긴 기간 동안 뜨거운 용암이 계속해서 분출하고 있다. 343년 만에 이 섬에서 일어난 가장 긴 분출이다. 라 팔마의 용암분출은 1971년으로 마지막으로 있었는데, 이때도 3주 이상 계속됐다.
삶의 터전을 잃은 현지 주민들은 다른 섬으로 대피하거나 임시 숙박시설, 이동식 주택, 차량에서 지내며 하루라도 빨리 용암 분출사태가 끝나기를 고대하고 있다. 그렇지만 용암은 라 팔마 섬의 동쪽 바다로 흘러내려가며 주거시설을 파괴하는 한편 새로운 지형을 만들고 있다.
라 팔마는 어떤 섬일까
라 팔마는 이베리아반도 남동쪽, 북아프리카의 서쪽에 위치한 카나리아 제도에 있는 섬중 한 곳이다. 카나리아 제도에는 일곱 개의 섬(엘 이에로, 라 팔마, 고메라, 테네리페, 그란 카나리아, 푸엔테벤투라, 란사로테)이 있다. 카나리아 제도는 연평균 영상 25도의 온화한 날씨와 화산 지형의 이국적이고 매력적인 풍경을 자랑하며 스페인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다. 우리나라 tvN 프로그램 ‘윤식당’의 배경이 된 테네리페의 가라치코도 이 제도 안에 있다.
카나리아 제도는 약 2천만 년 전 푸에르테벤투라와 란사로테를 시작으로 일곱 개의 섬이 차례로 생겨났고, 라 팔마와 엘 이에로는 각각 180만 년, 120만 년 전에 태어난 가장 어린 섬이다. 이 제도는 모두 지구 맨틀의 열점 위에 분포하고 있는 화산섬이기 때문에 지반이 극히 불안정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코로나에 이어 화산사태...주민들 피해는
관광 수입이 주 수입원인 라 팔마의 주민들은 이미 팬데믹으로 인해 오랜 힘든 시간을 겪었다. 위드 코로나로 여행이 자유로워지자, 관광객을 다시 맞이하며 잠시 숨통을 트였던 것도 잠시, 화산 폭발사태로 주민들은 미래를 잃게 되었다. 뜨겁게 달아오른 용암은 폭발 10일 후 바다에 도달하는 도중에 마을, 학교, 수백 채의 집 등 모든 것을 파괴하고 있다. 유럽 지구 관측 시스템 코페르니쿠스의 최신 발표 자료에 따르면, 약 2600개 이상의 건물이 파괴되었고, 용암은 1000헥타르 이상의 면적에 영향을 미쳤다.
7천여 명의 사람들이 집을 잃고 대피해야 했으며, 4천여 명의 어린이는 정상적인 수업을 받지 못하고 있다. 두 달이 지난 현재, 다시 수업을 진행하는 학교도 있지만, 근처가 잿더미로 뒤덮여 있어서 아이들은 밖에서 맘껏 뛰놀지 못하는 상황이다. 여전히 코로나19로 인해 교실 환기가 필요한 상황인데 화산재와 유독 가스로 인해 창문을 열 수도 없다.

용암과 연기가 마을 전체를 뒤덮으면서 주택과 건물은 물론, 라 팔마의 주요 농작물이었던 바나나와 아보카도 농장에 엄청난 피해를 가져왔다. 다행히 전문가들이 화산 폭발을 미리 감지한 덕에 근처 주민들이 신속히 피신하면서 인명 피해는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붕 위에서 화산재를 치우던 70대 남성이 사망했다고 지난 12일 현지 언론은 전했다.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도 고통받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구조당국은 용암과 화산재로 고립된 유기견과 동물을 드론을 통해 구조하는 작업도 펼치고 있다. 라 팔마와 인접한 섬 주민들 역시 멈추지 않는 화산 활동으로 영향을 받고 있다. 지역 당국은 호흡기 질환, 심장 질환이 있는 사람이나 임산부, 어린이는 야외 활동을 자제하라고 발표했다.

더딘 구호활동...실망하는 주민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폭발 이후 이미 일곱 번이나 이 섬을 방문했다. 피해 규모가 계속 커지자 산체스 총리는 지난 10월 섬의 기반 시설을 재건하고 고용, 농업 및 관광을 촉진하기 위해 정부 자금 2억 600만 유로를 투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바나나 농장이 많은 이 지역에 담수화 플랜트를 설치해 관개 시스템이 손상된 농장을 지원하는 등 농작물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힘쓰고 있다. 또한 지난 10월 스페인 내무부 장관 페르난도 그란데는 카나리아 제도 지자체에 1050만 유로를 전달했다,
그러나 이런 발표와는 달리, 정작 시민들은 한 푼도 못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지 유력 방송사인 안테나3과의 인터뷰에서 한 주민은 “정부의 원조 계획이 발표되었지만, 아직 많은 사람이 단 1유로도 받지 못했다. 언제 약속이 이루어질지 알 수 없다”며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이렇게 직접적인 피해를 본 7000여 명의 주민은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신속한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내무부 장관은 주택과 기본 생필품에 대한 보조금을 통과시켰다고 했지만, 구호 물품 역시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의문인 상황이다.
주민들에게 얼마나 지원이 이뤄질까. 주거지를 잃은 시민의 경우, 최대 1만5120유로(약 2021만원)를 받을 수 있지만, 이마저도 가족의 소득 수준에 따라 다르다. 모두가 보상받기를 기대하지만, 작년 소득을 기준으로 하기에 이러한 지원을 받을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다. 왜냐하면 정부가 제시한 보조금을 모두 받기 위해서는 1~2인으로 구성된 가구는 연 소득 1만1072유로(약 1488만 원), 3~4인 가구는 연 소득 1만4235유로(약 1913만원) 이하라는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그러나 이 조건을 충족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서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스페인 정부는 시민의 안전을 위해 폭발 가능성이 있는 화산 근처는 주거용 토지로 허가하지 않았지만, 이를 무시한 채 근처에 집을 짓고 살았던 주민들은 보상을 전혀 받을 수 없는 처지다.
다음 주부터 카나리아 지자체에서 마련한 18채의 주택이 인도될 예정이라고 현지 언론은 전한다. 화산 폭발일로부터 두 달이 지난 지금, 겨우 네 가족만이 주택을 공급받았다. 임대료는 1, 2년 차에는 정부가 100%, 3년 차에는 90%를 부담한다. 그러나 주택 공급 속도가 터무니없이 느려서 스페인 ‘관료주의의 약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는 게 주민들의 의견이다. 정치인이 이곳을 방문해 보여주기식으로 사진찍기만 바쁘다는 주민의 인터뷰 역시 현지 언론에 고스란히 보도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며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정부와 지자체는 이른 시일 내에 주택을 공급하고 생활용품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최대 연휴 크리스마스 다가오는데...
그러나 문제는 화산이 언제 멈출지 모른다는 것이다. 라 팔마의 가장 길었던 용암 분출은 1585년에 폭발한 테우야(Tehuya)로, 무려 84일 동안 용암이 분출되었다. 이번 화산 폭발은 343년 만에 가장 오랜 분출로 기록되고 있으며, 56일 동안 지속된 1712년 엘 차르코 화산 폭발 기록을 경신했다. 점점 지진 활동이 완화되고 이산화황 배출량이 감소하고 있지만, 정확한 정보를 확인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하루 5만 톤 이상의 이산화황이 배출되던 9월 23일 이후 꾸준히 배출량이 감소하고 있지만, 여전히 하루 1만6천~2만3천 톤 정도가 배출된다고 밝혔다.
한편, 용암이 분출되는 풍경을 보기 위해 라 팔마에 찾아오는 관광객이 조금씩 늘고 있다. 이곳으로 향하는 비행기와 배편 그리고 숙박업소는 주말에 예약하는 것이 제법 어려울 정도로 화산을 보기 위해 방문하는 관광객이 많다고 현지 주민들은 전한다. 현지 호텔 관계자는 “팬데믹 이전에는 섬에 123개의 숙박업소가 있었지만, 현재는 49개만이 영업 중”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코로나로 큰 어려움을 겪던 라 팔마는 갑작스러운 화산 폭발로 또다시 어려움을 맞고 있는 셈이다. 반면, 관광객이 아닌 주택을 잃은 약 500명의 현지 주민을 수용하는 데 사용되는 호텔도 있다.
그러나 라 팔마 공항은 화산재로 인해 지난 토요일에도 공항 운영이 중단된 바 있으며, 일주일 동안 300여 차례 자진활동이 관측되는 등 여전히 지반이 불안정한 상태라 주민들의 염려가 크다. 쿰브레 비에하의 용암 분출이 당장 멈춘다 해도 용암이 완전히 식을 때까지 기다려야 할 뿐만 아니라 남아 있는 기반 시설의 손상 여부를 확인하고, 유독 가스 측정, 화산재 제거 등 해야 할 일이 많다.
최대 연휴인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라 팔마를 제외한 스페인 전역의 백화점과 대형쇼핑몰은 위드코로나 바람을 타고 블랙 프라이데이부터 각종 세일 상품을 만들어 팬데믹 이후 모처럼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고 있다. 대조적으로 매스컴에서는 매우 힘든 시기를 보내는 라 팔마 주민들에게 성금을 보낼 수 있도록 지자체와 스페인 적십자의 계좌번호를 주기적으로 안내하고 있다. 부디 기적적으로 용암 분출이 멈추고, 주민들이 따뜻한 연말을 보내기를 스페인 모든 국민이 염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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