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에 탈북녀 강새벽은 왜 나오나

[박기찬의 말랑고소한 북한 이야기] K-콘텐츠에서 북한 얘기가 빠지지 않는 이유

드라마 '오징어게임'에서 배우 정호연이 연기한 강새벽. 사진=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에서 배우 정호연이 연기한 강새벽. 사진=넷플릭스

[박기찬 신한은행 북한연구회 대외협력회장]

K콘텐츠 성공비결과 북한 소재의 존재이유

기생충, BTS의 성공에 이어 ‘오징어게임’이 전 세계인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이제는 ‘우연’이라거나 ‘문화제국의 선심적 배려’라는 식으로는 설명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K-콘텐츠, K-소프트파워, K-컬처 등 더 크고 멋진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그 성공의 이유는 무엇일까?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그 비결을 속 시원히 설명해 주지 못하고 있다.

‘오징어게임’에서 탈북여성 ‘강새벽’은 가장 중요한 다섯 인물(성기훈, 조상우, 오일남, 강새벽, 알리 라고 한다면) 중 하나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강새벽을 연기한 배우 정호연은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2천만 명이나 증가해 세계적 스타로 등극했고, 루이뷔통 글로벌 앰버서더로 발탁되기도 했다.

2년 전에는 북한이라는 장소 그 자체를 배경으로 한 멜로물 ‘사랑의 불시착’이 세계적 성공을 거두었다. 영화 ‘기생충’에서도 스토리의 핵심 장치 중 하나인 지하 벙커는 전쟁위험을 안고 사는 서울 부자들의 위기심리에서 나온 주택 구조이며, 북한 아나운서를 흉내 내는 핵미사일 패러디도 해외관객들에게는 특별한 웃음과 재미 요소였다.

도대체 북한 스토리 요소는 왜 빠지지 않고 K-콘텐츠에 자리매김하는 걸까? K-콘텐츠의 성공 비결과 북한 소재의 존재 이유라는 두 가지 질문을 관통하는 하나의 해답은,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 ‘문화강국론’을 자세히 읽으면 그 실마리가 보인다.

백범 ‘문화강국론’에 담긴 역설적 실마리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중략)...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요즘 다시 떠오르고 있는 이 글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온갖 고생과 멸시 끝에 겨우 독립은 얻었으나 열강에 의해 조국은 두 동강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저런 낙관론을 펼칠 수 있었을까?”

필자는 백범의 말씀을 이렇게 이해한다. ‘우리가 가난한 약소국이자 피침략국으로서 온갖 고통과 설움을 다 겪었기 때문에, 오히려 이를 이겨내고 넘어서는 과정에서 아름다운 문화와 세계 평화의 가장 보편적인 표준을 세울 수 있다’고. 역설적이지만, 정치, 군사, 경제적 약소국이자 분단된 민족이기에 더 아름답고 글로벌한 문화 강국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이를 슬기롭게 극복해 나간다면 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빈곤국, 약소국이자 분단국가라는 총체적 약점들을 가장 짧은 시간에 극복하고자 더 고민하고 행동으로 실천한 사람들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지금도 진행 중인 이 치열하고 아름다운 과정을 통하여 더욱 아름답고 평화로운 새로운 세상의 문화가 나올 수 있다고 필자는 믿는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대표이미지. 사진=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대표이미지. 사진=넷플릭스

K-콘텐츠 스토리 구조의 매력

문화평론가 강유정 강남대 교수는 K-콘텐츠의 성공 비결을 매우 설득력있게 분석했다.

“한국의 대중이 좋아하는 스타일은 리얼리즘이다. 한국에서는 사회적 관점을 보여주지 않고는 대중에게 좋은 작품으로 인정받고 사랑받기 어렵다. ‘광해’, ‘암살’, ‘내부자들’ 같은 천만 영화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중략)...대개 대중영화들 특히 미국 대중영화들은 비현실적이라도 해피엔딩과 판타지를 지향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런 값싼 봉합이 잘 안 통한다. 영화로 봉합한다고 현실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알았기 때문이다.” (경향신문, 2021.10.22.)

한국 콘텐츠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사회구조적 문제’들을 정면으로 다루면서 항상 리얼하고 치열하게, 그리고 솔직하고 재미있게 드러내왔다. 그리고 어설픈 타협이나 작위적인 해피엔딩이 아닌 ‘열린 결말’(해외 평론가들은 ‘K-엔딩’이라 부른다) 형태로 마무리함으로써 현재 진행형의 구조적 과제와 그 무게를 관객들에게 다시 던져 주고 있다.

한국에서는 왜 이러한 스토리텔링의 구조가 정착했을까. 무릇 문화예술은 현실의 반영이라고 하던가. 한국인들은 가장 가난하고 취약했던 약소국에서 소위 ‘압축 성장’을 거듭하면서 여러 가지 첨예한 사회적 문제들과 부닥쳐왔다. 20세기 이후 세계사에서 이런 문제로 우리 보다 더 고통받고 더 고민하고 더 몸부림친 국민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아직도 진행 중인 수많은 사회구조적 문제들과 씨름하는 치열한 고통 속에서 ‘한국적 서사 구조’라는 독특한 열매는 익어 온 것이 아닐까.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강새벽과 D.P. 안준호가 떠안은 고통의 뿌리

북한 소재는 좀 더 차분히 따져 보면 우리의 분단 구조로부터 나온 현실적 문제들이다. ‘오징어게임’의 강새벽, ‘사랑의 불시착’의 리정혁과 윤세리가 부닥친 문제들은 물론이고, ‘모가디슈’의 림용수와 한신성, 그리고 ‘D.P.’의 안준호와 한호열의 고통과 몸부림도 남과 북이 적대적으로 나누어진 현실로부터 나온 것들이다.

‘오징어게임’의 강새벽이 안고 가는 아픔은 물론이고, ‘D.P.’의 안준호가 겪는 고통 또한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우리의 분단 현실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인기드라마 ‘D.P.’는 ’대한민국 남성은 모두 군대를 가야 한다‘는 오프닝 크레딧으로 시작한다. K-컬처 최고의 전도사인 BTS 구성원에게도 그 예외는 쉽지 않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드라마 'D.P.' 사진=넷플릭스
드라마 ‘D.P.’ 사진=넷플릭스

K-콘텐츠 문화강국은 현재진행형

그래서 분단이나 북한을 주제나 소재로 하는 영화, 드라마, 웹툰은 앞으로도 꾸준히 나올 것이다. 그 이유는 글로벌 플랫폼에 올려졌을 때 그런 스토리가 세계 시장과 관객들에게 색다른 매력을 던져주기 때문만은 아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그 소재와 주제가 우리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현실적인 생존의 문제이자 과제이기 때문이다.

백범이 말씀한 ‘문화강국’으로 가는 길은 현재 진행형이다. 어쩌면 이제 막 시작한 것일지도 모른다. 분단 문제는 계층 양극화의 이슈 보다 더 심각한 우리의 과제다. 너무 오래되고 고착화되어 더 많은 고통과 시행착오가 뒤따를지도 모른다.

역설적이지만, 그래서 우리의 콘텐츠 잠재력은 더 매력적이고 아름다우며, 나아가 세계를 향하여 더 위대하게 꽃피울 수 있다고 믿는다.

글쓴이

박기찬 북한학 박사

필자인 박기찬은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후 미국 워싱턴대 MBA를 마친 금융인으로, 글로벌하고 미래지향적 시각에서 한반도 이슈에 접근하는 북한연구자이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개발협력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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