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익숙한 것과 새로운 것의 끊임없는 여정

[장 PD의 클래식 한담(閑談)] 반복과 변주에 대한 이야기...우리 삶처럼 ‘반복을 지겨워말고, 변화를 두려워마라 ’

[장옥님 칼럼니스트] 최근 흥미 있게 읽은 것 중에 <문체연습>이란 책이 있다. 제목 그대로 작가가 다양한 문체의 가능성을 보여주고자 어떤 상황을 열 줄 정도의 기본텍스트로 만들고 그것을 각기 다른 문체로 써나갔다. 예를 들어 ‘소네트’, ‘전보’ 형식의 문체로 써본다거나 ‘조심스레’, ‘더듬더듬’처럼 일상의 말투로 써본 방식 등 무려 99가지의 문체를 보여준다. 저자인 레몽 크노(Raymond Queneau, 1903~1976)는 프랑스의 언어학자이자 수학자, 소설가, 시인 등 다방면에서 활동한 인물이다. 작가는 바흐의 푸가를 듣고 영감을 얻어 이 책을 썼다지만, 책의 형식은 음악에서의 ‘변주곡’과 흡사하다.

변주곡變奏曲은 어떤 주제를 정해놓고 그 주제의 선율, 리듬, 화성 같은 요소를 변화시키며 계속 새로운 곡을 만들어 덧붙이는 것이며, 정식명칭은 ‘주제와 변주들(Theme and Variations)’이다. 변주곡은 매우 오래전부터 애용되어온 악곡형식이다. 이미 16세기에 스페인과 영국의 류트음악이나 건반음악에서 비롯되어 시대에 따라 변화를 거치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널리 쓰이는 중요한 형식이자 작곡기법의 기본기이기도 하다. 제시된 악절 같은 것을 바탕으로 자유롭고 화려한 악상을 펼쳐 보이는 즉흥연주라는 것도 알고 보면 이 변주곡의 기본기를 갖고 하는 연주행위이다.

변주의 방법도 여러가지

변주곡에는 주제가 있기 마련인데, 주제는 친숙한 민요선율 같은 것을 많이 쓰지만 작곡가가 새로 만들기도 하고, 다른 작곡가의 악곡에서 빌려다 쓰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변주곡의 주제는 마치 씨앗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어떤 꽃으로 피어날지, 그것도 한 가지 모양이 아니라 다양한 모습으로 여러 번 피어나려면 그 씨앗에는 무궁한 잠재력이 담겨있어야 한다.

변주의 방법 중 보통은 ‘장식변주’라 해서 주제의 선율이나 리듬을 장식적으로 변화시키고 조성을 바꾸어 보기도 하는데, 이런 방식 외에도 주제와 변주와의 관계는 시대에 따라 다음과 같이 조금씩 다르게 변화해온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대위법적 변주곡’은 일정한 선율을 반복·재현할 때 그 대위선율對位旋律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그레고리오성가를 비롯해 코랄을 정선율定旋律로 한 16∼17세기의 변주곡에 그 예가 많다. 바로크 시대에는 4∼8마디의 베이스 성부의 정형을 반복하고 상성부上聲部를 여러 번 변화시키는 악곡형태가 유행하였다. ‘샤콘’, ‘파사칼리아’등으로 명칭을 달리하지만 모두 변주곡의 일종이다. 비탈리의 <샤콘>, 헨델의 <파사칼리아>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헨델의 ‘파사칼리아’를 할보르젠이 바이올린과 비올라2중주로 편곡했다.

악곡의 제목이 ‘변주곡’으로 되어있는 것은 거의가 앞서 언급한 ‘장식변주곡’에 속한다. 주제의 선율, 리듬을 장식적으로 변화시키고, 또는 조성을 바꾸는 식인데, 주로 고전시대의 작품들이 여기에 속한다. 바흐의 <골드베르크변주곡>을 비롯하여 모차르트의 <‘작은 별’ 주제에 의한 변주곡> 등이 유명하다.

낭만주의 음악가들도 변주곡 작품을 많이 남겼다. 그들은 주제의 부분적 특징 - 주제가 지닌 화성과 리듬 요소 - 을 바탕으로 각 변주에 새로운 성격을 부여해가는 방식뿐 아니라, 제시된 주제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롭고 확장된 악상을 펼쳐감으로서 환상곡과 랩소디풍의 변주곡을 쓰기도 했다. 이런 변주곡을 ‘성격변주곡’이라고 하며 베토벤의 <디아벨리변주곡>, 쇼팽의 <모차르트 주제에 의한 변주곡>,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 등이 그 예이다. 또 실내악의 중간 악장을 변주곡형식으로 쓰기도 해서 슈베르트는 피아노5중주 A장조에 자신의 가곡 ‘송어’를 주제로 한 변주곡 악장을 끼워놓았고, 차이콥스키는 스승의 죽음을 애도한 피아노트리오곡에서 구슬픈 멜로디의 주제를 사용한 변주곡 악장을 쓰기도 했다.

이 외에도 시대별 작곡가들의 음악 스타일을 모방하여 변주곡으로 만든 작품도 있다.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오크스는 ‘새가 날아오네’라는 민요를 주제 삼아 유명 작곡가들 13명의 음악적 특징과 스타일을 살린 재미있는 곡을 남겼다.

반복과 변주의 음악적 원리는 우리 삶에도 작동

어떤 악곡을 듣고 특정 선율(또는 악절)을 기억하는 것은 그 부분이 자주 반복되어 나오기 때문인데 그렇게 기억에 남는 선율을 보통 ‘주제’라고 부른다. 만약에 어떤 음악이 계속해서 새로운 악구나 악절로만 이어진다면 어떨까. 기억에 남는 ‘익숙한 부분’이 없으니 계속 집중해서 들어야 하고 그렇게 듣다보면 지쳐버릴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앞에 나왔던 악절이 변함없이 그대로 반복된다면 그것도 매우 지겨운 일이다.

반복과 변주라는 이 음악적 원리는 우리 삶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생존을 위해 반복할 수밖에 없는 행위들이 있는가 하면 일상의 지루함을 덜어내기 위해 변화를 시도하며 안정과 활력의 균형을 맞추려 노력한다. 만약 매일 매일이 변화무쌍한 일들로 채워지고, 늘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지내야 한다면 그것도 견디기 힘든 일이다.

카페에 가면 ‘커피+물’이란 기본재료에 다양한 변화를 시도한 메뉴가 있다. 라떼는 물론이요, 향이나 다른 재료를 섞어 만든 여러 가지 메뉴. 바로 커피 바리에이션이다.

우리가 학습을 시작한 시절부터 수천수만 번 들어봤을 “공부해라”는 말. 이 말을 ‘주제’라고 할 때, 하구한날 “공부해라”는 말을 그대로 반복하면 오히려 짜증만 유발할 뿐이다. 그래서 실로 다양한 표현을 구사하며 자식들에게 공부하기를 권한다. 부드럽게 타이르기도 하고, 때론 강압적인 언사를 써가며 “숙제는 했니?”부터 “공부해서 남 주니?”, “이번에 1등하면 용돈 팍 올려줄게” 등등. 한때 여고 교실에는 “지금 열심히 공부하면 미래의 신랑 직업이 달라진다”는 급훈도 걸려있었다 하고, 점잖게 논어의 “學而時習之 不亦說乎”를 인용하는 것, 이 모두 언어변주의 일환인 것이다.

오크스(Siegfried Ochs)/ ‘새가 날아오네’에 의한 변주곡
글쓴이

장옥님 칼럼니스트

장옥님 칼럼니스트는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해 대학에서 음악(작곡)을, 대학원에서는 음악학을 공부했다. 1981년 KBS에 프로듀서로 입사한 이후, 30여 년 동안 다수의 클래식음악 프로그램과 콘서트 등을 기획 연출했고, 대중음악 채널에서는 <음악앨범> 등의 팝과 가요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최근엔 저서 <위기의 음악들>을 출간했으며, 음악 관련한 집필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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