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달의 특별함... ‘고국에 대한 봉사’와 기아차

[최지윤의 스페인 이야기] 스페인 사람들이 나달을 사랑하는 진짜 이유

나달의 21번째 메이저 대회 우승이자, 두 번째 호주오픈 우승이었다. 경기는 5시간 24분 동안 진행되었고,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시상식 때 의자에 잠시 앉아 있어야 할 정도로 피곤했다”고 밝혔다. 사진=atptour.com
나달의 21번째 메이저 대회 우승이자, 두 번째 호주오픈 우승이었다. 경기는 5시간 24분 동안 진행되었고,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시상식 때 의자에 잠시 앉아 있어야 할 정도로 피곤했다”고 밝혔다. 사진=atptour.com

테니스 선수로서는 은퇴를 고려해야 할 서른다섯의 나이에 라파엘 나달은 테니스 역사에 길이 남을 기록을 세웠다. 페더러, 조코비치와 함께 그랜드 슬램 20번 우승 타이기록을 가지고 있었지만, 1월30일(현지시각) 호주오픈에서 21번째 우승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며 테니스의 황제로 자리매김했다. 우승이 결정되자, 자신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은 전 세계 테니스 팬들의 심금을 울렸다.

장장 다섯 시간 넘게 진행된 호주오픈 결승전은 한 편의 드라마 같았다. 경기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평소의 나달답지 않게 전반적으로 범실이 많아 1세트(2-6)와 2세트(6-7)를 쉽게 내주었다. 3세트를 먼저 이긴 사람이 승자가 되는 메이저 대회 경기에서 2세트를 내리 진 것은 승리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거나 마찬가지라 그 누구도 나달의 우승을 예측하지 못했다. 열 살 어리고, 장신의 키에서 뿜어져 나오는 폭발적인 서브를 구사하는 상대 메드베데프를 상대하느라 그는 진땀을 뺐다.

매년 모든 그랜드 슬램 경기를 챙겨보는데 이렇게 기적을 바란 적은 처음이었다. 코트의 관중들 역시 “바모스 라파!(Vamos Rafa!)”를 외치며 두 손을 모아 힘을 보냈다. 메드베데프를 힘겹게 상대하며 자신의 서비스 게임을 간신히 지켜나가는 나달의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3세트부터 상대의 게임을 브레이크하며 끈기와 투지로 경기의 흐름을 바꿔 나갔다. 마지막까지 긴장의 연속이었던 경기였지만 승리의 여신은 나달 편에 있었다. 관록이 패기를 이긴 것이다.

그는 호주오픈과는 유난히 인연이 없었지만, 불멸의 기록을 멜버른에서 세우게 되었다. 나달은 2009년 호주오픈 첫 우승 후, 올해 두 번째로 우승컵을 안게 되었다. 작년 프랑스 오픈 이후 발 부상으로 재활에 전념해야 해서 올림픽, 윔블던, US오픈에 결장하며 2021년 시즌을 마무리하여 팬들의 아쉬움을 샀다. 12월에는 코로나에 확진되며 호주오픈 출전 가능성마저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그는 한 달 전만 해도 코로나와 여러 일로 인해 다시 테니스를 치게 될지 몰랐다고 전했다. 이런 사정이 있었기에 그의 우승은 더욱 값지다.

기아치와의 특별한 인연

나달은 불가능해 보이는 샷을 상대에게 모두 넘길 정도로 스피드와 투지가 남다르다. 특히 상대 선수가 맘먹고 공격한 것을 야생마처럼 달려가 모두 받아치고 오히려 상대 선수를 지치게 만든다. 또한, 포핸드나 서브의 속도가 빠르지는 않지만, 샷 자체에 스핀이 아주 많이 걸리기 때문에 상대의 실수를 끌어낸다. 나달의 경기는 다른 선수들의 경기에 비해 굉장히 오래 지속되는 편인데, 이렇다 보니 체력 소모가 크다. 이런 그의 경기 운영 스타일은 그에게 여러 번 우승을 안겨 주었지만, 그만큼 잦은 부상을 가져다주었다. 2001년 열다섯의 나이에 프로로 데뷔한 나달은 2004년, 2005년에 발목 부상으로 고생했다. 그 후에는 무릎 부상이었다. 2012년 윔블던 이후에는 2013년까지 복귀하지 못할 정도 장기간 코트를 떠나있어야 했다. 2014년과 2016년에는 손목 부상으로 대회를 포기한 적도 있다.

이와 관련해 기아자동차와 맺은 일화가 있다. 2004년 나달은 마이애미 오픈에서 페더러를 이기며 슈퍼 루키 선수로 서서히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그러나 대회 이후 극심한 발목 부상으로 프랑스 오픈 등 주요 대회에 참가하지 못했다. 이때 기아차동차는 나달을 후원하기로 한다. 떠오르는 테니스 유망주는 많지만, 부상이나 잦은 기복으로 세계적인 선수가 되는 경우는 많지 않기 때문에 나달과의 계약은 무모하다고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달은 2005년 처음 출전한 프랑스 오픈에서 보란 듯 우승하였고, 그의 전성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 후 나달은 글로벌 앰버서더로서 기아와 10년 계약을 맺었고, 현재까지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대회 시상식이나 SNS에서 언제나 기아차에 감사를 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스페인 TV에서는 나달의 “기아차 7년 무상 보증”이라는 광고가 종종 보이는데 참 반갑다!

“당신은 방금 역사를 만들었으며, 최고임을 다시 한번 증명했습니다. 당신의 투지로 우리에게 영감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나달의 신기록 달성을 축하한 기아차. 사진=기아 스페인 트위터
“당신은 방금 역사를 만들었으며, 최고임을 다시 한번 증명했습니다. 당신의 투지로 우리에게 영감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나달의 신기록 달성을 축하한 기아차. 사진=기아 스페인 트위터

나달만의 ‘특별한 루틴’

나달은 어떻게 세계적인 선수로 거듭날 수 있었을까? 나달은 스포츠 집안에서 태어났다. 삼촌 토니 나달은 테니스 선수였고, 또다른 삼촌 미겔 앙헬 나달은 FC 바르셀로나와 마요르카에서 뛰었던 축구 선수였다. 운동 신경이 뛰어날 수밖에 없는 유전자를 가졌던 걸까? 토니 나달은 나달이 세 살 때부터 테니스를 가르쳤고 재능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 나달은 테니스뿐만 아니라 축구에도 두각을 나타냈지만, 결국 테니스의 길을 선택했다. 그는 평상시에 오른손잡이지만 토니 나달의 권유로 테니스를 왼손으로 치게 되었고, 이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토니 나달은 2017년까지 나달의 코치로서 그의 전성기를 함께했고, 현재는 스페인의 전 테니스 선수 카를로스 모야가 나달의 코치 역할을 하고 있다.

많은 테니스 선수가 경기 중에 괴성을 지르거나 특유의 행동으로 시선을 끌기도 하는데, 나달은 그중에서도 루틴이 가장 많기로 소문난 선수이다. 본인이 마시던 물병들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같은 곳을 바라보게 세워두고, 코트를 지나갈 때 선을 절대 밟지 않거나 수건으로 몸을 닦을 때도 순서가 있는 등, 혹자는 그가 강박장애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의심된다고까지 할 정도이다.

그가 서브를 넣기 전 아주 빠르게 머리와 코를 만지고 엉덩이에 낀 바지를 빼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나달은 이 동작을 건너뛰고 서브를 넣을 수 없다. 팬들 입장에서는 특이하고 재밌게 보일 수 있지만, 요란스럽고 긴 루틴은 상대 선수를 화나게 만들 때도 있다. 이번 호주오픈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권순우 선수를 역전승으로 이긴 샤포발로프는 나달이 서브 시간을 초과해도 주심이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고 항의를 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매 경기에서 물병을 가지런히 세우는 나달. 더불어 언제나 화려하고 비비드한 색상의 의상을 입어서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사진=abc.es
매 경기에서 물병을 가지런히 세우는 나달. 더불어 언제나 화려하고 비비드한 색상의 의상을 입어서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사진=abc.es

고국이 어려울때마다...나달의 선행

그렇지만 나달은 전 세계적으로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다. 출중한 테니스 실력뿐만 아니라 그의 평소 인품 덕분이다. 경기가 잘 풀리지 않거나 패배했을 때 라켓을 있는 힘껏 땅에 던지거나 거친 단어를 사용하여 논란이 되는 선수가 많은데 나달은 그런 적이 거의 없다. 화끈한 플레이 스타일과 다르게 실제로는 마음이 따뜻하고 겸손한 사람이라는 것이 여러 방면에서 드러난다. 특히 고국에 힘든 일이 있을 때 물심양면으로 도와 스페인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 스타 중 한 명이기도 하다.

2018년 고향인 마요르카의 홍수 피해 소식을 들은 나달은 모든 스케줄을 취소하고 달려가 직접 청소를 돕고, 이재민을 위한 거처도 마련했다. 그 외에도 3,000kg에 달하는 음식을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기부하거나 코로나와 라 팔마 화산 폭발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스페인 국민을 돕는 활동도 펼쳤다. 또한, 본인의 이름을 딴 재단을 설립하여 그의 어머니, 부인인 시스카 페레요와 함께 사회 환원 활동에도 힘쓰고 있다. 재단에서는 지적 장애를 가진 청소년과 취약 아동 돕기, 스포츠 인재 육성 등 스페인과 외국의 아이들을 위한 여러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나달은 2018년 마요르카 홍수 피해 현장에 직접 가서 마을 주민들을 돕고, 거리 청소에 앞장서서 스페인 국민에게 감동을 줬다. 사진=lavanguardia.com
나달은 2018년 마요르카 홍수 피해 현장에 직접 가서 마을 주민들을 돕고, 거리 청소에 앞장서서 스페인 국민에게 감동을 줬다. 사진=lavanguardia.com

실력은 물론 인성까지 완벽한 나달은 진정한 테니스의 황제가 되었다. 새벽 1시 넘어서까지 계속된 눈물겨웠던 결승전은 테니스 역사에 길이 남을 명경기가 되었다. 클레이 코트인 롤랑가로스(프랑스 오픈)에서의 우승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호주오픈에서도 황제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조코비치는 백신 미접종과 입국신고서를 사실대로 작성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추방되어 대회에 불참했다. 페더러는 41세의 노장이 되었고, 이번에는 무릎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했다.

몇 년 전부터 전성기가 지났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선수로서는 나이가 지긋한 편이지만, 체력적인 한계를 극복하고 아름다운 도전을 이어가는 빅3의 행보는 가히 놀라울 정도이다. 테니스 역사에 다시 없을 황금기를 직접 볼 수 있어서 테니스 팬으로서 행복하다. 이변이 없는 한 나달은 자신의 안방인 롤랑가로스에서 22번째 메이저 대회 우승이라는 신기록에 또다시 도전한다. 부상과 나이에 굴하지 않고 경이로운 기록을 써 내려가는 나달에게 진심 어린 존경과 박수를 보낸다.

글쓴이

최지윤 칼럼니스트

최지윤 칼럼니스트는 현재 스페인 살라망카대학 한국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을 전공했고, 국외 한국어 교육 사업을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인 ‘세종학당(멕시코)’에서 근무했다. 스페인어권 국가의 한국어 교육 전문가가 되기 위해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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