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이해하기
[박정인의 정치평론] 모두 불가능하다한 것을 실현한 지도자 정통 관료로 균형감 유지한 진보주의자 ‘원칙있는 패배’ 마다않은 신념의 소유자 민주당, ‘盧의 신념’ 유산으로 지키고 있나
나는 정치인 노무현을 직접 취재해 본 경험이 없다. 대통령 임기 중에는 대부분 해외에 나가 있었기 때문에 노 대통령에 대한 이해도가 일반인 수준을 크게 넘어서지 못한다. 이 글을 쓰겠다고 하니까 노무현 대통령과 길고 짧은 인연을 가진 사람들이 말렸다. 말투는 점잖았지만 뉘앙스는 “당신이 뭘 안다고 그런 글을 쓰냐”로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썼다. 우선은 서거 14주년을 맞은 지금도 정치권과 대중에 공유되고 있는 노무현 현상의 원천이 궁금했다. 체 게바라의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가 자본주의의 심장인 뉴욕과 LA 거리에서 불티나게 팔리는 것과 비슷한 어색함도 있었다. 두 번째 궁금증은 노 전대통령과 지금의 민주당은 어떤 연결 고리를 갖고 있을지였다. 노무현을 아는 사람들은 다 알 수도 있지만 나는 잘 모르겠기에 알고 싶었다.
첫번째 진보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은 그의 대통령 당선이 확정되는 순간에 생겼다. 옆 자리에 앉아 선거방송을 보고 있던 동료 기자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조용한 목소리로 “결국 해냈어.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는데 진짜 온거야”라고 자축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 동료는 호남 출신이고 DJ 정부를 오래 취재했었다. 그런데 왜 지금와서 노무현의 당선을 보며 결국 해냈다고 했을까? 의아했다.
나중에 그 동료의 설명을 들었다. 노 대통령이 민주와 진보를 한데 아우른 첫 번째 대통령이라는 논리였다. YS나 DJ는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며 민주화에 기여한 대통령이지만, 기본적인 성향은 보수라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3당 합당과 DJP 연합은 보수끼리의 짬짬이에 불과하다고 봤다.
노무현 대통령은 적어도 3당 합당에 대해 “이의 있습니다”라며 당을 뛰쳐나왔으니 일견 맞는 말 같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는 시장과 복지 같은 이슈를 보는 시각이 YS, DJ와 확연히 달랐다. 진보 진영에게 진정한 진보 정권의 출발은 노무현 시절이었던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인기는 퇴임 시점보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높아가는 분위기다. 서거 14주기에는 여야 정치권이 일제히 노무현의 유산을 말하며 칭송하기에 바빴다. 여론조사를 하면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 1, 2위를 오르내린다. 이유가 뭘까? 최초의 진보 대통령이라는 이념 프레임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어쩌면 ‘국민이 안 될거라고 단념했던 것을 이뤄냈기 때문’ 아닌가 추측해본다.
출발은 지역주의와의 대결이었다. 해묵은 영호남 대립 구도를 깨겠다며 민주당 간판으로 부산에서 연거푸 세 번을 출마해 낙선했다. 그렇게 국회의원이나 시장도 못했는데 하물며 대통령이라니.
모두가 포기한 것을 해낸 노무현
2002년 대선이 막바지를 향해 달릴 때까지도 많은 분석가들은 DJP 연합 같은 지역연대 없이 진보 대통령이 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믿었다. 노무현/정몽준 연대가 선거 전날 깨졌을 때 이회창 후보측 참모들이 하루 이른 축배를 들었던 이유가 그것이다. 결과는 반대였다. “이런 날이 올줄 몰랐다”는 동료 기자의 표현처럼 많은 이들이 단념했던 것을 노무현이 이뤄냈다.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되게 만든’ 사례는 취임 후에도 이어졌다. 노무현 정부 초대 법무장관에 여성이자 판사 출신 강금실을, 행정자치부 장관에 남해군수 출신 김두관을 임명한 것이 우선이다.
노 대통령이 2004년 10월 31일 제주도를 찾아가 4.3 사건에 대해 정부 책임자 입장에서 직접 사과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제주도민들은 귀를 의심했다. 누가 대통령이 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지레 포기했던 일이었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의 유명한 구절이 생각난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공화국이 생기고, 경제가 성장하고,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됐지만 노무현 이전까지 우리를 에워싼 알은 견고했다. 부와 권력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다간 뼈도 못추린다는 경험이 켜켜이 쌓여 굳은 껍질이었다.
그 딱딱한 알 껍질을 깰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해준 이가 노무현 대통령이다. 물론 과정은 쉽지 않았다. 껍질을 깨다 번번이 다쳐야 했다. 처음 해보는 일이다 보니 서툴기도 했다. 함께 망치를 들었던 동료들 중 여럿이 포기하고 물러섰다. 하지만 결국 알은 깨졌고, 국민은 알 바깥의 세상에 눈을 떴다.
계산적인 균형감을 지닌 노무현
노무현 대통령에게서 돋보인 두 번째 장점은 그런 진보적인 파격을 보완하는 ‘계산적인 균형감’을 갖췄다는 점이었다. 초대 내각에서 강금실, 김두관으로 대표되는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인사들 라인업은 사회분야에 국한됐다. 경제부처에는 김진표, 윤진식, 박봉흠을 비롯한 정통 경제관료 출신들이 포진했다. 초대 총리가 고건이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권력기관을 개혁하고, 지방분권을 확대하고, 서민복지를 강화하는 일들에는 혁신을 추구할 인사들을 배치한 반면, 온 국민이 먹고 살 파이를 키우는 일은 전문 관료들에게 맡긴 것이다. 이런 균형감은 아마도 노 대통령이 갖고 있던 실용주의적 정치관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생각된다. 대표적인 경우가 한미 관계이다.
노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 미국을 방문하면서 ‘자주적 대미관계’를 주장했을 때 보수적인 외교가는 경악했다. 이젠 큰 일 났고, 한미관계는 나락으로 떨어질 거라고 걱정했다. 실제로 첫 한미 정상회담은 잘 되지 못했다.
하지만 정작 노무현 정부의 한미 관계는 실용 그 자체였다. 보수가 ‘자주적 한미관계’에 경악했던 것 못지 않게 진보는 이라크 파병 결정에 경악했다. 한미 FTA를 체결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아무리 지지층의 반대가 거세더라도 필요성과 전문가들의 판단이 뒷받침하면 얼마든지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고 정책을 밀어부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실용주의를 가장 명쾌하게 대변해주는 말이 이것 아닌가 싶다. “정치는 기본적으로 조삼모사입니다. 같은 말을 하면서도 국민을 기분 좋게 하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2003년 3월 7일 장관,위원장, 청와대 수석비서관 연수회)
조삼모사라니? 국민을 속이라는 말인가 싶지만 본질은 소통에 있다고 본다. 국민이 (또는 지지자들이) 반대하는 정책을 펴야 할 때도 신념이니 정의니 하는 관념적 주장만 고집하지 말고, 반대를 누그러뜨릴 명분과 실리를 잘 찾아 주라는 뜻 아닐까? 진보적인 정책으로 국민이 ‘신명나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 같으면 국익을 위한 보수 정책을 슬쩍 끼워 넣어보고, 보수 정책 때문에 국민이 화를 내면 슬그머니 방향을 틀어 보라는 뜻으로 읽힌다. 마키아벨리 수준의 실용주의 정치다.
관념적 진보주의를 싫어한 노무현
노 대통령과 인연이 긴 한 지인은 그가 가장 싫어했던 것이 ‘관념적 진보주의’라고 했다. 왜 진보를 해야 하는지 고뇌와 통찰은 없이 진보라는 이상 자체에만 몰두하는 데 대한 경계였다. 노 대통령이 지향했던 진보의 정의는 그의 어록에 흔히 등장하는 거친 표현에 녹아있는 것 같다.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더불어 사는 사람 모두가 먹는 것, 입는 것 이런 걱정 좀 안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 좀 안 보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좀 신명나게 이어지는, 그런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1988년 초선의원 시절 대정부 질문 중)
앞서 밝힌 대로 내가 노 대통령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마음 먹었던 이유 중 하나는 지금의 민주당에 있어서 노무현은 어떤 인물일까 하는 궁금증이었다. 정치인 노무현은 사실 대통령을 해봤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인기가 떨어져 자기가 만든 당을 걸어 나와야 했고, 정권 재창출을 하지도 못했고, 더구나 검찰의 뇌물 수사와 관련해 비극적인 마지막을 맞아야 했다. 친노는 ‘폐족’이라는 소리까지 들으며 정치 무대에서 사라지는 듯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등장으로 친노가 친문이라는 새로운 분파로 부활했을 뿐 아니라 노무현은 당의 정신적 지주 자체가 됐다. 당내에서 신성의 영역에 올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당 조차도 민주당을 비판할 때 “노무현 정신은 이랬는데 지금 민주당은 왜 그 모양이냐”고 힐난한다. 그게 나도 궁금하다.
노무현 정신을 신념으로 갖고 있나
궁금한 건 하루 하루 자꾸 늘어간다.
“원칙있는 승리가 첫 번째고, 그 다음이 원칙있는 패배, 그리고 최악이 원칙없는 패배”라고 말한 노 대통령은 민주당이 소수 정당에게 기회를 준다며 여야 합의도 없이 선거법을 개정하고는 스스로 위성정당을 만들어 약속을 깨버린 걸 보고 뭐라고 했을까?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을 꿈꾼 노 대통령 앞에 조국 전 장관이 찾아가 “우리 딸 때문에 의전원 입시에서 다른 사람이 떨어진 적이 없다”고 변명하면 어떤 반응이 나왔을까?
5공 청문회에서 전직 대통령에게 명패를 내던지며 고함치던 초선의원 노무현은 국회 상임위 회의 도중에 휴대전화로 코인 거래를 한 초선의원 김남국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코인 투자하는 국민이 6백만 명이 넘기 때문에 김 의원에 대한 공격이 ’마녀사냥’”이라고 쉴드 친 동료 초선의원에 대해서는?
알을 깨는 혁신의 용기와 실용주의적 정치라는, 어찌보면 상충될 것 같은 가치를 병행해 실천했던 노 대통령의 유산은 민주당 내에서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유산을 다 복원하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다른 유산이라도 찾아서 어떻게든 제대로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게 뭔지 노 대통령 14주기를 맞아 박광온 민주당 원내대표가 잘 언급했다.
“민주당은 노무현의 유산을 잃어가고 있다. 높은 도덕성은 민주당의 정체성이고 도덕성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 것이다.”
도덕성 복원이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전당대회에 돈봉투 만들어 오는 사람, 여기저기 나눠 주는 사람, 그걸 받아 챙기는 사람이 수두룩한 정당에게는 더욱 그럴 것이다. 민주당은 노무현 대통령이 14년 전 자신이 추구한 도덕성이 훼손됐다고 판단했을 때 어떤 선택을 했는지 명심하기 바란다. 나는 그 선택이 정치적이든 인간적이든 옳지 않았다고 믿지만 선택에 실린 신념의 무게 앞에는 정중하게 고개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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