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공동개최, 스페인-포르투갈 어떤 관계?

[최지윤의 스페인 이야기] 2030 월드컵 공동개최국 선정돼 이베리아반도를 지킨 가톨릭국가 과거엔 서로 앙숙...지금은 긴밀해져 국민성도 다르고 음악도 달라 ‘이국적’

이베리아반도의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지도. 포르투갈은 남한 면적과 유사하며 인구는 약 1천만 명이다. 남한 면적의 다섯 배의 크기인 스페인의 인구수는 대한민국과 비슷하다. 사진=WorldAltas
이베리아반도의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지도. 포르투갈은 남한 면적과 유사하며 인구는 약 1천만 명이다. 남한 면적의 다섯 배의 크기인 스페인의 인구수는 대한민국과 비슷하다. 사진=WorldAltas

800년간 이슬람에 지배받아

국제축구연맹(FIFA)은 월드컵 100주년을 맞아 2030년 월드컵을 3대륙 6개국에서 개최한다고 최근 발표했다. 유럽의 스페인과 포르투갈, 아프리카 모로코에서 주된 경기가 개최되며, 역사상 첫 번째 월드컵의 개최국이었던 우루과이와 남미 축구 강호 아르헨티나와 파라과이에서 일부 경기가 치러질 예정이다. 월드컵 개최가 확정되자, 이베리아반도의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분위기는 한껏 고조되었다. 권위주의 정권의 몰락 후 1986년 유럽연합(EU)에 동시에 가입한 두 국가는 지금까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위치한 이베리아 반도에는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전해진다. 이 지역은 켈트, 로마, 게르만, 서고트족의 시대를 거쳐 8세기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무어인에 의해 통치되었고, 이후 800년 동안 이슬람 왕조의 통치를 받았다. 그러나 코바동가 전투를 시작으로 이베리아 반도 전역에서 이슬람 세력을 무너뜨리기 위한 레콩키스타(국토수복운동)가 일어났다. 이를 계기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점점 영토를 회복하며 국가 기틀을 마련해 나갔다.

포르투갈은 오늘날 수도인 리스본이 아닌 포르투 지역을 중심으로 포르투갈 백국(백작령)을 세우고, 남쪽으로 영토를 넓혀갔다. 당시 포르투갈 백국은 독립성을 일부 인정받았으나 여전히 레온 왕국의 속국에 불과했다.

야속하게도 포르투갈 백국은 공식 국가로 인정받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숱한 고난을 견뎌야 했다. 그러던 중 포르투갈의 백작이었던 아폰수 엔리케스(1109~1185)는 오우리케 전투에서 무라비트 왕조를 상대로 큰 승리를 거뒀다. 그는 자신을 아폰수 1세라고 칭하며, 포르투갈의 독립을 요구했으나 쉽지 않았다. 가톨릭의 권한이 막강했던 시대인 만큼, 아폰수 1세는 여러 수도원을 건립하고 기독교를 위해 맞서 싸우겠다는 의지를 교황청에 강력하게 표출하였다. 결국 포르투갈은 1179년 알렉산데르 3세 교황으로부터 독립 국가로 인정받게 된다.

식민지 제국 건설 열올리다 쇠락

역사적인 측면에서 보면,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15세기부터 대서양을 중심으로 어업과 해상 무역의 규모를 키워갔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일찍이 대서양의 무역풍 방향을 파악했고, 직접적인 동방 무역을 위해 신항로를 개척했다. 포르투갈은 든든한 재정 지원을 통해 아프리카 희망봉을 발견했고, 바스쿠 다 가마로 하여금 인도 항로를 개척토록 했다. 1415년에는 현재 스페인의 아프리카 영토인 세우타 정복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식민지 제국 건설에 나섰다. 이에 질세라 에스파냐의 이사벨라 여왕의 지원을 받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1492년 신대륙을 발견하면서, 스페인은 본격적으로 식민지 개척에 힘쓰게 된다.

‘세상의 끝’이라고 불렸던 유럽의 최서단 호카곶(Cabo da Roca).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펼쳐진 대서양의 모습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장엄하다. 사진=위키피디아
‘세상의 끝’이라고 불렸던 유럽의 최서단 호카곶(Cabo da Roca).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펼쳐진 대서양의 모습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장엄하다. 사진=위키피디아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나라는 영토 분쟁에 휘말렸다. 식민지 개척에 열을 올리던 스페인이 새로운 영토를 발견하고, 소유권을 주장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는 1479년에 맺어진 알카소바스 조약에 반하는 일이었다. 포르투갈의 주앙 2세는 이에 강력히 반발하고, 교황청에 이의를 제기했다. 당시 교황이었던 알렉산데르 6세는 스페인 출신이었다. 그는 스페인에 유리하도록 상황을 중재하려고 했다. 이를 받아들일 수 없던 주앙 2세는 더 나은 대안을 요구했고, 결국에는 대서양 한가운데를 중심으로 동쪽 영토는 포르투갈이, 서쪽 영토는 스페인이 통치한다는 ‘토르데시야 조약’이 맺어졌다. 이에 따라 브라질은 포르투갈의 소유가 되었고, 다른 아메리카 대륙은 스페인이 차지하게 되었다. 이후 영국과 프랑스 등 서양 열강이 식민지 개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유럽 강국의 판세가 급변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제국은 영원할 것 같았지만, 무리한 식민지 개척과 전쟁, 국내 경제 상황 악화 등의 이유로 두 나라는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 전쟁

지금이야 우호적인 국가로 여겨질 만큼 사이가 좋으나, 역사적으로 앙숙이었던 시기도 있었다.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사실 포르투갈은 60년 동안 스페인의 지배를 받은 적도 있다. 1578년 포르투갈의 세바스티앙 1세는 모로코 지역을 정복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는데 알카세르 키비르 지역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스물네 살에 불과했던 젊은 왕은 후대를 이을 자식이 없던지라 그의 삼촌이었던 추기경 엔리케가 왕위에 대신 올랐다. 그러나 2년여 만에 엔리케마저 세상을 떠나자, 왕위를 이을 혈통을 찾아야만 했다. 혈연상 가장 가까운 사람은 스페인의 펠리페 2세였기에 포르투갈은 아무런 반기를 들지 못한 채 나라가 스페인에 흡수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통합된 이베리아 연합이 만들어졌고, 스페인 왕이 포르투갈의 왕이 되었다. 포르투갈은 외교권을 잃은 채 스페인을 위해 외국과 싸우느라 정작 본인들의 식민지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정치적, 경제적 위기를 맞게 되었다. 포르투갈 내 상황은 위태로와지고, 날이 갈수록 스페인이 포르투갈을 핍박하는 상황이 펼쳐지자, 포르투갈에서는 왕정을 복원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스페인의 세력이 약해진 틈을 타 포르투갈은 독립 전쟁을 일으켰고, 이 전쟁은 28년간 계속되었다. 스페인은 포르투갈의 독립을 막으려 갖은 수를 썼지만 포르투갈의 독립 염원을 꺾을 수는 없었다. 포르투갈은 영국의 동맹 지원을 받고, 프랑스의 외교적 도움을 받아 결국 1668년 리스본 조약을 통해 독립을 인정받게 되었다.

언어· 음악 등 문화에서 유사한 면 많아

지리적으로, 역사적으로 얽히고설킨 두 나라 간에는 언어와 문화적 공통점도 있다. 스페인에는 스페인어 외에 까탈루냐 지역에서 사용되는 까딸란, 바스크 지역의 바스크어(에우스케라), 그리고 갈리시아 지역의 갈리시아어(가예고)가 사용된다. 포르투갈과 국경을 맞닿은 스페인 북서부에서 사용되는 갈리시아어는 포르투갈어와 매우 흡사하다. 문법적, 음성학적으로 차이가 있으나 통역 없이도 서로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다. 언어학자들은 중세 시대에 갈리시아 북부와 갈리시아 남부(현재 포르투갈 영토)에서 같은 언어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갈리시아 왕국이 카스티야-레온 왕국에 통합되고, 나머지 지역은 포르투갈로 독립하면서 언어가 달라졌다고 추측하고 있다.

정열이 느껴지는 스페인의 플라멩코(위)와 검은 원피스를 입은 여인의 서글픔이 느껴지는 포르투갈의 파두(아래). 사진=madridpourvous.com, buendiatours.com
정열이 느껴지는 스페인의 플라멩코(위)와 검은 원피스를 입은 여인의 서글픔이 느껴지는 포르투갈의 파두(아래). 사진=madridpourvous.com, buendiatours.com

유사한 전통 음악도 있다. 스페인의 ‘플라멩코’와 포르투갈의 ‘파두’는 우리나라의 ‘한’과 유사한 정서를 풀어낸 음악이다. 플라멩코는 유랑 생활을 하는 집시들의 자유로움과 애환이 녹아있는 장르이고, 파두는 드넓은 대서양을 마주하고 있는 포르투갈 사람들의 숙명과 애환을 풀어낸 음악이라는 면에서 닮았다.

그러나 곡이 주는 느낌 자체는 완전히 다르다. 플라멩코는 한국 판소리 명창의 거칠고 깊은 목소리가 느껴지는 가락이 있고, 삶의 애환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는 특징이 있다. 기타 연주와 더불어 힘찬 박수 소리와 댄스까지 곁들여진 플라멩코는 한 편의 뮤지컬 같다. 반면, 파두는 잔잔한 기타 연주와 눈물이 저절로 흐를 것 같이 구슬프고 애절한 목소리로 부른다는 특징이 있어 정적인 느낌이 강하다.

대서양 탓일까...국민성에도 뚜렷한 차이

전반적인 나라 분위기나 국민성에는 차이가 있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겠으나 ‘정열의 나라’라고 불리는 스페인 사람은 호탕하고 유쾌하며, 수다스러운 면이 있다. 반면 포르투갈 사람은 다소 조용하며, 서글서글하고 친절한 이미지가 강하다.

스페인 국경을 넘어 포르투갈로 넘어가는 순간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도 달라진다. 스페인의 건축물은 어디든 보수가 깔끔하게 되어 있어 정갈한 매력이 있는데 포르투갈은 인위적으로 꾸미지 않아 소박하고 정겹다. 오래되어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지만, 오히려 그 자체로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

스페인(왼쪽)과 포르투갈(오른쪽)의 소도시 모습. 오래된 건물도 보수, 유지를 부지런히 하는 스페인의 시가지는 깔끔함이 느껴진다. 반면, 포르투갈에는 페인트칠이 벗겨진 오래된 건물이 많아 그 도시만의 특유한 분위기와 소박함을 느낄 수 있다. 사진=최지윤
스페인(왼쪽)과 포르투갈(오른쪽)의 소도시 모습. 오래된 건물도 보수, 유지를 부지런히 하는 스페인의 시가지는 깔끔함이 느껴진다. 반면, 포르투갈에는 페인트칠이 벗겨진 오래된 건물이 많아 그 도시만의 특유한 분위기와 소박함을 느낄 수 있다. 사진=최지윤

두 나라의 경제 상황도 비슷할까? 대항해 시대에는 역사의 중심에서 전 세계를 호령했던 두 나라지만, 지금은 EU국가 월 평균 소득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 국가로 분류된다. EU의 월 평균 소득은 2302유로(한화 약 330만 원)인데, 스페인은 1822유로(260만 원), 포르투갈은 이보다 훨씬 적은 1154(165만 원)유로에 그친다. 이뿐만 아니라, 스페인 언론에 따르면 이베리아 반도는 유럽 다른 지역보다 노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EU의 평균 연령은 2.5살이 높아졌는데 포르투갈은 4.7년, 스페인은 4.3년 높아졌다.

얽히고설킨 복잡한 역사를 지닌 두 나라는 잠시 응축된 감정을 뒤로 하고, 나라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했다. 1986년 EU가입 후 두 국가 간의 무역량이 늘어났다. 1995년부터는 국경을 없애고 더욱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두 나라는 정치적, 상업적, 문화적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우호협력조약을 맺기도 했다.앞으로 2030년 월드컵 공동 유치를 통해 양국 간의 실질적인 발전 방향을 모색할 예정이다.

시시각각 다변화 하는 국제 정세 속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손을 맞잡고 있다. 그들의 선조는 위험을 무릅쓰고 ‘어두운 바다’라고 불리던 드넓은 대서양을 정복한 위대한 사람들이다. 이 도전 정신을 이어 나간다면, 두 나라 모두 한 단계 도약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해 본다.

글쓴이

최지윤 칼럼니스트

최지윤 칼럼니스트는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을 전공했고, 국외 한국어 교육 사업을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인 ‘세종학당(멕시코)’과 스페인 살라망카대학교 한국학과에서 교원으로 일했다. 현재는 스페인어권 국가의 한국어 교육 전문가가 되기 위해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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