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맛없는 커피 보유국은

[최지윤의 스페인 이야기] ‘미식의 나라’에 커피 맛이 왜 이럴까 최악의 커피맛 내는 3가지 이유 발견하고

가장 보편적인 스페인의 커피 종류. 카페 콘 레체는 우유와 커피가 반씩 들어가 카페라떼와 비슷한 반면, 현지인들이 많이 즐기는 ‘카페 코르타도’는 우유가 샷보다 적게 들어간 음료다. 사진=cocina.es
가장 보편적인 스페인의 커피 종류. 카페 콘 레체는 우유와 커피가 반씩 들어가 카페라떼와 비슷한 반면, 현지인들이 많이 즐기는 ‘카페 코르타도’는 우유가 샷보다 적게 들어간 음료다. 사진=cocina.es

카페 알바하며 익힌 ‘커피맛 감별’

한국인의 커피 사랑은 유별나다. 바쁜 아침, 끼니는 못 챙겨도 아침의 피로를 풀어주는 커피를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점심 식사 후에는 모두 습관처럼 한 손에 커피를 사 들고 간다. 약속이 있거나 공부를 할 때도 가장 먼저 찾게 되는 곳은 카페다. 물가 상승으로 커피값도 덩달아 오르고 있지만, 우리는 커피를 끊는 게 힘들다. 어디를 가도 발에 채는 게 카페이고, 커피와 카페는 한국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여러 통계 자료를 봐도 대한민국은 ‘커피 공화국’인 게 틀림없다. 국세청 통계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카페 수는 9만여 곳으로 이는 역대 최대치였다. 전년 대비 14.7% 증가한 것으로, 은퇴 후 창업 단골 업종이었던 치킨집의 수를 앞지른 것이다.

달달한 믹스 커피, 자판기 커피가 즐비하던 한국에 언제부터 고급 커피와 프랜차이즈 카페 열풍이 불기 시작한 것일까? 아마 그 시작은 1999년 이화여대 앞에 1호점을 낸 스타벅스였을 것이다. 패션과 트렌드의 중심이었던 신촌 일대에 오픈한 스타벅스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저렴한 커피에서 고급 커피를 찾는 유행이 점차 퍼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당시 물가에 비해 가격이 비쌌던 커피를 여전히 낯설게 바라보는 시선도 적지 않았다. 한 예로, 2000년대 초중반까지 허영심 가득한 여자를 비하하는 단어인 ‘된장녀’가 인터넷상에서 많이 사용되었는데 스타벅스는 그런 된장녀의 전유물이라고까지 일컬어졌다. 하지만 그런 흐름도 잠시뿐이었다. 스타벅스 이후 많은 국내 프랜차이즈 커피 브랜드가 생겨났고, 한국 사회에 프리미엄 커피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하며 너나 할 것 없이 온 국민이 커피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한국의 커피 맛은 더욱 까다로워졌고 고급화도 이뤄졌다. 해외 생활을 하는 필자는 한국에 갈 때마다 행복한 비명을 지른다. 웬만한 동네 카페에 가도 전문적인 수준의 라떼아트와 크레마가 예술인 커피를 만나볼 수 있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필자는 언제부터인가 맛있는 커피가 있는 곳이라면 꼭 가서 먹어봐야 직성이 풀릴 정도로 카페 투어를 취미로 여기던 사람이 됐다. 그런데 스페인에서 살기 시작한 이후로 그 소중한 취미를 잃게 되었다!

스페인에서 커피 맛을 잃다...이럴수가!

처음 스페인에서 커피 맛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그것은 절망 그 자체였다. 카페라떼와 아주 흡사한 ‘카페 콘 레체’의 맛은 충격적이었다. 커피를 만들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너무 뜨거운 온도로 우유 스티밍을 하면 우유 표면에 기포가 생기고 특유의 비릿한 냄새가 난다. 그날 주문한 커피에서는 스티밍이 잘못된 비린 우유와 쓰고 텁텁한 원두 맛이 확 느껴졌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자면 살면서 마신 커피 중에 ‘최악’이었다. 최악이라고 생각했던 그 커피는 스페인에서 찾을 수 있는 아주 보편적인 커피였다는 걸 깨달았을 때 더욱 절망했다.

스페인의 야외 식당.
스페인의 야외 식당.

그날 이후 유명하다는 카페를 찾아 돌아다녔지만, 스페인 소도시에서 맛있는 커피를 찾는 건 불가능했다. 그나마 내가 사는 도시에 마침 첫 번째 스타벅스가 생겨서 매일 출근 도장을 찍다시피 했다. 한국 스타벅스에 비하면 메뉴가 다양하지는 않았지만, 꿩 대신 닭이라고 한국에서 익숙하게 마셨던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것에 그저 감사했다. 힘들었던 스페인 생활에 그나마 내 아지트이자 안식처가 되었다.

또 더 신기했던 것은 스페인의 ‘아이스 커피’이다. 더운 여름에는 머리가 띵하도록 시원한 아이스 커피를 마셔야 제맛인데, 대부분의 스페인 카페에서는 아이스 커피를 제공하지 않는다. 커피에 얼음을 넣어 달라고 하면, 뜨겁거나 미지근한 카페와 얼음 잔을 따로 가져다준다. 가득 찬 커피를 얼음 잔에 옮겨 담아 마시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된다. ‘미식의 나라’로 손꼽히는 스페인의 음식과 와인은 두말하면 잔소리일 정도로 훌륭하다. 그런데 왜 스페인 커피는 유독 맛이 없는 것인지 정말 궁금했다.

아이스 라떼를 주문하면 따뜻한 라떼와 얼음 잔을 준다. 가득 담긴 커피를 흘리지 않고 옮겨 담는 건 아직도 너무 어렵다. 사진=최지윤
아이스 라떼를 주문하면 따뜻한 라떼와 얼음 잔을 준다. 가득 담긴 커피를 흘리지 않고 옮겨 담는 건 아직도 너무 어렵다. 사진=최지윤

원두 볶을 때 왜 ‘설탕’을 넣을까

여러 카페를 다녀보고 분석한 결과를 통해 스페인 커피가 맛없는 이유를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 첫 번째, ‘토레팍토(Torrefacto) 원두’의 사용이다. 원두를 로스팅하는 중에 설탕을 넣는 것을 토레팍토라고 부르는데, 이렇게 설탕 막이 씌워진 원두는 더 짙은 갈색으로 변한다.

커피 원두는 그 자체로 향기롭고 맛이 훌륭한데 왜 굳이 설탕을 첨가하는 것일까? 20세기 초, 멕시코로 원두를 구하러 갔던 스페인 커피 사업가 호세 고메즈는 우연히 현지 광부들이 커피 로스팅 중에 설탕을 넣는 것을 보게 된다. 광부들은 오랜 시간 지하에서 일하기 때문에 장시간 보존할 수 있는 커피 원두가 필요했고, 설탕을 넣어 원두의 산화를 막았다. 호세 고메즈는 이 참신한 방법을 스페인 커피 시장에 적용했다. 설탕을 첨가함으로써 로스팅 양이 늘어나 원두를 적게 사용할 수 있었고, 품질이 낮은 원두를 사용해도 설탕을 통해 숨길 수 있었다. 맛 안나게 하는 짓을 터득한 것이다!

이후 스페인 내전 때문에 먹거리가 부족해고 커피 수급이 어려워지자, 원두를 적게 사용하고 오랜 시간 보관이 가능한 토레팍토 커피는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거의 한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토레팍토가 사용된다. 이젠 스페인 사람들이 그 맛에 익숙해진 것이다. 진하고 쓴 커피 맛에 길들어진 스페인 사람들은 오히려 천연 원두로만 내린 커피를 마시면 뭔가 밋밋하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커피 회사는 토레팍토를 활용해 낮은 원가로 커피를 공급하고, 높은 마진을 남길 수 있으니 굳이 100% 천연 원두를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때문에 현지 카페나 음식점에서는 여전히 토레팍토 원두가 사용되고, 슈퍼마켓에서도 판매되고 있다.

멸균우유라니! ...전문 바리스타도 안보여

두 번째로 스페인 커피가 맛이 없는 이유는 ‘멸균 우유의 사용’ 탓이다. 지난해 10월에 발행된 스페인 정부의 우유 및 유제품 소비 보고서를 보면 스페인에서 사용되는 우유의 80.9%는 멸균우유다. 가정에서는 물론, 식당과 카페에서도 신선우유 대신 오래 보관할 수 있고, 저렴한 멸균우유를 선호한다. 최근 한국에서도 우윳값 상승으로 멸균우유를 구매하는 소비자가 증가하고, 멸균우유 사용을 고려하는 카페가 증가하는 추세인데 맛의 차이가 커서 섣불리 바꾸지 못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확실히 신선우유에 익숙한 한국인에게 멸균우유로 만든 커피는 어딘가 부족한 맛이 난다. 이는 지극히 개인 취향일 수도 있으나 필자는 우유가 커피 맛을 좌우하는 요소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러나 멸균우유를 평생 마셔 온 스페인 사람들은 그 맛에 익숙해져서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신선우유를 사용하는 일이 없다.

스페인 레스토랑에서 후식으로 주문할 수 있는 커피. 한국 카페에서 파는 커피보다 양이 적은 편이다. 산미가 느껴지는 대신에 텁텁하고 탄 원두 맛이 난다. 커피에 설탕을 넣는 현지인들이 많은데 아마 쓴맛을 조금 완화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진=최지윤
스페인 레스토랑에서 후식으로 주문할 수 있는 커피. 한국 카페에서 파는 커피보다 양이 적은 편이다. 산미가 느껴지는 대신에 텁텁하고 탄 원두 맛이 난다. 커피에 설탕을 넣는 현지인들이 많은데 아마 쓴맛을 조금 완화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진=최지윤

마지막 이유로 스페인에는 ‘숙련된’ 바리스타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스페인에서는 식사 후 디저트와 커피까지 같은 식당에서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커피를 만드는 식당 직원은 커피에 대해 잘 알까? 사실 그들은 평범한 식당 종업원이며, 커피 전문가는 아니다. 그래서 식당에서는 좋은 퀄리티의 커피를 기대하기 어렵다. 또 바리스타가 만드는 커피나 커피 전문점에 가서 굳이 커피를 마셔야겠다는 문화가 스페인에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입맛이 까다로운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커피 퀄리티에 대해 논하는 사람조차 없다. 이런 분위기다 보니 카페에서도 커피 질을 개선하는 데 그다지 관심이 없다. 카페에서 라떼나 카푸치노를 주문하면, 부드러운 우유 거품 대신 그저 뜨겁게 데워진 우유와 기포 가득한 거품을 담아 주는 경우가 종종 있을 정도다.

마드리드 컨벤션센터 이페마(IFEMA)의 자료에 따르면, 스페인 성인 인구(18~64세)의 70%가 매일 커피를 마시고, 하루 평균 2.2잔을 마신다. 우리나라 못지않게 커피를 자주 마시는 셈이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식당이나 바에서 커피를 마시는 문화가 깊게 뿌리내려 있어서 외국계 프랜차이즈 카페나 프리미엄 카페의 시장 점유율이 매우 낮다.

로컬 카페의 경우, 바리스타가 있는 커피 전문점이라기보다 디저트와 커피를 파는 베이커리 카페 같은 느낌이 강하다. 올해 6월 기준으로 스페인에는 153개의 스타벅스가 있고, 수도인 마드리드에 54곳, 바르셀로나에 31곳이 있다한다. 한국보다 다섯 배 넓은 스페인 면적을 고려하면 결코 많은 수는 아니다. 일반 스타벅스 매장과 차별화된 품질 좋은 원두로 커피 마니아를 타겟으로 한 스타벅스 리저브 매장은 한국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나 스페인에는 마드리드에 딱 한 곳뿐이다.

1~2년 사이에 마드리드에 커피 전문점이 많이 생겼다. 맘먹고 카페 투어를 해도 며칠이 걸릴 정도로 많아졌다. 하지만 스페인의 소도시에서는 이런 카페를 찾아보기가 정말 어렵다. 사진=최지윤
1~2년 사이에 마드리드에 커피 전문점이 많이 생겼다. 맘먹고 카페 투어를 해도 며칠이 걸릴 정도로 많아졌다. 하지만 스페인의 소도시에서는 이런 카페를 찾아보기가 정말 어렵다. 사진=최지윤

이제 프리미엄 커피점 생기는 스페인

커피 가격도 일반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은 평균 1.5~2유로(약 3천원)인데 스타벅스를 비롯한 커피 전문점의 카페는 4유로 정도로 굉장히 비싸게 인식된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커피 전문점이 늘어나고 올해 처음으로 스타벅스 멤버쉽이 런칭되기도 했다. 특히 MZ세대를 중심으로 프리미엄 원두커피를 보유한 이색적인 콘셉트의 카페가 인기를 끌고 있다. 마드리드, 바르셀로나와 같은 대도시에서는 가장 힙한 동네에서 커피 전문점을 찾아보기가 조금 쉬워졌다. 여전히 대부분의 카페가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고 있지만, 좋은 원두와 신선우유, 전문 바리스타를 모두 갖춘 카페가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팬데믹 이후 익숙한 것, 옛것을 추구하는 스페인에서 이런 변화의 물결은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20여 년 전 시작된 한국의 카페 열풍이 오늘날 우리 라이프스타일에 큰 영향을 끼친 것처럼 이 트렌드 역시 스페인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줄 것이다. 먹음직스러운 음식, 와인으로 가득한 스페인에서 향긋하고 맛있는 커피까지 쉽게 찾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글쓴이

최지윤 칼럼니스트

최지윤 칼럼니스트는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을 전공했고, 국외 한국어 교육 사업을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인 ‘세종학당(멕시코)’과 스페인 살라망카대학교 한국학과에서 교원으로 일했다. 현재는 스페인어권 국가의 한국어 교육 전문가가 되기 위해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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