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모가디슈’, 깻잎 식사에 숨겨진 코드

[박기찬의 말랑고소한 북한 이야기] 너무나 현실적인 남북관계 서사 코드 남북의 깻잎 식사, 시선 마주치지 않는 관계 ‘통일’ 결과 보다 ‘평화’ 과정이 중요한 시대

영화 '모가디슈' 스틸컷
영화 '모가디슈' 스틸컷

코로나 속 최고의 극장영화, 모가디슈

2021년 최악의 코로나 상황에서 최고의 극장 흥행 영화는 ‘모가디슈’였다. 이 영화는 몇 가지 점에서 그냥 ‘잘 했다’는 수준을 훨씬 뛰어 넘었다. 먼저, 코로나 상황에서도 OTT(Over The Top) 플랫폼이 아닌 극장 개봉에 과감하고 고집스럽게 도전하여 성공한 점은 특별히 주목할 만하다.

또한, ‘모가디슈’는 100% 해외 로케이션으로 촬영됐다. 이를 통해 역동적인 군중 장면과 자동차 추격 액션을 탁월하게 표현했다. 세계 정상급 수준의 제작 시스템으로 칭찬받은 이유다. 나아가 내용적으로는, 남북관계 이슈라는 만만찮은 소재를 섬세하면서도 독특하게 파고들어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던졌다.

영화 '모가디슈' 포스터
영화 ‘모가디슈’ 포스터

외부 내부, 잘 짜여진 3층 갈등 구조

이 영화의 스토리는 잘 짜여진 세 겹의 갈등 구조를 기반으로 한다. 첫째는 남북 가족들과 이들의 목숨을 노리는 내전 상황 간의 대립구조이다. 혼돈의 아프리카 소말리아에서 남한과 북한의 대사관 가족들은 함께 힘을 모아 그들을 둘러싼 내전의 소용돌이에 맞서 싸우게 된다.

둘째, 남한과 북한의 대사관은 UN가입을 위해 합법 및 비합법적 수단을 동원해 서로 치열하게 대립하고 경쟁한다. 같은 민족으로서 부끄러울 정도로 무분별하게 벌어지는 남북 간의 외교 전쟁이다. 셋째, 남과 북의 대사관 내부에는 각각의 총책임자인 대사(김윤식, 허준호 분)와 안기부 보위부 등 정보라인 참사관(조인성, 구교환 분) 사이에 지속적인 갈등과 다른 접근방법이 부닥쳐 나간다. 영화 전반의 주류를 형성한 첫번째 갈등, 즉 모가디슈 탈출 과정에서도 두 번째, 세 번째 갈등 또한 함께 얽혀서 긴박하게 전개된다.

‘모가디슈’는 남북 관계를 다루는 독특한 방식으로 주목을 끌었다. 북한 배역들의 대사를 모두 자막 처리한 것이다. 관객들이 조금이라도 못 알아들을 것에 대비한 배려에서 출발한 것이겠지만, 그 이상의 다른 의미가 느껴진다.

류승완 감독은 언론 시사회에서, “극중 배경이 되는 소말리아 모가디슈가 여행 금지 국가라 가지 못하는데, 북한의 평양도 마찬가지다. 이번 영화에서 북한을 접근할 때 온전히 타국으로 인지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북한말을 자막으로 표시해야 관객들이 인물에 대해 이해하기도 빠를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YTN 인터뷰에서)

남북 가족의 깻잎 식사, 그리고 절제된 공항 이별

역사는 현재 관점에서 새롭게 투영된 과거라는 말처럼, 이 영화는 이역만리에서 벌어진 남북한 사람들의 만남과 헤어짐을 현재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있다. 그 첫 번째 예로서 가장 상징인 것은 남북한 가족의 깻잎 식사 장면이다.

깻잎을 음식으로 먹는 민족은 전세계에 우리 밖에 없다. 그래서 깻잎 반찬은 두 가족이 철저히 같은 민족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남한 대사 부인이 깻잎을 젓가락으로 떼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북한 대사 부인이 이를 잡아주는 장면은 두 가족의 협력과 동포애를 상징한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두 사람은 서로 도와주기는 하되 절대 눈을 마주치거나 웃지 않는다.

JTBC 방구석1열에 나온 영화 '모가디슈' 한 장면
JTBC 방구석1열에 나온 영화 ‘모가디슈’ 한 장면

온갖 죽음의 고비를 다 넘기고 무사히 이집트 공항에 도착한 두 가족이 헤어지며 작별 인사를 나눈다. 절대 절대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 애를 쓰며 최대한 건조하고 어색하게, 남한의 한신성 대사(김윤식 분)는 복잡한 감정을 억누르는 목소리로 “우리는 이만... 여기서 작별인사를 합시다”라고 말할 뿐이다. 남과 북의 가족들이 함께 생활하는 동안 있었던 일에 대하여, 남과 북 모두 뭔가 의심받고 조사받으며 크게 다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컸을 것이다.

실패한 ‘코리아’와 성공한 ‘모가디슈’의 이유

모가디슈 탈출과 거의 같은 시기인 1991년에 벌어진 실화, 남북탁구 단일팀 이야기를 다룬 2012년도 영화 ‘코리아’는 정 반대의 분위기로 재구성됐다. 남북한 젊은 선수들의 우정어린 뒤섞임과 남북 남녀 선수의 로맨스까지 픽션으로 꾸며서 스토리에 입혀졌다. 우리는 하나라는 동포애와 민족애가 더욱 증폭되었고, 마지막 헤어짐은 눈물의 신파로 클라이맥스를 이룬다.

실화 보다 과장된 ‘코리아’가 흥행에 성공하지 못한 반면, 실제 사건 보다 절제되고 건조해진 ‘모가디슈’는 오히려 성공했다. 실제 당시 모가디슈에선 남북한 두 가족은 12일 동안 서로를 인정하며 사이좋게 지냈으며, 북한 대사관 텃밭에서 가져온 무로 총각김치까지 만들어 먹었다. 카이로 공항에서 헤어질 때도 포옹과 악수로 “통일되면 꼭 다시 만나자”고 하면서 뜨거운 인사를 나누었다고 한다. 그 사건 이후, 본국으로 돌아간 두 대사는 다행히 전혀 불이익을 받지 않았으며, 오히려 승진도 하고 무사히 퇴직도 잘 했다고 전해진다.

체제우월성·민족애 보다 보편적 휴머니즘

류승완 감독은 ‘모가디슈’를 절제된 거리두기 방식으로 표현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젊은 세대들이 북한을 다른 국가로 인지하는 경우가 있어서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중략) ‘모가디슈’를 작업하면서 북한에 대해 접근하는 이전 세대 방식, 즉 통일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다루고 싶었다.”(YTN 인터뷰에서)

영화 '모가디슈'의 스틸컷
영화 ‘모가디슈’의 스틸컷

오마이뉴스 이희동 기자는 지난 2021년 8월 15일자 영화리뷰에서 ‘남북한 신파가 사라진 시대의 영화’로 ‘모가디슈’를 소개했다. “기성세대들은 우리의 소원이 통일이라고 외치지만 이는 MZ세대들에게 뜬금없는 이야기일 뿐이다. 왜 우리가 같은 민족이라고 꼭 북한과 통일해야 하는가? 통일 대신 평화적인 공존은 안 되는가? (중략) 모가디슈는 바로 이 지점에서 기존 남북관계의 전형성을 탈피하고 있으며 시의성을 가지고 있다.”

‘체제우월성 경쟁’ 보다 ‘남북 공동의 실리’가 더 중요해진 시대가 다가왔다. ‘민족애’ 보다 ‘보편적 휴머니즘’이 더 강조될 수 밖에 없고, ‘동질성 회복’ 보다 ‘이질성 수용’과 새로운 ‘시너지 모색’이 더 현실적인 해법이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들은 우리가 ‘통일’이라는 결과 보다 ‘평화’의 과정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이를 차근차근 실천해 나가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아닐까.

글쓴이

박기찬 북한학 박사

필자인 박기찬은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후 미국 워싱턴대 MBA를 마친 금융인으로, 글로벌하고 미래지향적 시각에서 한반도 이슈에 접근하는 북한연구자이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개발협력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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