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음악 ‘합창 교향곡’

[장 PD의 클래식 한담(閑談)] 코로나 팬데믹, ‘전인류의 위기’ 엄습 ‘인류평화와 형제애’ 나누며 이겨내길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 자필 악보중 일부.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 자필 악보중 일부.

유토피아의 비전을 음악으로 구현한 <합창 교향곡>

12월이 되면 거리에 캐럴이 넘쳐나던 시절이 있었다. 동네마다 전파상이나 레코드점에서 가게 밖에 내놓은 스피커를 통해 크리스마스캐럴은 물론이요, 웬만한 유행음악은 다 공짜로 듣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거리에 캐럴이 사라졌고, 라디오에서도 캐럴송을 좀 자제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래서 ‘어, 올해는 캐럴도 제대로 못 듣고 크리스마스가 지나가버렸네’ 아쉬워하던 적도 있었는데, 그게 다 음악저작권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던 차에 올해 문체부에서 12월 1일부터 25일까지 캐럴활성화 캠페인으로 ‘12월엔 캐럴이 위로가 되었으면 해’를 추진한다니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 캠페인에 종교계와 라디오방송들, 음악서비스 사업자들이 참여한다니 뒤늦은 감은 있지만, 화려하게 반짝이는 성탄장식과 경쾌한 캐럴로 세모의 분주했던 마음 한구석이 밝아지는 듯하다.

이렇듯 12월의 음악을 꼽자면 단연 크리스마스캐럴이겠지만, 클래식에도 ‘시즌 송(Season song)’같은 작품들이 있다. 매년 새해, 신년음악회에서는 요한 스트라우스의 왈츠가 빠지면 섭섭하고, 연말이면 교향악단들이 마치 송구영신의 의식을 거행하듯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을 무대에 올리는 것도 하나의 전통이 되었다.

베토벤은 아홉 개의 교향곡을 남겼는데, 1번부터 9번까지의 교향곡들은 저마다 교향곡의 새로운 역사를 쓰듯이 작곡되어, 서로 다른 가치와 의미를 지닌 작품들로 평가받고 있다. 그 중에서도 말년인 1824년에 쓴 9번 d단조 <합창 교향곡>(이후 <합창>으로 줄여 표기함)은 특이하게도 성악(4명의 독창자와 합창)이 들어간 제4악장 때문에 베토벤 이후의 작곡가들에게 ‘교향곡이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주어 그들로 하여금 교향곡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계기가 됐다.

그렇다면 ‘왜 송년음악회에서 <합창>을?’ 많은 음악팬들이 한번쯤은 이런 의문을 가졌음직하다. 그 해답은 베토벤이 피날레악장에 채택한 가사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4악장의 가사는 실러(Friedrich von Schiller, 독일, 1759~1805)의 <환희의 송가Ode to Joy>에서 발췌한 것으로, ‘송가頌歌’(Ode)는 특정한 사람이나 사물에 부치어 지은 서정시의 형태다. 독일어 제목은 ‘An die Freude(환희에 부쳐)’이다. 1785년에 발표된 이 송가는 ‘낙원의 딸’로 의인화된 ‘환희’가 마술을 발휘하여 사회관습이나 암암리에 온갖 차이로 갈라진 개인들을 하나로 결속시키고 모든 인류는 서로를 형제애로 포용하자는, 계몽주의 감성이 충만한 내용으로 되어있다. 이 작품을 발표한 후, 몇 년 뒤에 일어난 프랑스혁명에서 ‘자유, 평등, 박애’의 기치를 내걸었던 것도 실러의 이 작품과 무관타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프리드리히 쉴러 초상화.
프리드리히 쉴러 초상화.

인류와 세상을 구원하는 예술의 힘에 대한 믿음

실러의 이 작품이 발표되었을 무렵 베토벤은 고향 본에서 음악신동으로 평가받으면서 빈으로 진출할 기회를 엿보며 청년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혁명은 청년 베토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혁명이 나던 해에 단기간이긴 하지만 본 대학에 등록해 계몽주의 사상에 대해 공부할 기회를 가졌고, 이 시절 당대 문호들의 작품을 접하게 되면서 실러를 경외하게 되었다.

실러의 제자 중 한사람은 본에서 뛰어난 젊은 작곡가를 실러의 서클에 소개하는 이런 편지를 썼다. “작곡가는 실러의 ‘환희’에도 곡을 붙이겠다며 각각의 연에 모두 음악이 들어가게 된다고 했습니다. 완벽한 작품이 나오리라 기대합니다. 내가 아는 한 그는 위대한 것과 숭고한 것에 완전히 헌신하는 사람이니까요.” 그 ‘뛰어난 젊은 작곡가’는 바로 베토벤을 가리키는 것이었고, 베토벤은 음악을 사상이나 철학과 같은 숭고한 경지의 예술로 끌어올리고자 온갖 투쟁을 마다않는 음악가였다.

베토벤은 <환희의 송가>에서 전하는 메시지를 자신의 종교적 작품에 부분적으로 인용하기도 했고, 결국에는 창작의 결정체인 교향곡 장르에 성악파트를 추가하여 가사로 인용하였다. <합창>에서 베토벤이 송가의 구절을 선택하고 처리한 것을 보면, ‘인류는 훨씬 더 높은 신의 존재를 인식할 때 이상적인 상태, 낙원에 도달할 수 있다’는 그의 믿음을 읽을 수 있다.

“만민들이여 무릎을 꿇겠는가?

세상을 창조하신 그분이 느껴지느냐?

창공 위에서 그 분을 찾아라.

별이 반짝이는 저 위에 반드시 창조주가 계시리니!”

<합창> 제4악장의 가장 숭고한 악절, 독창 없이 합창만으로 진행되는 악절에 붙인 송가의 대목이다. 특히 베토벤 자신이 시작부분에 덧붙인 가사 “오오, 형제들이여! 이와 같은 곡조들이 아니고 더욱 즐겁고 기쁨에 찬 노래를 부르지 않겠는가!”는 인류와 세상을 구원하는 예술의 힘에 대한 그의 유토피아적 믿음으로 다가온다.

베토벤이 직접 만든 합창의 주선율은 또 어떠한가! 민요풍의 단순하되 행진곡 같은 힘찬 곡조는 누구에게나 기억에 오래남고 부르기 쉬워서 교회의 찬송가로도 불리고 있으며, 지난 세기 유럽의 거대한 정치적, 사회적 이벤트에서 불리는 대중적 선율로 자리 잡으면서 유럽연합(EU)의 공식적인 노래로 채택되기도 했다.

베토벤의 합창교향곡 플래시몹

제9번 교향곡은 전통적인 4악장 구성으로 되어있고, 전 악장에 걸쳐 자유롭게 형식을 구사한 후기작품의 특징을 보여준다. 합창이 들어간 제4악장이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앞에 세 개의 악장이 붙은 교향곡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기 쉽지만, 합창은 결코 ‘갑툭튀’가 아니다. 신비로운 도입부에 이어 압도적인 숭고함과 비탄의 정서가 교차하는 1악장, 익살스런 빠른 패시지들의 2악장 스케르초, 칸타빌레의 아름다운 선율로 된 사랑스러운 3악장을 거친 후, 드디어 인간 희로애락의 총결산 같은 강력한 에너지가 분출되는 피날레악장. 이렇게 전체 4악장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었음을 느낄 수 있고, 작곡가가 성악부분을 교향곡의 피날레에 설득력 있게 연결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숙고한 흔적들도 여러 장의 악보스케치에 남겨져 있다.

세모에 우리가 기꺼이 이 작품을 찾아듣는 이유는 불굴의 의지를 갖고 인간적 고뇌를 정면 돌파한 한 예술가가 음악으로 전하고자 한 인류평화와 형제애의 메시지를 송구영신의 한결같은 소망으로 되새기고자 하기 때문일 것이다.

베토벤 / 교향곡 9번 ‘합창’ 리카르도무티 지휘 시카고 교향악단 &합창단
글쓴이

장옥님 칼럼니스트

장옥님 칼럼니스트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음악(작곡)과 음악학을 전공하였음. KBS FM라디오에서 다수의 클래식음악 프로그램 및 콘서트, 대중음악프로그램을 제작하였음. 저서로는 <위기의 음악가들, 2021년>, <KBS월드뮤직, 2006년(共著)> 이 있음.

댓글

    함께 읽을 글

    칼럼 전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