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공’ 논란의 승자는 누구일까?

[박정인의 언론비평] 현실과 먼 ‘멸공’ 주장에 정치권·언론 ‘알레르기’ 새로운 시대에 맞는 논쟁으로 나아갈 수 없었나

SNS에서 '멸공' 주장으로 논란을 일으킨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사진= 연합뉴스TV 캡쳐
SNS에서 '멸공' 주장으로 논란을 일으킨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사진= 연합뉴스TV 캡쳐

멸공에 대한 부질없는 기억

스산한 바람이 불거나 구름이 낮게 깔린 날이면 우리는 종로 2가의 지하 다방에 모였다. 머리카락이 목덜미와 귀를 덮는 장발들 서넛이서 은하수 담배를 뻑뻑 피워대며 DJ가 틀어주는 트윈폴리오의 ‘하얀 손수건’이나 레드 제플린의 ‘스테어웨이 투 헤븐’을 감상하곤 했다. 누군가가 다리를 꼰 채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얘기하면 마주 앉은 친구는 다방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트로츠키와 체 게바라의 일생을 설파했다.

우리가 앉아 얘기를 나누던 다방의 구석 쪽 벽에는 공공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제목은 멸.공.통.일. 친구 한 명이 뭔가를 적기 위해 공중전화 박스에서 집어온 종이는 국가안전기획부가 발행한 간첩신고 안내 팜플렛이었다. 여기에도 멸공은 어김없이 한 자리를 차지했다.

멸공.

오래간만에 추억을 부르는 단어를 다시 만났다.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덕이다. 북한 정권이 싫어서 올렸단다. 시도 때도 없이 미사일을 쏴 대서 기업에 투자가 안 들어온다는 이유였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게 국제 금융시장에 엄연히 존재하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멸공은 아니라는 사실은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상식이 된지 오래다. 북한 정권을 ‘멸’하려는 시도는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재앙을 부를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멸공이 소용없어진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남쪽이 일궈낸 압도적인 부와, 북쪽이 키운 위협적인 군사력에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는 가난했고 허약했다. 자칫하면 적화통일 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실존했다. 두려움의 이면에는 너 죽고 나 죽자는 각오로 똘똘 뭉쳐 한번 붙으면 북진통일이 가능하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여기서 멸공이 나왔다.

하지만 그 뒤로 남쪽은 너무 잘 살게 되다보니 저 멀리 연평도에 북한의 포탄 몇 발만 떨어져도 온통 난리가 날만큼 안보위협에 예민한 사회로 변모했다. ‘너 죽고 나 죽자’고 싸우기에는 잃어버릴 게 너무 많아졌다. 더구나 스타워즈에 나오는 행성 폭파용 빔 같은 걸로 한순간에 ‘멸’하지 않는 한 북한 정권은 감당하기 어려운 군사적 위협이 돼버렸다.

그래서 우리 정부는 진보든 보수든 북한에 대해 당근과 채찍을 병용하고, 무력보다는 외교력을 이용해 어떻게든 북한을 정상국가로 만들어 보려고 애쓰는 것이다. 속으로는 당장 평양 주석궁에 크루즈 미사일이라도 쏘고 싶어 하는 강경파 관료나 정치인들조차 자기 속마음을 공개적으로 내세우거나 정책에 반영하지는 않는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정용진 부회장의 멸공은 설익었고 가벼웠다. 철없는 부자의 배부른 취미생활 같았다. 인플루언서가 됐다고 우쭐해서 뭔가 그럴듯한 멘트를 내놓으려다가 헛 다리를 짚은 냄새도 났다.

하지만 그냥 SNS 해프닝으로 지나갈 뻔했던 멸공 논란은 정치권과 언론이 알아서 키워주는 바람에 대나무 죽순 자라듯 훌쩍 커져버렸다. 진보 言政 연합군과 보수 言政 연합군 간의 교전이 치열하게 진행됐다.

논란을 키운 정치권과 언론들

정용진의 멸공을 빌려간 쪽은 국민의힘이었다. 윤석열 후보가 대형마트에서 멸치와 콩을 사는 모습을 SNS에 올리면서 이른바 ‘멸콩’ 릴레이가 시작됐다. 나경원, 김진태 전 의원에 최재형 전 감사원장까지 뒤를 이었다.

국민의힘이 멸콩 릴레이에 나선 것은 무슨 의미였을까? 정권을 잡으면 멸공을 안보 정책의 기조로 삼겠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은 폐기하고 무력 통일이라도 하자는 건가? 설마 그럴 리는 없을 거라고 믿는다. 쇼는 멸공으로 하지만 정책은 현실적이라는 게 정답일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의힘과 윤석열 캠프는 홍보 따로 정책 따로 인 조직이거나 안보 공약과 관련해 국민을 속인 셈이다.

결국 멸공을 매개로 보수 표심을 얻어 보겠다는 계산일텐데 가벼워도 이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다. 거대 정당의 대선 후보와 중진들이 한 기업인의 취미성 SNS 코멘트를 패러디해 표 장사에 나선 셈이었다.

정치에 아무리 은유와 해학이 필요하다고 해도 안보문제를 희화화하는 건 곤란하다. 본질과의 간극이 너무 크다. SNS에서 회자되는 이슈에 올라 타 해시태그를 붙이고 패러디하는 행동은 미투 운동 같이 혼자서는 목소리를 내기 버거운 개인들이 서로 연대해 힘 있는 상대에 맞서기 위해 쓰는 것이다. 거대 정당이 쇼하는데 쓰는 게 아니란 말이다.

여권은 정용진 부회장의 멸공 주장에 화를 냈다.

조국 전 장관과 황교익 씨가 정 부회장에 대한 비난 글을 올린데 이어 현근택 민주당 선대위 대변인을 비롯한 당내 인사들이 스타벅스 불매운동에 동참했다. 윤호중 원내대표는 야권을 겨냥해 ‘일베 놀이’라고 공격했다. 당 안팎의 주요 인사들이 총출동해 비난 대오를 형성했다.

멸공을 하자는데 왜 화를 낼까? 멸공이 적절치 못하다고 생각하면 ‘멸공보다는 남북 화해와 평화 프로세스가 필요하다’고 하면 될 일이었다. 스스로 주장하는 대로 대다수 국민이 멸공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애써 화내며 반박할 필요도 없었다. 스타벅스 커피 안사마시겠다고 너도나도 손들 시간에 이재명 후보의 대북정책 기조는 왜 멸공이 아닌지 자세히 알리는 게 우선이었다.

민주당은 멸공 논란에 화를 냄으로써 운동권 마인드를 못 벗은 티를 들켜 버렸다. 독재 시절 억울하게 공산당 누명을 쓰고 목숨까지 잃어야 했던 민주화 운동 세대의 기억 탓일 수도 있겠다. 반공, 멸공 같은 말이 돌기 시작하면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알레르기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바뀐 지 오래다. 87년 체제 이후 진보세력이 벌써 세 번째 정권을 잡고 있다. 진정한 평화와 안정을 이루는 데는 멸공이 답이 아니라는 말만으로도 충분하다. ‘불매운동 자제해야 한다’는 같은 당 정성호 의원의 의견이나, ’적당히 좀 하라‘는 진중권 교수의 비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언론의 접근방식도 아쉬웠다. 이 건이 아니더라도 애초에 언론이 SNS 컨텐츠를 퍼 나르는 방식을 이해할 수가 없다. 이제는 기성 언론이나 SNS나 다 똑같은 미디어이다. SNS 글을 옮겨다 보도하는 건 한겨레가 조선일보 인기기사를 퍼다 조선일보에 이런 기사가 났다고 보도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언론이면 남의 글 퍼 나르지 말고 자기가 취재한 정보를 보도해야 한다. 기자가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다가 유명인이 SNS에 글을 올리자마자 낚아채 기사를 쓰고는 특종했다고 좋아하는 행태는 곤란하다는 말이다.

보수와 진보 언론은 멸공 논란을 그냥 중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각자의 의중을 듬뿍 실어 기사를 생산했다. 조선일보는 야당의 멸콩 릴레이와 스타벅스 불매운동에 대응하는 바이콧 운동, 그리고 정 부회장에 대한 검찰의 통신조회 같은 이슈를 부각시켰다. 반면 한겨레는 불매운동, 이사회의 침묵, 노조의 비판, 그리고 오너리스크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정치권과 언론은 정용진의 멸공을 각자 주장을 포장하기 위한 선물 포장지로 이용한 셈이었다. 선물 포장지는 선물을 받자마자 예쁘다 소리 한번 하고 뜯어 버리는 소모품이다. 멸공이 시대착오적이라는 주장은 많이 나왔지만 왜 시대착오적인지에 대한 설명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다. 멸공이란 포장지는 그 안에 든 진보 보수, 여야의 표계산을 잠시 가리는데 쓰인 뒤 휴지통에 버려지는 존재에 불과했다.

정용진, 잃은 게 없었다

이렇게 언론과 정치권으로 파장이 번지니까 정용진 부회장은 결국 논란을 일으킨데 대해 사과했다. 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논란의 끝에 전리품을 챙겨간 사람은 정 부회장 뿐인 것 같다.

우선 SNS 인플루언서로서 인지도 올리는데 톡톡히 덕을 봤다. 그동안 그가 누군지 잘 몰랐다가 이 참에 ‘우리 편이네’ 또는 ’쿨 하네’하고 팬이 된 인스타그래머들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 신세계 그룹의 인지도도 따라서 올라갔다고 한다. (필자도 스타벅스 코리아가 신세계 계열사인 걸 이번에 알았다.) 스타벅스는 불매운동에 반대하는 바이콧 운동이 맞불을 놔줬고, 그 와중에 가격 인상까지 했는데도 여전히 성업 중이다.

언론 보도 중에는 재벌 오너가 기업 실적과 주가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등의 비난도 많았다. 주주들 가슴 철렁할 얘기를 번번이 트위터에 올리는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에 빗대기도 했다. 그런데 신세계 주가는 지난 10일 6.8% 급락한 뒤로 사흘 연속 상승해 급락 이전 가격에 근접했다. 요즘 코스피의 심한 변동성을 감안하면 결과적으로 별 일 없었던 셈이다.

오너가 ‘잘못된’ 발언을 해서 주가가 떨어졌고 이래서 ’오너리스크가 문제’라는 상당수 언론의 논조는 비약이 심했고 시장적이지 못했다. 주식거래는 손실위험을 전제로 하는 투자행위이다. 그 위험에는 CEO의 발언도 포함된다. 멸공 발언 때문에 손해를 봤다고 비난하는 건 자유지만 정 부회장의 SNS 이력이 짧지 않은 이상 기존 주주들이 아무 것도 몰랐던 억울한 피해자라고 보기는 어렵다.

시장에는 또 멸공발언으로 주가가 급락한 틈에 주식을 사 이득을 본 새 주주도 있다. 언론은 누구 편을 들어야 할까? 기존 주주? 새 주주? 아니다. 언론은 시장의 편을 들어야 한다. 시장의 안정과 원활한 가동을 위해 이 참에 CEO의 SNS 활동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분석하는 기사를 내보내는 정도면 훌륭할 것이다.

SNS의 영향력이 막대해진 만큼 기업인을 비롯한 인플루언서들의 SNS 활동에 대해 여러 각도에서 조명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글 한줄 말 한마디가 기성 언론보다 더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잦아졌기 때문이다. 튀는 행태나 쾌락적 가벼움에 더 눈길이 갈 수 밖에 없는 SNS의 특성 때문에 다수의 정보와 의견이 한데 모여 집단 지성을 이룰 거라는 기대가 빛 바래는 면도 걱정이다.

국민들도 ‘의외의 소득’ 올렸지만

하지만 그런 문제들보다 더 큰 이익은 우리 모두가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수단을 얻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모기 소리만도 못했던 개인들의 목소리가 이제는 상황에 따라 메이저 언론의 목소리보다 더 크게 들릴 수도 있는 세상이다. 그렇다면 조금 부작용이 있더라도 그 안에서 인플루언서와 이용자들이 서로 마음껏 목소리를 내도록 두는 게 맞는 것 아닌가 싶다.

공인의 언행에 대한 시각도 그렇다. 공인의 정의가 세계에서 가장 폭넓은 우리나라이긴 하지만 불법적인 발언이 아닌 이상 사기업의 CEO가 SNS에 몇 마디 하는 것까지 일일이 조심해야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동의하지 않는 주장을 비판하는 것은 그 자체가 표현의 자유지만, 내가 불편하다고 집단의 힘을 빌어 남에게 공인이란 재갈을 물려 입을 다물게 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는 행위이다.

정부와 정치권과 언론이라는 기존 시스템이 할 일은 우선 사회구성원이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환경을 열어주는 것이다. 다음으로, SNS 상에서 진실과 거짓을 판별해야 할 때, SNS 상의 논란이 범죄나 물리적인 갈등으로 번질 우려가 있을 때, 그리고 SNS보다 깊고 세밀한 정보가 필요할 때 진실감별사이자 중재자, 정보제공자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멸공 논란에 대해 언론과 정치권이 했어야 할 일은 정용진 따라하기나 정용진 때리기가 아니었다. 해묵은 멸공이 모처럼 재등장한 김에 대선후보 긴급 SNS 안보 토론회를 열어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안보 정책방향을 논의하는 건 어땠을까? 하다못해 70년대 멸공 포스터들을 보여주면서 이런 때가 있었고 우리가 얼마나 변해왔는지를 되돌아보는 SNS 전시회라도 했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글쓴이

박정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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