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남’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이대남, 왜 이재명에서 윤석열로 돌아섰을까
요즘 ‘이대남’(20대 남자)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이는 대학에서 설득이론을 연구하는 필자의 호기심을 끈다. 최근 여러 대선 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지지율이 급상승한 원인이 이대남의 압도적인 지지로 드러난 반면, 이재명 후보는 이대남으로부터 전 연령대 중 가장 낮은 지지율을 기록한 것이다. 무엇이 이들의 마음에 이토록 극적인 변화를 만들어낸 것일까?
이대남의 마음에 영향을 끼친 것은 윤 후보가 페이스북에 연속적으로 내놓은 단문 형식의 공약으로 분석된다. 특히 지난 1월 6일의 ‘성범죄 처벌 강화, 무고죄 처벌 강화’와 8일 ‘여성가족부 폐지’, 9일 ‘병사 봉급 월 200만원’이 파급력이 매우 컸다. 특히 앞의 두 개는 성평등을 지향하는 제도에 대한 반감을 드러낸 것이어서 놀랍다.
이대남들의 의식은 어떤 것일까
왜 이들이 영향을 미쳤을까? 이대남은 성평등의식이 낮은가? 아니다. 이대남은 여러 가치관 조사와 여론 조사에서 다른 연령대의 남성에 비해 상당히 높은 성평등의식을 갖고 있음이 드러나 있다.
예를 들어 남성 육아, 여성 직장상사 수용, 여성의 주도 수용, 여성의 흡연 수용, ‘남자는 여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관념, ‘여성에 대한 대우가 남성에 비해 불평등하다’는 인식 등에 있어서 매우 평등지향적이다. 오히려 그들은 성차별에 반대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하는 세대라 할 수 있다. 다만 놀라운 점은 이 같이 높은 성평등의식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반(反)페미니즘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이대남은 스스로를 ‘남성 마이너리티 정체성 집단’, 즉 ‘차별받는 약자’로 규정하고 있다. 여성을 우대하는 불공정한 제도를 지속적으로 도입하는 페미니즘에 의해 자신들이 역차별 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페미니즘을 ‘기울어진 운동장’의 시정 노력으로 보지 않고 끊임없이 남성을 역차별하는 ‘불공정한 담론’의 원천으로 규정한다.
이대남은 아버지 세대가 누리던 가부장적 ‘남성 기득권’을 결코 누리지 못한다. 남자라는 이유로 혜택을 받은 적이 없다. 그런데 왜 가부장 체계에서 여성들이 보았던 피해의 보상을 위해 자신들이 불이익을 받아야 하는지 몹시 억울해 한다.
그들의 억울함은 또래 여성에게도 향한다. 여성들은 군대도 가지 않고 취업시험 준비를 먼저 하는, 그리고 여성할당제의 혜택을 가지는 집단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여권은 많이 신장되어 이제는 더 이상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다. 2002년 조사 때 20대 남성의 62%가 여성 할당제에 찬성했으나, 2018년에는 20대 남성의 68%가 여성할당제를 역차별이라고 응답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한편 그들은 전통적 남성상의 변화를 역동적으로 경험한 세대이다. 그래서 정체성 확립에 다소의 어려움을 겪은 세대이기도 하다. ‘강한 남성성’은 날이 갈수록 지워지면서 ‘당당한 여성’의 가치상은 강조되어 왔다. 강한 태도를 취하면 마초나 남성우월주의자의 혐의를 받으니 강하게 나갈 수도 없었다.
진보적이면서도 반페미니스트적인
그러나 이 같은 역차별 의식이 있다고 해도, 성평등의식이 높은 데다 안보를 제외하면 경제, 복지 등에서 정치적으로도 진보적인 20대가 보수적인 정당의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왜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리고 진보적인 정당인 여당과 이재명 후보에 비우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역시 그들이 가진 페미니즘적 정책에 대한 반감으로 분석된다. 우선 이재명 후보는 본인이 페미니스트 유튜브 채널에 출연한 바 있고, 정부와 민주당은 이대남의 시각에서 볼 때 매우 친 페미니스트적인 입법 및 법 집행의 행보를 취해 왔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18년 청년 창업 지원 사업인 ‘청년창업사관학교’의 선발 심사에서 여성에게 가산점을 주기로 결정한 바 있고, 2018년 12월에 ‘여성폭력방지 기본법’을 통과시켰으며, 2019년 1월 기업이 자율적으로 여성 임원 비율 목표를 정하고 이를 달성하면 정부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여성 고위관리직 목표제’를 도입하여 정부가 여성 임원 비율이 높은 기업에 공적연금의 기금을 집중 투자하는 방안을 여가부가 추진한 바 있다. 이 같은 일련의 조처들이 여당과 이재명 후보를 페미니즘 정당 및 후보로 각인시켰던 것이고 이것이 이 후보의 지지층이 확장되지 않고 박스권에 갇혀 있게 하는 이유 중 하나라 볼 수 있다.
“공정성을 지키지 않았다” 반발
그런데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20대 남성들에게 이같은 일들이 여성에게 유리한 조처를 취하는 사례로만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넓게 ‘공정성이 지켜지지 않는’ 사례로 간주되고 있다는 점이다. 20대 남성들은 여성을 위한 정책 자체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기회의 공정과 균등이 지켜지지 않는 것에 대해 반발하는 것이다.
이대남은 여성을 우대하는 정책에 역차별 당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불공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들은 단지 공정한 세상을 원할 뿐 혜택을 바란 적도 없다고 외친다. 이대남에게는 결과의 평등보다 과정의 공정성이 더욱 중요하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민주당은 계층간 혹은 대학간의 결과의 격차라든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격차를 해소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래서 정부, 여당은 이대남과 지향점이 맞지 않는다. 이대남은 ‘공정하기만 하면 돼, 왜 한쪽을 밀어주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이대남은 공정을 중요시하게 되었는가?
이들은 전 세계적인 저고용시대와 저성장시대에 태어났으며 IMF 경제위기와 세계 금융 위기에 유년기와 성장기를 보냈다. 이들은 높은 교육 비용을 지불하면서 긴 시간을 들여 미래를 준비하여 왔지만 맞닥뜨린 것은 비정규직이나 알바라는 매우 불안정한 일자리인 것이 현실이다.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성인으로서 독립적인 삶을 영위하고 싶은데 그럴 수 있는 기회가 가장 적은 시대를 살고 있다.
일자리는 적고 취업준비생은 많은 혹심한 경쟁 상황에서 그들은 학력과 스펙 경쟁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수능 때부터 한 문제의 맞고 틀림에 따라 가고자 하는 대학이 달라지는 것을 체험하였고, 대학 생활이나 사회 생활을 하면서 치러야할 많은 시험, 면접 등의 관문에 있어서 아주 작은 차이가 당락을 결정짓는다는 체험을 되풀이하면서 ‘제발 공정한 기회가 부여되고 공정한 평가가 적용되기’를 소망하는 입장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대로, 문재인 정부 들어 취해진 일련의 입법 및 법 집행 조처들은 기회의 공정과 평가의 공정성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여기에 최근 들어 윤석열 후보가 sns에 올린 글들은 이대남을 대리만족 시켜 주는 것들이었던 것이다.
무고죄 처벌 강화에서는 남성을 가해자로만 바라보는 시각을 교정해 주는 통쾌함이 있어서 좋고, 여성가족부는 이대남이 보기에 말만 성평등이지 실제로는 여성 우대정책, 즉 역차별 정책을 펴는 기관으로 인식되어 있는데, 이를 폐지한다고 하니 반갑게 느껴진 것이다. 그동안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막혀 하고 싶은 말을 못했는데 이것을 대신 해 준 것이다. 이것은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 당시 홍준표 후보를 이대남이 지지했던 이유가 바로 그의 사이다 발언이었던 것을 보아도 명백하다.
대리만족에 따른 지지일 뿐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알아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이는 윤후보에 대한 지지로 선회하였다기보다 그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데 대한 지지일 뿐이라는 점이다. 이대남이 실제로 윤석열 후보를 공정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그 근거이다.
청년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만큼 정치에 큰 관심이 없다. 그들은 이념적이지 않다. 그들은 정당 중심으로 사고하지 않는다. 지역 중심으로도, 후보 중심으로도 사고하지 않는다. 오직 정책 중심으로 바라볼 뿐이다. 그들이 정책 사안 별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전형적인 ‘스윙보터’(swing voter)인 점은 과거의 지지 철회 사례를 보면 분명하다.
실제로 윤석열 후보의 장모와 부인 등의 은행 잔고 증명 위조 의혹이나 주가조작 의혹, 허위 이력 기재 등이 터졌을 때는 그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었고, 또 sns 개 사과 사진 게재 때에도 그를 떠났었다.
‘설득이론’으로 접근한다면
그렇다면 이대남을 설득할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프레임이론’의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국어사전에는 설득을 ‘상대편이 이쪽 편의 이야기를 따르도록 여러 가지로 깨우쳐 말함’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것이 일반인이 설득에 대해 생각하는 바이다. 그러나 설득을 이처럼 ‘상대방을 자신의 생각에 따르도록 깨우쳐 말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결코 상대를 설득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상대에게도 나와 똑같은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방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해서는 안 되고, 자신의 생각을 전하되 반드시 상대의 사고의 틀, 즉 상대의 프레임에 맞추어서 전달해야 한다. 그래야 상대가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대남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이대남의 프레임에 맞추어서 전해야 하는 것이다. 즉 기회 균등과 공정의 프레임에 맞게 설득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 정치권은 평등을 생각하고 이를 보완하려고 한쪽 성에 대한 우대책을 실시하려 했다. 그러나 그것은 이대남에게 옳지 않다. 마찬가지 이유로, 그것이 자신에게 유리한 정책이라 하더라도 단지 한쪽 성에게 무엇인가를 해 주겠다고 하는 공약의 발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단지 일시적인 위안만 줄 뿐이다.
그리고 이대녀 등 다른 젠더의 표를 잃을 수도 있다. 남녀 대결구도로 가면 안 된다. 더구나 선거는 나라를 바꾸기 위한 일이다. 득표하여 집권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윤석열 후보의 경우, 이번에 얻은 지지를 놓치지 말고 유지해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청년층에 대한 이해와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진정성은 일관성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청년은 도와주는 대상이 아니다
이재명 후보의 경우에는 우선 청년기본소득 같은 공약을 통해 청년들을 도와주려 하고 있는 점이 보인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는 현재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청년을 도와주는 대상, 혹은 우대해 주는 대상으로 프레임화 하기 때문이다. 이대남은 그런 평등에는 관심이 별로 없다. 절차의 공정함을 보장받는 것을 훨씬 더 선호한다. 요컨대 이재명 후보는 청년을 도와준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모든 국민에 공정하다는 프레임에 넣어 전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대남은 평가 방식 혹은 기회의 공정을 공평한 분배, 즉 결과의 평등보다 중요시한다. 그러니 불평등의 더 큰 원인이 처음부터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 즉 잘못된 환경이나 시스템에 있다고 보고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정부‧여당의 평등 프레임은 이대남의 공정 프레임과 맞지 않는다. 그것은 그것 대로 묵묵히 시행을 하되 그 길을 자꾸 가르치려 들지 않아야 한다. “너희들의 공정은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 공평과 평등이 필요해”라고 가르치려 들지 않아야 한다. 공평과 평등을 공정의 프레임에 넣어서 설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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