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보다 더 반려견을 좋아하는 나라
[최지윤의 스페인 이야기] 나라 전체 반려견 수 930만 마리 부부 이혼때 반려견 양육권 따지기도 3개월 되면 바깥서 용변보기 가르쳐 반려동물 문화 발달...견주 책임감 커
스페인 청년들도 ‘N포 세대’
한국에서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라는 단어는 아마 2011년쯤 처음 사용됐던 것 같다. ‘3포’도 모자라 삶에서 더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 ‘N포 세대’라는 말이 최근 등장할 정도로 세상은 너무도 각박하게 변했다. 이를 방증하기라도 하듯, OECD 국가의 2022년 합계출산율 통계 자료에서 한국은 0.78명으로 회원국 중 꼴찌이자,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국가와 지자체가 여러 출산지원금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런데 저출산 문제는 비단 한국 만의 문제는 아니다. 비정규직, 저임금 등 고용 불안과 터무니없이 값비싼 월세, 사회적 인식의 변화 등 복합적인 이유로 스페인 청년들 역시 희망찬 미래를 꿈꾸는 건 고사하고,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경향이 점점 커지고 있다.
스페인의 일간지 엘파이스에 따르면 스페인의 25~29세 인구의 64%가 독립하지 못한 채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또 임금에 비해 주택 임대료가 너무 비싼 탓에 많은 청년들이 셰어하우스에 거주한다.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서는 방 하나를 임대하는 비용이 평균 500유로(약 70만 원)이나 돼 혼자 살 월셋집을 구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일이 됐다.
높은 월세로 악명높은 유럽 국가 중에서도 스페인은 소득 대비 월세 지출이 높은 나라로 꼽힐 만큼 청년들을 위한 환경이 좋지 않다. 이 나라 역시 2022년 합계출산율이 1.16명으로 유럽 내에서 가장 낮은 범주에 속한다. 스페인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초산 연령은 33세(외국인을 제외한 순수 스페인 여성)로 2011년 32세에 비해서 차츰 노령화되고 있다.

이렇게 결혼과 출산 연령이 늦어지는 가운데 30대 이전의 여성은 출산하지 않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후 30대에 다다랐을 때는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서 출산을 염두에 두지 못하고 40대에는 너무 늦었다는 이유로 출산을 포기한다. 그래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대신 반려견을 입양하여 키우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개+자식’ 신조어가 있는 나라
반려견을 자신의 아이처럼 키운다고 해서 개(perro)와 자식(hijos)을 합친 ‘뻬르이호스(perrhijos)’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자식을 대신하는 강아지’인 셈이다. 반려동물관련 단체인 ANFAAC는 스페인내 15세 미만의 어린이가 670만 명인데 반해, 반려견의 수는 930만 마리나 된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이런 조사 결과가 놀랍지 않을 만큼 스페인에서는 아주 쉽게 강아지를 볼 수 있다. 스페인은 반려견의 천국이 확실하다! 케이지에 들어가지 않고 목줄만 한 상태로 반려견이 출입할 수 있는 상점과 음식점이 매우 많다. 공공장소에서 크게 짖거나 불안해 하는 반려견은 제지를 받지만, 대부분 공공의 실내에서 반려견은 주인과 함께 별다른 문제 없이 머무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휴가철에도 반려견을 챙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스페인의 여름 휴가는 7월부터 서서히 시작해 8월에 성수기를 맞는다. 짧게는 1주일, 길게는 한 달씩 휴가를 보내는 현지인들은 반려견과 함께 할 수 있는 장소를 선택하려 애쓴다. 다행히 휴가지에는 반려견 전용 구역이나 주인과 함께 할 수 있는 해변과 호텔, 쇼핑몰이 많다. 인터넷에 조금만 검색해 보면 쉽게 관련정보를 찾을 수 있다.
스페인에는 반려견이 많은 만큼 사람들은 동물권에도 ‘진심’이다. 애완동물 관련 규정은 지자체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마드리드 경우를 살펴보면 이렇다. 애완동물의 실종, 유기 등의 문제를 미리 예방하기 위해 개와 고양이에게 마이크로칩을 이식하고 공식적으로 등록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견주는 민사 보험에 가입해 다른 동물, 사물을 비롯해 제3자에게 발생할 수 있는 부상이나 손해에 대비하도록 하고 있다.
부부가 이혼할 때도 아이의 양육권처럼 반려견의 양육권을 따지기도 한다. 심지어 2020년 3월 코로나 19로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되어 모든 국민의 이동이 제한되었지만, 강아지는 코로나 전파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산책이 허용됐다. 성장기 어린이들이 나가서 뛰어노는 것은 안 되는데, 반려견은 자유롭게 산책할 수 있게 해 일부 국민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용변은 집 밖에서 하도록 훈련시켜
이곳 스페인에 신기한 반려견 문화도 있다. 많은 강아지가 용변을 집이 아닌 밖에서 해결한다는 것이다! 주변에 강아지를 키우는 지인이 여럿 있어서 물어봤는데 모두 똑같은 답변이었다. 정해진 시간에 산책하러 나가면 강아지가 알아서 용변을 본다는 것이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강아지가 3개월 정도 됐을 때부터 본격적으로 야외에서 배변할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킨다. 어느덧 루틴에 적응된 강아지는 실내에서는 용변을 참고, 산책하러 나갔을 때 배변하는 습관을 가진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정해진 시간에 반려견을 반드시 데리고 나가야 한다는 약간의 불편함은 있지만, 집안에서 용변을 처리하지 않아도 돼 견주 입장에선 큰 부담이 덜어지는 셈이다.
공원 근처 쓰레기통을 보면 반려견의 배설물을 담을 수 있는 비닐이나 봉투가 비치되어 있다. 산책 때 대부분의 견주는 뒤처리를 잘하지만, 그렇지 않고 나 몰라라 무책임하게 그냥 가 버리는 사람도 없진 않다. 그래서 길에 덩그러니 남겨진 배설물을 마주하는 경우도 있다. 지자체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배설물의 DNA를 조사해 주인에게 벌금을 물리겠다고도 엄포를 놓고 있는데, 실제로는 시행되고 있지는 않다. 한국처럼 길거리에 CCTV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현장에서 적발된 게 아닌 이상 처벌이 불가능하다.
반려견을 키우는 것은 어마어마한 책임이 뒤따르는 일이다. 그러나 경제적 이유, 단순 변심 등의 이유로 2022년 스페인에는 약 17만 마리의 강아지(어피니티재단 자료 참조)가 유기됐다. 정부는 이런 반려동물 유기를 막고, 반려동물의 권리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 3월 새로운 동물복지법을 발표, 9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새 법에 따르면, 반려동물을 3일 이상 방치한 사람은 처벌받게 되며, 개의 경우에는 24시간을 방치하면 안 된다. 또한, 새로 반려견을 입양하는 경우 주인은 반드시 온라인 테스트와 훈련 과정을 이수하여 주인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도록 노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스페인도 우리나라도 ‘펫팸족’ 급증
스페인왕립견협회(RSCE)는 사람들이 반려견을 키우는 데 매달 평균 105유로를 지출한다는 통계를 내놨다. 이 역시 만만치 않은 비용이지만, 자녀를 양육하는 것보다 더 비용이 덜 든다는 이유로, 심리적 안정감과 행복을 느낄 수 있어 많은 사람이 반려견을 키운다. 스페인 사람들은 반려견을 가족이자 감정을 가진 존재로 생각한다. 그래서 반려견을 존중하고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고 느낀다. 이러한 인식이 생겨난 데에는 반려견의 개체 수가 많은 이유도 있겠지만, 반려인과 비반려인이 성숙한 반려동물 문화를 조성한 덕분이라고 본다.
한국에서도 최근 출산율이 저하하고 1인 가구가 늘면서 반려견을 키우는 인구가 급증했고,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펫팸족(Pet+Family)’이 생겨났다. 그런데 개 물림, 소음 등으로 인한 사고 소식을 들을 때마다 안타깝기도 하다. 소중한 반려견에게 좋은 것을 먹이고, 입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반려견과의 진정한 교감과 책임감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반려견과 반려인, 비반려인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해 모두가 노력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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