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 ‘제2의 나달, 나달 키즈’ 넘친다
[최지윤의 스페인 이야기] 스페인, 어떻게 테니스의 천국이 됐을까
한국에 불고 있는 테니스 ‘열풍’
최근 한국에서는 ‘테린이’라는 단어가 유행할 정도로 테니스 열풍이 불고 있다고 들었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등 각종 SNS에도 값이 상당한 테니스복과 라켓을 갖추고 찍은 사진을 올리는 등 새로운 취미 생활을 즐기는 MZ세대의 모습을 멀리서도 보게 된다.
한국에서 골프는 워낙 두터운 팬층을 보유하고 있는 스포츠였지만, 테니스는 대중화된 스포츠가 아니었다. 그러나 요즘은 수요가 많아져 테니스장 예약하는 게 어려울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진입 장벽이 높았던 스포츠였지만, 팬데믹 이후 새로운 것을 찾아 도전하고자 하는 사회적 트렌드에 맞춰 특히 2030세대가 많이 배우려고 한다. 특히 근사한 피케 셔츠와 테니스 스커트를 입고 코트에 나가면 특별한 기분을 느끼고, 덤으로 건강관리까지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테니스는 세계에서 상금이 가장 많이 걸린 스포츠 중 하나로 꼽힌다. 세계 4대 메이저 테니스 대회인 호주오픈, 롤랑가로스, 윔블던, US오픈에서 우승하면 천문학적인 상금을 얻게 된다. 우승, 준우승한 선수뿐만 아니라 예선 1회전에서만 승리해도 1천만 원이 넘는 상금을 받는다. 4대 메이저 대회의 남자 경기는 3세트를, 여자 경기는 2세트를 이겨야 승리하는 간단한 게임처럼 보이지만, 한 경기가 평균 2시간 이상 지속되고,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다가도 마인드 컨트롤을 하지 못하면 곧바로 역전되는 아찔한 스포츠이기도 하다.
심지어 한 포인트가 경기의 흐름을 완전히 바꿀 수 있을 만큼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어서 관중들은 숨을 죽이고 지켜보게 된다. 힘껏 치는 스트로크는 물론, 상대가 꼼짝하지 못하게 만드는 발리와 드롭샷, 로브는 우아한 예술과도 같다.
필자는 공부에만 치중하는 교육 대신, 지덕체(智德體)를 고루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신 부모님의 교육 철학 덕에 어릴 때부터 여러 예체능을 접했다. 특히 테니스 매니아인 아버지 손에 끌려 야간자율학습과 보충수업으로 더 바빠야 할 고등학교 시절, 새벽 일찍 일어나 테니스 레슨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찬바람으로 귀가 에일 듯 추운 겨울에도, 가만히 있어도 땀이 주룩주룩 흐르는 여름날에도 예외는 없었다. 당시 테니스가 한국에서 그리 인기 있는 스포츠가 아니었던지라 친한 친구나 지인이 모두 놀랄 정도였다. 자녀가 입시를 앞두고 있는데 맘 편히 테니스를 가르치는 부모가 한국에 몇이나 될까.
그러나 이렇게 테니스를 배운 것을 부모님께 감사하게 될 정도로 나중에 큰 도움이 되었다. 외국 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 언어의 장벽을 스포츠로 무너뜨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스페인에 거주하면서 테니스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테니스의 천국’ 스페인...모두 나달처럼?
테니스는 스페인에서 대중화된 스포츠라 코트를 매우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약도 아주 쉽다. 테니스 코트를 예약하는 특별한 앱이 있고, 자신의 테니스 실력을 입력하면 비슷한 수준의 사용자를 추천하여 함께 운동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갖추어져 있다. 필자는 스페인 테니스 코트에 처음 간 날을 잊을 수 없다. ‘흙신’이라고 불리는 라파엘 나달의 나라답게 클레이 코트에서 선수처럼 경기하는 사람이 많았다. 서브 속도는 너무 빨라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또 자기 키만 한 라켓을 시원하게 휘두르며 가족과 함께 테니스를 치는 어린아이도 흔히 볼수 있었는데, 한국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진풍경이었다.

스페인 인구는 4천 6백만명으로 한국보다 약간 적다. 그러나 스페인 왕립 테니스 연맹의 2021년 자료에서는 비교적 자주 테니스를 치는 동호인의 수를 약 300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국의 정확한 동호인 수에 대한 공식적인 통계는 없지만, 테니스 전문 사이트 테니스피플(tennis people)의 기사에서는 월 1회 이상 테니스 치는 인구를 157만 명 정도로 추측한다. 스페인 테니스 인구는 어림잡아도 한국의 두 배 정도 많은 셈이다.
또한, 스페인 왕립 테니스 연맹에 등록된 정식 선수는 2021년 9월 기준 8만 318명인데, 코로나 팬데믹에도 전년 대비 15% 증가한 수치이다. 스페인 전역의 테니스 교실은 언제나 대기자 명단이 있을 정도로 수강생이 가득하다. 국제테니스연맹(ITF)의 2021년 보고서에 따르면 스페인의 테니스 코치 시스템은 골드 등급에 해당하는데, 이는 검증된 코치진이 매우 많다는 의미이다. 특히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역은 겨울에도 온화한 기후로 훈련하기에 최적의 환경이라 노박 조코비치와 같은 세계적인 선수들이 훈련하기 위해 머물기도 한다.
스페인에서 가장 인기 많은 스포츠는 단연 축구이다. 그런데도 테니스가 어떻게 스페인에서 큰 인기를 얻을 수 있었을까? Kantar-Tns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스페인 내 스포츠 시청률은 축구가 1위, 테니스와 F1(포뮬러원)이 공동 2위를 차지한다. 스페인의 테니스 열풍은 196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TV가 본격적으로 보급되던 시기였고, 또한 그랜드 슬램 우승을 다수 차지한 ‘마놀로 산타나’라는 전설적인 선수가 등장하며 테니스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기 시작했다.
이후 세계랭킹 1위를 차지했던 후안 카를로스 페레로, 카를로스 모야를 비롯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플레이어가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2005년 라파엘 나달이 등장해 스페인 테니스는 유례없는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현재 ATP(남자 테니스 선수) 순위를 보면, 100위 안에 스페인 남자 선수는 무려 열 명이나 된다. WTP(여자 테니스 선수) 100위 안에 드는 여자 선수는 가르비녜 무구루사를 포함해 네 명이다. 스페인보다 인구가 훨씬 많은 영국, 프랑스, 독일 선수의 수는 그리 많지 않다는 점에서 스페인이 테니스 강국임을 시사한다.
성공한 플레이어들을 보며 자란 ‘나달 키즈’는 이제 어느덧 세계 무대에 설 준비가 되어 있다. 30대 중반의 나이인 나달의 뒤를 이어 스페인 테니스의 맥을 이어가려는 것이다. 나달은 잦은 부상으로 여러 대회에 참가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했지만, 테니스의 전설답게 강한 정신력과 노련한 경기 운영으로 그랜드 슬램 우승 21회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에 도전 중이다. 한편, 스페인은 현재 ‘포스트 나달’의 등장으로 국민의 기대가 가득하다. 카를로스 알카라스는 18년 8개월의 나이로 나달이 가지고 있던 그랜드 슬램 10승 세계 최연소 기록을 깼고, 지난해 US오픈에서는 치치파스를 이겨 8강에 안착한 최연소 선수로 기록되었다.
한국에도 테니스 애호가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이렇게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테니스의 진가가 한국에 알려지고 있어서 테니스 애호가로서는 매우 뿌듯하다. 그러나 테니스는 최소 몇 개월 이상 꾸준히 배워야 게임이 가능해서 다른 일반적인 스포츠처럼 단기간에 실력을 끌어올리기가 매우 어렵다. 감히 ‘가장 실력이 늘지 않는 스포츠’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레슨이 없는 날에도 코트에 틈틈이 가서 랠리 연습을 해서 감을 잃지 않아야 한다. 인내력과 성실함이 절실히 필요한 스포츠이다!
테니스 불모지인 한국에서 이덕희는 1980년 4개 메이저 대회에 모두 출전한 첫 번째 선수였다. 그녀는 당시 아시아 선수로서 처음으로 US오픈 16강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후 2000년 이형택이 US오픈 16강에 안착했고, 2018년 호주오픈에서 조코비치를 꺾고 4강에 오른 정현은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최근 크게 활약하는 권순우까지 ATP 100위 안에 드는 선수가 계속 등장하는 것은 참 어렵고도 대단한 일이다. 체계적인 시스템과 좋은 환경이 마련되어 앞으로 테니스 꿈나무들이 멋지게 성장할 수 있는 테니스 선진국이 되길 바란다.
요즘 코트와 코치진이 부족해 동호인이 테니스를 맘껏 즐기지 못한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안타까운데, 이 열풍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도록 스페인을 비롯한 테니스가 먼저 대중화된 국가의 사례를 참조해 시급히 인프라를 개선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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