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위법이 뭐예요?”
[장 PD의 클래식 한담(閑談)] 클래식 음악에 진심이 되어갈 즈음 해보는 질문
지난 칼럼에서 헨델의 음악과 관련하여 ‘대위법 음악에서 화성 음악으로 옮겨가는 음악양식의 변화’를 잠깐 언급한 바 있다. 사실 이 문제는 클래식음악을 이해하는 데 있어 한번은 꼭 짚고 넘어가야할 중요한 사항이다. 서양음악의 역사에는 큰 전환점이 된 시기가 몇 차례 있었고, 특히 중세와 르네상스를 거쳐 바로크까지의 수백 년 동안은 서양음악의 토대가 만들어지던 시기인데, 이 시기 음악발전을 이끈 여러 요인 중에서 특히 음악의 수직적 구조(텍스쳐)의 변화가 바로 ‘대위법에서 화성법으로 전환’이기 때문이다.
전문적인 용어이긴 하지만 애호가로서 보다 깊이 있는 감상을 위해서는 대위법, 다성음악, 화성법 같은 용어의 개념만이라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선 용어정리부터 하자면, 다성음악과 대위법음악이 혼용되어 쓰이고 있는데, 그 둘은 같은 개념이며, 대위법對位法은 다성多聲(Polyphony)음악을 작곡하는 방법과 규칙이다. 그래서 통상 다성음악을 대위법 음악이라고도 한다.
다성음악은 두 개 이상 여러 개의 성부로 이루어진 음악을 뜻한다. 쉽게 떠올리자면, 중창곡 - 2중창, 4중창, 아카펠라 같은 노래들이다(다성음악은 성악곡부터 시작되어 기악음악으로 확대됨). 그렇다면 다성음악이 나오기 전엔 단 하나의 성부만 있는, 즉 단선율로 된 음악이 있었다는 말이 된다.
서양음악사의 원천, 단선율 음악 ‘그레고리오 성가’
서양음악사에는 지고至高의 단선율 음악이 있다. 기록으로 남겨진 가장 오래된 음악이자 서양음악의 출발점이 된 음악. 바로 ‘그레고리오 성가’(Gregorian chant)인데, 이는 교황 그레고리오 1세가 그의 재위시절(590~604년)에 당시까지 구전되어 전해져온 3천여 곡의 음악- 유대교의 음악유산을 포함하여 로마와 갈리아, 비잔틴 지역의 방대한 음악을 모아 채보, 정리해 공식적인 성가로 집대성한 것이다. ‘네우마’라는 독특한 기보법에 의해 기록되었고,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성서 다음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문헌이다.
이후 그레고리오 성가는 중세 로마가톨릭교회 미사의 전례음악과 수도원의 성무일과에 쓰이는 노래로 채택되어 계승되어 왔다. 교회음악은 예배 분위기를 고양시키고 신도들로 하여금 경건한 마음으로 의식에 참여케 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므로, 이 성가들은 낭송에 가까운 자연스러운 선율 흐름을 갖고 있다. 라틴어 가사, 무반주의 남성 목소리에 의한 단선율의, 리듬과 박자의 분절이 없는, 교회선법의 음계로 되어있다.
교회음악에서 그레고리오성가를 전례음악으로 사용하던 중 9세기 중반이 되면 이 단선율 음악의 연주법에 작은 변화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성가의 선율을 꾸미거나 길게 늘여 부르고, 더 나아가 이 성가를 ‘정선율定旋律’이라 하고 여기에 다른 성부인 ‘대위성부對位聲部’를 새로 붙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정선율과 똑같이 움직이는 병행진행unison의 대선율對旋律을 붙였지만, 차츰 정선율과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자유로운 움직임을 갖는 형태로 변화를 주었다. 이렇게 대위성부를 하나 둘씩 추가하면서 ‘다성음악’이 탄생된 것이다.
독자적인 성부들의 어울림을 理想으로 한 다성음악
‘대위법Contrapunctus’은 바로 정선율에 대한 대위성부를 만드는 방식들을 모아 정리한 음악이론이다. 대위성부는 독자적인 선율을 갖되, 수직적인 음정 관계에선 정선율을 방해하지 않는 음들로 만들어야 한다는 규칙이다. 이를테면, 정선율과 잘 어울리는 음(서로 잘 어울리는 음정은 자연적인 배음倍音 관계의 음들이다), 피해야할 음(불협화음)이 있다. 그 외에 성부진행의 금지사항과 예외적 허용에 관한 지침들도 있다. 그렇다고 이 규칙들을 엄격하게만 적용한 것은 아니다. 정선율과 대응시 불협화음을 경과음으로 사용케 함으로서 선율이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는 여지를 주었다.
3성부 이상의 다성음악을 만들 경우에는 정선율 뿐 아니라 제1과 제2의 대선율 간에도 서로 어울리는 음과 불협화적인 음을 고려해야하는 등, 성부가 늘어날수록 대위법의 규칙을 적용하자면 여간 까다로운 작업이 아니었을 것이다. 비단 음악을 만드는 쪽의 문제만은 아니고, 성부가 많아질수록 듣기에도 힘들다는 원성이 나올 법 했다. 급기야 너무 많은 성부를 가진 음악은 가사전달을 불분명하게 한다며 교회음악에 다성음악을 금지하자는 주장까지 나오게 되었다. 그럼에도 당대 뛰어난 음악가 팔레스트리나(Palestrina, 1525~1594년)는 6성부로 된 <교황 마르첼리우스 미사곡>을 만들어 교회음악에서 사라질 뻔한 다성음악을 지켜냈다. 이 미사곡은 종교적인 경건함 속에 절제와 초월적 명상을 불러일으키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독자적인 성부들의 어울림을 이상적인 음향으로 간주한 다성음악은 인본주의의 르네상스 정신과도 맥이 닿아 이 시대에 크게 성행하였다. 그리고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 보다 자유롭게 세속적인 희로애락과 자연 묘사 같은 시적 정서를 표현하며 ‘마드리갈’로 대표되는 다성부의 성악곡 양식을 발전시켰다. 그런데 ‘달도 차면 기운다’는 말처럼, 문예사조의 흐름을 들여다보면 싹이 터서 성장하고 크게 꽃이 핀 뒤에 시들어버리는 ‘차고 기우는’ 현상이 되풀이됨을 볼 수 있다.
시대가 바뀌어 바로크시기(1600~1750년)가 되면서 각종 악기들의 기능이 고도화되며 기악음악의 시대가 도래 했다. 이 시대의 기악곡은 ‘지속저음(Basso Continuo)’이라는 바로크 특유의 음향을 들려주는데, 지속저음은 일정 악기들이 저음(베이스)부의 화음을 지속적으로 연주하는 것이다. 그리고 상성부에선 저음부 화음에 어울리는 선율을 펼쳐냄으로써 음악에 화성감을 부여했다.
다성음악이 수평적 흐름을 중시했다면, 바로크 음악은 지속저음으로 인해 수직적인 울림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 시대에 강화된 왕권을 상징하듯 음악도 화려하고 장대한 스케일의 음향을 선호하고, 서로 이질적인 요소들을 대비시킨 극적 효과와 역동성을 강조했다. 후기 바로크 시대에 들어서면 오케스트라도 제법 구색을 갖추게 되어 신포니아와 협주곡 같은 합주형태의 음악양식이 속속 등장하게 된다. 음악가들도 새로운 악곡양식에 맞는, 선율의 선명성과 확장성에 더 용이한 화성의 기법을 적극 시도하며 화성음악의 발전을 촉진시켰다.
그 대세가 기울어졌을 뿐, 대위법양식의 음악이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작곡가들은 음악작법의 기초를 다지기 위해 대위법을 익히면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창작에 활용했다. 20세기 이후 오늘날까지의 현대음악 작곡가들도 새로운 기법과 함께 대위법을 즐겨 사용하고 있다. (다음 글에서는 화성음악에 대해 이어가도록 하겠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