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사과, 가부장적 사고, 얼굴공개 이벤트

[박정인의 언론비평] 대선후보 부인 김건희씨 사안을 어떻게 볼 것인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 부인 김건희 씨가 26일 국민의힘 당사에서 자신의 허위 이력 의혹과 관련해 사과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 부인 김건희 씨가 26일 국민의힘 당사에서 자신의 허위 이력 의혹과 관련해 사과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김건희씨 사과, 아쉬웠던 4가지 포인트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부인 김건희 씨가 대국민 사과에 나섰다. 잘못을 인정하고 국민에게 사과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사실 많은 이들은 사과 내용보다 ‘김건희가 어떻게 생겼어?’에 더 주목한 이벤트였다. 어쩌면 김 씨나 윤 후보 캠프 입장에서 다행일 수 있다. 굳이 평을 하자면 이래저래 독특한 사과였다고 하고 싶다. 사과문에서는 아쉬운 점이 몇가지 발견됐다.

우선 누구한테 사과한다는 건지 불분명했다. 대국민 사과라는데 듣다보니 좀 이상했다. 사과문에는 ‘송구하다, 남편에게 미안하다, 내 탓이다, 가정사에 아픈 기억이 있다’, 이런 내용이 나열된 뒤에 비로소 ‘일과 학업을 함께 하는 과정에서 제 잘못이 있었습니다’라는 말이 나온다. 논문 표절의혹이나 전시경력 위조의혹에 대해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겠다는 건지 남편에 대한 미안함을 말하겠다는 건지 모호했다.

또, 일과 학업을 함께 하는 과정에서의 잘못을 사과하고자 했다면 ‘잘 보이려 경력을 부풀이고 잘못 적은 것도 있었습니다’라고 한 문장에 뭉뚱그려 넘기지 말았어야 했다. 국민은 뭘 잘못했다는 건지도 모른 채, 사과를 받아야 할지 말지 고민하게 됐다. 제기된 의혹들은 공소시효는 지났는지 몰라도 혐의로 보면 형법상 사기죄에 해당한다. 사익을 추구하려고 공정 경쟁을 저해하는 거짓말을 한 셈이다. 배고픈 자식 먹일 돈이 없어서 빵 한 조각 훔친 것과는 다르다.

이 부분은 윤석열 후보의 아내이기 때문에 더욱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지 않을 수 없다. 윤 후보가 검찰총장 시절 조국 법무부 장관 부인을 대학 직인위조, 자녀 인턴경력 조작 같은 혐의로 기소해 남편을 낙마시키고 아내를 구치소에 보낸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윤 후보는 그때 스스로 공직 후보 배우자 검증의 기준을 정해버렸다.

셋째, ‘남편이 대통령이 되는 경우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습니다’라는 문장이 마음에 걸린다. 당선되면 (부인 업무을 보좌하는) 청와대 제2부속실을 없애겠다는 윤 후보의 공약과 궤를 같이 한다. 지나치게 가부장적이다. 청와대 내실에서 살림만 하겠다는 뜻이라면 직장 다니면서 육아와 살림까지 하는 여성들은 자칫 ‘아내의 역할에 충실하지 않는’ 셈이 된다. 대통령 부인의 역할이란 무엇인가? 살림은 되고 외국정상 부인 접견은 안되는가? 남편이 가는 행사에 따라갈 수는 있고 혼자 행사에 참석하면 안되는가? 대통령 부인이 살림만 하면 국가적으로 낭비인데 굳이 그런 후보를 뽑아야 하나? 여러 의문이 든다.

다음 문제는 지적하기 조심스럽다. 어렵게 가진 아이를 잃었다는 고백. 응당 가슴 아파하며 위로를 드리지만 사과문에 들어갈 내용은 아니었고, 잘못에 대한 사과보다 앞에 나올 내용은 더구나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씻기 어려운 아픔이라는 점을 백번 공감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참모중 누군가가 동정표를 노려 넣자고 했다면 전술적 실수고, 본인이 직접 넣었다면 남편에 대한 미안함을 설명하려다가 슬픈 감정에 휩쓸린 거라고 추측한다. 그리고 이건 아내가 남편에게 미안할 일이 아니고 부부가 서로 다독이며 극복해야 할 아픔이다.

대통령 후보 부인 검증의 당위성

대통령 후보 부인에 대한 검증은 우리 정치문화에서는 비교적 생소하다. 그동안 여러 종류의 후보 부인 검증이 있었지만 이번처럼 집중적이고 요란하지는 않았다. 미국 사례를 하나 빌자면 빌 클린턴은 대선 선거운동을 하면서 “나를 뽑으면 (아내 힐러리가 워낙 뛰어나기 때문에) 미국이 유능한 대통령 두 명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가 언론의 핀잔을 들어야 했다. 주요 언론들은 “미국인은 대통령을 선출하지, 대통령 부인을 선출하지 않는다”고 클린턴에게 훈계했다.

우리나라 보수진영 일각에서는 바로 이 문구를 찾아내 후보 부인 검증 공세에 대한 방패로 삼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아전인수격이다. 미국 언론의 지적은 후보 부인은 검증을 안해도 된다는 게 아니라 아내에게 기대지 말고 빌 클린턴 당신이나 잘 하라는 개별적인 충고였을 뿐이다.

대통령 후보 부인 검증이 필요한 이유는 충분하다. 대통령 부인은 선출도 임명도 되지 않지만, 일종의 당연직/무보직 고위공직자다. 청와대에는 대통령 부인을 보좌하는 제2부속실이 있어서 비서관급 부속실장과 행정관들이 근무한다. 당연히 예산도 배정된다. 대통령 부인은 대통령과 함께 또는 혼자 외교활동을 벌이고, 특정 국책사업을 지휘하기도 한다. 이명박 대통령 때 한식 세계화 사업이 대표적이다. 정권마다 대통령 부인이 간여하는 사업에 배정하는 예산을 이른바 ‘영부인 예산’이라고 부르곤 했다. 각 부처가 청와대 눈치 보느라 영부인 사업에 예산을 펑펑 쓰는 걸 비꼬는 표현이었다.

일 말고도 대통령 후보 부인은 국정에 영향을 준다. 부인이 일으킨 문제는 어쩔 도리 없이 대통령의 문제가 돼 정권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 베갯머리 송사까지 안가더라도 대통령이 아내의 속삭임을 완벽하게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대하기는 어렵다. 한국 정치사에 수많은 사례가 있다. 대선후보의 아내가 훗날 잘못을 저지를 사람은 아닌지 국민이 알아야 하기 때문에 후보 부인 검증은 필요하다.

후보와 결혼하기 전 의혹은 검증대상에서 빼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동의하기 어렵다. 대통령 부인이 젊었을 때 논문을 표절했을 수 있다는 걸 아는 교육부 공무원이 논문 표절 근절 대책을 의욕적으로 청와대에 보고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힘 당사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서는 김건희 씨를 맞는 기자들. 김건희 씨는 사과문만 읽고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 않은 채 퇴장했다. 사진= 연합뉴스
국민의 힘 당사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서는 김건희 씨를 맞는 기자들. 김건희 씨는 사과문만 읽고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 않은 채 퇴장했다. 사진= 연합뉴스

의혹제기는 검증이 아냐...언론, 제대로 검증해야

시급한 건 검증 방법의 정비이다. 검증은 제기되는 의혹에 대해 객관적인 사실을 조사하고 증거를 찾아 사실 여부를 가리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정치권에서는 검증이라는 단어가 ‘의혹제기’와 거의 동의어로 쓰인다. 어떤 비리가 있는 걸로 보인다고 의혹을 제기하면 ‘검증 다 한거’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언론은 정치인의 의혹제기를 그대로 옮겨 쓰는 걸 기사라고 착각한지 오래다.

수비하는 쪽은 의혹을 받으면 증거를 찾아 반박을 해야 하는데 숨기기에 급급하거나 애매한 해명에 그친다. 김건희씨가 삼성미술관에서 기획전시에 참여했다고 허위 경력을 제출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을 때 야당의 해명은 ‘분당 삼성 플라자 갤러리를 삼성미술관으로 오기했다’는 것이었다. 삼성 플라자 갤러리를 삼성미술관으로 오기하기는 쉽지 않다. 의도였든 관행이었든 이유가 있었을텐데 그냥 오기였다고만 말하고 내버려뒀다.

워싱턴 포스트는 팩트체크의 원칙으로 ‘부정확한 발언을 한 것에 주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충 둘러대거나 어정쩡한 표현을 쓰는 사람을 주의하라는 말이다. 예컨대, 의혹을 받는 쪽에 “뇌물을 받았습니까?”라고 묻는데 “나는 평생 부정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하는 식이다. 뇌물을 안받았다는 건지, 돈을 받기는 했지만 뇌물은 아니라는 건지 부정확하다. 의혹을 제기하는 쪽으로 치면 ‘카더라’의 문제다. “직접 봤습니까? 누구의 증언입니까? 증거는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도 대충 둘러대고 만다.

부정확한 발언을 하는 속셈은 내 말이 나중에 거짓말로 판명되더라도 책임을 피하자는 것이다. 대중에게 고백하고 사과한 과거 잘못을 다시 반복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잘못을 애매하게 둘러대 은폐하는 건 그 잘못을 또다시 저지를 가능성을 열어두는 행위이다. 그렇기 때문에 검증과 관련해 언론은 비리의혹을 제기하는 쪽이든 방어하는 쪽이든 ‘부정확한 발언’이 ‘정확한 발언’이 될 때까지 계속 질문해야 한다.

닉슨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데에는 워터게이트 도청 자체보다는 자기는 몰랐다고 거짓말한 것이 더 영향을 미쳤다. 게리 하트가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중도 탈락한 것 역시 도나 라이스와 불륜을 저지른 것보다, 자기는 깨끗하다고 거짓말한 것이 치명적이었다. 우리도 그런 전통이 뿌리내려야 한다.

‘쥴리’ 공세는 잘못됐다...반말론은 도대체

이렇게 제대로 검증을 하자고 주장했으니 김건희씨에게 억울한 주홍글씨 하나만은 지워주고 마무리 해야겠다. 쥴리 문제 말이다.

우선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식 전야제 날 광주의 가라오케에서 이른바 ‘아가씨들’을 불러 술판을 벌였던 정치인이 쥴리를 비난하는 것은 모순이다. 뭐 묻은 개가 별것 안묻은 개를 나무라는 것과 같다. 쥴리는 야당 대선후보의 아내가 아니고 전직 유흥접객원일 수 있는데, 그렇다면 왜 자기가 비난을 받아야 하는지 분통을 터뜨리고 있을 것이다. 쥴리가 실제로 야당 대선 후보의 아내라면 그는 ‘불법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웬 난리야?’라며 억울해 할 수도 있다.

식품위생법 시행령 22조를 보면 ‘유흥종사자란 손님과 함께 술을 마시거나 노래 또는 춤으로 손님의 유흥을 돋우는 부녀자인 유흥접객원을 말한다’고 돼 있다. 유흥접객원은 손님이 원하면 같이 술을 마셔주고 춤을 춰준 뒤 보수를 받는, 대한민국 현행법이 인정하는 직업인 것이다. 정작 문제가 될 일은 남자 손님이 그 유흥접객원의 뜻과 무관하게 슬쩍 손을 잡거나 어깨에 팔을 올리는 행위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가 ‘쥴리는 김건희 맞을 뿐 아니라, 쥴리였을 당시 불법을 저질렀다’는 분명한 증거를 제시하기 전까지는 언론도 쥴리 논란을 보도하지 않는 것이 맞다. 저급한 관음증에 불과하다. 김건희씨를 둘러싼 여권의 공세는 성차별적 막말 경쟁이 돼버린 면이 있다. 여성정치인이 김씨의 학생 시절 사진을 들추며 용모 평가를 하는가 하면, 당 대표는 ‘김씨가 사석에서 윤 후보에게 반말을 한다더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연하의 배우자는 반말하면 안된다는 건지, 아내니까 반말 금지라는 건지, 반발이 왜 김건희 실세론의 근거인지 알 도리가 없다. 이건 아니다.

김건희 씨의 애매한 사과, 여성에게 손해다

사실 필자는 오래 전 김건희씨와 몇차례 조우한 적이 있다. 필자가 만났던 김건희씨는 유능한 전시기획자였다. 그가 코바나 컨텐츠라는 회사를 운영하면서 기획한 전시회들은 수준급이었다. 샤갈전, 마크 로스코전, 자코메티전은 전문가들도 고개를 끄덕인 전시였다.

필자는 그래서 김건희씨가 정당한 평가를 받았으면 한다. 사실이 아닌 의혹은 깨끗이 누명을 벗되, 잘못은 애매한 사과에서 그치지 말고 어떤 식이든 값을 치러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여자는 잘 할수록 튄다고 욕먹어’ 또는 ‘여자가 비즈니스 한다는 게 다 꼼수지 뭐’ 같은 오해만 쌓일지 모른다. 대한민국의 여성 꿈나무들에게 큰 손해다. 그런 사태는 막아야 한다.

글쓴이

박정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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